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2일 금요일

중국, ‘색정’에 빠져 비틀거리다

중국, ‘색정’에 빠져 비틀거리다

‘도덕 중심의 사회’에서 ‘색욕 부추기는 사회’로
2011.07.20 18:44 등록
현재 중국의 성도덕 추락이면에는 정권유지를 위해 색욕을 부추기는 중공의 통치정책이 숨어 있다. AFP/Getty Images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음란함은 모든 죄악의 근본이다’라는 말을 믿어 왔다. 하지만 ‘금욕’을 미덕으로 삼았던 중국은 어느새 ‘색정’을 부추기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마저 탐관 95%가 정부(情婦)를 두고있다는 점을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전반 사회로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1950년대 집권초기에 중국공산당은 ‘금욕주의’를 표방했다. 당시 금욕주의는 당이 사람의 사생활까지 통제해 감시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오늘날 중공은 반대로 사람들의 성욕을 부추기고 있다. 그 이면에는 마찬가지로 중공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다. 바로 사람들의 관심을 재물과 색으로 돌려 정권의 비리와 악행을 덮어보려는 계산이다.

미국 유학파 구룽의 이야기

중국인 구룽(古隆·가명)씨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귀국했다. 오랜 기간 고국을 떠나 있었던 구룽은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어디나다 고층건물이고 지하철도 새로 건설됐다. 거리에는 예쁘게 몸단장한 여성들이 활보하고 있었고,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나체 광고판이 거리 곳곳에 내걸려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사도 온통 돈과 성(性)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누가 큰 벌이를 했다’ ‘큰돈을 벌 횡재수가 생겼다’ ‘누가 이혼했고 누가 정부가 생겼다’는 식의 말들이 주된 화제였다.

구룽은 처음에는 이런 상황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그는 속으로 ‘어떻게 말하는 얘기들이 저렇게 저속할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주 이런 상황을 접하다 보니 오히려 자신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 갔을 때 아가씨들의 열정적인 접대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자꾸 다니다보니 기분이 좋았다. 늘 잔소리하고 불만만 표시하는 아내보다 자기를 치켜세워주는 클럽의 아가씨가 더 좋았다.

구룽이 가장 놀란 것은 자신의 기억 속 ‘금욕’이 이미 ‘색정’으로 변한 것이었다. TV를 켜면 요염한 여성과 정력제 광고가 일상적으로 나왔다. 거리에는 ‘성문화’가 범람해 곳곳에 성인용품 가게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영화, TV 드라마에는 소위 베드신이 없는 것이 없었다. 휴대폰을 켜고 ‘정열’ 두글자를 넣으면 바로 수십만 개의 음란사이트를 볼 수 있었다. 그가 근무하는 대학 부근에도 ‘르주방’(日租房·러브호텔)이 많이 생겨 대학생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한번은 구룽이 친구들과 어울리다 술에 취했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이 알몸으로 어떤 아가씨 곁에 누워 있었다. 함께 온 친구들은 “우리가 이번에 끝내 박사를 넘어뜨렸다. 그가 앞으로 또 우리를 비아냥거리는 말을 하나 보자”라며 통쾌해 했다.

‘도덕 중심의 사회’에서 ‘색욕 부추기는 사회’로

처음에 구룽은 아주 후회했지만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아는 주변 사람들도 개의치 않았다. 이후 구룽은 점점 대담해졌다.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에는 이혼한 젊은 여직원이 있었는데 이 여성은 유학까지 갔다 온 구룽을 아주 흠모했다. 구룽이 이 여성에게 추파를 보내자 얼마 되지 않아 둘은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그 직원과 하룻밤을 보낸 구룽은 ‘틀에 박힌 도덕적 제약을 벗어나야만 인생을 즐길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 과거 40여 년을 헛되게 살았다고 느꼈다.

“지금부터 돈을 많이 벌어 향락을 누려야지.”

이후 구룽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예전에 아는 척 하지 않았던 간부들에게 아부하고 늘 선물을 주었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구룽도 간부로 승진했다. 외국 박사학위가 있는 구룽은 “서양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롭기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고 두 사람이 원하면 누구도 상관없이 사랑할 수 있다”고 떠들었다.

