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8일 화요일

자유주의 비판-2

자유주의 비판-2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는 몇몇 신학자들의 문제가 아니고 대교단들의 목사들 상당수의 문제이다. 유럽의 기독교계는 일찌기 배교적이 되었고 미국의 기독교계도 1920년대의 근본주의 대 현대주의의 논쟁 이후 점점 포용적이게 되었다. 다음의 예들은 자유주의 신학이 오늘날 교회들 안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증거한다.

* 기독교 자유주의의 실태


1967년의 제프리 해든의 설문 조사
1967년, 미국의 사회학자 제프리 해든(Jeffrey Hadden)은 미국의 10,000명의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였는데, 실제로 7441명이 대답해 왔다고 한다. 그 설문 조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데, 그것은 당시의 미국 교회 목사들이 얼마나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잘 증거한다([워싱톤 대학교의] Trans-Action, 1967년 7-8월호; Christian News, 1969년 3월 3일; 1983년 6월 27일, 5쪽; Pulpit Helps, 1987년 12월호; Christian News, 1987년 11월 23일, 2쪽):
1) '귀하는 성경이 신앙과 역사와 세속 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한 말씀임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87%, 감독교회 성직자들의 95%, 연합 장로교회 성직자들의 82%, 미국 침례교회 성직자들의 67%, 미국 루터교회 성직자들의 77%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2) '귀하는 오늘 세계에 악한 귀신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62%, 감독교회의 37%, 연합 장로교회의 47%, 미국 침례교회의 33%, 미국 루터교회의 14%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3) '귀하는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의 60%, 감독교회의 44%, 연합 장로교회의 49%, 미국 침례교회의 34%, 미국 루터교회의 19%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4) '귀하는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사실로 받아들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의 51%, 감독교회의 30%, 연합 장로교회의 35%, 미국 침례교회의 33%, 미국 루터교회의 13%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1985년에 시작된 '예수 세미나'
1985년 약 125명의 개신교회들과 로마 천주교회의 신학자들이 '예수 세미나'를 시작했는데, 그 목적은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고 무엇을 말씀하시지 않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 중심 인물은 로버트 펑크인데, 그는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신약학자이며, 에모리 대학교 캔들러 신학부 교수이었고, 그 후 캘리포니아에 웨스타 연구원을 설립하였다. 미국에서 가장 큰 성경학자 협회인 성경문헌협회의 증경회장이기도 하다. 이 세미나의 결과, 1988년에는 예수님의 비유들(The Parables of Jesus)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거기에는 빨강색, 분홍색, 회색, 검정색으로 예수님의 비유들의 역사적 신빙성의 정도가 표시되었다(Robert W. Funk 공저, The Parables of Jesus--Red Letter Edition--A Report of the Jesus' Seminar). 또 1993년에는 오복음서: 예수님이 참으로 말씀하신 것(The Five Gospels: What Did Jesus Really Say)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세미나의 대략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성경 연구 혹은 신학이 얼마나 배교적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잘 보인다:
① 예수의 말씀들의 오직 20%만 실제로 그의 말씀으로 생각되며, 요한복음에서는 오직 한 구절만 그에게 돌려진다.
② 주기도문도 예수의 말씀이 아니다.
③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라고 공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④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과 매우 가깝다고 느꼈지만, 자신을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⑤ 예수는 죽은 자들로부터 결코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
⑥ 예수는 자신의 재림(再臨)을 약속하지 않았다.
⑦ 성경에 묘사된 신화적 의미의 지옥은 없다.
⑧ 예수는 독신이 아니셨고 독신을 옹호하지도 않으셨다.
("Did Jesus Say He's Messiah?: Seminar Concludes He Didn't Publicly," The Charlotte <NC> Observer, 1987년 10월 18일, Christian News, 1987년 11월 2일, 24쪽에 실림; "Views of Jesus Seminar Scholars Adopted at Roman Catholic and Protestant Seminaries," Christian News, 1989년 1월 2일, 1, 21-22쪽; John Dart, "Panel: Jesus Didn't Speak of Second Coming," Philadelphia Inquirer, 1989년 3월 6일; "Jesus Never Promised Second Coming, Seminar Concludes," Courier Post <Cherry Hill, N. J.>, 1989년 3월 7일, Christian Beacon, 1989년 3월 9일에 실림; Christine Wolff, "Seekers of Jesus' Words," Cincinnati Enquirer, 1989년 10월 1일, Christian News, 1989년 10월 9일, 10쪽에 실림; Gayle White, "Scholars Conclude Jesus Didn't Practice or Advocate Celibacy"<Special to Religious News Service, 1989년 10월 2일>, Christian News, 1989년 10월 9일, 1, 10쪽; "The 'Jesus Seminar' Strikes Out Again," Calvary Contender, 1991년 5월 1일; Time, 1994년 1월 10일; St. Louis Post Dispatch, 1994년 1월 8일; "Jesus Seminar Publishes New 'Bible,'" Christian News, 1994년 1월 17일, 1, 20-22쪽.)


