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31일 일요일
불러도 대답없는 당신은 사오정? 이어폰 때문 고장난 청각 탓!
MP3플레이어, 스마트폰 등 IT 기기 사용이 늘면서 이어폰이 현대인의 필수품이 됐다. 최근에는 휴대전화 전자파가 뇌종양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가 나오면서 핸즈 프리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귀에 밀착돼 소리를 전달하는 이어폰은 그 특성상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소음성 난청이나 이명, 세균 감염 등 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60-60의 법칙
최대음량 60%내 60분내 들어야
이어폰의 음량은 최대 140dB(데시벨)까지 높아진다. 대부분은 100∼120dB 범위 내에서 이어폰을 이용한다.
그러나 120dB을 넘는 음량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다. 이 정도 음량이라면 제트 엔진이나 전동 드릴 소음에 노출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처럼 높은 음량으로 음악을 계속 들으면 청각신경에 강한 자극이 지속적으로 가해져 일시적으로 청력이 떨어지는 신경세포 피로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청각신경에 가해지는 자극이 매우 크거나 강한 자극이 반복되면 청각세포가 영구적으로 손상된다. 바로 소음성 난청이다. 이론적으로 90dB 이상의 소음에 매일 8시간 이상, 105dB 이상의 소음에 매일 1시간 이상씩 지속 노출되면 소음성 난청이 생기기 쉽다.
난청은 일단 걸리면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어렵다. 예방이 최선이다. 세계보건기구 유럽위원회는 난청을 예방하려면 최대 음량의 60% 이내에서 하루 60분 정도만 듣는 ‘60-60’ 법칙을 지키라고 권고한다. 이 경우 음향은 대체로 70dB 안팎이 된다. 일상적인 대화(60dB)보다는 약간 크고 버스나 지하철의 교통소음(80dB)보다는 약간 작은 수준이다.
이어폰을 사용한 후에는 오랫동안 조용한 곳에서 쉬는 게 좋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5분 이상 기기를 빼고 쉬도록 하자.
박테리아 감염도 주의해야 한다. 이어폰을 오래 사용하면 귓속에서 박테리아가 증식해 귓병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2009년 인도 카스투르바대 의대 연구팀은 젊은 남성 50명을 절반으로 나눠 한 그룹은 주기적으로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게 했다. 또 한 그룹은 가끔씩만 음악을 듣게 했다. 그 후 두 그룹의 귓속에서 박테리아 샘플을 채취했다. 그 결과 이어폰을 주기적으로 사용한 그룹의 귓속에서 최대 수천 배의 박테리아가 검출됐다. 이어폰을 오래 사용하면 귀 안의 온도와 습도가 올라간다. 김희남 하나이비인후과병원 원장은 “이어폰을 오래 사용하면 귀 안이 ‘열대 우림’처럼 박테리아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 된다”며 “모든 박테리아가 인체에 해롭지는 않지만 황색포도상구균 같은 박테리아는 쉽게 감염을 일으켜 귀 통증, 외이도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균도 이어폰 좋아한다
끼고 살면 온도-습도 올라 증식
박테리아 감염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사용시간을 줄여야 한다. 또 귀에 꽂는 부분을 정기적으로 소독하고 다른 사람과 돌려쓰지 않는 등 위생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어폰은 가정용 자외선 소독기로 소독할 수 있다. 칫솔이나 칼, 도마 등을 소독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외선 소독기를 이용하면 된다.
바깥귀를 통해 들어온 소리는 고막을 진동시킨다. 이 진동의 대부분은 달팽이관에 전달되고, 청신경을 통해 대뇌의 청각 중추로 이동한다. 달팽이관에 전달되지 못한 에너지는 반사돼 귓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간다.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들을 때는 이런 시스템이 조금 달라진다. 반사된 진동 에너지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돼 더 큰 소리로 달팽이관에 전달되는 것이다. 오래 이어폰을 쓰면 청신경세포가 손상되고 소리를 듣는 데 장애가 생기거나 소음성 난청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막힌 이어폰? 귀막는 이어폰!
귓구멍 막는 형태 귀손상 위험 커
평소 △대화를 놓쳐 다시 한 번 말해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잦거나 △전화를 받을 때 소리가 또렷이 들리지 않거나 △TV나 이어폰 소리가 작게 느껴지고, 볼륨을 키우면 웅웅거리거나 △여성의 말을 더 못 듣거나 △새소리나 벌레소리, 시계의 초침 소리 등이 잘 들리지 않으면 소음성 난청을 의심해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헤드폰과 이어폰은 형태에 따라 △밀폐형 헤드폰 △오픈형 헤드폰 △일반 이어폰 △커널형 이어폰 등으로 나뉜다.
