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5일 토요일

바리새파, 탈무드, 그리고 현대 유대교

바리새파, 탈무드, 그리고 현대 유대교




엘리자베스 딜링 (Elizabeth Dilling)



성경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리새파를 비난한 것을 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그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무효화시키고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쳤다"(마태복음 15:6-9; 마가복음 7:13)고 하셨다. 예수의 비난은 비길 데가 없다. 마태복음 23장 전체는 마치 채찍같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주의를 회칠한 무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비난은 "위선자!"라는 외침으로 극에 달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파를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이라고 하셨다. 그들이 죽이고 십자가에 못박고 박해할 것을 미리 말씀하셨으며, 아벨로부터 이어진 사람들이 흘린 의로운 피가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리스도는 물으셨다.



요한복음 8장에서 그리스도는 바리새주의를 완전히 황폐시킨다. 비록 청중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음을 인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그들이, 영적으로는, 마귀로부터 났다고 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한복음 8:44)
잃어버린 연결고리



바리새인들에 대한 연결고리는 유니버설 유대백과사전(Universal Jewish Encyclopedia)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의 유대교의 혈통은 수세기 동안 끊임없이 내려온 바리새인으로부터 기원한다. 그들의 주요 사상과 방법은 오늘날까지도 대부분 존재하는 매우 광범위한 문서에 나타난다. 탈무드는 이 문서의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단일 문서이다... 탈무드를 연구하는 것은 바리새주의를 참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바리새파에 대해 1905년 유대백과사전(the 1905 Jewish Encyclopedia)는 말한다:



성전의 파괴(AD 70년)와 함께 사두개파는 모두 사라졌고, 모든 유대 정사의 규정을 바리새파의 손에 넘겼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생활은 바리새파에 의해 규정되었다. 유대교의 온 역사가 바리새파의 관점에서 재구성되었으며, 과거의 산헤드린에는 새로운 측면이 주어졌다. 새로운 일련의 전통이 옛 제사장의 전통을 대체했다. 바리새주의는 유대교의 성격과 장래의 모든 유대인들의 생활과 사상을 형성했다.
유일한 권위, 바벨로니안 탈무드



랍비 루이스 핑클슈타인은 1937년, 공산주의자 테러리스트 맥심 리트비노프, 무신론 공산주의자 아인슈타인, 붉은 막시스트 해롤드 라스키 등과 함께 세계유대공동체(Kehillas)에 의해 "유대교의 등불"을 가장 잘 대표하는 120인의 유대인에 뽑혔다. 핑클슈타인은 오랬동안 미국 유대신학교(Jewish Theological Seminary of America)를 이끌었다. 그의 두 권짜리 저작 "바리새인들"에서 랍비 핑클슈타인은 적는다:



바리새주의는 탈무드주의가 되었다... 하지만 고대 바리새인들의 정신은 변치 않고 살아 남는다. 유대인이 탈무드를 공부할 때, 그는 사실상 팔레스타인 학교(Palestinian academies)에서 사용되던 주장들을 되풀이한다. 팔레스타인에서 바벨론니아로, 바벨로니아에서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와 독일로, 이런 나라에서 폴란드로.러시아와 동유럽 전반적으로 고대 바리새주의는 돌아다녔다.
랍비 핑클슈타인의 유대역사에서 그는 말한다:



탈무드는 고대 학교들(즉, 바리새파)이 유지했던 위치로부터 그 권위를 끌어낸다. 그 학교들의 스승들은, 바벨로이나와 팔레스타인 모두에서, 더 오래된 산헤드린의 정당한 후계자로 여겨졌다... 현재에는, 유대인들은 그 지위에 있어서 고대 산헤드린이나 그 후의 학교들에 비견할 만한 살아있는 핵심권위자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탈무드는, 당시 살아있었던 권위자들의 가르침의 최종적 개론으로서, 유대종교에 관한 모든 결정들의 토대가 된다.
뉴욕 헤럴드트리뷴에 연재되었던 유대작가 허만 워우크의 "탈무드: 유대신앙의 심장의 피(The Talmud: Heart's Blood of the Jewish Faith)"에서 인용하면:



탈무드는 오늘날까지 유대종교의 순환하는 심장의 피이다. 우리가 지키는 모든 율법, 관습, 절기들에 대해 - 우리가 정통이든, 보수든, 개혁이든 또는 돌발적 감상주의자이든 - 우리는 탈무드를 따른다. 이것이 우리의 공통 율법이다.
왜 그리 자주 불탔는가?