1923년, '어번 선언서'
1923년 미 북장로교회[지금의 미 합중국 장로교회] 안에서 어번 선언서(Auburn Affirmation)라는 것이 작성되었고 곧 1293명의 목사들의 서명을 받았다. 그 내용은, 총회가 1910년에 선언하고 1916년, 1923년에 재확인한 내용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총회가 1910년에 선언한 내용이란 다음의 다섯 가지 교리들이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본질적이라는 것이었는데, 첫째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이며, 둘째는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이며, 셋째는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이며, 넷째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이며, 다섯째는 그리스도의 기적들의 사실성이다. 어번 선언서는 이상의 다섯 가지 교리들을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본질적이지 않고 단지 이론들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성경 무오성의 교리는 성경 숭배에 빠지기 쉬운 교리라고 주장했다.

1967년 신앙고백
1967년, 미 연합장로교회(지금의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전통적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이탈하는 소위 '1967년 신앙고백'을 채택했는데, 그 고백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1967년 신앙고백," 미국 연합장로교회 헌법 제1부: 신앙고백집,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부 발행 <1968년>, 251-265쪽; 킥, 띠 깐지, 헨리 공저, 1967년 신앙고백서 비판, 임택권 역 <1967년> 참조).
 1) 성경의 초시간적 진리성을 부정한다
1967년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하나님의 유일 충족한 계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다. 그에 대하여 성령은 성경을 통하여 유일하고 권위 있는 증거를 한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락되고 복종을 받는다. 성경은 다른 여러 증거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비길 데가 없는 증거이다. 성경은 성령의 인도 아래서 주어진 것이지만 역시 사람들의 말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장소와 시대의 언어, 사상 형식, 문학 형태들의 지배를 받는다. 성경은 그 당시에 유행하던 인생관, 역사관, 우주관을 반영한다"(1. 3. 2).
 
 2) 타종교들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취한다
1967년 신앙고백서는 진술하기를, "그리스도인은 타종교들과 자신의 종교 간의 비슷한 점들을 발견하며, 모든 종교들에 대해 열린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반복해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갱신을 도전하시기 위해 비기독교인들의 통찰력을 사용하셨다"라고 했다(2. 1. 3).
 
 3) 속죄의 교리를 한 이론으로 돌린다
1967년 신앙고백서는 진술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화목의 행위는 성경이 여러 가지 방식들로 묘사하는 한 신비이다. 그것은 어린양의 제사, 목자가 양을 위해 목숨을 주심, 제사장의 속죄로 불리우며, 또한 종의 속전(贖錢), 빚의 지불, 법적 형벌의 대리적 만족, 그리고 악의 세력들에 대한 승리로 불리운다. 이것들은 모든 이론의 범위를 넘어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 속에 머무는 한 진리의 표현들이다"라고 했다(1. 1. 1.).
 
 4) 화목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보인다
1967년 신앙고백서는 말하기를, "하나님과 화목되는 것은 그의 화목케 하시는 공동체로서 세상 속에 보내지는 것이다. 이 공동체 곧 세계적 교회는 하나님의 화목의 메시지를 위탁받았으며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분리시키는 적의(敵意)를 고치시려는 하나님의 수고에 참여한다"라고 했다(2. 1. 1).
이 진술은, 사람과 사람 간의 화목이라는 개념으로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목이라는 성경적 개념을 혼란시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이 넓어진 화목 개념은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 신앙고백서는 교회의 사명이 이러한 화목의 사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진술한다. "교회의 회원들은 화평의 밀사(密使)들이며 정치, 문화, 경제면에서 세력 있는 자들이나 집권자들과 협력하여 인간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바로 이 세력들이 인간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는 가장(假裝)과 부정(不正)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1. 3. 1). "인간을 향한 그의[그리스도의] 봉사는 교회가 모든 형태의 인간 복리를 위하여 일할 것을 위탁한다. 그의 수난은 교회가 인류의 모든 고통에 대해서 민감하여 각종 궁핍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도록 만든다"(2. 1. 1). "교회는 모든 민족 차별의 폐지를 위하여 노력하며 그것으로 인해서 상해를 받은 자들을 위하여 봉사한다"(2. 1. 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속 사업은 인간 생활 전체 곧 사회와 문화, 경제와 정치, 과학과 기술, 개인과 단체, 전부를 포괄한다"(3. 1. 1).
이 뿐만 아니라, 미 연합 장로교회는 목사의 임직 서약도 변경하였다. 변경된 임직 서약에서는, 성경이 더 이상 신앙과 행위의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선언되지 않았고,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 소요리문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지도 아래 행한다고 선언되었다. 1965년 5월 17일자 자유주의 잡지 크리스챠니티 앤드 크라이시스(Christianity and Crisis)는 말하기를, '새 신앙고백서는 1924년 어번 선언서의 교리적 노선으로 내려간다. 40년 전에 겨우 허용되었던 소수파의 견해가 이제는 교회의 공식적 교리로 제안되고 있다'고 했다(Carl McIntire, The Death of a Church <1967>, p. 129).
 
