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7일 월요일

교권주의 비판-1 (성직제도와 교단주의에 대해)

교권주의 비판-1 (성직제도와 교단주의에 대해)

교권주의란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을 일반신자들과는 다른 성직임을 강조하면서 권력 집단화 해서 각종 혜택(부, 명예, 권세)을 누리고, 교인들을 권력적으로 지배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교회권력을 구축하는 일을 니골라당의 행위라 하여 아주 싫어 하셨으며,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중보자이고, 목사를 포함한 모든 교인은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목사들은 로마 카톨릭을 모방해 자신을 통해야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고, 계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며, 은혜의 복음보다는 율법적인 강요를 중시습니다.
갈라디아서 5/4 율법으로 의롭게 된 너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가 무용하게 되고 은혜로부터는 떨어져 나갔느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형제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라고 하셨고, 형제를 섬기는 본을 보이시면서 이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0/26 그렇지만 너희는 그렇게 되어서는 아니되느니라.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마가 9/35 주께서 앉으신 후 열둘을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끝이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리라.”고 하시니라.
한국의 독특한 교권주의는 권위주의, 물질주의, 성장주의, 기복주의, 개교회 주의, 지성전 설립, 인본주의, 세속주의, 율법주의 등의 병폐를 낳았으며 시대에도 맞지 않아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교회 안에서 제왕처럼 군림하고, 높은 연봉을 받으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교회 돈을 자기돈처럼 사용하거나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면서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인간의 절대권력은 부패한다는 원리는 교회 안에서도 변함이 없으며, 교회는 교인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거나 오직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회중교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또한 교인들의 성경적 지식과 바른 교리의 부재가 목회자의 독단적 전횡과 거짓 교리를 용납하게 하므로 성경적 진리로 철저히 무장해 도덕적 타락이나 거짓 가르침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정욕에 따라 귀를 즐겁게 해줄 선생들을 많이 두리라. 또한 그들이 그들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꾸며낸 이야기로 돌리리라.
빌립보서 3/18~19 내가 자주 너희에게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로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로 행하고 있느니라. 그들의 종말은 파멸이며 그들의 하나님은 자기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자기들의 수치 속에 들어 있고 그들은 땅의 것들을 생각하느니라.

* 목차
1. 주의 자녀들 위에 군림하는 '주의 종'
2. 사제주의의 위험성
3. 이익 권력집단이 되어 버린 교단정치의 폐해
4. 한국 교회의 정관


1. 주의 자녀들 위에 군림하는 '주의 종'
한국 기독교 목사들은 자신을 '주의 종'이라 부르기를 좋아하며, 교인들에게 자신의 말에 절대 복종하고, 자신을 섬길 것을 강요합니다.
이는 비성경적인 발언이며, 구원 받은 성도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자 예수님의 지체로 은사적 차이는 있으나 계급적 차이는 없습니다.
고전 7/23 너희는 값을 치루고 산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또한 주의 자녀가 주의 종을 섬겨야 한다는 것부터 이치에 맞지 않으며, 자신들이 말 그대로 '주의 종'이라면 영광을 구치 않고 성도들을 섬겨야 합니다.
만약 교회에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얻고 섬김을 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목회를 하지 말고 정치가나 사업가를 해야 합니다.
묵묵히 주인이 시키는 일을 아무 대가 없이 일을 하는 것이 종의 임무인데, 주의 종은 좋은 차를 타야 하고,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하늘 일을 하는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어떤 보상도 바라면 안되고, 나의 모든 의는 하늘에 쌓이고 주님으로부터 보상 받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보서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마음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명성 없는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정말로 주의 종이 되고 싶다면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자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님은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종의 형제인 미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죄인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섬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고, 이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려 보좌 오른 편에 앉히셨고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진실한 주의 종은 주인을 두려워 해야 하고, 쉽 없이 일해야 하며, 어떤 보상이나 대가도 바라지 말아야 하고, 주의 자녀들을 섬겨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는 하늘에서 부요하게 하시고, 이 세상에서 낮아진 자는 하늘에서 높히시며, 이 세상에서 순종한 자에게 하늘나라에서 명예와 권세를 안겨다 줄 것입니다.


