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6일 일요일

칼 바르트-2

칼 바르트-2

칼 바르트의 신학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1999.10.11/장로회신학대학원 특강)
들어가는 말
올해는 칼 바르트가 서거한 지 어언 31년이 된다(1886-1968). 우리 말로 "강산이 세번 바뀌었다" 할 정도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 지나갔다. 그는 아직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가? 말하고 있다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는 이미 살아 있을 때부터 교부(敎父)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온 세계로부터 크나큰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위대한 신학자들의 명단을 작성할 때, 어거스틴과 아퀴나스, 루터와 칼빈, 슐라이어마허 다음으로 칼 바르트를 열거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맑스와 야스퍼스와 함께 또 하나의 위대한 칼(Karl)인 그를 말하기도 한다.
박사학위를 정식으로 취득하지 않았으면서도 세계의 유수한 15개 이상의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를 받은 인물이라는 것으로써 그의 위대함이 온전히 평가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독교 신학사에서 불후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그의 미완성 교의학(Kirchliche Dogmatik: 13권)의 어마어마한 분량(9,185쪽)으로도 그의 중요성을 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로 부피가 크고 깨알같은 글자가 많은 이 책의 분량을 일반적인 크기의 책 부피로 계산한다면, 아마도 2-3만쪽은 충분히 될 것이다. 그가 쓴 글의 목록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된다.
이런 외형적인 부피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바르트의 신학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느끼게 된다. 그의 저서의 분량 앞에 기가 질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하물며 그의 신학의 깊이와 방대함, 복잡하고 긴 문장표현, 때로는 과격하고 때로는 세밀한 내용적, 구조적 변화를 정확히 추적한다는 것은 어쩌면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는 일보다도 더 위험하고 무모한 일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듯, 대충 보고들은 몇 마디 말로 "이것이 바르트다"고 말하는 것은 바르트를 모독하고 자신을 우상화하는 짓이다.
하지만 장님이라도 그를 더듬을 권리가 있고, 더욱이 그가 던진 도전을 받아야 할 임무가 우리 앞에 있지 않는가? 길목을 막고 버티어 선 이 거대한 바위를 우리가 감히 지고 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피해 갈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의 연약한 팔로는 도저히 깨뜨려 버릴 순 없다고 하더라도, 바위 틈에 작은 구멍을 내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소중한 파편을 우리가 살 집을 짓는 재료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날 바르트를 말하지 않고 어찌 현대신학을 논하겠으며, 더욱이 미래의 신학을 논하겠는가?
그런데 현대의 신학자들, 특히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등을 말하는 사람들이 "바르트의 신학은 이미 낡았다"고 성급히 말하는 것을 가끔 듣곤 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바르트의 신학은 포스트모던(현대이후)적 패러다임에 의해 추월당하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과연 그러한지는 차차 밝혀야 할 일이지만, 이들은 대개 바르트 신학이 얼마나 거대한 수원지와 같고 얼마나 장대한 폭포와 같은지 제대로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극복되지 못한 열등감이나 과시적인 우월감 때문에 이런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나도 물론 바르트에 관해 조금 밖에 눈을 뜨지 못한 반(半)장님이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온전히 알았다고 말할 자격이 없고, 그래서 여러분 앞에 어떤 완벽한 정답을 제시할 능력도 없다. 더욱이 단숨에 고래를 낚아 올릴 도구가 있을 리도 없다. 튀빙엔 대학에서 제출한 나의 박사학위논문(Gestalt und Entwicklung der Ekklesiologie K. Barhts)에서 나는 바르트의 교회론을 중심으로 그의 신학의 구조와 변화를 추적해 보았지만, 지금도 꼭 그리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교회론'은 그의 신학을 가장 많이 관통하는 실이요, 그래서 아직도 그의 신학을 가장 포괄적으로 꿰맬 수 있는 바늘이다. 하지만 오늘은 '하나님의 나라'와 '역사와 계시'라는 두 관점으로 그의 신학지평을 조금 더 열어 보이려고 한다.

1. 1914년 이전의 바르트
1914년 이전의 바르트는 전적으로 그의 스승들이 물려준 소위 '자유주의 신학'(Liberale Theologie)의 영향 아래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이 신학을 일컬어 '문화개신교'(Kulturprotestantismus)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신학은 기독교에서 이른바 낡은 형이상학적 교리의 외피를 벗기고, 기독교를 근대의 문화와 종합하려는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신학은 문화와 신학, 철학과 신학, 종교와 계시,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를 종합하려는 의식 속에 수행되었다. 그리하여 이 신학은 자기 나름대로의 기독교적 경건성을 지닌 채 한 세기 이상 교회와 신학의 심성을 지배했다. 이 신학의 특징은 이 신학의 가장 분명한 대변자라고 일컬어지는 슐라이어마허, 리츨 그리고 헤르만에게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 1768-1834)는 자연적 세계 안에서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 이상(理想)이 문화의 진보 이상과 범인과성(汎因果性)의 메카니즘의 형태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원인성(原因性)은 신의식(神意識)으로 경험되는 절대의존의 감정인 직접적 자의식 속에서 드러난다. 슐라이어마허에 따르면, 하나님과 인간이 일치되는 것이 인류의 역사의 목표인데, 이 일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범적으로 일어나서 인류에게 파급된다.
리츨(A. Ritschl, 1822-1889)은 기독교를 정신적, 윤리적으로 이해하였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 안에서 성장, 진보하며, 이 목표는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 목표로 주어진다. 이 목표는 인간이 최고의 윤리적 공동체 안에서 정신화됨으로써 실현된다. 예수는 윤리적으로 완전한 인류의 원형, 모범으로서 이 세상 안에 이러한 이상을 제시하여 인간 안에서 이 이상을 실현시킨다.
헤르만(W. Herrmann, 1846-1922)은 슐라이어마허와 리츨의 요소를 결합하여, 예수가 인간에게 주는 인상(印象), 인격의 힘, 인격의 상(象)과 같은 경험의 요소와 예수의 의와 사랑의 계명을 종합하였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인격의 힘에 사로잡힌 자들의 의지의 친교, 공동체 위에 세워진 것으로서 인간에게 시작된다.
이러한 현대학파의 충실한 추종자였던 젊은 시절의 바르트는 이들의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역사적 현상이나 압도적으로 종교적, 도덕적인 특징을 띤 내적인 체험의 사건으로 보았다. 바르트는 이 신학의 근본사고가 인간중심적인 것이라고 보았고, 스승들로부터 물려받은 학습의 내용을 '종교적 개인주의'와 '역사적 상대주의'라는 공통분모로 요약된다고 보았다.
바르트의 스승들의 신학에서 역사(역사의식, 경건, 도덕, 체험)는 계시의 술어(述語)일 뿐만 아니라 그 주어(主語)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계시는 역사로서 일어날 뿐만 아니라(계시=역사), 역사는 계시로서 나타난다(역사=계시).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 그 자체가 아니라 계시의 모범, 원형이다. 그러므로 계시는 역사 속에서 모형적으로 반복될 수 있다. 그는 구원의 모델이지, 구원자 그 자체는 아니다. 계시는 역사를 통해 중재될 뿐 아니라 역사 그 자체로 나타나며, 인간의 역사는 계몽과 교육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진보, 발전한다.
바르트의 스승들이 구상한 하나님 나라의 이상에 따르면, 인류사의 목표는 완성된 인간성, 도덕성, 이성의 목적을 보편적으로 실현하는 데 있었다. 그들이 꿈꾼 '범종말론적인 꿈'(Paneschatologischer Traum)은 역사에 대한 진보적, 낙관적 이해를 바탕으로 삼고 있었으며, 비록 하나님의 초월성과 하나님 나라의 피안성을 인정하고는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실현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세계 내의 인간의 가능성에 두고 있었다.