1981년, 케이스맨 목사 사건
1981년 미 연합 장로교회(오늘날의 미 합중국 장로교회) 총회 상설재판국은, 그 총회에서 봉사하던 연합 그리스도교회(UCC) 소속 맨스필드 케이스맨(Mansfield M. Kaseman)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무죄성, 대리적 속죄, 육체적 부활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판결하기를, 지노회가 케이스맨의 견해를 새 임직 서약에 의해 허용된 '용납할 만한 해석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함에 있어서 옳았다고 했다(Time, 1981년 2월 16일; Christian News, 1983년 6월 27일, 5쪽; James R. Mook, "The Validity of the Kaseman Case Verdicts in the Confessional/ Subscriptional Context of 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Th.D. dissertation, Dallas Theological Seminary, 1985]). 이 사건은 미연합장로교회가 이단을 권징하고 제거할 의지가 없음을 증거한 사건이었다. 이것이 교회의 배교가 아니고 무엇인가?


자유주의자들로 인한 보수주의자들의 고통
미국 연합감리교회는 오래 전부터 자유주의적이었다. 최근의 한 예로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글라이드 기념 연합감리교회의 목사 시실 윌리암즈(Cecil Williams)는 자기의 정박소는 '해방의 신학'이라고 말했다. 해방의 신학이란 민중들을 정치적, 경제적 억압과 착취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구원이요 복음이라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일파이다. 그는 말하기를, "규칙들과 교리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의 감리교회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더 이상 연합감리교회의 회원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월드(World)지 1998년 7월 25일자의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다: "신자들은 신앙의 기본적 사실들을 긍정하지 않는 자들과 영적 동반자들일 수 없다," "우리는 본교단에서 연합될 수 없는 두 개의 다른 믿음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분열에 대한 존 웨슬리의 다음과 같은 말도 인용되어 있다: "불경건과 배교가 우세한 교회들 안에서, 분열의 악은 교회 안에 머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들에게 있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8월 15일.)


도날드 블뢰쉬 박사의 증거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교단이다. 그 교단의 듀부크 신학교(Dubuque Seminary) 신학교수 도날드 블뢰쉬(Donald Bloesch) 박사는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니테리안[일위신론적] 교회가 된 캐나다 연합교회(UCC)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교회는 삼위일체의 삼위를 구별된 존재보다 비유로 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블뢰쉬는 성경적 증거 협의회(Biblical Witness Fellowship)의 간행물인 위트니스(The Witness) 1996년 겨울호에 실린 한 대담에서 "유니테리안들은 이단종파가 되고 있다. 유니테리안들과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 사이에는 많은 연관성이 있다. 유니테리안으로의 표류, 즉 하나님을 양성적(兩性的) 혹은 자웅 동체적(雌雄同體的)으로 보려는 강한 경향은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의 중심적 특징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아마 가장 널리 알려졌고 읽혀지는 자라고 위트니스가 말하는 블뢰쉬는 주장하기를,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니테리안 사상으로 표류하고 있다. 이 교단은 이미 만인구원론적이다. 천국과 지옥, 구원과 멸망 같은 구별들은 이미 상실되었다. 유니테리안들과의 통합을 실제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한다(Christian News, 1996년 2월 12일, 1, 14쪽).


