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1일 금요일

연금술(Alchemy)

연금술(Alchemy)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나자 특정 원소들에게 특정 에너지의 방사선을 투사시키면 원자의 핵이 변형되면서 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공률이 매우 낮은데다가 비용도 너무 많이 들어 실제로 이 방법으로 금을 만들지는 않는다. 또 원소들 중 이 방법이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 백금인데 실제로 백금의 가치가 금보다 높기 때문에 이 역시 실행된 적이 없다.

당시의 중요한 연금술적 발견으로는 무기산과 알코올을 들 수 있다. 의학화학이나 제약학은 이때의 부흥으로부터 2세기 후에 스위스의 연금술사인 파라셀수스(1493~1541)의 영향을 받아 나타났다. 르네상스 시대의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은 그리스의 원자설에 새로운 흥미를 느끼고 변환의 가능성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연금술사들이 축적해놓은 화학적 사실들은 오늘날 재해석되었고 이를 기초로 근대 화학이 정립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화학적으로 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여 결론적으로 반박할 수 있었다. 연금술적 철학과 기술의 산발적인 부흥은 20세기에도 지속되었다.

아랍의 연금술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연금술의 경향만큼이나 신비하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집트로 전해진 연금술은 오늘날 파노폴리스의 조시모스라고 밝혀진 최초의 연금술사의 연구와 합쳐졌다. 중국과의 교섭을 통해 아랍에서는 후에 유럽의 연금술에서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로 생각한 신비한 물질인 변형시키는 약제의 사용을 채택했다. 12세기에 그리스도교 학자가 알라지(850~923)의 아랍어 연구를 번역하여 유럽에서 연금술이 부흥하게 되었고, 1300년까지 그 시대의 뛰어난 철학자, 과학자, 신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스의 저작자들은 비법을 은폐하기 위하여 고대의 신, 영웅, 왕 또는 철학자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원고를 썼다. 이러한 혼란스런 경향은 신비주의적 성향이 연금술의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헬레니즘 철학이 기술을 중시하는 과학의 관점에서 그노시스주의, 신플라톤주의, 그리스도교의 성스러운 묵시(默示)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함에 따라서 연금술에 관한 저서들이 전반적으로 모호성(模糊性)을 띠며 은밀해지기 시작했다. 그당시에 중국의 연금술사들은 금 자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불로장생을 부여하는 힘을 가진 연금약액(elixir)으로 다른 금속을 금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찾았으며, 실용적인 모든 기술을 희생하면서 비법에 치중하여 기술이 미신 속으로 퇴보했다. 인도에서의 연금술도 결과적으로 비슷한 운명이 되었다.

경험이 풍부한 연금술사들이 오늘날 수정 및 보완하여 쓰고 있는 수많은 실험기구와 실험과정을 창안하여 사용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기술자였고 그들의 직업상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실험상의 비법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의 연구대상인 물질들에 대해 은밀하고 상징적인 이름들을 많이 고안해냈다.

즉 적절한 점성학적 영향을 받게 되면 마치 인간의 영혼이 천상에서 완전해지는 것과 같이 납이 금으로 완성 또는 치료된다고 여기게 되었다. 기술자는 아마도 그의 실험실에서 금속을 조심스럽게 다듬고 오래 가열하여 일단 소멸시키고 더 나은 상태로 소생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완성을 앞당기려고 했을 것이다.

공기, 물, 흙, 불, 공간의 5가지 원소들이 여러 비율로 조합하여 모든 물질을 구성한다는 이론이 고대 중국, 인도, 그리스에서 거의 동일한 형태로 가정되었다. 게다가 물질 세계는 더운 것과 찬 것, 젖은 것과 마른 것, 양성과 음성, 남과 여 등 정반대의 개념들에 의해 작용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유사한 점성학적 개념들이 전해 내려오면서 이 세 문명의 철학자들은 원소, 행성, 금속 사이의 상관성(相關性)을 확립했다. 점성학자들은 자연 세계의 대우주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간의 소우주에 반영되고, 역으로도 반영된다고 믿었다.

납이나 구리 같은 비금속(卑金屬)을 은이나 금 등으로 변환시키려고 시도했던 유사과학(類似科學). 이러한 시도에서 화학적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시도를 하는 동안 유사과학은 화학 자체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중세 아랍에서 발달한 분야로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과학이 아니라 미신이나 마술에 가깝다. 고대로부터 약 2000년 이상 신봉되었던 원소 변환설을 근거로 값싼 철이나 납과 같은 금속을 비싼 금으로 바꾸려고 하였다.

16세기의 파라켈수스는 연금술의 목표를 금 만들기에서 의약품(알카나) 만들기로 바꾸었고, 17세기에는 보일이 근대적 화학관을 제시했으며, 연금술은 쇠퇴해 갔다. 18세기말 이후 연금술의 경험적 지식 쪽은 라부아지에, 돌턴 등의 근대화학에 계승되어 갔다.

13세기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게베르가 무기산의 제법을 비롯하여 경험적 기법의 체계를 정리하였다. 이것들은 현대화학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럽의 연금술은 만물을 금으로 바꾸고, 만병을 고치는 현자의 돌(에릭실)을 추구하여 기도에 의하여 완전한 인간을 만드는 신앙적 성격이 짙어져 갔다.

신비적 성격과 경험적 성격을 아울러 지니며, 구리와 같은 비금속을 금으로 변환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했던 일종의 전근대 과학기술. 1~3세기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발생하여 이슬람 세계에서 발전했으며 유럽으로 전해져 17세기까지 번영하였다. 연금술은 당초에는 가짜 금을 만드는 등 실무적·장인적 성격이 강하여, 8세기 이슬람 세계의 연금술사 자빌 이분 하이얀이라든가 9~10세기의 알 라지(라틴명 라제스) 등은 경험적 물질만들기에서 물질의 분류, 약품제조법, 화학장치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http://blog.naver.com/smilesunkr/12005697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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