밀폐형 헤드폰은 하우징(헤드폰에서 귀를 덮는 바깥 부분)이 막혀 있어 주변 잡음이 잘 차단되고 소리가 새 나가지 않는다. 오픈형 헤드폰은 하우징에 구멍이 많아 소리가 외부로 잘 빠져나간다. 일반 이어폰은 귓바퀴에 끼우는 것이고, 커널형 이어폰은 귓구멍에 넣도록 디자인돼 있다.
오픈형 헤드폰과 일반 이어폰은 소리가 외부로 잘 빠져나가므로 주변 잡음이 들리기는 하지만 귀가 손상될 위험은 적다. 반면 커널형 이어폰은 같은 음량으로 들어도 소리 증폭 현상으로 귀가 다칠 위험이 크다. 귀 건강을 생각한다면 오픈형 제품을 사용하는 게 좋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20&aid=0002265063
2011년 7월 29일 금요일
시험대 오른 노르웨이의 국가안보
공군은 헬리콥터 준비 안되고, 경찰은 보트 타고 현장 도착
브레이빅, 폭발물 테러로 시선 끌고 노동당 청년 캠프 노려
지난 7월 25일 15만 명이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시청 앞 광장에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JONATHAN NACKSTRAND/AFP/Getty Images
지난 24일(현지시간) 옌스 스톨텐베르크 노르웨이 총리는 극우 테러로 숨진 희생자를 기리며 오슬로 대성당에서 추도연설을 가졌다. 스톨텐베르크 총리는 이번 테러를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참사”라 부르며 테러 용의자 베링 브레이빅의 테러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일컬었다.
노르웨이 국민은 물론 세계가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일은 사건이 발생한 후에 보여준 노르웨이 정부의 대응이었다. 한마디로, 총리실에서 법무부, 경찰에 이르기까지 정부 모든 부문이 테러 공격에 무방비 상태였다.
지난 22일 오후 3시20분, 오슬로 중심에 위치한 정부청사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한 후 경찰은 테러 현장을 막고, 수십 명의 부상자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노르웨이 일간 ‘VG’ 신문의 한스 헨리크 토르게르센(Hans Henrik Torgerse) 기자는 전화 통화에서 이 모든 과정이 “1시간 걸렸다”고 꼬집었다.
경찰은 오슬로 중심부에 대한 통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토르게르센 기자에 따르면 테러 발생 직후 오슬로 지하철에 대한 통제는 없었다고 한다. 국가안보와 테러리즘 부문 전문기자인 토르게르센은 오슬로에서 외곽으로 통하는 도로에 대한 통제도 없었다고 했다.
지하철과 도로 통제에 실패하면서 브레이빅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오슬로를 떠날수 있었다. 그리고 약 30분 후 오슬로 북서쪽에 위치한 연안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터미널에서 브레이빅은 우토야 섬으로 향하는 페리에 올라탔다.
강 건너 보이는 섬이 극우주의자의 테러가 발생한 우토야 섬이다. 휴양지로 유명한 이 섬에서는 1950년대부터 매년 노동당 청년 캠프가 열렸다. Jeff J Mitchell/Getty Images
지옥으로 변한 휴양지 섬
우토야 섬에서 매년 열리는 노동당 청년캠프는 노르웨이 언론들의 표현을 빌면 ‘노동당 운동의 접착제’ 역할을 해 왔다. 노르웨이 노동당은 1950년대부터 매년 이 섬에서청년 캠프를 열어 미래 지지자들을 키워왔다.
페리에 올라 탄 브레이빅은 노르웨이 경찰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 페리에는 수년 간 노동당 청년 캠프 조직위원장으로 일한 모니카 보세이(45)가 타고 있었다. 당시 같은 배를 타고 상황을 목격한 하콘 샌드바켄(19)에 따르면 보세이 위원장은 무장을 한 브레이빅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고 한다. 오슬로경찰은 소총은 말할 것도 없고 보통 무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보세이 위원장이 무장한 경찰을 이상하게 여겼던 것이다. 샌드바켄에 따르면 당시 브레이빅은 등이 뻑뻑하게 굳은 것처럼 긴장한 모습이었다.