2. 1919년(로마서 주석 제1판) 이후의 바르트
바르트는 점차로 스승들의 신학 가운데서 결점을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그에 의하면, '종교적 개인주의'와 '역사적 상대주의'로 요약되는 스승들의 신학은 인식론적 상대주의(相對主義), 신앙적 복수주의(複數主義), 교회의 실천적 당위성의 결핍이라는 문제점을 낳는다. 자유주의 신학은 특히 이론적, 학문적 기능만을 할뿐이지, 교회로 하여금 공동으로 실천하게 만드는 데 무력하며, 신학자로 하여금 실천에 무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바르트는 절감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의 진보적, 낙관적 역사관을 뒤흔든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칼 바르트는 그 당시의 경험을 스승들의 신학으로부터 결정적으로 결별하게 된 계기로서 술회했다:
그 해(1914년) 8월 초순은 적어도 나에게는 암흑의 날이었다. 93명의 독일 지식인들이 빌헬름 2세의 전쟁선포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지지서명을 발표했는데, 이 지식인들 중에는 이제까지 숭앙해 왔던 신학스승들의 이름(필자주: 하르낙,제베르크, 헤르만 등)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경악케 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이들의 윤리학과 교의학, 성서해석과 역사관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고, 더욱이 19세기의 신학은 더 이상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을 절감했다.
스승들의 신학은 서구 문화의 부르즈와적, 제국주의적 발전의 종착역인 제1차 세계대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전쟁신학으로 귀착되었다. 바르트에게 이 전쟁은 낙관적, 진보적인 역사이해를 계시와 적극적으로 연결시키려던 고리의 파탄을 의미했다. 신학과 철학, 교회와 문화, 신앙과 종교의 동맹 위에 세워진 범종말론적인 꿈은 인간의 망상(妄想)으로 드러났다.
바르트에 따르면, 스승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온갖 인간 경험의 술어, 종교체험의 현상으로 오해하였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신의 일에 더 몰두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고 하면서 인간적인 말만 늘어놓았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다고 하면서 이것을 새로운 변종의 종교성, 경건, 역사적 현상, 인간성의 현실로 바꾸었다.
이 날 이후로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허구적 자유의 체계와 그 이데올로기의 내적 모순, 붕괴와 더불어 절대적인 하나님, 철저히 이 세계에 대하여 낯설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나라'로의 새로운 부름의 소리를 들었다. 이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를 그는 성서 안에서 발견했는데, 이것은 그의 스승들이 가르쳐 주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기하고 새로운 세계'였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다.
이로부터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상대적, 주관적 입각점(도덕의식, 종교체험, 역사의식)으로부터 절대적, 객관적 입각점(인간과 세계에 대해 주체로서 자유로이 대면해 있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으로 돌파하였다. 그 결과로 바르트는 역사를 계시와 동일시하였던 스승들의 신학체계를 무너뜨리게 되었다. 역사는 계시의 그릇이 아니다. 물론 계시는 여전히 역사로서 오지만(계시=역사), 역사는 더 이상 계시로서 오지 않는다(역사≠계시).
그의 이런 입장변화는 로마서 주석 제1판(1919년)에 잘 드러난다. 여기서 바르트는 특히 블룸하르트(Chr. Blumhardt)와 토비아스 벡(T. Beck) 등의 영향 아래서 진정한 의미의 초월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 역사변혁적, 혁명적 특징을 재발견하였다. 이 시대의 바르트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까지 존재해 온 제 가능성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전진, 발전이 아니라(자유주의 신학의 진보적, 낙관적 하나님의 나라 이해에 대한 부정), 모든 시대들을 관통하며 모든 시대들의 신적 가능성을 출현시키면서 유기적으로 성장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존의 것을 유지하지도 않고(부르즈아적,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부정), 기존의 것을 파국적으로 끝장내지도 않는다(레닌주의적, 공산주의적 혁명에 대한 부정).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히 다른 하나님 자신의 나라로서 모든 기존 현실을 통과하면서 모든 신적 성향과 가능성을 실현시키면서 성장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이다. 그 나라는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인해 가능해졌고 그의 부활로 인해 현실화되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이 왔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씨앗, 변혁된 자연 법칙의 원리, 새로운 세계의 결정핵, 새로운 인간과 사물의 유기체의 시초와 머리, 새로운 창조의 배아(胚芽)로서 죽음을 통하여 낡은 요소를 받아서 새로운 갱신된 세계를 조성해 낸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과 세상 및 인간 사이에서 상실된 유기적 일치 관계를 회복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재건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혁명으로서 모든 혁명의 혁명이다. 그리고 혁명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이다. 이 영은 기존 현실을 파괴하지도 않고 보존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철저히 변혁시킨다. 여기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나라를 모든 종류의 인간적 혁명 혹은 개혁의 시도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저항운동으로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혁명은 아무리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낡은 나라를 대변할 뿐이지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바르트가 하나님 나라의 혁명을 위한 인간의 협력이나 참여조차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혁명은 물론 우리 밖에서(extra nos) 시작하지만, 우리 안에서(in nobis) 우리와 함께(cum nobis) 일어난다. 하나님은 아래로부터 활동하시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다. 하나님은 지배구조 아래서 고통당하는 하층민들의 편을 들면서 억압받는 자들에게 활약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인간소외, 인간의 우상생산(국가, 맘몬, 인물, 예술, 학문, 교회, 미덕 등의 우상화), 인간의 물화(物化)와 주인없는 권세들(자본, 국가, 군국주의)의 지배에 맞선 하나님 나라의 혁명에 길들여짐으로써, 하나님의 혁명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사회민주주의 안의 정치적 참여 속에서 이루어진다.