구룽의 아내는 이러한 남편의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화를 낼수록 남편은 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자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됐다. 20여 년을 함께 산 가족들이 하루아침에 낯선 사람이 된 것이다. 자식들도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구룽은 “보따리를 다 버렸기 때문에 더 멋지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아주 홀가분해 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AFP/Getty Images

금욕은 과거사, 색정이 판치는 중국

구룽의 사례는 중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외국 유학을 갔던 중국학자들이 본국에 몇 달 일하러 왔다가 이혼 수속을 밟기 위해 출국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본국에서 젊고 예쁜 여성을 만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는 특정 집단에만 한정된 사례가 아니다. 중국 전체가 색욕을 부추기고 있다. 인터넷 뉴스에는 남녀 애정 문제를 다루는 ‘여성과 남성’ 전문 코너가 있을 뿐 아니라 중국공산당 당위원회 사이트에도 거의 벗다시피 한 미녀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중국에는 인터넷을 통해 매춘을 하는 사람을 ‘러우펑(樓鳳)’이라고 부르는데, 인터넷에서 러우펑을 검색하면 6500만 개 정도의 관련 문장이 나온다.

충칭(重慶)의 17세 소녀는 남자친구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남자친구가 사이트에 자신을 러우펑으로 올리는 것에 동의했다. 이 소녀가 손님을 맞을 때마다 남자친구와 그의 두 친구가 밖에서 망을 봤다. 소녀는 매일 손님 3명을 받았는데, 벌어온 돈은 모두 그 남자 3명이 썼다.

또 최근에 자칭 대학생이라는 한 여성이 사이트에 사진을 올리고 부자가 자기를 부양해주길 희망했다. 이 여성은 “나는 원원이며 키는 163cm, 체중은 47.5kg, 가슴 38D 사이즈”라고 썼다.

중국당국은 인터넷 검열로 악명 높지만 이 글들은 삭제되지 않았다.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 대량의 음란물이 검색되는 것은 결코 검열경찰이 임무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니다. 바로 중국당국이 의도적으로 장려한 결과인 것이다.

한 중국학자가 몇 년 전에 성산업에 대한 통계를 낸 적이 있다. 성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5.5%를 차지하고 성산업 종사자만 천만 명에 가깝다고 했다. 중국 전역에 퍼져 있는 나이트클럽, 노래방, 미용원, 안마소, 발안마실도 사실은 모두 매춘과 관계된 시설들이다. 여기에는 일자리를 잃은 유부녀들도 종사하고 있다.

중국당국의 호칭에서도 당국의 태도변화를 엿볼 수 있다. 과거 중국에서는 매춘에 관련되면 ‘기생’ ‘매음녀’라고 노골적으로 불렀으나 이제는 ‘성종사자’로 부른다. 또 ‘간통’을 ‘제3자’나 ‘혼외연애’라 부른다.

성적 문란은 어린 학생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몇 년 전에 벌써 중국 고교생들 사이에 ‘머나이먼(摸奶門: 가슴 만지기)’ ‘투어쿠먼(脫褲門: 바지 벗기기)’ 같은 동영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제는 어린 소녀의 낙태 소식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고 있다. 중국에는 매년 낙태가 1300만 건 이뤄지는 데, 이 중 60% 이상이 미혼 여성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AFP/Getty Images

중국판 ‘나체 사진 전송’ 사건

최근 중국 공무원과 당 간부가 인터넷에서 웃음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 장쑤(江蘇)성 리양(溧陽)시 위생국장 셰즈창(謝志強)은 인터넷에서 정부(情婦)와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인터넷이 서툴러 모든 내용이 공개된 것이다. 상대는 아이까지 있는 유부녀였다.

셰즈창은 ‘서로 과분한 요구를 하지 말고 일과 가정에 영향주지 않는 선에서 사귀자’‘물건 값을 대신 지불해주겠다’ ‘고급호텔에 방을 잡아 놨다’는 문자를 업무시간에 정부와 주고받았고, 누리꾼들은 그 대화를 모두 볼 수 있었다. 셰즈창은 결국 면직됐고 정부 당국은 공무원들이 또 다시 창피당하는 일이 없도록 간부들 대상으로 인터넷 교육까지 시켰다.

하지만 곧이어 당 간부가 스캔들을 터트렸다. 광저우의 당 간부 류우닝이 여성들에게 보낸 나체 사진이 미니블로그에 공개된 것이다. 중국 한 언론에서 류우닝을 인터뷰하자 그는 “이미 조직에 모든 사실을 얘기했다”며 대답을 피했다.