페리가 섬에 도착하자 브레이빅을 수상하게 여긴 보세이는 노동당 청년조직 건물로 곧장 달려갔다. 거기서 보세이는 전직 경찰이며 캠프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크론드 베른센과 얘기를 했다. 하지만 그때 브레이빅이 나타났고, 보세이와 베른센을 쏘았다. 우토야 섬 학살의 첫 희생자가 된 것이었다.
브레이빅은 범행 전 작성한 문건에서 정부청사 폭발은 ‘속임수’에 불과했다며, 진짜 목표는 우토야 섬 노동당 청년 캠프였다고 썼다. 그에게 이 청소년들은 노동당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다음 세대로 여겨졌기에 그는 바로 이 유전자 자체를 없애고자 했다.
브레이빅의 문건을 전부 훑어 본 토르게르센 기자는 경찰 복장은 훔친 것이 아니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문건에서 브레이빅은 초등학교 때 있었던 바느질 수업 시간에 대해 불평을 늘어놨는데 나중에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썼다”고 말했다.
9년에 걸친 범행 준비
노르웨이인들은 테러용의자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경찰의 늦장 대응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우토야 섬 학살 현장에 출동한 것은 노르웨이 특수기동대(SWAT)였다. 노르웨이 외교연구소(NIFA) 헬게 루라스 박사에 따르면 노르웨이 공군 헬리콥터가 마침 그날 준비가 돼 있지 않아 “결국 경찰 특수기동대가 40km나 차를 몰아 보트를 타고 섬에 도착했다”고 설명했다.
공군 헬리콥터조차 이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해 출발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 기동대가 도착하자 브레이빅은 바로 체포됐다. 토르게르센 기자는 “브레이빅은 이미 150명에게 총을 쏘았고, 70명 이상을 죽인 상태였다. 부상자를 찾아내서는 마치 사형집행을 하듯 확인 사살을 했다. 브레이빅이 이미 총알이 떨어진 상태였다는 기존 보도와 달리 체포 당시에도 여전히 많은 총알을 갖고 있었는데, 450발 정도가 더 있었다”고 말했다.
오슬로 일간 다그블라데트에서 오피니언 섹션 부편집장을 맡고 있는 미칼 헴은 이 사건에 대해 “브레이빅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헴 부편집장은 “그는 살아서 자신이 한 일의 결과를 보고 싶어 하는데, 자신을 지하디스트를 막는 자로 여긴다”고 말했다.
헴 부편집장의 말을 요약하면 브레이빅은 고교시절까지 평범하게 자라다가 21살 정도에 변화를 겪게 되는데, 바로 미국 9.11테러가 계기였다. 이후 브레이빅은 지난 9년간 노르웨이 정부, 즉 외국인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위 성전(지하드)에 대해 유연한 정책을 펴는 노동당에 대한 공격을 계획해 왔다는 것이다.
테러리즘에 대한 전문가인 루라스 박사는 “브레이빅은 매우 영리하고 단호했다”면서 “안보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미리 파악했다”고 말했다.
브레이빅이 작성한 1500쪽에 달하는 문건에는 이슬람과 다문화주의를 반대하는 자신의 의견을 적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테러를 계획하면서 모든 항목에 대해 치밀함을 보였다. 범행 전인 19일에 쓴 기록에는 “장비를 싸기 시작했다. 자동차마다 경유와 휘발유를 채워 넣었다. (폭발물) 퓨즈를 시험했다. 75cm 길이라 75초간 탈 것이다”라고 세세한 사항까지 썼다. 또 브레이빅은 지난 5월 2일 질소 비료로 폭탄을 제조하기 위해 비료 6t을 구매했다.
그는 지난 4월에 임대한 한 작은 농장에서 지난 6월 경유와 비료를 섞어서 사전 시험까지 했다. 또 사건 5일 전에 미리 차를 렌트하고, 테러가 있던 날 마지막으로 글을 쓰고 오슬로로 향했다. 브레이빅은 이날 정치인들을 비롯해 공무원들이 여름휴가 때문에 보안이 느슨할 것이라고 미리 계산했던 것이다.
한편, 루라스 박사에 따르면 올초 오슬로 주재 미국대사관이 노르웨이의 테러 대비 상황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오슬로 주재 미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지만 대사관은 이 주장에 대해 확인을 해주지 않았다.
