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2일 월요일

영화같은 핵테러 배제 못해

전세계 핵물질 분실-도난 16년간 1773건
핵테러를 소재로 한 대표적 영화인 ‘피스메이커’(왼쪽 사진)와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트 프로토콜’. 드림웍스픽처스·파라마운트픽처스 제공

배낭을 메고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의 44번가를 향하는 테러리스트. 배낭 안에는 러시아에서 탈취한 핵무기가 들어 있다. 그를 저지하기 위해 백악관 자문위원인 여성 핵물리학자와 육군 특수정보국 소속 대령이 숨 가쁜 추격전을 펼친다. 뉴욕 한복판은 아수라장이 된다.

영화 ‘피스메이커’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장면이다. 핵테러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26, 27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정부 당국자 사이에서 자주 인용된다. 사실 지금까지 핵 테러가 실제로 이뤄진 사례는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핵테러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고 심각하다.

최첨단 그래픽 효과를 활용한 이런 영화나 드라마는 핵테러라는 가상의 현실을 보여 준다. 미국 드라마 ‘24시’와 영화 ‘섬 오브 올 피어스’,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트 프로토콜’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광화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핵테러를 그린 드라마 ‘아이리스’, 방사성물질을 폭풍에 실어 한국을 겨냥한 핵테러를 기도하는 영화 ‘폭풍’이 화제를 모았다.

영화 ‘섬 오브 올 피어스’는 미국 볼티모어 경기장에서 핵폭탄이 터지면서 현장에 있던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비롯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다. 방송들은 거대한 버섯구름과 함께 참혹한 피해현장을 보도하고 병원은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진 피폭 환자들로 뒤덮인다.

‘피스메이커’에 나오는 핵폭발 장면은 단 6초. 그러나 핵무기가 폭발하면서 거대한 섬광과 함께 러시아의 외진 시골을 순식간에 쓸어버리는 장면은 그 짧은 시간을 압도한다. 드라마 ‘24시’에 등장하는 테러리스트들은 로스앤젤레스처럼 사람이 많은 대도시를 노린다.

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장에 따르면 10kt급 핵무기가 뉴욕 맨해튼에서 폭발할 경우 10만 명이 죽고 70만 명이 방사성물질에 오염되며, 폭발 반경 800m 안의 모든 건물이 파괴될 것이라고 한다.
영화 속의 테러리스트들은 대부분 조직적이고 국제적으로 움직인다. 보스니아처럼 종교 또는 민족분쟁을 겪는 지역의 극우주의자, 신나치주의자들이 테러리스트로 등장한다.

실제로 핵테러리스트들이 핵물질이나 핵무기를 입수할 가능성이 높은 곳도 주로 러시아와 인근 국가들이다. 옛 소련 붕괴 이후 1만 기 이상의 핵무기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핵물질이 주변 국가로 옮겨지거나 부실한 관리 속에 기록도 없이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소비에트연방 국가였던 몰도바에서는 지난해와 2010년 각각 우라늄과 우라늄을 정제한 ‘옐로케이크’를 밀거래하던 일당이 적발됐다. 2006년 그루지야(현 조지아)에서는 한 러시아인이 고농축우라늄(HEU) 80g을 100만 달러에 판매하려다 체포되기도 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993∼2009년 보고된 핵·방사성물질의 분실, 도난 사례는 1773건. 이 중 아직까지 회수되지 않은 핵물질만 60%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핵물질의 일부가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넘어가 사제 핵폭탄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면 영화 속 핵폭발 장면은 언제라도 현실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런 핵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은 핵안보정상회의의 정확한 개념과 목적을 다소 혼란스럽게 만드는 한계도 갖는다. 이번 정상회의는 핵테러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핵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핵물질을 훔치려는 테러리스트의 시도를 예방하기 위한 국제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따라서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를 다루는 핵군축이나 비확산 논의는 포함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탈취 대상으로 다뤄지는 국가 관리 아래의 핵탄두나 핵무기발사 코드, 미국과 러시아 간 핵전쟁 위기 등은 이번 핵안보정상회의 의제와는 관련이 없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http://news.donga.com/Politics/New/3/00/20120311/446896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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