미국 감독교회(혹은 성공회)는 1995년에 7,415교회, 세례교인 158만명인 대교단인데, 그 교단도 역시 매우 자유주의적이다.
죤 쉘비 스퐁 주교의 무신론
미국 감독교회 소속 죤 쉘비 스퐁(John Shelby Spong) 주교는 인격적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Christian News, 1998년 7월 13일). 그는 역사적 사건들로서의 예수님의 기적들, 동정녀 탄생, 부활, 그리고 승천을 부정한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자기 아들의 희생을 요구한 신을 예배하기보다 혐오할 것이다"라고 했다(Christianity Today, 1998년 6월 15일). (Calvary Contender, 1998년 8월 15일.)
그는 "만일 모든 사람이 구속(救贖)함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도 완전히 구속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보편구원론자이다. 1999년 4월 26일자 뉴 아메리칸(New American)지에 의하면, "스퐁의 판단에는, 기독교가 생존하려면 기독교는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성육신(成肉身),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그리고 기적들과 같은 교리들을 치워버려야 한다. 더욱이, 기독교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인식을 포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스퐁의 말로 표현하자면 그러한 생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 안에서 조성된 것이며' '지식의 팽창으로 낡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바울 사도를 동성연애자라고 불렀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5월 15일.)
그는 2000년 1월 29일 은퇴하였으나 그 후 몇 달 동안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의하였다. 그는 천국과 지옥, 영원한 형벌과 보상에 대한 '옛 견해'를 버린다. 그는 마리아의 동정녀성과 예수님의 부활을 헐뜯었고, 모든 도덕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단언했고, 기도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했다(Huntsville Times, 2000년 1월 29일). 그는 미국에서 최초로 공공연한 동성애 신부에게 안수하였다. (Calvary Contender, 2000년 2월 15일.)
그는 심지어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간주한다. 그는 거의 모든 기독교 교리를 거부한다(Christian News, 2000년 2월 7일). 그는 말하기를, "나는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어린 소녀들을 죽이려 한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그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 한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그는 '동성애자들'을 벽 속에 가두고 여자들을 신부직에서 제외하는 교회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뉴저지주의 Daily Record, 2000년 1월 27일). 그의 후임자인 북 뉴저지주의 주교는 죤 크로운버거(John Croneberger)이다. 크로운버거는 조용히 싸우지만, 스퐁과 같은 많은 싸움을 싸웠다(뉴저지주의 Star-Ledger, 2000년 1월 30일). 그의 교회는 1990년 '남자 동성애자'인 한 신부의 임직식을 거행하였다. (Calvary Contender, 2000년 3월 1일.)


신학자 마틴 마티
루터파 자유주의자 마틴 마티(Martin Marty)는 그가 편집인으로 있는 크리스천 센추리(Christian Century)지 1999년 4월 7일자에 "나는 성경을 포함한 아무 책도 무오하지 않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Christina News, 1999년 4월 12일). 그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의 교리를 포함하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오래 전부터 부정해왔다. 그런데 그는 1992년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NAE)의 연사이었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5월 15일.)

필립 헤프너 교수의 불신앙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단(ELCA)의 교수 필립 헤프너(Philip Hefner)는 뉴스위크 2000년 5월 1일자의 한 면 전체에서 "왜 나는 기적들을 믿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헤프너는, "나는 정말 어떤 관습적인 의미로도 기적들을 믿을 수 없고, 오직 복(福)들을 믿는다. 그것들은 매일 일어난다"고 글을 끝맺는다. 그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루터파 신학교(Lutheran School of Theology)의 조직신학 교수이며 자이곤 종교-과학 연구소장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을 공격해왔다. "기적 이야기들--신앙에 대한 증언인가 신빙성의 세대 단절(credibility gap)인가"라는 그의 글은 루터파 신학교의 컨텍스트(Context)지 1968년 봄-여름호에 실렸었다. 이런 상황이지만,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단의 임원들은 인간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포함하여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교단의 교수들에 대해 어떤 권징적 조치를 취하기를 오래 전부터 거절해왔다. (Christian News, 2000년 5월 22일, 1, 5쪽.)


남침례교회 신학교 부학장인 대니얼 에이킨(Daniel Akin)은, 1998년 11월 앨러배머주 남침례교인들에게 한 연설에서, 미주리의 보수적 남침례교인들이 온건파/자유파 협동 침례교 협의회(CBF)를 비판하며 준비한 비난 내용들의 목록으로부터 "그들[CBF]은 급진적 견해들을 가진 사람들을 관용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장막을 너무 크게 만들고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Alabama Baptist, 1998년 11월 26일). 에이킨은 협동 침례교 협의회에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의 제사적 죽음의 필요성과 처녀 마리아를 통한 탄생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지도자들이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말하기를, 어떤 협동 침례교 협의회 지도자들은 낙태와 동성애에 관한 자유주의적 견해들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버지니아와 텍사스주들에서의 남침례교인들 간의 갈등은 보수주의자들로 하여금 대체할 새로운 주(州) 대회들을 설립하게 하였다. 그러나 앨러배머주 보수주의자들은 대회의 새 지명자들을 인준했고 협동 침례교 협의회의 위험을 경고하였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12월 15일.)

