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6일 일요일

비소·청산가리 든 담배 폐해 … 사회에 경종 울리고 싶었다

[중앙일보 홍혜진]

방효정(62)씨가 “얼굴이 공개되는 걸 원치 않는다”며 사진촬영을 거절해 뒷모습만 찍었다. [홍혜진 기자]

폐암 환자들이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 며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른바 '담배 소송') 항소심 선고가 오는 15일 서울고법에서 내려진다. 2007년 1월 1심 선고가 있은 지 4년 만이다. 199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담배 소송이 제기됐을 때 원고로 참여한 폐암 환자는 6명이었다. 하지만 1·2심 재판 도중 5명이 폐암으로 숨지고 방효정(62)씨만 남았다. 지난달 30일 '마지막 원고' 방씨가 요양 중인 강원도 원주로 찾아가 그간의 이야기와 선고를 앞둔 심경을 들어봤다. 방씨는 건강이 상당히 회복됐다고 한다.

 방씨가 폐암 중기 진단을 받은 건 199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담배를 입에 문 지 약 30년 만이었다. 자꾸만 마른기침이 나고 몸이 무거웠다. 병원에 갔다. CT 사진 속 폐 한중간에 둥근 암덩어리가 달처럼 허옇게 떠 있었다. “왼쪽 폐 3분의 1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고 병원을 나서는데… 하, 또 담배 생각이 나데요.”

 수술 후에도 암과의 전쟁은 계속됐다. 여섯 걸음을 채 떼지 못하고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곤 했다. 폐활량이 떨어져서였다. 방사선 치료만 26차례 받았다. 방씨는 지쳐갔다. 98년 6월 “금연운동협의회에서 당시 한국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제기할 소송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라디오 광고가 귀에 들어왔다. 전화기를 들었다. 긴 소송의 시작이었다.

 방씨가 담배에 빠진 것은 70년 군에 입대하면서다. 군에선 '화랑' 담배를 이틀에 한 갑꼴로 꼬박꼬박 지급했다. 필터도 없이 담뱃잎을 종이에 둘둘 말아만 놓은 독한 담배였지만 제대할 때쯤엔 '골초'가 되어 있었다. 담배 세금이 지방세에 포함되면서부터는 시·군이 나서 '우리 고장 담배 사 피우기 운동'도 벌였다. 고향 다녀오는 길에 너도나도 담배를 '사재기' 하는 현상도 발생했다. 방씨가 “국가와 담배 회사가 정책적으로 흡연을 부추겼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흡연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 문구가 담뱃갑에 등장한 건 89년부터였다. 그러나 방씨는 “경고 문구를 붙인 그해에 담배인삼공사는 '흡연과 건강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고 오히려 이로운 점도 있다'는 내용의 책자를 배포했다”고 주장했다.

 방씨는 소송 과정에서 담배가 얼마나 해로운지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담배 맛을 더 좋게 하려고 발암물질인 벤조피렌·비소, 독성물질인 페놀·청산가리 등을 넣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7년 1심은 “방씨 등의 폐암이 흡연으로 인한 결과라는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방씨는 “이 소송을 통해 담배에 얼마나 많은 유해 첨가물이 있는지 공개되고 사회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저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정부나 KT&G가 나 같이 뭣 모르고 담배를 피웠다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치료 지원을 해줬으면 하는 게 소원입니다.”

원주=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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