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내년 식량위기 심상치 않다

한국 언론에서는 매년 명절 직전에 제사상 비용을 보도한다. 일종의 바닥 물가 흐름에 대한 지표다. 미국 언론들 역시 매년 추수감사절(11월 넷째 주 목요일) 만찬 비용을 따진다. 그런데 올해는 만찬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미국농업협회(American Farm Bureau Federation)가 지난 추수감사절(11월24일) 만찬 비용으로 추산한 금액은 49.24달러. 지난해(43.47달러)보다 13% 올랐는데, 1990년 이후 가장 큰 인상폭이다. 세계 최대 농업 수출국인 미국에서 식량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이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푸드 인플레이션(Food Inflation).’

지난가을, 텍사스 주 등 미국 서남부 농업 집산지의 소 경매소들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축산농가가 기르던 소를 일제히 내놓았던 것이다. 올해 이 지역을 강타한 가뭄 때문이었다. 목초지가 황폐해지면서 소 사료인 건초 값이 1t당 80달러에서 200달러로 폭등했다. 여름 내내 비만 기다리던 소 주인들이 가을을 맞아 비싼 사료 가격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자 3년 이하 연령의 소까지 끌고 경매소로 몰려갔다. 너무 많은 소가 거래되어, 10월 현재 미국 축산농가의 소 보유 규모가 1970년대 초 이래 가장 적을 것으로 추산될 정도다. 앞으로 한동안 쇠고기 공급이 줄고 가격은 오른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소 한 마리가 도축 가능한 연령이 되려면 적어도 3년은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쇠고기와 낙농업 제품 가격이 10% 정도 올랐다.




축산품 이외에 미국의 최대 수출 곡물인 옥수수·밀·땅콩도 이상기후로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봄에는 미시시피 강 일대의 곡창지대에서 홍수로 360만 에이커(약 1만4569㎢)에 달하는 경작지가 사라졌다. 여름엔 혹서와 가뭄이 겹치더니 초가을인 9월부터 서리가 내렸다. 11월8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옥수수 작황은 지난 3년 이래 최악이다. 지난 11월 초 미국 정부는 올해 옥수수 예상 수확량을 7월의 발표(3억3700만t)보다 2700만t 하향 조정했다. 땅콩 수확량도 지난해보다 13% 줄어들 것으로 봤다.

미국 국립기후자료센터에 따르면, 미국은 이번 가뭄으로 농산물과 가축 등에 걸쳐 100억 달러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 곡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옥수수 가격은 올해 들어 5% 이상 올랐다. 특히 땅콩버터의 재료인 땅콩은 1t당 450달러에서 1200달러로 인상됐다. 이에 따라 땅콩버터 제조업체인 크라프트, 스머커 등은 최근 제품 가격을 30~40%나 올렸다.

올해 미국의 쌀 생산량도 19%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미국 이외의 곡창지대에서도 마찬가지다. 타이에서는 지난 7월 이후 대규모 홍수로 전체 농경지의 12.5%가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는 지난해 가뭄으로 밀 생산량이 32.8%나 줄었다. 지난 7월 중국에는 50년 이래 가장 지독한 가뭄이 발생했다. 가뭄이 본격화될 때 무려 1600만 에이커(6만4750㎢)에서 곡물 생산이 중단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사정들로 인해 세계적으로 ‘푸드 인플레이션’ 혹은 더 나아가 식량위기에 대한 걱정이 높아지고 있다. 블룸버그 추산에 따르면 세계 식량 가격은 2006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5년 동안 68%나 올랐다.

2006년 하반기는 이상기후와 석유 파동으로 식량 가격이 크게 오르기 시작한 시기다. 이른바 애그플레이션이다. 급등했던 식량 가격은 2008년 초, 금융위기 조짐이 확산되자 다시 급락한다. 그러나 지난해 6월 가뭄 탓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밀 수출을 제한하자 식량 부문 전반에서 다시 물가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세계 식량 수급의 불균형 때문이다.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거나 심지어 이상기후로 생산이 줄어드는 반면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다. 중국의 경우, 지난 20년 동안 육류(소·돼지)와 가금류(닭 등) 소비가 각각 2배, 4배로 늘었다.

이로 인한 옥수수(소 등의 사료) 수요는 10년 전보다 47배나 많아졌다. 더욱이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녹색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면서 에탄올 생산을 늘리고 있는데 그 원료가 바로 옥수수다. 올해는 에탄올 생산에 투입되는 옥수수가 사료로 사용되는 분량을 넘어설 정도다.



  
ⓒAP Photo
지난해 12월 미국 남부 지역에 계속된 가뭄으로 양파 재배에 실패한 농부가 고개를 숙인 채 밭에 서 있다.



세계 식량 가격 5년 동안 68% 인상

  
ⓒ시사IN 포토
2008년 4월 서울 가락동 축산물공판장에서 쇠고기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 쌀 이외 곡물자급률은 3.7%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1882


‘푸드 인플레이션’의 다른 원인 중 하나는, 식량을 비롯한 원자재(commodity)가 국제 금융투기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증권시장(주식 및 채권)이 불황에 빠지자 헤지·사모펀드, 연기금, 국부펀드 등 기관투자가들이 자금을 원자재 매입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2003년 현재 130억 달러였던 원자재 선물시장의 규모가 세계 금융위기 즈음인 2008년 7월에는 3180억 달러 규모로 증가한다.

이처럼 수급 자체가 불안한 데다 금융투기까지 끼어든 국제 식량시장은 한국 같은 곡물 수입국(물량 기준 세계 4위)에는 엄청난 질곡이 될 것이다.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010년 현재 겨우 54.9%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식량으로는 필요량의 절반을 충족시키는 데 그친다는 이야기다. 이마저도 한국의 식량 수급 상황을 지극히 호의적으로 본 평가다. 축산업에 필요한 사료를 감안하면 식량자급률은 26.7%로 떨어진다. 더욱이 자급률 104%인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은 고작 3.7%이다.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해서 소비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콩·옥수수·밀은 수요량의 90% 이상을 수입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농업 생산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8월 대외경제연구소 등 10개 국책기관이 발표한 <한·미 FTA 경제적 효과 재분석>에 따르면, ‘농산물 수입 증가 등으로 국내 농업의 생산 감소액은 향후 15년간 연평균 8150억원 수준’에 이른다. 농협경제연구소 박재홍 수석연구원 등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향후 10년간 국제 곡물 가격은 과거 10년 대비 20%, 축산물 가격은 30%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식량 안보는 비상시에 국민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체계가 확립될 수 있도록 국가적 핵심 과제로 다루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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