남 침례교단과 협력 침례교 협회
(버지니아주 남침례교회들의) 뱁티스트 배너(Baptist Banner) 1월호는 남침례교단과 협력 침례교 협회(Cooperative Baptist Fellowship)(교단 내의 자유주의/온건 이탈파) 간의 몇 가지 '대조되는 점들'을 열거하였다. 그것에 의하면, 협력 침례교 협회(CBF)에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소속되어 있다: (1)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그의 제사적 죽음의 필요성, 혹은 그의 동정녀 탄생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지도자들, (2) '그리스도-소피아(Sophia)'(그리스도의 여성화를 주장)에 대한 예배를 요구하는 여권주의 신학 지도자들, (3) 남녀 동성애자, 양성애자(兩性愛者, bi-sexual), 성(性)전환자들(transgendered)의 안수를 요구하는 지도자들, (4) 하나님께서 때때로 여자에게 인구 억제의 목적을 위해 아이를 낙태시키라고 명령하신다고 선언하는 지도자들, (5) 낙태를 위한 연방 정부의 기금이나, 부모의 승락과 동의가 필요하다는 법의 폐기를 옹호하는 지도자들, (6) 성경이 모든 형태의 동성애적 행위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포하는 지도자들, (7) 여성을 담임 목사로 안수하기를 요구하는 지도자들, (8) 펜트하우스(음란물 출판사), 전국 남녀 동성애자 전문위원회, 가족계획 협회와 연합하여 활동했던 지도자들, (9)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지도자들, (10) 성경적 학문이 침례교인들과 무신론적 '세속 인본주의자들' 간의 공통적 기반의 영역이라고 진술하는 선언서에 서명한 지도자들, (11) 동성애자들이나 양성애자들에게 특별한 일자리의 보호를 제공하는 고용-비차별 법령과 같은 입법활동을 위하여 일한 지도자들. . . . 그 글은 한걸음 더 나아가 말하기를 협력 침례교 협회(CBF)는 현재 동성애 활동을 하는 자들을 안수하는 교회들을 포함하고, 지도자들이 상황적 낙태 지지를 공공연히 선언한 기관들과 협력하고, 동성애를 환영 혹은 주장하는 교회들에게 지난해 모든 '선교 지원금들'을 제공한 단체와 협력하고, 핵심 지도자가 어린이들을 사용한 음란물의 복제와 판매를 옹호한 단체와 협력한다고 했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3월 1일.)

머서(Mercer) 대학교
머서 대학교는 미국 남침례교단에 소속한 학교로서 미국의 보수침례교협의회(Conservative Bap- tist Fellowship)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머서 대학교 총장 커비 갓세이(Kirby Godsey)는 한 책에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 예수는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동정녀 탄생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버리고, 회개와 예수님 영접이 '구원의 근거'임을 거부하고, "교리적 건전함이란 교만한 신학적 난센스[터무니 없는 생각]이다"고 주장하였다(Baptist Banner, 2000년 1월호). (Calvary Contender, 2000년 2월 15일.)
또 머서 대학교 신약과 설교학 교수 폴 듀크(Paul Duke)는 "동성애(同性愛)와 교회"라는 제목의 1994년 협동 침례교 협의회(남침례교단의 자유파)의 총회전 학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은 우리의 최종적 권위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날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국에 그것을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다. 동성애는 성경의 주된 관심이 아니다. 나는 성경이 모든 형태의 동성애 행위를 정죄한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듀크는 동성애적 짝들의 결합에 대한 자신의 '넓은 후원'을 긍정하였으나, 자신의 개인적 취향은 이성애적(異性愛的) 짝들이라고 주를 붙였다(Calvary Contender, 1999년 6월 1일).


캐나다 연합교회의 총회장 빌 핍스 목사의 자유주의 사상
교인 300만을 가지고 있는 캐나다 최대의 개신교단인 캐나다 연합교회(UCC)의 총회장 빌 핍스(Bill Phipps) 목사는 1997년 10월 24일자 오타와 시티즌(Ottawa Citizen)지와의 대담에서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셨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고, 천국과 지옥의 성격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나는 지옥이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나는 예수께서 지옥에 대하여 그렇게 관심을 가지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여기 땅 위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셨다. 천국이 장소인가? 나는 모르겠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말하기를,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지 않는다. 나는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 믿지 않는다. 나는 그런 일들이 발생했는지 어떤지 모른다. 그것은 부적절한 문제다"고 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사상에 대하여 첨가하여 말하기를, "예수께서 신적이시지 않다는 노골적인 진술은 잘못된 인상을 준다. 나는, 우리가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만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본질을 계시하신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본질의 전체적 개념은 예수님에게서 표현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넓고 더 신비하고 더 거룩하다"고 하였다.
그의 발언은 한 달 이상 교단내 자유주의 진영과 보수주의 진영 사이에 논쟁을 일으켰다. 논쟁이 가열되자 85명의 교단 집행위원들은, "캐나다 연합교회는 개인의 신앙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고 있으며, 따라서 총회장의 개인적 신앙고백을 존중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캐나다 연합교회의 신학적 노선과 총회장 신임을 재확인했다. (기독신문, 1997년 12월 3일, 16쪽; Christian News, 1997년 12월 8일, 1, 12쪽.)