탈무드가 비유대인들에게 그렇게도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1934-48 손치노(Soncino) 편집본이 나올 때까지 어째서 쓸만한 탈무드의 영어 번역이 없었는가? 유럽 역사를 통해서 탈무드의 (율)법이 일반적으로 알려지게 되면 왜 이것은 교황의 명령에 의해 되풀이되어 태워졌고, 마틴 루터에 의해 혹평받고, 곳곳에서 비난받고, 추종자들은 수 세기동안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망명했는가?



탈무드의 기본법은 바리새 유대인만을 사람 또는 인간으로 평가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동물로서 "당나귀 같은 사람들 - 주인의 사유물로 여겨진 노예"의 지위에 해당한다. 이런 가르침의 결과로 나타난 자세에 모든 나라의 비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분개해왔다. 하지만, 이런 분노는 유대인들에 의해 항상 "유대인 핍박"으로 그려졌다.



바벨로니안 탈무드 - 율법



바벨로니안 탈무드는 소위 유대교의 율법이다. 하지만, 이것의 외설적, 반이방적이고 반기독교적인 교리들은 종종 적개심을 일으켰다. 일부 유대인들은 악의적이지 않은 팔레스티니안 탈무드가 있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유대 권위자들은 그것이 수천년 간 상실되었었고, 손실된 부분이 있으며 "게마라(Gemara)"와 기타 본질적인 면에서 부족하기 때문에 학문적 호기심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영국 최고 랍비 헤르츠(Hertz 허츠)가 바벨로니안 탈무드 소치노 에디션의 서문에 쓴 문장을 보라:



팔레스티니안 탈무드는... 유대인들에 의해 수 세기 동안 거의 잊혀졌다. 이것의 율법적 결정들이 바벨로니안 탈무드에 반한다면, 그 결정들은 한시라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바리새인들에게 공정했는가?



문자 형태의 "바리새인들의 전통"인 바벨로니안 탈무드에 대한 지식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바리새주의(형식주의/위선)애 대한 신랄한 비난이 공정했는지 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탈무드가 십계명 하나하나와 모세와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상반되며, 예수께서 비난하셨듯이 살인과 "모든 부정"을 숨기기 위한 "회칠한 무덤" 아래에 이와 상반된 것들을 간직했다는 것에 대해 유대 권위자들이 명확하게 드러낸 증거가 필요하다. 비(非)바리새인들을 살인하는 것은 언제든지 허용되었으며, 도둑질, 남색, 근친상간, 강간은 모두 허용되었다. 예를 들어, 세 살 이하의 여아를 범한 성인 남자들의 의로움은 탈무드의 책마다 나오는 논의의 인기있는 주제이다.



탈무드 문서는 바벨론이라는 바로 그 이름과 그 이름이 오늘날 바벨로니안 탈무드에서 갖는 의미에 대한 하나의 긴 찬가(讚歌)인 반면, 이것은 구약과 신약에서는 책망의 용어이다. [블로거주. 성경은 배교의 음녀를 "미스테리, 바벨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랍비 핑클슈타인처럼 1937년, 세계유대공동체(Kehillas)에 의해 "유대교의 등불"을 가장 잘 들고 있는 120인의 유대인에 뽑혔던 영국의 최고 랍비 J.H. 헤르츠(Hertz)가 바벨로니안 탈무드의 최초 영역본에 붙인 서문을 주목하라:



탈무드 문서의 시작은 기원전 6세기 바벨론 유수 시기로 거슬러 간다... 천년 후 서기 500년에 바벨로니안 탈무드가 최종적인 성문화의 형태를 취했을 때에 로마 서방 제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랍비 헤르츠는 바벨론 유수(유배)를 격찬하며 말한다: "바벨론 유수는 중요한 기간이다... 유수 기간동안 이스라엘은 자신을 발견했다. 토라를 재발견했으며 이것을 삶의 규칙으로 만들었다..."