2. 사제주의의 위험성
최근 한국 기독교 교인수가 감소하는 것은 대형교회의 비리, 목회자의 윤리부재, 교회세습, 비성경적인 설교와 교리, 무리한 헌금 강요, 무리한 성전 건축, 과도한 행사 등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본래의 사명이 영혼의 구원을 소홀히 하는데 있습니다.
일부 한국 기독 교회는 구약시대 율법과 로마카톨릭 교리와 한국전통의 기복신앙 등이 혼합된 형태로 진정한 의미의 신약 교회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도 기독교의 기본 교리도 잘 모르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특히 교인들이 듣기 좋아 하는 지식적인 설교나 교훈, 예화만 전하다 보니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요한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죄에 대한 경계나, 피의 대속, 성별된 삶, 고통스러운 지옥의 심판, 예수님의 심판과 재림, 사탄과 흑암의 실체 등에 관한 설교는 교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므로 거의 금기시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적인 교회의 관심사는 교인 수를 늘려 더 좋은 건물을 짓고 더 많은 헌금을 거두는데 있지 교인들의 영혼 구원은 안중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실시하는 각종 프로그램도 대부분 피상적 지식을 전하거나 교회에 충실하는 일꾼을 만드는데 역점을 두므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의 원인은 교회가 진리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인간이 만든 조직에 의해 운영되는 교권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 교회의 정치체제를 나누면 크게 감독정치, 장로정치, 회중교회로 나뉩니다.
'감독정치'는 왕정의 형식을 가진 교권체제로 감독직이 우월성을 인정하고, 성직자들의 서열을 중시합니다.
로마 카톨릭, 영국 국교회(성공회), 감리교회, 루터교회가 이 체제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장로정치'는 교인들이 선출한 장로들이 교회의 치리를 맡아 보는 공화정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장로(목사)와 치리하는 장로로 구성되는 당회가 회무의 중심이나, 모든 직분은 평등합니다.
당회는 지역적으로 모여 노회가 되고, 전국적으로 구성되면 총회가 되 교단이 형성됩니다.
칼빈의 제네바교회와 그의 전통을 이어 받은 스코틀랜드교회와 각국의 장로교회가 이에 해당합니다.
'회중정치'는 교인들의 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직분자들의 권한을 최소화하고, 광대회의를 결성하지 않는 민주정적인 체제입니다.
회중교회, 독립교회, 침례교회, 조합교회, 조직을 만들지 않는 무교회주의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사제주의'는 교회 지도자를 '성직자'라고 부르고, 이들을 평신도와 구별된 신분으로 보고 특별히 대접하며, 이들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거나, 이들을 통해 계시와 축복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일삼는 교회권력 경향입니다.
예수님이 아닌 사람이 교회의 머리가 되면 로마 카톨릭처럼 반드시 타락하며, 비성경적인 교리와 관습이 생겨나 구원과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의 자리를 빼앗는 사람을 개혁적 신조를 대변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 6항은 다음과 같이 명시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교회의 다른 머리가 없다. 로마의 교황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것의 머리가 될 수 없고,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그리고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모든 것을 대항하여 교회 안에서 자신을 높이는 저 적그리스도요 죄의 사람과 멸망의 아들이다."
그런대도 한국 교회 목사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높히기 위해 고급차를 타고 다니고, 강대상을 2단 3단으로 높히고, 성직 복장을 하며, 화려한 교회시설과 음향장치에 거액을 들이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방해가 되므로, 예수님을 교회 문 밖으로 밀어내고, 세상적인 교훈과 지식을 따르는 인본주의적인 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계시록 3/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계시록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이러한 목사의 사제화는 주님의 외면을 받고, 성령의 불길을 꺼뜨려 결국 유럽교회처럼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 크고 화려한 교회에 할머니 할아버지 몇 명만이 앉아 있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반면 성경적인 진리를 중시하는 미국 근본주의 침례교회나 성직제도 없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중국 회중교회(가정교회)는 나날이 번창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목사들은 자신들을 '기름 부음 받은 자' 또는 '성직자'로 표현하고, 그 지위를 모세나 제사장과 동일하게 합니다.
많은 교회에서 목사에 대한 권고와 비판은 성직에 대한 도전이라고 하며, 목사의 잘못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언급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하면 천벌이 내린다는 저주를 서슴치 않고, 모세를 대적한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걸린 예화가 즐겨 인용됩니다.
한국 교회의 병폐 중 하나는 목사가 심각한 죄가 들어나도 갖은 변명을 일삼으며 교회 안에서 버티기 때문에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고, 교인들이 교회를 등지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를 기름 부은 자 또는 성직자로 표현하는 것은 루터나 칼빈과 같은 종교 개혁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확실히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루터는 영적 계급을 나누는 것은 거짓과 위선이며, 모든 크리스천이 영적 계급에 속하며, 그들 간에는 직무적인 차이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고후 11/19~20 너희는 현명하다고 하면서도 어리석은 자들을 기꺼이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삼키거나 착취하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얼굴을 쳐도 너희는 용납하는구나.