배교적인 클라크 피나크(Clark Pinnock)
캐나다의 맥매스터(McMaster) 신학교의 신학 교수 클라크 피나크는 배교자라고 불리웠는데(Calvary Contender, 1992년 4월 15일) 아마 정당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1960년대에 그는 남침례교단 소속 뉴올리언즈 침례교 신학교의 보수적 교수이었으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성경 영감과 지옥의 본질 같은 교리들에 대해 매우 비(非)정통적인 이해에 도달한 변화를 겪었다. 그는 최근의 복음주의 신학회(ETS)에서의 논문에서 종말 사건들에 대한 '더 포용적인' 복음주의 이해를 요청했는데, 거기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포함한다(Baptist Banner, 2000년 1월호).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하나 이상의 언약과 하나 이상의 백성을 가지고 계신다"라고 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는 다양한 길들'에 대해 말했고, 많은 이방인들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다고 말했다.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거절하면서,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심판의 표준은 개인이 "다른 이들의 봉사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생활 방식에 참여함"이라고 했다. (Calvary Contender, 2000년 2월 15일.)
피나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아무리 그의 피조물들이 죄악될지라도 그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부과하는 그런 잔인하고 보복적인 신을 고안할 수 있을까?" 그는 말하기를, 그러한 일을 하는 하나님은 "하나님보다는 사탄에 더 가깝다"고 하였다. 한편 복음주의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도 지옥의 불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복음주의 지도자 죤 스토트도 성경적 비유로 불의 주된 기능은 멸망시키는 것이며, 지옥의 불이 영원하고 꺼지지 않을지라도 "만일 거기에 던져진 것이 멸망치 않는다고 판명된다면 매우 이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지옥은 영원한 불의 고통이 있는 실제적 장소이다. (Calvary Con- tender, 2000년 2월 15일.)


1984년,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보도
1984년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크리도우(Credo, 신조)' 프로그램은 영국교회(성공회) 39명의 주교들 중 31명에게 질문한 결과를 보도했는데, 그것은 영국교회의 배교적 상황을 단적으로 보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Daily Telegraph, June 25, 1984; The Revivalist, July/ August 1984, p. 13):
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최고 대리자로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19명).
② 신약성경의 기적들은 후대의 삽입이다(15명).
③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그가 그들 가운데 살아계신다"고 확신시켰던, 예수님 죽음 후의 '일련의 경험들'이다(9명).

지옥에 대한 견해
영국 교회의 교리위원회가 준비한 "구원의 신비"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많은 전통적 입장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옥의 교리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는 지옥불과 영원한 고통과 형벌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 사람들을 두렵게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가학적(加虐的) 괴물로 만든 두려운 신학들을 고백했다. 지옥은 영원한 고통이 아니고, 하나님께 대해 아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의 최종적이고 취소할 수 없는 선택 . 즉 유일한 종말은 완전한 비(非)존재이다"
(Christian News, 1996년 2월 12일, 15쪽).

캔터베리 대주교의 불신앙
영국 교회의 머리인 캔터베리 대주교 죠지 캐리(George Carey)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똑같이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우리는 그가 다시 사셨다는 것을 알 수 없다"(WITW). (Calvary Contender, 2000년 3월 1일.)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
문익환 목사, "사도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에 실존적으로 동참함으로 주의 부활에도 동참한다고 믿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내용이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부활한 몸에 관한 호기심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겨둔다고 해서 손해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으로 믿는 자가 전인적인 구원을 얻는다는 것으로 족한 것이다"("죽음에 대한 성서의 물음과 대답," 기독교 강좌 <대한기독교서회>, 제1권, 138쪽; 한종희,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는 신학자들," 기독신보
, 1991년 3월 30일, 9쪽).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현재적 의미와 미래적 의미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그의 부활은 현재 구원받은 우리에게 새 새명을 주는 원동력이지만, 또한 그것은 미래의 우리의 부활의 첫열매이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는다. 그러므로 문 목사의 이런 혼동스런 생각은 혼란만을 남긴다. 그는 예수님의 역사적 부활 사실에 대해 분명한 언급을 했어야 했다.
조향록 목사,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 사건 자체를 사건적으로 입증하든지 부정하든지 하는 논란은 큰 의미를 거두지 못한다. 문제는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수용 자세에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리스도 부활 사건은 신앙의 창문을 열고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기는 하나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문제요 대상이 된다. 신앙은 그 신앙의 대상이 되는 문제나 사건이 신앙하는 자에게 의미적으로 받아지는 것이다"("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주간 조선, 1976년 4월 26일; 한종희, 같은 글).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큰 문제가 아닌가? 또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단순히 신앙의 문제로만 돌리고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며 인식의 대상인 동시에 우리의 신앙의 문제인 것이다.
허 혁 교수, "그러므로 저는 성서에 부활의 사실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부활의 보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 . . 이것을 학자들은 신앙의 표현이라고 하더군요. . . . 그것은 신앙을 사건으로 보는 입장이지요. . . . 저는 내가 믿는다는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좋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허혁, "부활 사실과 부활 신앙," 기독교 사상, 1973년 4월호; 한종희, 같은 글).
그러나 부활의 사실과 부활의 보도를 구별하는 배면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의심이 있어 보인다. 또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말하지 않고 그 대신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 사건을 말하는 것도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확실한 긍정을 보류하는 회의적 태도일 뿐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성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고 애매하게 표현하며 단지 그 의미성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불신앙이다.
김동수 목사와 박봉랑 교수는 1973년 부활절 메시지에서 한국교회가 인간의 영혼불멸 사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부활은 2천년 전의 골고다의 예수의 부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오늘 이곳 한국 땅에서 날마다 사는 부활의 승리에서 영광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하였다(크리스챤 신문, 1973년 4월 21일; 한종희, 같은 글).
그러나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무시하고 현재적 부활의 의미만을 붙들려고 하는 태도는 불신앙과 회의주의적 맛을 남길 뿐이다.

