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0일 목요일

‘신용카드의 노예’로 살진 않습니까?

ㆍ카드사 상술에 빠진 부채 인생… 빚의 거미줄 당장 끊어야
↑ 하나 둘 카드를 늘려 갈 때마다 불안함이 커지지만 소비자들은 카드사가 제공하는 온갖 혜택을 똑똑하게 챙길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신용카드로 홈쇼핑에 물건을 주문하는 모습. |경향신문
직장인 김모씨의 지갑에는 5장의 신용카드가 들어 있다. 주유 할인 적용을 위한 카드, 자주 가는 커피 전문점과 대형마트에서 사용하는 전용카드 등 각종 할인과 포인트 적립의 필요에 의해 하나 둘 가입한 것이 다섯 장까지 늘어나버린 것이다. 카드 한 장당 사용 한도는 김씨가 한달간 뼈 빠지게 버는 돈의 3~4배는 되는 것 같다. 조만간 별도의 카드 지갑이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이 카드들은 평소 인심을 쓰거나 오감을 자극하는 홈쇼핑 광고 유혹 앞에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기특한 것들이다.

하나 둘 카드를 늘려갈 때마다 불안함이 전혀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씨는 자신의 소비성향에는 허세가 없음을 확신하며 오로지 카드사가 제공하는 온갖 혜택을 똑똑하게 챙길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그러한 뿌듯함과 자신감을 뒤로 하고 월급날은 조금씩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한 달간 일한 보람이 전자결제 시스템 안에서 잠시 들어왔다 이내 사라져버린다. 월급을 자신이 받는 것인지 카드사가 받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우울한 날이 되어간다.

직장인들의 상당수가 월급날의 보람을 카드사에 빼앗겼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4.6장의 카드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그 카드들이 제공하는 온갖 혜택을 챙기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한달 기껏해야 1만~2만원 아꼈을 뿐이다. 그마저도 처음 출시될 당시 대단한 서비스를 약속했지만 1년이 조금 지나면서 약관을 수정하는 요술로 변덕을 부린다. 1만원가량의 돈을 아끼게 해주었던 신통한 카드가 변덕을 부리면 카드사가 친절하게 제안하는 신규카드로 갈아타면서 아쉬움을 털어낸다. 그러나 결제일에는 이전에 썼던 카드의 할부 잔액이 여전히 남아 신규로 발급받은 카드 결제금액과 함께 빠져나간다.

받는 즉시 카드사로 사라지는 월급

소비의 동선은 카드의 지시에 충실히 따른다. 간단한 제품 몇 가지를 사기 위해서 가까운 슈퍼를 가는 것도 카드 포인트 적립 의무감에 위배되므로 용납되지 않는다. 주유등이 깜빡거려도 카드 할인에 맞춘 주유소까지 반드시 가야 한다. 이렇게 충성스런 카드 소비자들 덕분에 우리나라 카드 결제 비율은 신용카드 대국이라 불릴 만한 미국마저 제치고 당당히 글로벌 1등을 거머쥐었다.

월급날을 저당 잡히고도 여전히 신용카드 사용 중단을 상상조차 못하는 착한 금융소비자들이야말로 신용카드 시장의 한계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공범이다. 금융회사들은 신용카드 시장의 무한한 성장성에 눈을 돌리며 카드사를 분사하고 통신사와 손을 잡는 등 공격적인 장사를 시작했다. 카드 대란을 일으킨 당시만큼 개인들의 카드 보유 장수가 포화상태인 것은 문제될 게 없다. 결제수수료 정도 챙길 요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카드론 등의 개인대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분주하다.

성장세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결제수수료 시장과 비교했을 때 카드론 시장은 그야말로 노다지다. 카드채 조달금리가 저금리 기조 속에서 4%(AAo 등급 기준 카드채 조달금리 3.9%, 1년 전에는 5.7%) 미만으로 떨어진 반면, 소비자들에게 거둬들이는 이자율은 10% 후반에서 20% 초반이다. 이렇게 대단한 마진을 챙길 수 있는 시장성에 카드사들은 영혼이라도 팔 것처럼 영업에 나섰다. 어느 직장인은 하루 종일 자신의 아내보다 카드사와 더 자주 통화하는 것 같다고 푸념할 정도다. 과감하고 달콤한 혜택은 카드론에도 여지없이 따라붙는다.

'고객님은 우수고객으로 가장 싼 이자의 대출을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당장 몇 장의 카드로 월급날 결제에 쫓기는 소비자, 비상금 하나 없는데 갑작스런 급전이 필요한 소비자들에게 이처럼 반가운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이미 담보대출을 갖고 있고 그 대출마저 겨우 이자만 상환하고 있으면서도, 월급 수준만큼 신용카드 결제를 하는 사람들은 또 카드 대출에까지 나선다. 지난 한 해만 카드론 시장은 40% 이상 증가했다. 우수고객으로 카드사들이 베푸는 친절을 당장 수용하지 않으면 손해볼 것 같은 심리기제가 작동하면서 소비자들은 카드론의 무서운 속성을 따져 묻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발급받은 후 6개월 이내에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카드사가 약속한 우대금리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모른다. 심지어 강등된 신용등급이 기존의 대출에까지 적용되면서 전체 금융비용이 올라버리거나 대출한도가 축소되고 만기 연장이 되지 않는 위험이 전제되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겨우 겨우 아파트 가격이 다시 오르기만을 바라면서 담보대출 이자 내는 것을 버텨내던 사람들에게 카드론은 버틸 힘을 걷어가버린다.

친철한 카드사, 카드론 대출 유혹
상담 중에는 9% 우대금리 적용이라는 안내를 믿고 발급받은 카드론이 6개월도 되지 않아 29%까지 치솟았다는 사례도 있다. 아마 카드론 이용자들의 대부분이 이런 상황에 직면해 있을 것이다. 카드사들이 노다지를 캐고 있는 동안 카드의 혜택을 챙길 수 있다는 순진한 금융소비자들은 월급 저당뿐만 아니라 집을 처분해 빚을 털어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신용카드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경제생활은 이러한 위험을 끌어안고 살지 않아도 되었다. 월급날은 한달 노동의 보람을 만끽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든든한 날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달 월급날까지 크지는 않더라도 통장에 남아있는 잔액을 보기 때문에 쫓기는 심정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 몇 푼 되지도 않는 포인트 적립과 할인 혜택에 대한 강박으로 소비 선택이 제한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카드사들의 무차별적 위험한 마케팅에 노출되면서 피곤한 일상을 살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도대체 왜 신용카드 사용이 만들어내는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여전히 신용카드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돈이 많은 소수에게만 가능한 것이라 여기고 있는가?

신용카드는 공짜가 아니다. 겨우 한달 결제 지연을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할부금이 쌓여 당장 자를 수 없고 이미 월급이 결제금으로 소진되어 방법이 없다고 손을 놓고 있어는 안 된다. 빚의 거미줄에 갇혀 채무 노예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 끝도 없이 우리의 뒤통수를 치는 신용카드를 던져버릴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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