목사는 계급이 아니라 직분일 뿐인데도 과도한 권한이 부여되고, 목자, 장로, 하나님의 사자, 전도인, 감독, 하나님의 청지기 등 화려한 수식어를 교단에서는 붙히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정치조례에서는 "목사는 계급을 가르킴이 아니요, 다만 각양 책임을 가르쳐 칭하는 것뿐이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예장통합과 예장고신의 헌법에서는 삭제되었습니다.
한국교회 헌법에는 교회 대표인 위임목사(담임목사) 밑에 부목사, 임시목사, 원로목사, 무임목사, 전도목사, 교단기관목사, 종군목사, 교육목사, 은퇴목사 등 10여종의 목사를 둠으로써 피라미드 조직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위임목사와 부목사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만 합니다.
위임목사의 임기는 종신인데 반해 부목사의 임기는 1년임으로 신분상의 불안을 느끼며 삽니다.
위임목사가 당회에서 교회의 행정을 총괄하데 비해 부목사는 당회에 참석조차 할 수 없습니다.
위임목사는 거액의 연봉과 각종 복지혜택을 받는데 반해 부목사는 생계가 힘들 정도로 박봉에 시달립니다.
위임목사는 당회에서 독재권을 갖고 독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한국교회 헌법은 당회의 의결절차나 위결 정족수를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민주적 운영을 어렵게 합니다.
위임목사는 제직회, 공동의회, 광대회의의 장도 맡음으로써 과도한 권력을 갖게 되고, 권력을 남용하거나 독점적 권위를 이용한 자기 우상화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목사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면서도 목사에게 통제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것이 목사의 사제화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목사는 노회에 소속되 있으므로, 지교회가 목사를 청빙하려면 노회에 청원해야 하고, 노회는 목사를 파송합니다.
한 번 목사가 임명되면 7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데, 문제는 목사의 부정이나 무능력으로 교인들이 목사를 해임하고자 할 때 발생합니다.
교회 교인의 다수가 목사의 해임을 원하더라도 목사의 해임은 노회에서 결정하는데, 항상 목사 편인 노회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도 해임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목사가 자진 사퇴하지 않는 한 교회에 남아 있으려는 목사측과 이를 반대하는 교인들간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장로 전원이 목사의 사면을 원할지라도 당사자인 목사 1명이 반대하면 당회에서 이를 의결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소득과 위신을 공고히 하려는 목사는 자신을 신성시 하는 사제주의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또한 교단 헌법은 목사에게 유리한 권한을 과도하게 부여하면서도 통제장치는 만들지 않고, 목사는 교회에 충성하기 보다는 노회 지도자에게 충성해 자신의 지위를 보장 받으려 하게 됩니다.