박대선 감독의 불신앙적 신앙 사상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박대선 감독은 1974년 6월 14일 고(故) 홍종철 특별보좌관 장례식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죽지 않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분이 두 분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은 에녹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엘리야이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에녹이나 엘리야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육신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생각해 볼 때 이 세상에서 불의를 모르고 가장 뛰어나게 의롭게 살다가 죽은 에녹과 엘리야의 사랑하던 제자들과 가족들과 친지들이 에녹과 엘리야의 죽음을 결코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하던 에녹과 엘리야의 이미지가 너무나 생생하게 그리고 강하게 그들에게 심어졌기에 도저히 죽었다고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선생이 그들과 같이 앉아서 말씀을 하시는 것만 같고 길을 걸어갈 때도 같이 걸어가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켰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제자들은 그들의 선생이 죽지 않고 산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소박하게 기록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친필 원고에서 인용함).

김경수 목사의 자유주의 신학 사상
제주 남부교회 김경수 목사는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3권)을 번역한 후 다음과 같이 썼다: "신학적으로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신학자는 김재준, 칼 바르트, 폴 틸리히라고 할 수 있다. . . .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의 조직신학 교수는 폴 틸리히의 신봉자였고, 그는 폴 틸리히를 빼 놓으면 신학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틸리히 신학에 빠져 있었다. 내가 폴 틸리히에게 몰두하게 된 것도 그의 덕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폴 틸리히는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마음을 빼앗곤 했고 공감을 일으켰다"(교회연합신보, 1986년 8월 17일).


1992년 5월 7일 기독교 대한 감리회 서울 연회 재판위원회는 당시 감신대학 학장인 변선환 학장과 동대학 조직신학 교수인 홍정수 교수에게 출교를 선고했었다. 그들의 사상은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의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기독교 연합신문 1992년 5월 17일자(6쪽)에 실린 "변선환, 홍정수 교수 재판 판결문"과 기타 신문들에 실린 성명서들이나 보고서들에 의하면, 변선환 교수와 홍정수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이단적 사상들을 발표하였다.
변선환 학장의 자유주의 사상
변선환 교수의 경우, 그는 특히 기독교의 유일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심을 부정하였다. 그는 기독교 사상이라는 정기간행물에 기고한 글에서 "그리스도만이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이신 것이 아니라"고 말했고, 또 "저들의 종교[타종교들]도 그들 스스로의 구원의 길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299호, 155쪽). 심지어 그는 "그리스도는 힌두교 안에 있다"고 주장하였다(같은 책, 156쪽). 또 그는 크리스챤 신문 1990년 12월 8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기독교 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는 신학적인 토리미의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또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도 다른 종교도 아니고 신을 중심하여서 돌고 있다는 것을 기독교는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예수님을 절대화, 우상화시키며, 다른 종교적 인물을 능가하는 일종의 제의의 인물로 보려는 기독교 도그마에서 벗어나 신 중심주의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비평할 가치조차 없는 이단이다. 성경은 기독교의 유일성을 밝히 증거한다(출 20:3; 요 14:6; 딤전 2:5).