3. 1921년(로마서 주석 제2판) 이후의 바르트
스위스의 작은 마을 자펜빌(Safenwil) 교회의 평범한 젊은 목사가 쓴 로마서 주석 제1판은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 탓인지, 바르트는 이 책이 출간된 직후부터 자신의 입각점을 재검토하고, 로마서 주석을 다시 쓰기 시작하였다. 여러 사상가들, 특히 플라톤(Platon), 칸트(Kant), 오버벡(F. Overbeck), 도스토예프스키(Dostoyewski),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 종교개혁자들(Luther, Calvin)의 저서를 읽은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완전히 새롭게 쓰여지고 철저히 논리적으로 재구성된("돌 위에 돌 하나도 얹지 않은") 로마서 주석 제2판은 바르트를 하루 아침에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거대한 종소리와 같았고,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놀던 마당에 터진 폭탄과 같았다. 제2판은 제1판에서 인간(교회)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성취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는 여지를 철저히 청산해 버렸고, 제1판보다 더 철저히 인간의 종교와 윤리, 자연적-영적 우주와 대립해 있는 하나님의 독자성, 타자성(他者性), 초월성, 배타성을 강조하였으며, 이에 직면한 인간과 세상, 교회의 위기와 심판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배가 모래 위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위험에 처한 자유주의 신학을 180도 완전히 돌려놓은(나중에 바르트가 술회하였던 것처럼 다소 이교적이고 과격한) 결과를 낳았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 대신 인간, 인간의 신앙, 경건, 종교, 문화, 정신, 감정, 역사의식을 중심에 둔 신학, 즉 인간이 세운 온갖 우상을 파괴하고 교회를 정화하려던 그의 시도로 인하여 역사와 계시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역사가 계시로서 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역사≠계시), 이젠 계시도 더 이상 역사로서 오지 않는다(계시≠역사).
이런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바르트는 여러 가지 표현과 개념들을 빌려왔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 위에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무한한 질적인 차이가 있다. 탄젠트 곡선이 선에 무한히 접근하지만 서로 접촉할 수는 없듯이, 계시는 결코 역사가 되지 않는다. 계시와 역사 사이에는 오직 진공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접촉점인 예수 그리스도마저도 오직 역설적으로만 이해된다(양적-형식적 변증법이 아닌, 질적-내용적 변증법). 예수는 역사적-심리적-종교적 현상이 아니다. 계시는 결코 역사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며, 번개처럼 사라지기 위해 들어온다. 역사 안에는 계시가 머물지 않고, 오직 폐허만을 남길 뿐이다. 계시는 오직 비약, 결단, 역설, 모험적인 신앙 속에서만 파악될 뿐이다.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적, 은총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과 인간의 혼합, 인간적인 것의 신적인 고양(高揚), 인간 존재 안의 신적 존재의 주입(注入)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비시간적인 시간, 비공간적인 영역, 불가능한 가능성, 부정 속의 긍정, 시간 속의 영원, 죽음 속의 생명이다. 이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왔다. 그는 역사의 의미이며 시간의 종말이고 오로지 역설(Kierkegaard), 승리자(Blumhardt), 원역사(Overbeck)로서만 이해될 수 있는 자이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위로부터 수직적으로' 단절하는 미지(未知)의 차원이다. 그러므로 그는 역사의 가시성 내에서는 문제꺼리, 신화로서만 이해될 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작은 입자 속에서도 땅에 도래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고상한 형태 속에서도 오지 않았다. 그것은 가까이 왔을 뿐이다. 그것은 선포되고 신앙될 수 있을 뿐이지, 낡은 것의 연속으로서 가까이 온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계는 가까이 왔지만 어디까지나 영원한 세계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그것의 반사(反射) 안에 있을 뿐이다. 이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부정적, 불가시적이고 은폐된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의 소멸, 만물의 종말, 차안의 동요와 소요, 파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제1판과 달리 유기적으로 성장하거나 건설되지 않는다. 볼 수 있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바벨탑일 뿐이다. 우리는 두렵고 떨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나름대로 이룩하려고 노력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머리카락의 넓이만큼도 접촉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순간은 모든 순간들과 비교할 수 없이 대립하고 있고,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시간들과 비교할 수 없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순간들의 초월적 의미, 모든 시간들의 성취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철저히 배타적으로 하나님 자신만의 일이라고 간주된다. 물론 그것은 우리들을 위해(pro nobis) 일어나지만, 더 이상 우리와 함께(cum nobis), 우리 안에서(in nobis) 일어나지 않고, 우리에게 맞서서(contra nobis) 일어난다.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혁명, 하나님 나라의 일에 협력하지 못한다. 가장 철저한 혁명조차도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겨 오기는커녕, 단지 기존적인 것을 기존적인 것으로 대체할 뿐이고, 새로운 형태의 악을 불러들인다(인간의 혁명 시도, 특히 레닌 혁명에 대한 비판).
그렇다고 해서 바르트가 여기서 전적인 체념, 윤리적 행동의 상대화, 부르즈와 계급적 반동, 종말론적 비관주의를 장려하자고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세상에 대해 절대적으로 다른 하나님을 통하여 세상을 절대적으로 다르게(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긍정하려고 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활동할 수는 없지만, 기존질서 내에서 사회적 긍정, 억압, 독재에 맞선 개혁정치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시위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로마서 주석 제1판에서와 같이 온갖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속에서 이루어지며, 사회민주주의적 정치 안에서 실천된다.