그가 진정으로 의미한 것은, 그들이 토라 또는 성경을 어떻게 바벨론적 타락을 위한 "회칠한 무덤"으로 써먹을 수 있는지를 알아냈다는 뜻이며, 이것은 피상적인 연구만으로도 알 수 있다.



랍비 아키바는 1세기 탈무드 "현자"였는데, 모세조차 그를 질투했다고 한다! 랍비 헤르츠는 랍비 아키바를 칭찬한다:



아키바는 전승 율법 모음(콜렉션)을 쓴 사람인데 이것으로부터 미슈나(Mishna 미쉬나)가 발전되었다. 그는 자신의 시대와 그 이후 시대의 랍비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의 날카롭고 꿰뚫는 지성을 통해 그는 구전율법(Oral Law)의 모든 조항의 성경적 토대를 찾을 수 있었다.
바리새주의의 바벨론 유래에 대해 열중하며 랍비 헤르츠는 계속한다:



바벨로니안 게마라에 이르면,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탈무드를 말하고 적으며 이해하는 것을 다루게 된다. 이것이 태어난 바벨로니아는 어느 다른 나라보다도 오랫동안 유대 자치센터가 있었던 곳이다. 즉 기원전 586년 바로 후부터 서기 1040년까지의 1626년간.
[주. 탈무드에서 "게마라"는 랍비의 주장을 지칭하며, 궁극적인 결정은 "미슈나"에 요약되어 있다.]



성경 vs. 구전(율)법 (탈무드)



탈무드 유대교 아래서 성경은 바보들, 여성들과 어린 아이들에게나 어울리는 단순한 이야기 더미로 여겨진다. 따라서 탈무드 "현자들"은 문자와 숫자의 트릭을 통해 성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 이 트릭은 평범한 의미를 뒤엎고, 금지된 범죄와 악행에 대한 허가를 성경으로부터 만들어 낸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내용을 전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경구절은 지속적으로 오용되고 잘못 인용된다.



스스로 "이스라엘사람"이라는 타이틀을 훔치며, 탈무드 "현자들"은 "하나님은 오직 구전으로 전승되는 것만을 위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다"고 가르친다. 이에 대한 성경 "근거"로 출애굽기 34:27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 반대이다! 모세의 쓰여진 말씀을 뒤집은 탈무드는 "구전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그것도 모세 자신을 통해서 - 믿거나 말거나!


서기관들은 모세 율법의 바리새인 교사로서, 탈무드를 구성하기 위해 이를 조심스럽게 왜곡한 사람들임을 명심하고 다음에 주목하라: "토라에 대해서보다 서기관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훨씬 엄중해야 한다... 그리하여 성경 율법을 범할 수 있도록" (탈무드, 산헤드린 88b)



토라는 좁은 의미에서 구약을 뜻하며, 더 좁은 의미로는 모세오경을 말한다. 유대적 넓은 의미로 토라는 바리새적 탈무드에 의해 오역된 구약을 의미한다. 유대교와 함께 탈무드는 항상 모든 면에서 성경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 탈무드의 소치노 에디션은 말한다:



37a<<에서 보게 되듯이, 성경은 어린이들만을 위한 공부로 일반적으로 여겨졌다. 성인들은 늘 더 깊은 의미를 연구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딸들에게는 교육이 불필요하므로 여아들에게는 탈무드 추론 대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본다. 랍비 엘리에제르(Eliezer)가 딸들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것에 반대한 것("딸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것은 그녀에게 음탕함을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다")은 아마도 구전법과 더 높은 단계의 공부를 가르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문맥을 보면 이것이 성경 율법의 더 높은 지식을 지칭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탈무드(산헤드린 59a)는 말한다:



토라를 공부하는 이방인은 죽어 마땅하다. 왜냐하면 모세는 상속에 대한 율법을 명령했다고 적혀 있으므로, 이것은 우리의 유산이지 그들의 것이 아니기 떄문이다.
비유대인이 공부할 수 있는 "노아의 율법(Noachian laws)"에 대한 언급이 있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해당 없는 율법"을 공부하면 안 된다. 또한: "구전법을 공부하는 것을 반대했다... 랍비 요하난은 법리학에 있어서 이방인들의 지식을 두려워했다. 이것이 법정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사용될까봐." 탈무드 율법은 비유대인들을 차별하며 사실상 동물 취급을 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을 적절한 논평이라고 해도 이해할 만하겠다.



유대백과사전은 "토라" 율법을 이방인에게 누설하는 자에게 죽음을 협박하는 탈무드 산헤드린 59a의 내용에 더 개방적이다: "왜냐하면 이런 지식은 상대법정에서 유대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논평은, 상거래와 법정에서 이방인들을 속이고 이용하는 것에 관한 율법을 다룬 논문에 이어서 나온다.



바벨로니안 탈무드



바벨로니안 탈무드는 "미슈나 Mishnah" (또는 "할라카 Halacha") 또는/즉 탈무드를 구성하는 가르침을 제공한 바리새인들이 세운 율법과, 그리고 "게마라" 또는/즉 이런 율법에 대한 토론적 교설로 이루어진다. 바벨로니안 탈무드는 63권으로 되어있다.


모든 탈무드 책들은 "미슈나"(복수는 "미슈나임 Mishnaim")를 가지고 있다. 어떤 책에는 "게마라"가 없다. "미슈나" 또는 "어느 바리새인의 율법"은, 예를 들어, "랍비 아키바의 미슈나" 또는 "엘리에제르 벤 야콥의 미슈나"로 지칭된다.



특별히 미슈나라는 이름은 할라코트(Halachoth) 또는 (일반적으로 랍비로 알려진) 유다 하나시(Judah ha-Nasi)와 그의 동료들이 CE (유대인들은 AD 대신 CE를 사용) 3세기초에 만든 율법들의 모음을 일컫는다.



유대백과사전에서 인용을 계속한다:



수 세기 동안 구전되어 내려오던 방대한 양의 전통을 정리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들의 정점을 이룬 것이 미슈나이다... 하지만, 미슈나의 편집은 한 사람이나 심지어 한 시대의 학자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두 세기가 넘는 많은 기간동안의 긴 과정의 결과이다.
또한:



얍네에 있는 팔레스타인 바리새 탈무드 센터에서는 (예루살렘 탈무드가 구성된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얍네였다) 할라카를 조화롭게 모으기 위한 얍네의 현자들의 합심 노력이 있었다 (약 CE 90년)... (CE 135년에 죽은) 아키바는 할라코트를 논리적 순서로 배열하고, 아마도, 현대 미슈나의 뼈대를 세웠다. (4) 아키바의 모음은 그의 제자 메이르(Meir)에 의해 증보되고 업데이트되었다. [주. 탈무드에 의하면, 메이르는 탈무드로 개종한 네로의 자손었다.] (5)아키바 시대 이후 모든 학교장들은 자신의 미슈나를 편집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혼동이 생기자... 유다 하나시는 정통 미슈나의 정규본을 편집했다. (6) 비록 유다가 13 종류의 할라코트를 사용했지만, 그의 미슈나는 주로 메이르의 모음에, 따라서 간접적으로는 아키바의 모음에 기초했다.
미슈나를 편집한 유다 하나시는 서기 135년에 태어나서 200년 이후에 죽었다. 유대인의 왕자를 뜻하는 "나시(Nasi)"는 산헤드린 법정의 우두머리에게 붙여진 타이틀이었는데, 그는 탈무드 율법으로 삶과 죽음을 부과했다.



출처: 유대교가 현대에 미치는 영향 (THE JEWISH RELIGION Its Influence Today)



http://blog.naver.com/yoochinw/13012289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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