누가 20/46~47 “서기관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며, 시장에서는 인사받기를, 회당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잔치에서는 가장 좋은 자리를 좋아하고 또 과부들의 집을 삼키며 남들에게 보이고자 길게 기도하니, 그들은 더 큰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시더라.
예레미아 5/30~31 경이롭고 무서운 일이 그 땅에서 행해지는도다.선지자들은 거짓되이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그들의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하니 그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 이에 반해 개혁주의 교회는 다음 4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김득룡 1984)
1. 예수님만이 교회의 머리이며, 교회를 통치하는 왕입니다.
2. 오직 성경만이 모든 교회활동의 기준이 되며, 교인은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3. 어느 개인도 교회 치리의 권세를 주장할 수 없으며, 단지 교회 내에서 맡은 직분에 따라 활동합니다.
4. 교회를 다시리는 권세는 광대회의에 있지 않고, 지교회에 있다.


3. 이익 권력집단이 되어 버린 교단정치의 폐해
한국교회는 교단에 많은 권리를 뺏겨 자치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로마 카톨릭처럼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상태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된 교회는 어떠한 인간 권력의 지배를 받을 수 없으며, 경직된 교회 운영은 교회의 자율적인 발전을 막아 시대에 뒤쳐지고,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합니다.
한국교회 문제의 절반 정도는 교인들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목사를 해임하지 못하게 하는 교단의 권력 때문에 발생합니다.
한 번 위임되면 교회가 쪼개지는 한이 있어도 목사를 사임하지 못하게 하는 교단의 교묘한 법제도 때문에 교회 출석을 포기하는 기독교인이 늘고 있습니다.
한국 장로교는 1백여개로 분열되 교단을 형성하고 신학교를 운영함으로써 자질이 안되는 목사들을 양산하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익집단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교단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경쟁은 국회의원 선거를 방불케 하며, 금품과 향흥을 제공하는 행위는 이제 일반화 되었습니다.
개별교회를 치리하는 당회는 지역적으로 모여 노회가 되고, 노회가 전국적으로 모이면 총회가 형성되며, 이 총회가 곧 교단이고 교파를 의미합니다.
개교회의 당회를 확대하고 연결한 존재라는 점에서 총회나 노회를 광대회의라고 부릅니다.

* 김득룡은 '지교회의 자치'라는 관점으로 이 구분선을 다음 4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 각 지교회는 교회의 정치에 요구되는 모든 것을 갖춘 완성적인 교회로 간주된다.
2. 인접 교회들과의 상호 연락이나 협력 혹은 결합이 있을 수 있으나, 지교회의 자치를 파괴하는 연합은 있을 수 없다.
3. 광대회의의 권리는 무제한한 것이 아니라, 당회의 권리로 인하여 제한을 받는다.
4. 지교회의 자치는 교회들과의 연합을 위한 상정한 관계로 인하여 제한을 받는다.
일종의 계약으로 인한 자기 제한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협의체를 구성할 때의 장점은 순수한 교리를 보존해 이단을 경계할 수 있고, 교회 내의 각종 규약을 표준화 할 수 있으며, 공동으로 신학교나 방송매체 등을 설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총회를 상설기구인 교단화하지 말고, 매년 한 번 모이는 일시적인 회의제도로 유지해야 총회라는 이름으로 교권을 만드는 병폐를 막을 수 있습니다.
개혁교회는 지교회 당회의 권한보다 더 높은 종류의 교회 권세를 인정하지 않으며, 당회 또한 회중 위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총회는 교단으로 변질되면서 재산을 축적하고, 상비회란 명목으로 막대한 자금을 개교회로부터 갹출해 낭비를 서슴치 않으며, 회계보고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교단 헌법은 예외 없이 총회를 '최고 치리회'로 규정하고, 이 회의체에 '교회 헌법을 해석할 전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헌법이나 미국장로교회헌법에는 '총회는 교리의 권징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나 신자들의 양심을 구속할 명령 선포의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고 선언함으로 총회의 전권을 부인합니다.
총회와 교단이 동일시 되고, 상설 단체화 함으로써 방대한 권력과 자금이 몰릴 뿐 아니라 목사의 생사 여탈권을 쥐기 때문에 총회장이 되기 위한 불꽃 튀는 경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방대한 권력과 자금과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총회장직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적인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부정 부패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교회의 정치원칙은 민주주의입니다.
회중정치가 교인의 직접 민주정이라면, 장로회 정치는 교인이 선출한 장로에 의해 치리되는 대의 민주정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박윤선은 "장로회 정치의 정신은 한 마디로 교회의 주권은 교인에게 있다."고 하였습니다.