4. 1932년(교회교의학) 이후의 바르트
로마서 주석 제2판은 신학과 철학, 하나님과 인간을 종합하려는 자유주의 신학을 철저히 청산하려는 몸짓이었다. 인간이 생산해 내는 온갖 우상을 파괴하고 성전을 더럽히는 온갖 혼합주의를 축출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이 책은 잠자는 그리스도인들을 깨우는 닭소리, 종소리가 되었고, 인간으로 하여금 무상한 것을 절대화하려는 시도로부터 결별하여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은혜로운 하나님 앞에서 전율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 신학은 잠시 동안만 주효했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대가로 하나님의 위대성을 상실시킨 스승들의 신학을 반박하기 위한 바르트의 의도는 정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스스로도 나중에 반성한 대로, 로마서 주석 제2판의 신학은 하나님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인간을 지나치게 희생시킨 것이었다. 이것은 제1판과는 달리 하나님의 나라의 위기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역사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폐허, 진공 밖에 없는 것 같았고,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차용한 시간-영원의 변증법도 역사의 희망에 대해서는 너무 인색할 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철학에 의존하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도 그를 괴롭혔다.
그에게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준 이 책이 출간된 바로 같은 해에, 그러나 로마서 제2판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제1판의 공로 때문에 바르트는 괴팅엔(Göttingen) 대학의 종교개혁 신학을 담당하는 석좌교수로 부름받게 되었다. 여기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강의하던 그에게 그들의 유산이 그의 신학 체계 안으로 서서히 흡수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바르트는 그들의 신학을 이전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이전의 체계를 조금씩 심화, 수정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신학을 사람들은 적절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라고 불렀다. 그 이전의 신학도 철저히 로마서 주석을 빌린 말씀의 신학이었지만, 특히 존재론적 신증명을 시도한 안셀름(Anselm)에 대한 바르트의 독창적인 해석서 'Fides quaerens intellektum'(인식을 추구하는 신앙: 1931년)이 출간된 직후부터 바르트는 자신의 사고에서 철학적, 인간학적 기초와 해명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신학은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바르트는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변증법(辨證法: Dialektik)적 체계는 유비론(類比論: Analogia)적 체계로 바뀌어 나갔고, 시간-영원의 종말론, 변증법적-수직적 종말론은 계시적 종말론, 성서적-수평적 종말론의 체계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철두철미하게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과 인격, 사역을 통해서만 해명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그리스도론적 집중', '그리스도론적 일원론', '그리스도론적 보편주의' 혹은 '그리스도론적 왜소화'하는 말로 제각기 다르게 평가하였다.
이전의 체계에서도 그러했지만, 특히 교회교의학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하고도 의식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구상되고 설명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진 지배, 그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그분 자신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인격 안에서 온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리고 바르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화해(和解)를 하나님의 혁명이라고 불렀는데, 이 혁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의 돌입이다. 이 하나님 나라의 돌입, 하나님의 혁명은 인간과 세계의 급진적, 전체적, 보편적 변혁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참 혁명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 나라의 혁명은 사회집단과 관습에 맞선 충돌 안에서 일어나서 모든 인간들의 상황변혁을 목표로 삼는다.
그렇지만 이 혁명은 율법적 강요의 전체주의 속에서가 아니라 '은총의 전체주의' 속에서 일어난다. 이 혁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인간도 변혁의 주체가 되도록, 하나님의 투쟁에 참여하도록 부름받는다. 이 투쟁은 특히 인간의 소외, 물화, 관료주의화, 억압에 맞선 행동 속에서 구체화되며, 이 행동은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사회, 화해된 사회를 위한 실천 속에서 이루어진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선행적 형태, 비유, 반영, 복사로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지시하고 이의 도래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혁명인 화해의 인식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에, 사회의 부정적 요소들에 대한 비판적 역할과 더 나은 사회질서의 수립을 위한 건설적인 역할을 통하여 사회변혁을 위한 적합성을 실증할 수 있다. 교회는 이론적-실천적으로 더 나은 화해된 질서를 향해 진군하는 전위대, 선구자로서 자신을 입증할 수 있고 또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만 바르트에 따르면, 교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적합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비록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세속적인 휴매니티, 우주의 빛들과 진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매개하며, 사회민주주의는 인간적, 정치적 세속성의 진정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의 반사로 입증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는 기독교의 신앙고백의 정치적 차원과 내용적인 공통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혁명에의 인간참여는 특히 사회민주주의 안에서의 영속적 체제변혁, 영속적 개혁정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교회교의학의 시대에 와서 계시는 다시 역사적 특징을 분명히 회복하게 되었다. 역사는 여전히 계시가 아니다(역사≠계시). 하지만 계시는 역사로서, 특히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의 역사로 나타난다(계시=역사). 역사의 선은 계약에 의해 둘러싸인 시간적, 역사적 진보를 보여준다. 바르트에 따르면, 이 계약의 근거와 요약,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일어나는 모든 역사는 계약사의 의미를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바르트는 세속사와 구원사를 단순히 분리하지 않는다. '구원사'는 '계약사'로서 '보편사' 안에서 드러나고 완성된다.

나가는 말: 바르트 신학의 상수(常數)
바르트의 신학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그의 신학적 개방성에 있다. 그의 신학은 늘 도상(途上)의 신학이었다. 바르트는 생전에 "나의 신학을 절대화하지 말라"고 경고하였으며, "나는 바르티안(Barthianer)이 아니다"고 말하였다. 기독교 신학사에서 바르트의 신학만큼 그렇게 자주 바뀌었던 신학을 찾아보기 어렵다. 힘겹게 얻은 새로운 통찰과 그를 통해 얻은 인기를 용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 대중이 따르는 것을 경계하고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과단성은 신학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바르트 신학의 또 다른 특징이다. 그러므로 바르트 생애의 어느 시점을 못박아 "이것이 바르트 신학이다"라고 단정해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르트 신학의 불변하는 요소, 상수(常數)를 묻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트(H. Ott)는 개혁교회의 '하나님의 주권신앙'을 바르트 신학의 지배적인 동기로 보았다. 바로 이로부터 바르트는 자신이 발견한 신학적 토대를 항상 더 철저히 검증하고 심화하였다는 것이다. 마르크바르트(F-W. Marquardt)는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바르트의 생애와 신학에 일관되게 흐르는 근본 특징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들은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나로서는 바르트의 신학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이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후기로 갈수록 바르트의 신학은 더욱 더 삼위일체론적 구조 혹은 삼중 구조(Trias)를 갖는다. 또 어떤 사람은 후기로 갈수록 두드러지는 성령론적 특징을 부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증언'(출발-전향-고백: 1968년)은 자신의 신학이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하려는 운동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일평생 동안 바르트의 서재에 걸려 있었던 그뤼네발트(Grünewald)의 그림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와 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세례 요한을 그리고 있는데,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도 늘 세례 요한의 손가락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것이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자신을 낮추고 비웠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바르트는 늘 겸손하게 자신을 비우고 낮추었다.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사로잡히기 위해서 늘 새로이 출발하고 전향하고 고백하려고 애썼다. 바르트의 현란한 신학체계와 방대한 가르침보다 바로 이것을 우리는 가장 분명하게 배워야 하지 않을까?

참고도서
김재진, 바르트 신학해부(한들출판사, 1999)
이신건, 칼 바르트의 교회론(성광문화사, 1989)
이신건, 하나님 나라의 지평 위에 있는 신학과 교회(한국신학연구소, 1998)
U. Dannemann, 이신건 역, 칼 바르트의 政治神學(한국신학연구소, 1991)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서평

오토 베버 저 / 김광식 역 / 기독교서회(서울:1983)

부제 : 칼 바르트의 신학과 그 내부적 모순
 
 
Ⅰ. 서 론
 
칼 바르트의 신학을 이해하자면, ‘자기 것’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칼 바르트의 신학은 “나의 것을 없애는 못된 하나님이라면 나는 그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는 모든 것들에 대한 공격정신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나의 신학’, ‘나의 교회’, ‘나의 것’, ‘나의 가정’, ‘나의 신앙’, ‘나의 소망’, ‘나의 사랑’ 이 모든 것들을 칼 바르트는 공격한다.
 
