2011년 1월 16일 일요일

존 웨슬리-4

존 웨슬리-4
 

  
13. 웨슬리의 성령론 
14. 웨슬리의 교회론
15. 웨슬리의 성례전론
16. 웨슬리의 종말론

 
13. 웨슬리의 성령론
진리의 성령님은 우리가 구원 받는 과정에서 모든 도움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 제자들에게서 떠나시면서 성령을 주시기를 약속하셨고, 성령은 오순절 이 후 초대 교회에 강하게
작용해 방언, 예언, 말씀, 병 고침, 감동 감화 등으로 복음 전파에 힘을 실어 주셨습니다.
중세 시대에 성령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으나 웨슬리를 비롯한 근대 부흥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 조지아 주의 선교에 실패한 웨슬리는 자신의 신학적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힘이 없이 형식적이고
경직된 자신이 신앙이 문제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1738년 회심을 계기로 성령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복음을 중심으로 한 대각성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영적인 무지로 죄악의 길로 가는 사회를 선도하고 잠자는 신앙을 일깨우기 위해 성령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a) 성령의 본질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구분되면서도 일체함이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자 내 안에 거하는 하나님입니다.
성령은 창세 전부터 계셨고, 신격과 인격을 갖추셨으며, 우리를 구원과 성화로 이끄십니다.
성령은 거듭남으로 우리 영을 탄생시키고, 양육시키며,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하게 합니다.
웨슬리는 인간의 회개, 믿음, 거듭남 등 구원의 전 과정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웨슬리는 우리를 진리와 성결로 이끄는 것은 성령이라고 했으며, 성령의 역사를 철저히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결은 모든 죄가 씻김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영적으로 순결한 상태입니다.
살후 2/3에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디도서 3/5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볼 때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성결의 집행자라 볼 수 있습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성령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끊임 없는 성령과의 교류를 통해 인간은 믿음, 사랑, 기쁨, 감사, 평화 등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죄성을 극복하고 새롭게 변화되 성화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도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또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생명력 있는 설교를 가능하게 합니다.
요한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살전 5/19~20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갈라디아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님의 가장 큰 사역은 우리를 진리가운데 인도하셔서 옳은 길로 인도하시고 많은 깨달음을 주십니다.
또한 항상 성령의 불이 내 안에서 꺼지지 않도록 기도와 찬양에 힘써야 합니다.
예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도 멸시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성령의 9가지 열매라는 다양한 성품을 주십니다.