많은 중국인들이 중국사회의 성적 문란은 개혁개방 이후 서구에서 유입됐다고 믿고 있다. 주목할 점은 서양은 1980년대 이후 오히려 가정과 성에 있어 전통으로 회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거꾸로 갈수록 전통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소위 ‘성 개방’은 동물학자였던 킨제이(A.C. Kinsey)가 1948년과 1953년 각각 남성과 여성의 성생활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킨제이는 금기되던 성영역에 대한 조사를 벌여, 당시 성에 있어 보수적이던 서구 사회에 충격을 안겨줬다.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남성 85%가 결혼전 성 경험이 있으며 거의 70%가 매춘부와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또 30~45%가 혼외정사를 가졌으며 또 연령에 따라 동성연애 경험도 10~37%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조사 대상자 중에는 소아성애자나 양성애자, 동성애자와 같이 비정상적인 성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조사 결과를 일반화할 수 없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하지만 킨제이 보고서 이후 서구 사회에서 성 개방 흐름은 가속화됐다.

중국에서도 소위 ‘성학 전문가’가 나타났다. 대표적 인물은 중국인민대 판수이밍(潘綏銘) 교수로, 판 교수는 기생집에 몰래 잠입해 연구를 하기도 했다. 판 교수의 2007년 조사에 따르면 25~29세 남녀의 혼전 성 행위는 각각 72.2%와 46.2%로 나타났다. 또 30~34세 남녀 중 여러 명과 성관계를 맺는다는 비율도 각각 45.8%와 17.7%로 조사됐다. 판 교수의 보고서는 서구에서 킨제이 보고서가 일으킨 것과 같이 중국 사회에 성 개방을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서구에서는 성 개방이 극에 달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1980년대 들어 보수적 흐름이 나타났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1990년대 중반 조사에서 ‘혼외정사가 수치스럽다’고 답한 비율이 62%였다. 1992년 미 시카고 대학 조사에서는 미국인 83%가 혼외정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중국식 색정 주도하는 당 고위급

왜 현재 중국대륙에는 ‘색정’이라는 큰 흐름이 나타났을까. 일부에서는 중공이 집권초기 엄격한 금욕주의를 표방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하지만 당시에 금욕은 일반 국민들에게 요구한 것일 뿐 중공 고위층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오쩌둥이 3000여 명의 아름다운 처녀를 농락했다는 일화 외에도 저우언라이도 정부와 사생아가 있었다.

마르크스는 하녀와의 사이에 사생아를 뒀고, 레닌은 매독에 시달렸으며, 스탈린은 유명 여가수들을 소유했다.

지금 중국당국도 탐관 95%가 정부를 뒀다는 점을 승인하고 있다. 소위 중국식 성 개방은 고위층이 본보기가 되어 전민화 추세로 가고 있다. 게다가 고위층 관리들이 정부를 공유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프랑스 혈통을 가진 베트남 난민 출신 리웨이(李薇·48) 사건이다. 리웨이는 윈난성 성장이던 리쟈팅(李嘉廷)의 정부였다가 리가 사퇴를 하자 다시 베이징 간부의 정부가 되어 재기에 성공했다. 리웨이의 정부 중에는 산둥성 당 부서기, 칭다오(靑島) 당서기, 천퉁하이(陳同海) 전 시노펙(중국석유화공그룹) 회장이 있었다. 또 전 베이징시 부시장 류즈화, 전 인민최고법원 부원장 황숭유, 전 국가개발은행 부행장 왕이, 전 재정부장 진런칭, 전 국가안전부장 쉬융웨 등 적어도 성장이나 장관급 고위간부 15명과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리웨이의 ‘성공’을 들여다보면 중국식 색욕의 또 다른 특색이 나타난다. 바로 정부(情夫)의 권력을 이용해 돈을 긁어모으는 것이다. 리웨이는 칭다오 당서기 두스청(杜世成)을 만날 때 칭다오에서 가장 아름다운 태평각(太平角)을 가리키며 그 땅을 달라고 했다. 리웨이는 2003년 이 땅을 팔아 8400만 위안을 벌었다. 천퉁하이 전 시노펙 회장은 리웨이에게 주식을 선물로 줬고, 리웨이는 이 주식을 45일 만에 팔아 2억 위안 넘게 벌었다.

게다가 리웨이는 전국 각지 주유소 지분까지 받았는데 10억 위안이 넘었다고 한다. 천퉁하이는 나중에 1억 9600만 위안 뇌물수수 혐의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집행유예로 사형을 겨우 면했다.

신기원=왕징원(王淨文)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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