역으로 칼 바르트를 공격하는 명칭들이 있다. ‘위기신학’, ‘변증법적 신학’, ‘옥캄주의’, ‘플라톤주의’, ‘ 칸트주의’, ‘실존철학’, ‘합리주의’, ‘허무주의’, ‘관념론’, ‘초자연주의’, ‘고차원 휴머니즘’, ‘객관주의’, ‘정통주의’ ‘신정통주의’, ‘하나님의 중심주의’, ‘그리스도 일원론’, ‘계시적극주의’, ‘성서적기독교(비꼬는 투로)’, ‘교회적 신학’ 등등
 
그러나 바르트가 보기에 이 모든 것은 예수님 앞에서 부정되어야 될 것 곧 ‘나의 신학 따로 갖기’에 해당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진정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남는가를 바르트는 각자 자신들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부정, 자기 부인 없이는 칼 바르트 신학을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는 ‘특별한 성경해석’도 없다고 말한다.(p60) 그 이유는 말씀 스스로 우발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p25) 인간이 말씀을 붙잡을 수가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를 위한 말씀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말씀 안에서 교회가 되는 사건만 있을 뿐이다.(p20)
 
바르트가 이런 식으로 논리를 이끄는 이유는, 바로 인간들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말씀을 자기를 위하여 붙잡으려는 본성을 줄 곧 실시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자기 존재 증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바르트는 부재(不在)로 맞선다. 즉 진리는 감춰진 것이 하나님의 자유로 인해 드러날 뿐이다. 즉 항상 신비다. 신비를 신학의 역사, 교회의 역사, 인간의 역사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시는 항상 하나님께로 속해야지만 어느새 교회가 소지한 계시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학(교의학)을 ‘교회를 위한 신학’, ‘목회를 위한 신학’으로 변질해 왔던 그동안의 사태에 대해서 바르트는 모두 다 뒤집어버린다. 바르트의 이러한 ‘신학 뒤집기’는 차후에 인간 역사 속에 나타날 모든 신학에는 당연히 적용될 시금석이 되기 위해 칼 바르트는 말씀 자체를 권위의 유일한 시금석에 내세우게 된다. 그래서 그의 교의학의 처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식된다.
 

Ⅱ. 본 론
 
1. 계시와 말씀의 관계
 
바르트는, 기존 신학이 말씀에 접근하는 사고방식을 뿌리채 뽑아 내던져버리는 작업에 나선다. 따라서 똑같은 본문을 설명해도 바르트가 설명하는 것과 기존 신학이 설명하는 바가 다르게 나타난다. 즉 기존 신학에는 ‘말씀의 신비’를 누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말씀에 접근하는 바르트 나름대로의 방식을 소개하기 위해 바르트는 삼위일체의 ‘삼중성 속의 통일성’과 유사한 형태로 말씀의 ‘삼중성 속의 통일성’을 언급한다.
 
그것은 바로 ‘말’이요 ‘행위’요 ‘신비’다. 첫째, 말이란 인격성을 가진 분이 인격성을 가진 대상을 향하여 전달되기에 반드시 모든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의 인격성’이 도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행위’란 곧 인격성을 가진 하나님 스스로의 행위라서 인간들이 자기 행위로 말씀을 지켜낸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과 충돌을 야기하기 된다. 즉 말씀 성취에 있어 계약에 인간은 관여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참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로 ‘신비’란 곧 말씀이라는 역사적·지상적 형식을 유발하는 ‘계시의 영역’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계시의 영역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유에서만 형성되기에 인간들에게 감춰진 것이다.
 
계시 자체가 하나님의 자유 때문에 인간들은 모른다는 측면을 말하기 위한 계시가 아니라 도리어 반대로 언제나 어디서나 계시가 있다는 말이다.(p23) 이 하나님의 자유에 근거한 계시관을 설명하기 위해서 바르트는 세 가지 형태의 계시를 주장한다. 하나는 ‘선포된 말씀’이고 또 하나는 ‘기록된 말씀’이고 다른 또 하나는 ‘계시된 말씀’이다.(p21) '선포된 말씀‘이란 말씀이 선포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선포 자체에 이미 대상이 되는 약속을 품고 있다는 말이다.
 
이로서 하나님은 구원여부를 놓고 인간하고 거래하거나 흥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록된 말씀의 내막은 선포를 통해서 비로소 밝혀지며, 선포의 내용은 하나님의 계시뿐이다. 따라서 성경 말씀은 계시가 되는 것이다. 만약에 기록된 성경 말씀 자체만이 유일한 계시라면 교회의 역사 속의 산물이 되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유성과 충돌하게 된다. 인간이 성경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인간을 붙잡으려면(p23) 성경은 필히 자유로운 계시 사건만 만나야 한다.

2. 하나님과 성육신
 
바르트의 작업은, 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계시가 어떻게 우리 가운데 주어졌느냐로 나아간다. 그는 한 마디로 말한다. “하나님의 주님으로서 계시하셨다”(p34)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주’개념만 알면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죄, 시간, 성령, 구원, 선택, 예정, 섭리, 율법, 화해, 사랑, 경배, 찬양, 교회, 천국, 언약, 삼위일체 하나님, 칭의, 악마, 세상 등등 그 어떤 개념도 이 ‘주’개념에서 다 나오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이유는 없다. 하나님 당사자께서 그렇게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만약에 ‘주’ 개념이 인간들에게 폐쇄적이라면 교회도 당연히 폐쇄적이어야 하고, ‘주’ 개념이 인간들에게 개방적이라면 교회도 당연히 개방적이어야 한다. 이는 곧 모든 개념이 다 ‘주’개념으로 도로 모아져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즉 인간들 손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육신이 말씀이 된 것도 아니요 인간이 하나님이 된 것도 아니다.(p46) 이는 하나님의 일이 인간들의 손에 맡겨져서는 아니 된다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어디까지나 ‘주’가 아니라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들이 염원하는 화해나 구원은 용납될 수 없다. 성령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영은 될 수 있지만 결코 ‘우리의 영’은 아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인해 인간을 보는 인간론을 위한 여지는 생길 수 없다. (p43) 성육신으로 인하여 인간 시간은 이제 그리스도 시간이 되었다.(p44) 시간에 중심점이 생겼다는 말이다.
 
