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4일 수요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로마서 7장의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는 말씀은 결코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체험과 일치합니다. 우리가 하는 행위가 죄인지 알지 못하고 범죄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우리가 하는 행위가 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도 하지만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혹은 의지를 이기고 죄를 짓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원하는 선은 행치 않고 오히려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공통된 체험입니다. 여기서 선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 선을 가리킵니다. 선은 흠도 티도 없는 하나님의 표준에 이른 완전한 선입니다

사람이 길을 가다 구걸하는 걸인을 만나 동냥 그릇에 돈 몇 푼을 적선하고 자기 만족에 빠지는 그러한 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표준에 이른 선입니다. 성경이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의 표준을 만족시키는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표준에 이른 절대선이기에 선을 이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 선에 이를 수 없는 죄인입니다. 예를 들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려면, 어느 정도까지 이웃을 사랑해야 그 계명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육신은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가 없다고 증거합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당신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다면 사람의 표준에서는 선을 행한 것이지만 사람의 요구를 만족시켰을지라도 하나님의 요구도 만족시켰다고 여기지 않기 바랍니다

육체가 어떤 선한 행위를 하더라도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의 절대 선에 이를 수 없다고 증거합니다. 나는 거듭난 후 몇 해 동안 한가지 풀리지 않는 문제로 고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의 나와 거듭난 후의 나 자신을 비교해볼 때 오히려 거듭나기 전의 내가 더욱 도덕적이나 윤리적이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후 오히려 죄와 싸우는 과정에서 승리보다 실패가 더욱 많은 것을 볼 때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는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육체는 하나님의 표준에 이른 절대 선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며, 사람의 표준에서 선하다거나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로마서 7장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은 간음이요,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이와 같을 수 있습니까? 만일 무인도에 혼자 있다면 음욕이 일어나지 않고 미움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떨어져 있어도 음욕이 일어나고 미움이 생긴다면 여자가 없어도 간음죄를 범하는 것이고, 미워하는 사람이 없어도 살인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죄인인 것은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 육신에 죄가 거하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육신 안에 죄가 거하고 있어 어떤 환경을 만나면 범죄라는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몸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죄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몸은 죄와 사망의 몸입니다. 몸이 없다면 죄는 범죄라는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지 못합니다.
  
몸을 주관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몸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합니다. 마음에 음욕이 생기면 간음이라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미움이 생기면 폭행이나 살인이라는 범죄 행위로 나타납니다. 세상 법은 마음에 미움이 가득하다해도 몸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율법)은 세상 법과 달라서 행위보다 그 행위를 있게 한 근원에 초점을 맞춥니다.
  
로마서 7 장과 8장에서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기서 세가지 법, 곧 하나님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과 성령의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법이 거하는 영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죄와 사망의 법이 거하는 영역은 육신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7;18~20)
  
둘째, 하나님의 법(율법, 양심)이 거하는 영역은 마음입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2;14~15)

세째, 성령의 법이 거하는 영역은 그리스도 예수 안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2)

죄의 법에 대하여 싸우는 것은 옛 사람 안에서는 율법(양심)이며, 새 사람 안에서는 성령의 법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율법을 갖고 불법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반드시 패배로 끝납니다. 그러나 죄의 법을 이기는 다른 한 법이 믿는 이에게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율법으로 죄의 법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는 마치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어둠 속을 끝없이 헤메이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어둠 속을 천년 만년 헤메이고 다닌다고 해도 어둠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어둠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빛이 임하는 것입니다.
 
죄의 법이 어둠이라면 생명의 성령의 법은 빛과 같습니다. 믿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성령의 생명의 법에 이끌려 살게 됩니다. 스스로의 힘이나 노력이 아니라 주 안에 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할 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며,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으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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