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4일 목요일

카발리스트 플라톤 - 데이비드 리빙스톤

카발리스트 플라톤 - 데이비드 리빙스톤
Plato The Kabbalist  by David Livingstone      (원문출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들 말하는 플라톤의 글에서 특별히 감동받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 반대로 걱정스러운 것은 오히려 많은데, 플라톤은 20세기를 전염시킨 많은 전체주의 독트린의 설립자이기 떄문이다. 그가 서양과 동양의 오컬트 전통에서 지금의 명성을 얻은 유일한 이유는 도리어, 플라톤이 (오컬트 전통의) 교리들의 대부로 여겨져 왔으며 카발라와 연관된 그런 고대 전통의 위대한 대표자로 여겨져 왔기 떄문이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의 걸출한 카발리스트 중에 레오네 에브레오(Leone Ebreo)가 있는데, 그는 플라톤을 모세의 계시에 의존한 사람으로 여겼으며, 심지어 고대 카발리스트들의 제자로까지 여겼다. 랍비 예후다 메세르 레온(Yehudah Messer Leon)은 카발라와 플라톤주의와의 유사성을 비판한 반면에, 그의 아들은 플라톤을 신적 마스터(divine master)로 묘사했다. 이삭 아브라바넬(Isaac Abravanel)이나 랍비 요하난 알레만노(Yohanan Alemanno) 같은 또 다른 카발리스트들은 플라톤이 이집트에서 예레미야(Jeremiah)의 제자였었다고 믿는다.

그리스 철학과 카발라의 가르침의 유사성에 대해서 랍비 아브라함 야겔(Abraham Yagel)은 논평했다:

이것은, 데모크리투스의 철학과 신념과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에 관한 글들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자명하다. 플라톤의 관점은 이스라엘 현자들의 관점과 거의 같았으며, 일부 이슈에 대해서 그는 카발리스트들이 그들의 입으로 그들의 언어로 아무 티도 없이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우리는 이런 관점을 지지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 것이며, 우리 조상들로부터 그리스 사람들에게 상속된 것이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현자들은 플라톤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위대한 집단들의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이 사실은, '아카데미'의 현자를 섬기고 - 모든 나라에서 발견되는 - 그들의 학문에 입문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주장들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소설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를 실증하는 매우 많은 증거들이 존재한다. 그리스 철학은 - 초기 유대 카발라 사상의 영향을 받은 - 바벨로니안 마기[사제/마법사들](Babylonian Magi)의 사상을 그저 전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고대 바벨론

페르시아나 바벨론이 (그리스 사상에) 끼친 영향이라는 주제는 20세기 전반부에 쟁점이 되어왔었다. 이 주제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월터 버커트(Walter Burkert)과 M.L. 웨스트(West) 같은 몇명의 지도적 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플라톤이) 그리스의 유일무이한 "천재"라고 주장하는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 때문에, 이 사상은 아직 주류 서클에 들지 못했다.

이에 관한 가장 세부적인 조사가 지난 세기의 가장 훌륭한 학자인 프란츠 퀴몽(Franz Cumont)에 의해 지휘되었다. 그의 작품, '헬레나이즈드[헬라화된] 마기'(Les Mages HelleniseesHellenized Magi)는 이 주제에 관한 고대 자료들의 개요서인데, 영어번역이 되지 않은 관계로 영어권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의 예봉을 읽지 못했고, 이는 그의 이론에 대한 평판을 망쳐왔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페르시아가 그리스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묵살했는데, 이는 조로아스터 사상과 그리스 사상과의 유사성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퀴몽이 지적했듯이, 이들 학자들이 보지 못한 것은 그리스인들이 접촉한 마기(Magi 마법사제)들이 정통이 아닌 이단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교리를 재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고대 자료들에 나오는 그들에 대한 언급들의 수많은 조각들을 수집하는 것이다.

이 조각들은 재현함으로써 우리는, 마기 교리가 정통 조로아스터 교리로부터 제거되었고 심지어 적대적임을 발견했다.