그 중심점으로 인해 구약의 ‘대망의 시간’이 되고 신약은 ‘회상의 시간’이 된다. 그런데 이 두 시간 다 ‘친히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께서 감추고 계신 그런 시간이다. 하나님의 현재는 부활 속에서 성취되었는데(p45) 이로서 현실은 현실을 포착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현실은 성령으로만 포착가능하다. 이 현실 안에서 ‘하나님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가 된다. 고로 성도는 자유인이다.
 
이 자유 안에서 ‘불경건 자의 칭의’가 일어난다.(p55) 인간이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자유를 인식하고 그 자유의 규정을 받는 곳에서 자기의 자유에 도달한다는 것이 성령 안에서의 신비다.(p56) 이 자유 안에서 사랑은 업적이 아니라 감사다.(p56) 이로서 자기애(自己愛)는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게 되고 도리어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도록 한다.(p58)
 
3. 하나님과 인간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섬으로써 하나님을 인식한다.(p 76) 이로서 하나님 자체보다 하나님께서 내민 관계를 접할 수 있다. 이 관계를 벗어나는 인간이나 세계를 설명할 수는 없다. 즉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는 자는 자신을 잃는 그런 관계다.(p 78) 이 관계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에게 대상(이웃)이 되면서도 또한 대립이 된다. 천주교는 이 대립관계를 모르고 ‘존재의 유비’를 주창했다. 즉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존재적인 유사성이 있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이것은 용서 못할 일이다.(p80) 왜냐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자연적 영역에서의 접촉점도 있을 수 없다.
 
성육신은 자연적 영역으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이유는, 성육신에 대한 이해는 예수님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혈육으로 사람과 함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납득되는 식으로 하나님이 와 계신다는 말은 아니다. 참으로 성육신을 이해할 인간은 ‘그리스도 안’의 인간이 될 경우뿐이다.(p83)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아는 것을 체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이다. 체념은 하나님의 은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교만이다. 그러니까 반대로 겸손은 체념이 아니다.(pp 84-85) 인간은 인격이 아니라 하나님한테 사랑받고 다시 그 분을 사랑하는 데 근거해서 인간이 인격이 되는 것이다. 곧 주님만이 인격이다.(p 88) 유일한 인격자이신 주님께서 세상을 지었기에 세상의 역사는 그분으로서만 비로소 역사가 된다.(p96)
 
하나님의 영원은 무시간적인 것이 아니다. 제대로 시간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모든 창조가 시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시간의 주님이시다. 그래서 인간은 우리의 시간 안에서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그 분의 시간을 인식하고 경배 드리게 된다.(p 97) 하나님께서 창조의 시간과 은혜의 시간을 주셨다.(p127) 창조의 시간과 은혜의 시간의 차이점은 은혜의 시간 속에는 대립자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창조의 시간이 시간의 원형이 아니라 은혜의 시간이 모든 시간의 원형이다. 기독교 창조론은 어떠한 식으로도 세계관이 될 수 없다. 또한 어떠한 세계관을 뒷받침해 줄 수도 없고 뒷받침 받을 필요도 없다.(p141) 어떠한 세계관도 보증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창조의 시간은 시간적이지만 비역사학적 시간이다. 그것은 신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비란 곧 계약이다. 창조는 계약의 외적 근거이며 창조의 내적 근거가 곧 계약이다.(p128) 이로서 역사를 읽으려면 뒤에서 앞으로 읽어야 한다. 은혜의 계약은 성육신이기 때문이다.
 
창조 시간 속에서도 이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나온다. 그 관계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어떤 성질이 아니다.(p130) 또한 인간의 소유가 될 수 없다. (p133) 왜냐하면 하나님 쪽에서 내민 관계성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성이 성경 전편에 걸쳐 바닥을 깔게 되는데 그것이 곧 부부라는 비유관계다. 성별의 차이를 통해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관계가 곧 하나님의 형상이다. (p132)
 
이 부부 관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님은 짐승까지 동원시켰다. 짐승들이 있는 까닭에 인간은 자기에게 규정되고 자기를 위해 이루어진 도움을 그 자체대로 인식하고 선택하고 긍정하려는 것이다. 이 자유성은 선악과 앞에서도 확인된다. 진정 ‘선다’는 것은 ‘넘어진 ’후에나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p138)
 
이로서 인간관계는 죄로 말미암아 규정되고 죄로 말미암은 그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p151) 은혜의 시간이란 곧 진짜 인간이란 은혜에 동참하는 죄인이다는 말이다.(p150) 이 은혜의 사건 안에는 대립자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예수와 인간도 아닌 인간의 대립이다. 하나님의 행위는 인간 예수에 대한 하나님의 행위다.(p151) “보라, 사람이 있다!”(요 19:5)
 
인간 예수에게는 하나님과 인간은 동일하다. 그 분은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 존재다.(p157) 인간과 더불어 선택받은 인간이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선 대립자이며 우리 인간은 그 분 앞에서 대립자가 된다.(p156) 인간은 예수와 함께 있기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인하는 자는 곧 자신을 부인하는 되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우선적으로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선택’부터 이해해야 한다.
 
4.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선택에는 하나님의 자유와 하나님의 신비와 하나님의 의(義)가 명시되어 있다. (p99) 이는 곧 이 세 가지를 함유하고 있는 증거는 추상적 논리인 하나님의 전능의지로부터 출발해서는 안 되고 인간 예수 그리스도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서는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 선택이 하나의 지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신 동시에 선택받은 인간이시다.(p 100)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셔서 자신의 원수가 된 인간을 위하여 친히 책임지시고 붙잡히었고 그 분이 저버림을 당하고 죽으시는 모든 행위를 자기 자신의 일로 삼으신다. 그리하여 그 분 안에서 참으로 그 사람이 친히 죄인으로 죽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또한 살리셨다.(p10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을 유기(저버림)를 선택하셨다. 그러므로 그러한 뜻에서 볼 때 예정애서 부정(否定)을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어쨌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부정이 아니다. 그러니까 예정을 믿는 신앙 자체는 그야말로 인간이 저버림을 받지 않는다는 신앙이고 인간의 저버림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p 103)
 