홍정수 교수의 자유주의 사상
홍정수 교수의 경우,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하는 무신론적 발언을 하였다. 그는 그의 저서 베짜는 하나님에서 "신 없는 종교를 알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그리고 무신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종교까지는 몰라도 꼭 신을,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신은 계신가하고 누가 묻는다면 '신은 없다'고 잘라 말할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52, 56쪽). 이것은 명백히 이단이다.
둘째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적 죽음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한 정기 간행물에 기고한 글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신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다"고 했고 또 "예수의 죽음이 우리를 속량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우리를 속량하는 것이다"고 하였다(한 몸, 7권, 16, 17쪽). 또 그는 그의 저서에서도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특정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던 한 설교자의 죽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베짜는 하나님, 190쪽). 이것은 명백히 예수님의 신성과 대속 사역을 부정하는 이단이다.
셋째로, 그는 골고다 산상에서의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광주 망월동 민주 항쟁으로 죽은 많은 민주 인사들의 죽음을 동일시하였다. 그는 그의 책에서 말하기를, "예수라는 설교자의 죽음은 억울한 희생이 아니라 '말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의 선택된 죽음이다. 이런 현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구호를 외치면서 투신 또는 분신해 쓰러져 간 젊은이들의 죽음과 매우 유사하다"(베짜는 하나님, 191쪽). 이것은 신성모독적이다.
넷째로, 그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부정하였다. 그는 크리스챤 신문 1991년 3월 30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부활 신앙은 이교도들의 어리석은 욕망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동신문 6월 8일자의 글에서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빈 무덤이 아니다"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다른 잡지에서 "나는 단연코 육체의 부활을 부정한다"고 말했다(우먼 센스, 1991년 12월호).
그의 저서에서도 그는 "만일 예수님 부활 사건이 오늘날의 우리가 소박하게 생각하듯이 그렇게 역사적으로 육체적으로 발생했다면, 그 사건은 자연 현상 중의 기이한 일에 불과하며, 전혀 '하나님'의 행위가 아님을 뜻한다. 따라서 예수님 부활의 역사성, 육체성을 실증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신앙의 성격에나 하나님의 성격에 전혀 맞지는 않는 이치임을 시인해야 한다"고 말했다(베짜는 하나님, 201쪽).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에 대한 기본적 사실을 부정하는 명백한 이단이다. 사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의 사실을 확증한다. 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한국의 장로교단들 가운데, 한국 기독교 장로회(기장측)는 처음부터 자유주의자 김재준 박사를 옹호하면서 세워진 교단으로서 자유주의적이었고 지금도 그 교단과 한신대학교는 자유주의의 일선에 서 있다. 그러나 그보다 온건한 사상을 가진 자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측)와 그 교단 신학교인 장로회 신학대학원도 자유주의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예장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이라는 사실은 상식적인 일인 줄 안다. 통합측 신학교인 장로회 신학대학의 학장으로 오랫 동안 재직하였던 이종성 박사가 신정통주의자이었다는 것은 한국교계에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신정통주의'란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의 증거를 부정하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한 파로서 칼 바르트, C. H. 다드, 라인홀드 니이버 등의 신학을 따른다.
장로회 신학대학이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에 대해 부정적으로 가르친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일 것이며, 그 신학교가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하고 자유주의적인 문서설을 용납하고 또 이사야 40장 이하를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고 후대의 어떤 익명의 저자가 썼다는 자유주의 학설을 용납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일 것이다.
또 그 교단 소속 한철하 박사(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설립자 및 원장)가 오래 전에 장로회 신학대학을 신정통주의적이라고 논평한 것도 알려져 있었다.
1980년 서울 사당동 총신대학 부근에서 개척교회를 하던 예장 통합측의 한 목사는 학교에서 배운 자유주의 신학과 성경적 설교를 요구하는 현실적 교회의 목회 사이에서 자신이 '고민'하고 있음을 저자에게 솔직하게 인정한 적이 있다.
또 예장 합동측 신학교에 3년간 재학하였다가 통합측으로 옮겨 수년간 공부했던, 저자가 잘 아는 한 친구는 "과연 예장 통합측 신학교의 분위기가 다르기는 다르더라. 그러나 구약교수들 중 한 명은 보수적이며 문서설을 반대하고 있다. 나머지 교수들은 '고뇌하는 신학자들'이라고 보인다"고 저자에게 증거한 적이 있다.
덧붙여, 예장 통합측 교단지도자들은, 비록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인물들까지도(예를 들어, 임 옥 목사), 오늘날 심히 배교적인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 교단 지도자들의 사상적 분별력과 입장의 정도를 증거한다.
예장 합동측 기관지 기독신보의 주필로 오랫 동안 일했던 채기은 목사는 그의 책 한국교회사에서 "필자가 진단하기에는 본교단(예장 합동측)을 비롯하여 고려측, 성경장로회측, 호헌파, 재건파, 복구파, 중립파는 전적으로 보수주의 신학편에 들 수 있으며, 통합측은 반반[半半]으로 나뉘어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기장측에는 절대 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고 쓴 바가 있다(채기은, 한국교회사 <1977>, 231쪽).
특별히, 저자가 읽어본 장로회 신학대학원의 한 석사 논문은 그 결론 부분에서 솔직히 인정하여 말하기를, "우리 입장은 신정통주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 표류 중이다"라고 하였다(이동렬, "한국교회와 신정통주의," 장로회신학대학원, 1984).
1994년 예장 통합측 총회는 701대 612로 여성 안수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결정을 통해 통합측 총회는 사도적 교훈의 신적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이 명백히 금하는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세우는 악을 허용한 것이다(딤전 2:11-14; 고전 14:34-38).
이상의 사실들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물론 통합측의 모든 목사들과 모든 성도들이 자유주의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교단의 목사 양성원인 장로회 신학대학원이 자유주의적이라면 또 그 교단의 지도적 목사들의 다수가 자유주의적이라면, 그 교단은 자유주의적이라는 말이다. 통합측은 건전한 교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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