노르웨이 정부는 이번 비극을 계기로 지금까지 감시 체계를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원유수출로 번 5800억 달러를 해외 펀드에 투자할 일이 아니라 자국민 보호를 위해 써야 한다.
글/ 제임스 오타르 그룬빅(James Ottar Grundvig)
※그룬빅은 노르웨이 출신 1세대 미국 이민자로 현재 뉴욕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기원시보
2011년 7월 27일 수요일
조승희 음모론
<P><SPAN style="FONT-SIZE: 11pt">총으로 자살할 때는 3가지유형이 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1.귀 위에 총을 쏠 경우 2.입안에 넣을 경우 3.턱밑에 쏠 경우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자살할 경우 총을 얼굴이나 머리에 쏘는데.. 조승희는 머리 뒤통수에 총알이 박혀 있다고 하네요. 경찰의 사격도 없었습니다. 누가 나머지 2발을 쐈을까요. 과연, 자살하는 사람이 머리에 1발, 가슴에 2발을 쏠 수 있을까요? 그 강의실에서 죽은 사람들 대부분 3발씩 맞았다고 합니다 근데 조승희도 죽은 사람들 처럼 똑같이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 맞았다고 합니다. 예전에 방송에서 다른 군대 의문사 사건으로 과학적으로 검증 한적 있는데 자살할때 보통 가슴이나 머리 같은데 쏘면 다른 부위에 추가적으로 총 쏘는 것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살하는 사람이 머리에 1방 가슴에 2방 맞았습니다. 이상하죠? 왜 강의실에서 다른 죽은 사람들처럼 조승희도 왜 3발씩 똑같이 맞았을까요? 머리에 한방, 가슴에 2방 쏘는 것은 훈련된 프로페셔녈 Killer의 솜씨입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5. 자살을 목격한 이가 없습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자살을 목격한 이도 없고 조승희는 살인범이 죽은 강의실에서 죽었는데 그 강의실에서 죽은 듯이 있다가 살아남 사람의 증언은 살인범이 강의실 바깥으로 도망갔다고 합니다. (피해자중한명이 범인의 눈이 동양계가 아니라고 하던데.. 그런 증언은 왜 싹 무시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진실은 무엇일까요?</SPAN></P>
<P><SPAN style="FONT-SIZE: 11pt"></SPAN> </P>
<P><SPAN style="FONT-SIZE: 11pt">6. 조승희의 얼굴을 목격한 이가 없습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7. 목격자 증언은 단지 '모자와 안경과 마스크를 쓴 180센티의 동양인일 뿐입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얼굴을 알아볼수 없게 가렸다고 했다. 키가 180이 넘고 무척 건장하고 크다고 했다=> 하지만 조승희의 키는 작은 것으로 확인). 캘리포니아신문에서는 생존자의 증언에서 총을 들고 복면을 쓰고 2개의권총과 탄환을 어깨에 걸쳐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걸 하루만에 엎어버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8. 총포상 주인은 단지 '동양인'으로 설명할 뿐 총포상에 CCTV조차 없으며 그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9. 총기 판매상은 조승희가 50발의 총알을 구매했다고 했다. 그러나 62명의 사상자가 났다. 사상자 부검의사는 모든 사망자들이 3발이하의 총알을 맞은 사람은 없다고 증언했다. 모든 사상자는 3발이상의 총알을 맞았다. 목숨을 건진 한국인 학생도 팔과 가슴 등에 총을 맞았다. (사망자 32명 X 3발===66발.......부상자30명 X 2발==60발, extra 60발) 최소 200발 이상을 갖고 있어야 한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9. 총기번호를 지우고 피해자를 일렬로 세워 사살한 전문가의 가방에 총기 구매 영수증 발견되었습니다. 그것도 1개월여 지난 영수증이 당일 가방에 들어있을 가능성은?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 범인은 총기 일련번호까지 지우는 치밀함을 보였는데, 1개월이 지난 영수증을 가방에 가지고 다닌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사람이 엄청 지우기 힘든 총기 일련번호는 지웠는데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는 영수증을 가방에 가지고 다녔다니 이게 무슨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입니까? 총기 일련번호 보통 총에 새겨져 있는데 그거 지우기 무지 힘듭니다. 범행 전에 총에 일련번호 지우고 범행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근데 몇 초면 처리 할 수 있는 영수증이 그것도 뻔히 보이는 가방에 있었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입니까 지금 장난합니까?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10. 목격자의 진술에 의하면 총 쏜 가해자가 가방을 메거나 가지고 있었다는 진술은 없습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근데 조승희는 가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승희가 과연 가해자일까요?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11. 조승희가 보낸 동영상은 혼자서 찍은 것이 아닌 한명 이상의 도움으로 찍은 흔적이 있습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바로 이 동영상을 보고 뉴욕 타임즈에서도 공범의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12. 