이는 예수님에 의하여 그리고 말미암아 수행된 선택이며 이 선택이 바로 당사자인 예수 그리스도한테 일어난 선택이기도 하다. 칼빈의 오류는 예수님을 지나쳐서 하나님 선택과 바로 인간 선택을 연결했기 때문에 선택론에 있어 하나님과 예수님을 분리시켜 버린 것에 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이 다 이루어지기에 선택과 버림(유기) 모두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로 결정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결정이 성립될 경우에만 ‘예수 안에서 예정’(엡 1:4)이 실효적 의미를 가진다. 이 선택으로 인해 악과 악마는 그냥 극복되어버린 힘일 뿐이고 결코 하나님께 대항해서 장난치는 최후의, 실재적 대항자가 못된다.(p103)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결코 순종하는 민족이 아니라 도리어 항거하는 민족으로서 선택하신 것이다.(p192) 교회는 세상에 뭔가 증거하는 단체다. 무엇을 증거하는가? 자기 자신을 넘어섬을 증거하고 만인과 사귐이 가능하게 된 원천을 증거하는 단체다. 교회는 비밀스러운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이시다. 이 주님의 선택으로 교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교회 중간에서 양자를 통일하고 구별하고 서 있으신 분은 ‘나사렛 예수님의 영원한 선택 행위’다.(pp104-105) 바르트는 말한다. 하나님의 결심이 예수님의 선택과 동일하다면 교회 공동체의 불신앙을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진지하게 다루지 말라고! 그렇다면 선택받은 증거가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알아채는가? “택한 자체와 저버림 사이의 절대적 구별을 찾으려 하지 말고 불경한 자와 믿는 자의 구별해서 불경한 자와 연대감을 갖고 보면 된다”고. (p107) 신자도 잠재적으로 저버림을 당한 자가 아닌가.
 
이렇게 되면 바르트는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서 바르트는 이런 사랑 보편주의를 이렇게 본다. “세상이 택함 받았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즉 교회가 외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자유이지 교회가 하나님의 의지를 결정짓듯이 ‘만인구원론’을 전할 입장이 못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들의 논리적인 귀결이 하나님의 자유를 대체 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어쨌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저버림 받은 자가 믿고서 신자로서 택함 받은 저버림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p109)
 
5. 계명과 성도의 삶
 
계명은 하나님의 자유다. 이 자유는 명령법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관계 자체를 제시할 뿐이다. 그런데 그 관계란 바로 ‘특정 공간’ 안에서 일어난다. 수직적 사건으로 이해되는 공간인데 이 공간 안에서 수직적인 것이 수평적인 것을 절단할 때만 그것 자체가 수직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 까닭은 모두 어떤 특정한 연관에서 일어나는 유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유일한 성격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자유에의 참여다.(p221)
 
인간이 율법을 통해서 듣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생명의 영의 법이다. 곧 하나님이 자유 영역이다.(p223) 하나님과 함께 하심이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비하와 인간의 올리우심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발생되는 것이 ‘화해의 역사(役事)’다.(p286) 인간들은 하나님 아래 있기를 원치 않았다. 즉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
 
그래서 인간들이 노리는 것은 교만의 칭의요, 태만한 성화요, 기만과 위선 속에의 소명과 사명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심판주로서 우리를 대신하셨다.(p296)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그분의 책임 하에 두셨다. 그리하여 이제 그분은 짐 지고 비난당하고 유죄판결 받은 자로서 가짜로가 아니라 진짜로 고통을 받으신 분이다. 이런 일이 일어남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죄가 인식된다. 즉 그분이 우리의 자리에 서심으로써 무엇이 우리의 자리인지 결정된 것이다. (p297)
 
그분이 우리에게 취하신 바로 그 죄가 우리 자신의 죄로 보여질 수 있다. 우리에게 죄가 용서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용서의 인식이 우리에게 죄의 인식이 되고 이제 물론 자기 인식이 아니라 하나님 인식 및 그리스도의 인식이 된다.(p297) 죄로부터 자유롭기에 순종이 가능한 것이다. (p299)
 
신앙이란 이처럼 예수님에게서 생긴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불신앙과 만나서 충돌을 일으켰다. 오로지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으로 신앙이 발생된 것이다. 부활 이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으시므로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백성들 없이는 계시지가 않게 되었다. 이는 곧 “예수께서 사신다”는 데는 불가피하게 “그분과 함께 나도”라는 것이 따라간다.(p 308)
 
분명히 신앙은 겸손이다. 그러나 결코 자신의 선택한 겸손은 아니다. 옛 교만을 다시 작동 못한다.(p325) 그것은 과거가 끝장났기 때문이다. 낯선 오늘이 들이닥치는데 그 속에서 성도는 미래를 보장받는다. 그리스도의 역사 속을 질주하는 것이요 운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르트는 ‘도중에 있는 자’라고 표현한다.(p326)
 
성도의 운명이 돌이킬 수가 없는 이유는, 이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낮추심과 올리우심 때문에 예수님은 ‘지금’과 ‘장차’를 자신을 위해 활짝 열어놓으셨다.(p352)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의 판단이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라는 이름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이로서 신앙은 이 약속에 대한 그냥 대답일 뿐이지 결코 자기 자신을 칭의의 수단으로 제공한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p 329)
 
산상수훈이 전하는 ‘새로운 피조물의 삶’은 옛 피조물의 삶을 건전하게 또 가치 있게 지속시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예수님의 운동이 그 피조물에 안에 살아있기에 나타나는 삶이다. (p381)
 
교회란 결코 그리스도인이 이루지 못한 것을 성경이 이루어놓은 것을 말한다.(p392) 교회는 성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장하고 있는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 바를 물어야 한다.(p 390) 교회 공동체 자신을 정당하고자 하면 교회는 가장 나쁜 방식으로 불법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p391) 이렇게 되면 율법을 가지고 복음을 몰아내는 일이다.
 
교회란 일반적인 인류애(人類愛)를 상관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선택하시는 사랑이듯이, 인간의 이차적인 사랑도 택하신 사랑이요 따라서 구별하는 사랑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이란 인간 자체가 아니라 특정한 ‘폐쇄된’ 부류내의 인간을 뜻한다. 이웃은 곧 구속사의 관련으로 규정되어 있다. (p 402) 남과 나의 만남은 예수님 증인 이상의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개방적이고 이웃은 고정적이지 않다.
 
바르트는 마지막으로 말하기를, 성도에게는 영원히 남아 있는 본래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신앙도 희망도 남는다. 그 까닭은 사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고전 13:8-13)
 

Ⅲ. 평 가
 
1. 바르트의 신학에서의 취약점은,

바르트의 신학에서의 취약점은, 하나님과 인간의 개념 구성에 있어 성경에서 출발하지 않고 계시로 출발한데 있다. 계시와 성경의 차이점은, 계시란 성경을 존재하게 한 원인을 추적해서 설정된 추상적 개념이다 는 것이다. 즉 성경을 보면서, “이 성경은 누가 지었으며, 어디서 왔으며, 왜 인간들의 코앞에 놓여 있느냐”를 따져 물을 수 있는 권한을 바르트는 인간에게 허용한 셈이 된다.
 
