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7일 금요일

일루미나티의 형성과정

일루미나티의 형성과정



1776년 5월 1일(공산주의자들의 오랜 기념일이기도 한데, 공산주의 철학이 일루미나티 교의 위에서 형성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독일 바이에른의 인골슈타트대학교 교회법 교수였던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바이에른 일루미나티를 창설했다. 공동 창설자로 알려진 헤스의 빌헬름은 마이어 로스차일드의 고용인이었다. 일루미나티는 이름을 스페인 '알룸브라도스(alumbrados, '계몽된'이라는 뜻)'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있다. 비밀스런 분파 조직인 알룸브라도스는 예수회 창립자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만들었다. 알룸브라도스는 일종의 그노시스주의를 설파했는데 인간은 신과 직접 교통할 수 있으며, '빛'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형식적인 종교가 필요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바이스하우프트는 일루미나티 조직 안에서 '스파르타쿠스'라는 암호명을 사용했다. 기원전 73년, 로마에 대항해 유혈 폭동을 일으켰던 노예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그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1969년 한 잡지에 실린 기사를 보면, 일루미나티는 바이스하우프트 보다 몇 세기 앞서 유럽에서 일루미나티적인 이상을 전파한 템플기사단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이슬람교 이스마일파의 한 종파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이스하우프트는 '해시시(대마로 만든 마약)를 피운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악명 높은 이슬람 아사신파(Assassins)를 연구했으며, 그 자신도 마리화나를 흡임함으로써 '깨달음(illumination)'을 이뤘다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바로 이 '믿을 수 없다'는 태도 때문에 일루미나티의 후예들이 오늘날에도 보호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이스하우프트 조직이 초기에 프랑크푸르트 프리메이슨의 '엄수교단(Order of Strict Observance)'과 동맹을 맺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교단은 장미십자회 계열인 '황금과 장미십자가 교단'을 계승한 곳이었다. 프리메이슨의 역사에 관한 일부 학설에 따르면, 제임스 2세는 생제르맹 성에서 가톨릭 예수회(Jesuits)의 도움으로 스코티시 라이트 등 프리메이슨 전통의 근거가 된 체계를 수립했다고 한다. 바스티유 습격은 짓밟힌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행동이 아니었다. 웹스터는 "혁명 지도자들은 남부의 약탈자들을 파리로 유인해 고용하고 돈을 지불했다. 이는 당국자들이 거듭 확인한 사실이며, 그런 사례가 너무 많아 일일이 인용하기조차 힘들다. 고용된 약탈자들을 불러들였다는 사실은 프랑스혁명이 억누를 수 없는 민중봉기였다는 논리를 반박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비밀 조직들이 보낸 심부름꾼들은 말을 타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달리며 두려움에 찬 농민들에게 음모자들이 귀족들의 성에 은신해 있다고 경고했다. 왕이 농민들에 대한 공격을 명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곧 혼란과 폭력이 확산되었고 그것을 혁명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일루미나티의 침투는 18세기 초반 재커바이트와 템플기사단 잔류자들이 프리메이슨 프랑스 로지의 통제권을 두고 다툼을 벌였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프리메이슨의 상층부가 일루미나티라면, 일루미나티의 상층부는 예수회라고 할 수 있다. 일부사람들은 예수회가 일루미나티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예수회는 대중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데, 그들의 기만과 비밀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에게도 자신들이 예수회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장악하기 위하여 심지어 다른 종교들, 다른 문화들, 그리고 다른 조직들에 침투하여 그에 소속된다.

'신세계질서의 비밀'(http://cafe.daum.net/aspire7/DZ2w/1) 관련자료
 바이스하우프트는 교단의 최고 지도자들에게 "어떤 때는 이렇게 말하고, 다른 때는 저렇게 말해서 진정한 목적을 열등한 구성원들이 이해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하며 진정한 의도를 입회자들에게도 드러내지 말고 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1777년 바이스하우프트는 뮌헨에 있는 프리메이슨 교단의 시어도어 자선위원회 로지에 합류해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을 혼합했다. 프랑스혁명 지도자이자 일루미나티 회원인 미라보는 회상록에서 "뮌헨의 시어도어 자선위원회 로지는 일루미나티 교단이라고 밝힌 다른 비밀 조직과 융합하기로 결의했다. 일루미나티는 예수회를 모델로 삼았으나 관점은 정반대였다"라고 기록했다. 바이스하우프트는 피라미드식 지휘 체계를 구성해 권력을 손에 넣었다. 이 구조는 너무나 보안이 철저해서 바이에른 당국이 교단의 내부 자료를 입수한 뒤에야 그가 일루미나티의 지도자란 사실이 밝혀졌을 정도다. 이 자료들을 보면 바이스하우프트가 자신의 조직을 묘사한 대목이 나온다. "내 바로 밑에 두 사람이 있다. 나는 이들에게 내 모든 정신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그 둘 아래 각각 두 사람이 있다. 이를 통해 나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수천 명의 행동과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명령을 전하고 정치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1790년 무렵 일루미나티는 와해된 듯 보였지만, 실은 많은 단원들이 다른 국가로 몸을 피한 것일 뿐이었다. 바이에른 정부는 일루미나티 문건들을 수집해 《일루미나티 교단의 문서 원본》이라는 책으로 만들어 다른 유럽 정부들에 보냈다. 일루미나티의 계획이 지나치게 과도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믿기가 힘들었다. 유럽의 통치자들은 일루미나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한편에 밀쳐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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