일부 은사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진리를 중심하지 않고 은사에만 치우쳐 마귀의 주관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과 교리 공부를 등안시 하고 이교도적인 방언과 귀신 쫓음, 병고침, 이상한 입신 현상 등에 치중합니다.
그러나 은사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은사는 구원 받은 성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영 분별, 예언, 병고침. 방언 등의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신령해지면 자신에게 미치는 나쁜 영의 파장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또한 귀신이나 마귀들린 자의 악을 영을 쫓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좌우(진리와 은혜)로 치우치지 않고 진리를 중심하면서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b) 성령의 인격성과 신격성
1. 성령의 인격성
성령이 불, 바람, 물, 기름 비둘기 등의 상징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성령이 무생물이나 비인격적인 존재(힘, 능력,
에너지)로 오해되곤 했습니다.
성령을 의미하는 헬라어 '프뉴마'는 '호흡하는 기운'이라는 뜻으로 비 물질적인 강력한 실체를 가르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6/13,14절에 성령을 대명사 그(he)로 가르키는 것으로 보아 남성 인격성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는 존엄성과 품위를 갖춘 인격체로 기도와 찬송과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성령의 인격적인 속성으로는 모든 것을 아시는 '지성'(고전 2/10),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진 '감성'(에베소서 4/30),
'의지의 속성'(고전 12/11, 롬 15/30)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님은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는 보혜사(Comforter(위로자), helper(조력자))로
성령님 자체가 경배의 대상이자 목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 성령의 신격성
초대 교회의 '아리안'(Arians)이나 '사벨리안'(Sabellian)과 같은 이단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힘으로만
간주해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격성과 신격성은 사도행전 5/3~4에서 아나니아가 성령을 속였다는 점에서 '인격성'이 증명되고,
성령을 속인 것이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이란 점에서 '신격성'이 증명됩니다.
사도행전 5/3~4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웨슬리는 구원과 성화는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함으로써 성령의 신성을 명백히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삼위일체론을 철저히 믿었으며, 진정한 기독교인은 삼위일체론을 부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의 피조물이라는 아리우스주의자(Arianism)에 반대해 성령은 그 본질에 있어서
성부와 같고, 성부와 성자가 역사할 때 성령도 동참한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도 성령의 신성이 성부와 성자의 신성과 동일하지 않다는 유니테리아니즘(unitarianism)에 반대해 성령의
신성과 동격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그는 성령이 창조 사역에 관여했고, 구약 역사에도 참여했으며, 하나님의 섭리와 모든 구원 역사에 참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존맥커리에(Jhon Macquarrie)는 성부를 '근원적 존재'(primodial being), 성자를 '표현적 존재'
(expressive being), 성령을 통합적 존재(unitive being)이라 하여 삼위일체론을 설명하였습니다.
요한 15/26의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내실 보혜사'란 구절을 통해 성령이 아버지로부터 보내신 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웨슬리는 벧전 1/11에서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른 점을 토대로 성령이 아버지부터로 뿐만 아니라
아들로부터로도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 사역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임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14. 웨슬리의 교회론 - 1
웨슬리는 18세기 영국 국교회가 형식적이고 전통에 얽매어 살아 있는 신앙을 하지 못함을 개탄하고 교회를 개혁하고
부흥시키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는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보다 부요할 때 성직자와 교인이 타락하는 것을 간파하였고, 실제로 18세기 영국 교회는
타락하였습니다.
웨슬리는 먼저 개인적인 구원을 강조했는데 구원을 은총으로 죄사함 받는 '칭의'와 죄성으로부터 깨끗해지고
거룩해져 사랑으로 충만한 '성화'로 나누었습니다.
성화는 성령의 은총에 대한 신인협력적인 노력에 의해 주어지며, 날마다 말씀과 은혜로 변화를 받아 '영화'를 목표로
온전히 성장하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교회를 제도, 의식, 교권, 건물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되어 가는 자들의 '사랑의 교제',
'사랑의 공동체'로 이해하였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은 성화이고, 그리스도의 피로 획득한 믿음과 사랑과 경건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구성된
공동체입니다.
초대 교회 역시 서로 말씀을 가르치고 물건을 통용한 성화와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웨슬리는 교회는 교회의 머리된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생각했고, 교인 또한 거룩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자 지도자는 오직 예수님이므로 교회에서 성도 위에 군림하는 인간 지도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목사와 장로와 감독은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자이고, 교회 실무는 집사가 담당합니다.)
웨슬리는 교인 생활에 있어서도 근면 검소하게 살면서 저축해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솔선수범하여 기본적인 생활비 외에 모든 수입을 선교와 구제를 위해 썼고, 그가 죽고 나서 남긴 재산은
동전 몇푼과 은수저뿐이었습니다.
그는 가재도구를 팔아 구제했고, 고아와 병자를 돌보는 학교와 진료소, 가난한 자를 위한 집 등을 설립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영국 교회가 너무 형식적인데 치우쳐 성도를 돌보고 교제케하는데 부족했다고 보고, 교회가 교인들 간의
인격적 교제가 이루어지고 영육간의 어려운 점을 서로 살펴주는 곳이 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는데 힘을 쓴 것을 상기하고, 성도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장한다고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성도의 교제를 위해 모라비아 교도들로부터 배운 소집단 제도를 채택하여 신도회(Society), 속회(Class
Meeting), 조(Band)를 조직하여 신앙성장과 친교, 전도와 제자 훈련을 하여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했습니다.
그는 또한 모라비안으로부터 조직, 경건생활, 전도의 열정과 헌신, 찬송 부르기. 노방 전도, 즉석 기도와 설교,
평신도 설교, 교육 등을 배웠습니다.
웨슬리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와 관습과 교권체제를 그대로 이어 받은 영국 성공회를 문제점을 지적했만 되도록
교회의 일치를 위해 분리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웨슬리가 목사 안수를 베풀고 설교자를 임명한 것이 성공회와 분열되게 만들었고, 성공회 감독들도 웨슬리를
비방해 점차 분리되게 되었습니다.


