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6일 월요일

성화(Holiness/Sanctification)

성화(Holiness/Sanctification)

 
윤리적 성결은 내적 성결로서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에 의한 보다 높은 변화이며, 은총의 경험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의미한다.이는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하여 세상과 구별되는 성도가, 내적인 성품의 변화로 말미암아 참된 성도로 변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구약적인 의식적 개념은 신약의 내적인 개념으로 발전하면서 완전하여 진다.하나님의 뜻으로 따로 구분되어지고 거룩하다고 불리우는 성도들도, 이제는 실제로 죄를 회개하고 죄와 투쟁하며 변화되어 거룩한 사람으로 발전되어 나간다.죄의 용서와 씻음, 의인이라고 불러줌은 신분상의 변화이지만, 실제적인 변화라고 할 수는 없다.

      "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

      
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
1:4-7)
그렇다면 성도란 무슨 뜻일까? 성도란 성경에 의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말한다
.

     "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
      
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고전
1:2)
그렇다면 성도란 이미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도 거룩하여진 자일까? 그렇지는 않다
.고린도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문에서 살펴보자.

    "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

    
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1-3)
고전3:1-3에서 사도바울은 이미 거룩하여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육신에 속한 자라고 하였고, 어린아이라고 하였다
. 즉 그들은 의식적인 의미에서 성도(거룩한 무리)였지만, 아직 내적성결에 도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그러나 바울은 61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그들 중에서는 내적인 성결에 도달했던 자가 있었다
. 그들은 씻음(중생)과 거룩함(성화)과 의롭다하심(칭의)을 얻었다.물론 그들의 성결은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충만이었고, 그들의 소망은 사랑이 되어져야만 한다.

      "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루터와 캘빈은 현세에서 온전한 성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웨슬레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의 순간적인 경험과 같이 성화의 두 번째 경험이 가능함을 주장하였다
.웨슬레의 성화는 점진적인 요소와 순간적인 요소가 있는데, 웨슬레가 말하는 순간적 성화의 특징은 은혜의 체험을 말한다.이것을 웨슬레는 제2의 축복, 2의 은혜, 온전한 구원, 기독자의 완전이라고 불렀다.그렇다면 완전 성화되지 못한 성도는 지옥불에 떨어지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는다.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시는 목적이 바로 성결이기 때문에, 성화는 신앙인의 신앙적인 목표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즉 웨슬레가 말한 성화는 궁극적으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상태나 조건의 완전한 성결의 개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루터나 캘빈과 같은 개혁자들이 말하는 것은 완전한 성화는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웨슬레는 완전한 성화를 주장하였기 때문에, 이 두 견해는 서로 대립되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웨슬레를 반대하고 비평하는 사람들의 시각에는, 인간이 피조물임으로 그의 성품과 인격이 "불완전"하다고 보았던 것이며, 웨슬레가 말하는 "완전"이라는 개념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무지나 과오나 결점이나 시험받을 가능성등을 문제 삼지 않는다"(송흥국, 웨슬레신학 144)는 것이었다.즉 완전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서로 시각차이가 있었던 것이다.웨슬레가 말하는 완전이란 정지된 상태의 최종적인 완전이 아니라, 완전을 향하여 가는 점진적인 완전을 의미한다.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살전
4:3)
   "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
   "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2:14)
완전한 성결이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적 완성과 완전한 사랑을 의미한다
. 물론 현세에서의 완전은 최종적이 아니다. 물론 최종적인 완전(Final Stage of Perfection)은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이 될 것이다. "완전"이라는 개념을 웨슬레는 소극적 완전과 적극적 완전으로 분류하였다.웨슬레는 사도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2:20)라고 기록한 것을 예로 들었다.
"
내가 산 것이 아니요"는 나의 죄성과 몸의 소멸을 말하는 소극적 완전이며,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 것이라"는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계심으로 이루어지는 적극적 완전을 말한다는 것이다
.
 
웨슬레가 말하는 완전은 사랑과 순종의 완전이며, 피조물로서의 완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웨슬레는 인간이 피조물이기에 불완전하다는 것에는 분명히 동의했지만, 그러한 개념의 불완전은 그의 완전개념에서 무시되었던 것이다. 즉 인간에게 과오, 무지, 결점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공로가 계속하여 필요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웨슬레가 말한 "완전"이란 "완전한 사랑과 성령의 증거"를 의미하며 "믿음으로 얻는 것"이라고 하였다. 카톨릭이 주장하듯이 인간의 선행이나 의지로 얻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총이다.
바울은 성화를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신분상의 변화(고린도전서 1:2)이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사람의 도덕적, 영적 변화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닮아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1)
성화의 내용
성도가 거룩해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가능하다( 1:6; 살전 5:23). 그러나 이는 중생처럼 성령이 단독적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인간과 협력하여 이루어진다( 12:9,16-17; 6:7-8,15). 또한 이는 죄의 오염에서 해방되는 것이며( 6:17-18) 점진적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즉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이다( 4:24; 3:9-10).