퀴몽은 이들 마기들이 엄한 이원론과 - 주르반교(Zurvanism)이라는 조로아스터교 이단을 구성한 - 바벨로니아 점성술과 마법의 요소들의 조합을 수행했음을 알았다. 바로 이 사상들의 이상한 재구성 속에서 그리스 철학을 특성짓는 첫번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퀴몽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또 다른 요소는 유대교의 영향이었다. 점성술과 마법의 마기 컬트(이교)는 (기원전) 6세기 바벨론에서 나타났는데, 이 시기는 위대하고 걸출한 유대인들이 그곳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누가 이런 사상을 도입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성경은 다니엘이 "현자" 중의 한 명이었음을 확인한다. 어쨌거나 이런 사상들은, 에세네파 속에서, 특히 - 학자들이 카발라의 시초라고 확인하는 - 메르카바(Merkabah) 신비주의를 위시로 해서 널리 알려진 마기 형태에에서 나타난다.

기원전 3세기 이전의 유대문헌의 특성을 검토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그 전의 이런 사상의 공들인 작품을 찾으려면 그리스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스 마기

그리스 철학은 소아시아의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이오니아 도시들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그곳은 당시 페르시아의 점령 하에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줄곧 "그리스" 철학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런 사상이 침투한 명확한 예는 '디오니소스의 신비'(Mysteries of Dionysus)에서 나타나는데, 기원전 5세기 철학자 헤라클리투스에 의하면 이것은 "마기를 흉내낸 것이었다".


                                             [디오니소스의 신비 - 프레스코벽화]

디오니소스 의식(rites)의 전설적 발견자는 오르페우스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3세기의 유대 철학자 아르타파누스(Artapanus)는 모세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성인이 된 그는 그리스인들로부터 무사에우스(Musaeus)라고 불렸다. 무사에우스는 오르페우스의 스승이었다." 동시대의 또 다른 유대 철학자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는 오르페우스가 모세의 추종자였다고 주장했으며, 다음 오르페우스의 시를 인용했다: "나는 이에 적법한 사람들을 위해 노래할 것이다. 하지만, 의인의 율법으로 고발당한 비입문자 당신은 문을 닫으라 신은 모두에게 똑같이 법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 빛을 나르는 (light-bearing) 달의 아들, 무사에우스(모세)는 들으시오. 나는 진리를 외치고 있소."

오르피즘[오르페우스교 / 윤회를 교리로 하는 밀교]의 가장 큰 옹호자는 피타고라스였는데, 그는 플라톤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모미글리아노(Momigliano)의 '이국의 지혜'(Alien Wisdom)에 의하면, "페르시아의 지혜를 완전히 패셔너블하게 만든 것은 플라톤이다. 비록 이야기 속에서의 플라톤의 정확한 위치는 모호하고 역설적이지만."

이후 내내 플라톤은 유대 신비가들과 카발리스트들에 의해 그들 교리의 학생으로 확인되어 왔다. 아리스토불루스에 의하면:

플라톤이 우리의 법률을 흉내냈으며, 그 속의 각 요소들을 모두 철저히 조사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데메트리우스 팔레레우스(Demetrius Phalereus) 이전에, 알렉산더와 페르시아인들의 정복 이전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번역되었기 떄문이다. 우리의 동족 유대인들의 이집트 탈출, 그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의 명성, 땅의 정복, 그리고 모든 법률의 구체적 설명에 관한 부분들(이 번역되었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철학자가 (이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취했음은 매우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많은 교리들을 이전하고 그것들을 그 자신의 사상 속에 통합한 피타고라스처럼 매우 학문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플라톤: 신세계질서의 설계자

플라톤이 미래의 전체주의 국가를 뚜렷이 그린 것은 그의 "국가"(republic)에서이다. 이 국가는, 카발라가 지시한 대로, 엘리트 또는 "철학자 왕들" 또는 "가디언(보호자)"들에 의해 통치된다. 기본적으로 "국가"는 미래의 일루미나티 계획의 기반을 제공했는데, 여기에는 공산주의, 결혼과 가족의 배제, 강제교육, 국가에 의한 인종개량, 그리고 기만적 프로퍼갠다(허위선전)의 사용이 포함되어 있다.