미국 경찰에 의하면 권총이 반자동 권총이라 연발사격을 했다고 하는데 영상에 나오는 총소리는 전부 단발식 권총의 소리입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한번 생각해봅시다. 한발씩 권총으로 총 쏘면 당연히 권총 2정의 탄알은 순식간에 바닥이 납니다. 권총에 보통 10발~15발 들어갑니다. 그런데 강의실에서 죽은 사람들보면 32명 정도 죽었는데 한명에 3발씩 맞았습니다. 분명히 탄창을 갈아야 하는데 양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다고 해도 총알 떨어지면 당연히 총알 갈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손으로 탄창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 합니다. 한손으로 사람들 견제하면서 한손으로 탄창을 갈아 끼우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그게 현실적으로 말이나 됩니까?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13. 친구가 전혀 없었다는 조씨에게 사건발생 수 일전, 3명의 미국인 남성과 함께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한국인 유학생 정모씨의 증언)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14. 만약 조승희가 범인이라면 그래서 사회불만 부자에 대한 불만으로 범행을 계획했다면 처음부터 강의실로 갔어야 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그러나 조승희는 왜 자신이 묵던 기숙사에서 기숙사 하나를 건너서 그 기숙사로 찾아갔을까? 그때 죽은 2명은 스토킹 대상도 아니었고 여자 친구도 아니었다. 그리고 왜 1차 범행 후 동영상을 찍고 우편물을 보내기 위해 교내를 활보하여 다닌 후에 2차 범행 장소로 찾아간 것일까?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15.경찰이 시신을 수습할 당시 조승희의 배낭엔 신분증이 있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그러나 왜 발표를 미루다가 발표한 것인가? 처음엔 범행 동기도 치정으로 추정 발표했다가 맞지 않자 다시 사회불만 정신도착으로 변경되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14. 증언들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같은 동에서 총소리를 못 들었다고 증언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다른 동에서 총소리를 뚜렷하게 들었다고 하는 증언자도 있습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15. NBC에 보낸 조씨의 사진과 조씨의 평소사진은 눈썹과 눈, 얼굴형태로 봤을 때 분명 다른 사람입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안경을 벗어서 그렇게 보인다는 주장이 있지만 분명 눈썹이나 형태가 다릅니다. NBC동영상은 조승희 부모님과 조승희 누나 그리고 조승희 친인척들 그리고 조승희를 평소에 얼굴을 잘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증언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16. 조씨가 버지니아 우체국에서 소포물을 접수한 시각은 오전 9시 1분. 사건발생 10분. 버지니아 우체국에서 학교까지 자동차로 10여분이 걸립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17. 조씨는 28명의 희생자가 나온 그 강의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 강의실의 유일한 생존자(엎드려있었다는)의 증언에는 조씨가 28명을 죽이고 어디론가 달아났다고 했는데, 조씨는 그 강의실에서 다른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18.학교 강의실,학교 기숙사,학교 복도 ,학교 건물 출입구,총포상 가계 등에 CCTV가 찍힌 것이 왜 단 하나도 없을까요?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CCTV가 공개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번사건의 아주 커다랗고 중요한 의문점 입니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이번사건의 핵심은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CCTV의혹 ★권총 2정 / 아마추어 / 수십명의 학생들이 죽고 수십명의 학생들이 부상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범인은 강의실을 나갔다는 증언 ★조승희는 강의실에서 죽었다는 사실 ★총기에 일련번호가 지워졌다 </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영수증은 가방에 있었다 </SPAN><BR></P>
노르웨이 테러범, 게임으로 대량학살 연습?
76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르웨이 연쇄 테러의 용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가 이처럼 자신의 범행과 ‘판박이’인 민간인 대량학살 장면이 등장하는 게임을 즐겼던 것으로 나타나 그의 범행과 게임의 연관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브레이비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가장 즐기는 게임으로 꼽은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에 등장하는 ‘노 러시안(No Russian)’ 미션이 문제의 장면이다.