즉 계시보다 하위 개념으로서 성경을 생각하다보니 성경이 성경으로 있게 한 원인자로서 계시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상정의 내용을 채워놓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를 배치용으로 동원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 자체가 이 ‘계시’라는 우월적 직위의 개념 설정을 용납하는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복음 중심으로 내용이 펼쳐져 있다. 복음이란 성육신이 아니라 십자가 사건이다. 즉 예수님이 품고 계시다는 인성과 신성의 관계가 아니라 ‘메시아가 언약대로 죽으셨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의 연관성으로 모든 해석이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흘리신 그 ‘피’로 모든 해석이 귀결되게 된다. 곧 ‘언약의 피’이다. 즉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의 피 안에서 모든 것을 말씀하신다.
 
바르트는 예수님의 실존으로 모든 것을 귀속시켰지만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예수님의 피로 모든 것이 쏠리게 되어있다. 바르트와 사도 바울의 차이점은, 짐짓 성령께서 무엇을 가지고 구원의 능력으로 제시하고 있는지의 차이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8-11)
 
2. 바르트가 피 중심이 아니다.
 
바르트가 피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실존 중심의 신학을 펼치다보니 이스라엘의 존재 전체와 그 안에 들어있는 참 이스라엘의 구분을 존재론적으로 구분해내지 못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속의 이스라엘’, ‘유대인 속의 유대인’, 뿐만 아니라 ‘교회 속의 교회’를 무엇으로 구별 지을 것이냐에 대하여 난관에 부딪친다.

예수님께서는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으로 가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전도하게 하셨다. 즉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과의 구별점이 구약 속에서 어떻게 작용했는가는 예수님의 실존 중심에서는 알 수가 없고, ‘피(고난) 발생사건’으로만 구별되기 때문이다.
 
특히 바르트는 ‘대립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와 예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이런 논리에서 필히 ‘말씀 사건의 우발성과 주체 정립의 연관성’이 설명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참으로 ‘사건의 우발성’이라면 주체는 일시적 주체로 머물고 이 주체관에 준해서 수립한 ‘대립자’라는 개념에 영속성이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사건이 주체정립에 관여하게 되면 필히 주체의 자리에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 사건은 주체가 붙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도리어 사건이 주체를 항상 해체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르트가 ‘대립자’라는 용어를 쓰면서 단순히 ‘언약 상대자’라는 의미보다 ‘대립’을 강조해야만 했다면 ‘말씀 사건’ 자체에 이미 대립의 요소가 품고 있음을 말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바르트는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사이에는 ‘대립’이 ‘화해’로 전환된 상황이고 그 완료된 상황이 예수님의 실존에 담겨서 나타나기 때문에 인간들은 예수님의 실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유’에 참여하는 것으로 십자가 의미는 이미 해소된 셈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새언약’의 의의도 예수님의 실존 속에서 소실되어버린다. 복음이 예수님의 실존으로 대체되어버린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의미하는 복음이 아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십자가는, 예수님이나 인간의 실존 안으로 사라져 소실되어야 될 한시적 사건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이 속성인 공의의 속성과 사랑의 속성으로 형성된 두 영역 사이를 영원히 격리시킬 성격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천국과 지옥의 존재의 의의가 산다. 지옥이 영원한 실재를 말하지 않고서는 영원한 천국과의 격리성을 말하지 못하고 구원의 의미도 없게 된다.
 
그리고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형상 개념이 기초가 된다. 바르트는 부부의 성별 차이에다 ‘하나님의 형상’의 기초를 삼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르트의 구분에 의하면, ‘창조 역사’ 차원에서는 그러하지만 ‘은혜 역사’ 차원에 예수님의 고난과 피를 기초로 ‘하나님의 형상론’을 전개한다. 창세기 9장에 나오는 노아의 무지개 언약의 실체가 이로서 마련된다.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 9:5-6)
 
3.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서, 바르트는 부정적 선택이 긍정적 선택 품 안으로 들어가서 소멸되고 만식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되면 ‘이중 예정’이 아니라 ‘이중 긍정’을 거쳐서 단일 긍정으로 귀착되고 만다. 그런데 바르트는 삼위일체의 내적 관계에서 왜 ‘이중 예정’(즉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을 선택하고, 예수님이 왜 성도를 선택하는 것)이 필요한지 그 연유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왜 성령께서 아버지부터도 오시고 아들로부터도 오셔야 하는지와 관련되어 있는 문제다. 그것은 신약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삼위일체가 하나님의 존재를 가지고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사건을 가지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로부터 성령이 오시지 아니하시면 예수님은 십자가 지실 수가 없고, 또 그 십자가가 성도를 구원하는 능력이 되려면 아버지로부터 오신 영이 아니라 이미 주가 되신 예수님의 성령으로 일을 하셔야 오로지 십자가 피만 영원히 천국에서 증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약성경에서의 ‘이중 선택’은 그 중심에 십자가 복음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십자가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한 이중 선택이지 인간을 구원이나 예수님이 실존을 증거하기 위한 이중 선택은 아닌 것이다. 에베소서 1:4의 예정에 관한 말씀도 1:7에 나오는 십자가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계시다.
 
4.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88페이지에 보면, ‘사랑’과 ‘자유’를 하나님의 두 속성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명백하게 하나님의 속성은 ‘공의’와 ‘사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 11;22)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롬 9:21-23)
 
바르트는 악마의 실제적인 위세 꺾임을 강조하고 無性 혹은 “불가능한 것의 실존가능성, 다만 비현실적인 것의 실존 가능성, 다만 무력한 것의 독자적인 힘” 정도로 표현한다.(p200, p103) 이것은 예수님의 실존 가치의 우월성과 최종 승리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면, 예수님의 새언약 가치를 위하여 모든 피조물이 있기에 반드시 지옥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국에 가는 자는 반드시 생명책에 기록된 자에게만 국한 되는데 이는 그 생명책이 바로 ‘어린양 (피와 관련된)의 생명책’이 된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7)
 
5. 개혁주의자들이 칼 바르트를 비난하는 것은,

개혁주의자들이 칼 바르트를 비난하는 것은, 교회라는 역사적 성과물에 눈독이 들이고 있기 때문이고 그 역사적 성과물로서 목회자나 신학자들의 자기 존재 가치를 찾아보기 위함이다. 즉 교회 없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로만 도저히 하나님을 못 믿겠다는 투다. 따라서 바르트는 이들을 불신자로, 이단으로 보고 공격하는 것이다.
 
바르트의 정신에 의하면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줄 수밖에 없다. “목사가 된 것이 후회스럽습니까? 그렇다면 이제부터 제대로 된 목사 할 사람입니다. 매일 후회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선다는 것은 ‘넘어진’ 후에나 비로소 시작한다”(p138)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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