4. 한국 교회의 정관
한국 교회는 대부분 자체적인 정관이 없어 교단의 헌법을 따르고 있으며, 세세한 일조차 노회나 총회의 결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교회는 자치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총회나 노회는 상회가 아니라 협의를 위한 광대회의일뿐이며, 교단헌법은 상위법이 아니라 협약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교회는 자체 정관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자체 정관을 가지면 개교회가 노회나 총회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치적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 인사문제 등을 노회나 총회로 확대하지 않아 정치적 논쟁에 휩쓸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모범적인 정관을 갖는다면 교단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모범정관에 명시되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정의 투명한 공개'라고 할 수 있는데, 적지 않은 교회에서 공동의회가 끝나면 교회의 재정 보고서가 누출되지 않도록 단속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는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될 부분이 있기 때문이며, 많은 교회가 목사나 장로의 자의적 재정 사용으로 시험에 빠지고 있으므로 재정은 반드시 투명하게 공개되야 합니다.
한국 교단은 각 지역적 노회 간의 힘싸움으로 얼룩져 있고, 목사의 직업적 안정성을 결정하는 노회는 개인적 권력투쟁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직업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목사는 교인들보다 노회에서 다수파를 장악하고 있는 권력 있는 목사에게 더 큰 충성을 바치고, 권력 있는 노회 목사는 충성하는 목사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끈끈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데이빗 왓슨에 의하면 대부분의 개신교회에서도 로마 카톨릭과 같은 성직자가 나타났으며, 영적 은사와 사역에 대한 교리는 대부분 무시되었습니다.
만인 제사장의 원리는 일부 회중교회에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였고, 대부분의 교회에서 목사는 성직자로 행세하고, 교권을 구축하게 됩니다.
교권을 구축한 교회는 교회를 대형화 하기 위해 무리한 헌금을 강요하거나 교회 직분을 매매하고, 감정적인 부흥집회나 세상적인 방법을 통해 교회 몸집을 불립니다.
그래서 비성경적인 교리나 기복주의 물질주의 성공주의 등이 만연하고, 목사를 우상화 신성시 하며, 지성전 설립, 교회세습, 부정부패 등의 폐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마태 23/13 그러나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사람들에게 천국을 닫아 버려서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
마태 23/14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며 남들에게 보이고자 길게 기도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심판을 받으리라.
마태 23/15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으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고 나면 그를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라.
마태 23/23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박하와 아니스와 커민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율법과 공의와 자비와 믿음의 더 중요한 것을 빠뜨렸기 때문이라. 너희는 이것들도 마땅히 행하고 또 저것들도 저버리지 말아야 하리라.
마태 23/25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나 속은 약탈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
마태 23/27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회칠한 무덤들처럼 실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도다.
벧전 5/2~4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고 돌보되 마지못하여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너희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

* 참고서적 : 바벨론에 사로잡힌 교회 (백종국, 뉴스앤조이)

* 관련 기사자료
1. 재벌 뺨치는 ‘목사님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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