플라톤에 의하면, "모든 여성들은 모든 남성들의 공동의 아내가 될 것이며, 어느 여자도 한 남자와 개인적으로 살면 안된다. 아이들 역시 공동으로 수용해서 어느 부모도 자신의 자녀를 모르고 또 어느 아이도 그 부모를 모르게 해야 한다." 이런 사상은 우생학(인종개량)의 필요성과 연관된다: "최우수 남성들은 될수록 많은 경우 최우수 여성들과 함께 살아야 하며, 최악의 남성들은 최악의 여성들과 함께 될수록 적게 살아야 한다. 무리가 될수록 완벽해지려면, 한쪽의 자녀들은 기르고 다른 편의 자녀들은 기르지 말아야 한다." 더우기 해로운 것은 유아살해에 관한 그의 처방이다: "열등한 자들의 자녀들과 우등한 자들의 자녀라도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은, 그들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도록, 은밀한 가운데 적절히 없애야 한다. 그것이 가디언 품종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조건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플라톤은 쭉 에소테릭(秘敎)철학의 중심에 있어 왔으며, 그가 신세계질서의 비전을 명료하게 준 일루미나티의 지도적 철학자들에 의해 칭찬을 받아 왔다. 그들은 칸트, 헤겔, 니이체, 그리고 최근의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 등인데, 스트라우스는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대리전을 치르도록 미국을 출범시킨 네오콘(신보수)의 구루이다.

플라톤처럼 스트라우스도 소사이어티[비밀(?)단체] 내부에서, 어떤 사람들은 지휘하는 데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지휘 당하는데 알맞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스트라우스를 "계몽"(Enlightenment)으로 입문시킨 사람은 마키아벨리인데, 그는 플라톤의 순전히 이론적인 세상을 배제하고, 현실을 보다 실제적으로 해석하기 원했으며, 그리하여 정치과학을 만들었다. 마키아벨리적 사상을 따라서 스트라우스에게는 어느 정권도 덕(선)을 적용할 수 있는 표준에 이르지 못한다. 오히려, 사리사욕적 경향 또는 "인간의 본성"을 수용하고 이해하고 활용해서 새 정권이 만들어져야 한다.

스트라우스는 도덕성이란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지배층에 적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스트라우스는, 세상은 정책자문들이 그들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대중과 심지어 그들의 지배자들조차 속여야 할 필요가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만약 절대적 진리의 부재에 노출된다면, 대중들은 바로 허무주의나 무정부주의에 굴복할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다루지 못한다". 따라서, 스트라우스에 의히면 이런 - 플라톤도 아마 이렇게 불렀을 - "경건한 사기" 또는 "고결한 거짓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처럼 스트라우스는 인간의 타고난 공격성은 오직 강력한 국수주의적 정부(nationalistic state)에 의해서만 억제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파시즘(Fascism)이다. "인류는 본질적으로 사악하기 때문에 통치를 받아야만 한다"고 그는 적었다. "하지만, 이런 통치(거버넌스)는 사람들이 일치할 때에만 비로소 성립될 수 있으며, 그들은 오직 다른 사람들에게 대항할 때에만 일치할 수 있다." '레오 스트라우스와 미국의 권리'(Leo Strauss and the American Right) 속에서 섀디아 드러리(Shadia Drury)에 의하면, "정치적 질서는 외부의 위협에 의해 일치될 경우에만 안정될 수 있다고 스트라우스는 생각한다". 드러리가 명확하게 하듯이, 궁극적으로는 "마키아벨리를 따라서, 그는 만약 외부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위협) 하나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http://blog.naver.com/yoochinw/130124676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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