15. 웨슬리의 성례전론
성례전은 세례나 성찬 같은 구원과 관련된 기념 의식입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세례는 신앙과 중생의 표시이지 수단은 아니었습니다.
세례를 죄 씻음과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해 연합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웨슬리는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전통에 따라 성만찬을 중시했습니다.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웨슬리는 성만찬을 '하나님의 선행적이고 의롭게 하며 성화시키는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그는 성만찬을 은총 그 자체가 아니라 은총의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성만찬 시 예수님이 임재해 빵과 포도주가 실제 살과 피가 된다는 화체설은 반대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재림하시기 전까지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을 통해 오실 수는 있어도 육체적으로 오시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츠빙글리는 성만찬을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회상하고 감사하는 기념적인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웨슬리는 성만찬 시 예수님의 육체적 물질적 임재를 거부하고, 츠빙글리의 기념설도 거부하고, 역동적(dynamic)으로
성도들의 마음 속에 신비하게 임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일을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므로 하나의 신비로 보았습니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예하는데 이를 일으키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16. 웨슬리의 종말론
웨슬리는 연옥설이나 영혼 수면설을 부인하고 부활할 때까지 영혼은 일정한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죽은 자의 부활과 몸과 영혼의 온전한 부활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부활하는 몸은 썩지 않고 죽는 않는 완벽한 몸이고, 모든 질병 고통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운 온전한 몸이라고
믿었습니다.
웨슬리 신학은 구원론이 중점이기 때문에 종말론에 관해서는 체계적인 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에 500회(신약 300회) 언급된 재림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교회사를 돌이켜 보면 초대교회 3세기까지 예수님이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한다는 전천년주의가 믿어졌는데,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가 천년왕국은 교회를 통해 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무천년주의를 주장해 믿어졌습니다.
종교 개혁 당시 루터가 다시 전 천년주의를 지지하였고, 1884년 이 후에야 사람들이 종말과 재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적 종말은 말세의 징조가 나타나고, 예수님이 공중 강림할 때 의로운 성도의 휴거가 일어나며, 7년 대환난동안
적 그리스도가 이 땅을 통치해 남은 교인을 핍박하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사탄 마귀 악인을 진멸해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영혼은 영적인 몸을 입고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온갖 영화를 누리며 왕 노릇하고
천년이 지난 뒤 사탄을 심판해 불못에 던지고, 구원 받지 못해 지옥에 있던 영혼을 몸을 입혀(사망의 부활) 백 보좌
앞으로 불러내 하늘 책에 기록된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해 불못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 후에 지구와 우주는 불 타 없어지고 구원 받은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웨슬리는 그의 저서와 찬송가 가사를 통해 전천년주의자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웨슬리가 이 땅에 복음 전파로 천년왕국에 이루어지고 이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후 천년주의'를
믿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는 그가 사회복음을 강조한데 기인하지만 이 세상이 점점 타락하고 악해지는 것으로 보아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의의를 영생을 상속 받을 의인과 영원한 형벌을 받을 악인을 갈라 놓는데 두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사탄을 물리치고 자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심판이 죽음 이 후에 일어나지 않고 주님의 재림 이 후에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웨슬리는 새로운 천국이 아담이 낙원에서 누렸던 것보다 더 나은 성결과 행복의 상태가 이루어 질 것으로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웨슬리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서도 영광을 누리지 못 할 것으로
보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현세를 무시하고 천국과 종말만을 강조한 종말론자도 아니고, 내세와 종말을 무시하고 현세말을 중요시하는
현실 주의자도 아니였습니다.
웨슬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셔 우리를 심판할 때 '우리의 내적 성결', '우리의 업적에 따라',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은 정도에 따라' 보상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나타나실 때에 우리도 그 분과 같이 될 것이며, 우리가 그 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모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상으로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생애와 신학과 사상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그는 구원 체험을 바탕으로 성령 충만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성화된 삶을 촉구했고 이 시대에 많은 교훈을 줍니다.
그러나 현재 감리 교회가 존 웨슬리의 가르침과는 동 떨어지게 부정 부패 사건이 일어나고, 성경을 이성적으로
해석하는 자유주의에 물들고, 배교적인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도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감리교 계열의 기독교 신문을 보면 그리스도의 심판과 재림이 없다고 하고, 사회적인 개혁을 통해 지상 천국을
만들자고 하며, 에큐메니컬 운동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부디 감리교회가 하루 속히 건전한 교리의 근본적 신앙을 회복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으며, 오직 성경 중심으로
진리 신앙 하기를 부족하나마 간절히 바랍니다.
 

* 참고 도서: 존 웨슬리와 감리교 신학 (김영선, 대한 기독교 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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