2)
성화의 특징

(1)
성화는 소극적으로 인간의 죄악된 성향을 제거하는 것이고( 2:20; 5:24), 적극적으로는 거룩하여져서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다(
6:11).
(2)
성화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 그리고 지, , 의가 포함된 인간의 전인격에게 영향을 미친다(고전 6:20; 살전
5:23).
(3)
성화에 이르기 위해서 인간은 죄와의 치열한 싸움을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적극적인 노력 없이 무조건 죄와 악과의 전투에서 승리로 이끌지는 않는다
.
(4)
성화는 현세에 완성되지 않지만(요한일서 1:8),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범위까지 완전에 이를 수 있다
.
중요한 문제
:

1)
우리가 성화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은, 성화는 살아 생전에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하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죄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죄에 대해서 포기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

    "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6:11, 14)

2)
성화는 살아 생전에 현세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가 육체로 있는 한,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최종적인 성화는 살아 생전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요일1:8, 3:21, 12:23,
14:5, 21:27)

3)
성화는 신인협력사항이다. 성화가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인하지만, 인간의 전혀 피동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후7:1, 3:5-14, 벧전1:22)

이인규
본래 성화라는 말은 "구별되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카도쉬"가 사용되었는데, 그 단어는 "잘라냄, 분리됨"을 의미하는데, 종교적으로 속세의 것과 구별되어짐을 의미한다.그래서 성경은 일반 책과 다르게 구별되었으며, 하나님을 믿는,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사람들은 성도라고 불리웠던 것이다.(고전1:2) 그리고 성가란 일반 노래와 구별되어진다.

     "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
11:16)

     "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벧전
3:5)

     "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11:16)

     "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전
16:20)
즉 신약에서도(구약에는 그 용례가 너무 많음으로 생략함) 떡덩이도, 입맞춤도, 부녀들도 모두 거룩하다고 불려진다
. 구약에서는 제사장의 옷(16:4)과 십일조(26:13)까지 거룩하다고 하였으며, 거룩한 시간(20:8)도 있었다..... 제사를 드리는 거룩하게 구별된 물건에 접촉하는 것도 거룩하다고 불리워졌다(29:37) 어떻게 떡과 옷같은 물질이 거룩할 수가 있는가?즉 하나님께 소속된 것은 모두 거룩이라고 불리워졌던 것이다.그래서 모세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불려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화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구별되어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성화가 왜 필요한가?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
    (
19:2. 참조 벧전
1:15)
성화에는 그 개념에 따라 세가지로 분류된다
.
1)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세상과 구별되는 즉각적인 변화

2)
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가는 과정
3)
천국에 들어갈 때의 완전한 성화
대부분의 성화는 두 번째를 의미한다. 그러나 성화란 넓은 뜻에서 보면 예수를 믿는 단계에서부터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중생과 성화는 다른가
?엄격히 이야기하자면 중생이 곧 성화의 시작이다. 그 두 과정은 시간적인 순서나 과정을 구별하여 의미하지는 않지만, 의미적으로 구별하기 위하여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편의상 좋다.바울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3:5)이라고 한 것은 성령의 거듭남의 단계가 곧 성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었다"(고전6:11)라고 하였다.
구약에서 말하는 성화가 '분리,'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 혹은 인간과는 전적으로 분리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뜻한다면, 신약에서의 성화는 성령님을 통해 주어지는 내적 변화를 말한다. 물론 신약의 성화적 개념도 구약의 개념에 뿌리를 둔다
,바울은 성화를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신분상의 변화(고린도전서 1:2)이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사람의 도덕적, 영적 변화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닮아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장로교의 대표적인 신학자 루이스벌콥은 성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
성화란 성령께서 죄인을 죄의 부패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그의 전 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시며, 그의 전 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로우시며 계속적인 사역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신학개론, 283
)
즉 이 성화가 도덕적인 무흠 혹은 완전한 윤리적 자세만으로 해석되어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루터의 핵심이 이신칭의, 측 믿음에 의한 칭의였다면, 캘빈의 핵심은 거듭남의 중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웨슬레의 핵심은 성결, 성화였다.특히 웨슬레의 성화는 중생 거듭남의 과정까지를 포함한 넓은 의미였다.그는 성화, 즉 성결을 의식적 성결(외적 성결)과 윤리적 성결(내적 성결)으로 구분하였다. 의식적 성결은 주로 구약적인 외적 성결을 의미하며, 성별(consecration) 또는 구분(separation)을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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