여기서 게이머는 테러조직의 일원이 되어 러시아의 한 공항에 태연히 들어가 민간인 수백 명에게 총기를 무차별 난사, 학살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게임 속 모든 장면이 총을 든 게이머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1인칭슈팅(FPS)게임이어서 실제로 총격을 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극히 몰입하게 되는 연출이 특징이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민간인을 마구 조준 사격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희생자를 잔인하게 확인 사살하는 게임 속 장면은 브레이비크의 실제 범행 현장과 매우 흡사하다는 평이다.
게다가 게이머가 러시아의 극우 민족주의 테러조직 소속이라는 설정도 브레이비크가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극우 테러리스트라는 점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이 장면은 사실 테러단체에 위장 잠입한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인 게이머의 시각을 통해 테러조직의 잔혹성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민간인 학살에 게이머가 동참한다는 충격적인 묘사 때문에 지난 2009년 게임 출시 이후 세계적으로 상당한 논란을 낳은 바 있다.
물론 이 게임을 브레이비크의 범행 배경으로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지만, 가뜩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문화적 망상’에 빠진 브레이비크의 범행 방식 등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전적으로 배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브레이비크의 심리 상태와 관련해 스웨덴 국방대 비대칭위협연구소의 마그누스 란스토르프 연구소장은 그가 인터넷에 올린 범행 선언문의 내용을 살펴봤을 때 “그가 가상세계에 빠져 현실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예의바르고 평범한 청년이었다 (프리메이슨)
노르웨이 테러 사건의 용의자는 조용한 시골에서 범행을 준비했데, 이웃들은 용의자를 평범하고 예의바른 청년으로 기억했습니다.
경찰은 용의자의 주택 근처에서 폭탄을 만드는 데 쓰인 것으로 보이는 다량의 화학 비료를 찾아냈습니다.
황순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진 외딴 농장에 있는 주택입니다.
테러 용의자 브레이빅이 범행 직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경찰의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인터뷰:현지 경찰 관계자]
"이번 사건과 연계될 수 있는 모든 증거를 찾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브레이빅을 평범하고 예의 바른 청년으로 기억했습니다.
[인터뷰:테러범 이웃 주민]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어요. 노르웨이 사람들이 다 그렇듯, 예의도 바르고요."
하지만 끔찍한 테러 사건의 용의자가 이웃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마을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예의바른 청년으로 자신을 철저히 꾸몄던 브레이빅은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치밀하고 은밀하게 범행을 준비했습니다.
주택 근처에서 비료 3톤이 발견됐는데, 경찰은 폭탄 제조에 쓰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달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도 바로 범행 준비를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인터뷰:경찰 관계자]
"농장에서 5천kg에 달하는 분말을 발견했는데, 폭탄 제조에 쓰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찰은 브레이빅이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비료 6톤을 구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자사의 제품이 테러에 연루됐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비료 제조 회사는, 비료 3톤은 농장에서 흔히 구입할 수 있는 양이라고 밝혔습니다.
YTN 황순욱입니다.
http://tvnews.media.daum.net/foreign/view.html?cateid=1007&newsid=20110724175108440&p=YTN
사망자 100명 육박…"늑장출동 참사 키워"
음모론: http://aangirfan.blogspot.com/2011/07/norway-attacks-suspect-anders-breivik.html
브레이빅은 Saint Johannes lodge in Oslo 소속이고, 템플기사단원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숨기고 기독교인인 것만 강조하는 게 말세 핍박을 위한 물밑작업 같습니다.
경찰도 1시간 반이나 늑장출동 해 사실상 학살을 방조했습니다.
테러계획이 담긴 장문의 성명서를 인터넷에 올리고 중무장을 해도 제재를 안받았네요.
범인이 순순히 투항한 이유는 노르웨이 법정 최고형이 21년에 호텔 같은 감옥살이가 보장되기 때문이죠.
오바마 왈 "이번 테러는 국제사회가 이같은 테러가 일어나는 일을 막기 위해 해야 할 몫이 있고 우리가 공조해야 한다"
무명의 선지자의 일기장 (Journal of the Unknown Prophet)
이 책은 존 폴 잭슨, 릭 조이너, 로드니 하워드 부라운, 존 비비어, 프란시스 프랜지팬 과 같은 목사님들이 주님과의 친밀감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필수 도서로 적극 추천하시는 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