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4일 목요일

느닷없는 전기료 폭탄… 잔인한 '서민들의 봄'

서민 한달 생활비의 절반이 전기료로…
한파에 전기난로 사용 급증, 평소보다 5배이상 나오기도…
누진제 적용… 단전 잇따라… 한파로 장사 망쳤는데 전기료 체납으로 단전
전기 끊는 한전 직원도 "미안하다" 고개 숙여… 내달부턴 가정집도 단전
경기도 의정부 의정부동 주택가 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A식당. 지난 23일 오후 2시쯤 10㎡(약 3평) 남짓한 식당에 손님은 1명도 없고, 냉장고만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한국전력에서 나온 단전(斷電) 담당 직원이 전기계량기를 열어 전력공급선을 뽑아냈다. 냉장고 소음도 멈췄다.

"냉장고에 든 나물하고 두부는 다 쉬어 버려야겠네요. 올겨울 너무 추워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식당 장사도 완전히 공쳤어요. 하루 2만~3만원 벌어서는 전기 요금도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연방 한숨을 쉬던 식당 주인 한모(71)씨는 전기를 끊는 순간 고개를 돌려버렸다. 전기를 끊었던 한전 직원도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럴 때는 못할 짓이라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한씨의 식당은 4개월 동안 전기요금 22만9000원이 체납됐다. 식당에서 300m가량 떨어진 다세대주택에 사는 한씨의 집 전기요금도 넉 달 동안 5만9000원이 체납됐다. 다음 달까지 요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집도 전기가 끊긴다.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 한파는 지났지만, 저소득층은 다시 '전기요금 폭탄'에 떨고 있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달 주택용 전기사용량은 58억kWh로 매년 1월 전기 사용량으로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달 중순부터 '1월 전기요금 고지서'가 각 가정으로 발부되기 시작했다.


24일 경기도 의정부시 주택가에서 한국전력 직원들이 체납 가구의 전기계량기에 연결된 전기공급선을 해체시키며 단전 작업을 하고 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저소득 가정일수록 가스 난방 대신 전기장판과 전기난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전기요금 부담이 급증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평범한 3~4인 서민 가구의 한 달 전기 요금이 20만~30만원에 육박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게다가 겨울 한파로 장사를 망쳤던 식당·자영업자들까지 전기·가스요금에 허덕이고 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방 2개짜리 반지하 주택에 사는 신모(65)씨는 지난 20일 날아온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1월 전기요금이 23만원이나 청구돼 있었던 것. 신씨 가족의 한 달 생활비(40만원가량)의 절반이 넘는 엄청난 요금이었다. 지난 12월 TV홈쇼핑에서 구입한 전기난로가 문제였다. '하루 8시간 틀어도 한 달 전기요금 1만원'이라는광고만 믿고 7만원을 주고 구입한 것이었다. 신씨는 "가스비 아껴볼 요량으로 보일러를 거의 꺼놓고 전기난로만 3~4시간씩 틀고 살았다"며 "그래도 추워서 온 가족이 벌벌 떨면서 버텼는데 이게 뒤통수를 쳤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구할 때까지 전기요금을 연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저소득·서민층이 전기요금 폭탄의 직접적 피해자가 된 데에는 전기요금은 많이 쓰면 쓸수록 요금이 급증하는 '누진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일반 가정의 전기사용량은 평균 300kWh 정도로 요금 4만원 정도다. 그러나 전기 사용량이 두 배(600kWh)로 늘어나면 요금은 19만8000원으로5배 정도 늘어난다. 전기난로는 전등 200~300개를 한꺼번에 켜 놓은 것과 비슷해 전기요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전기난로가 서민들의 전기요금 급증 주범이다.

다음달부터 문제는 더 커진다. 가정집은 3개월 이상 전기료를 연체해도 겨울철(12~2월)에는 단전하지 않고, 식당·공장 등만 단전대상이다 .

하지만 3월부터는 전기요금 연체 가정집에 대해서도 일제히 단전이 시작된다.

한전은 지난겨울 저소득층의 전기요금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대책을 찾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저소득층이라고 해서 마냥 무료로 전기를 공급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단전 조치를 하더라도 최소한의 생활용 전기는 공급하고 있으며 다른 대책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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