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과 세계대전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은 20세기 서양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별히 다윈주의(Darwinism)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던 초기의 사람들 중에 독일의 지성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사상을 적용시켰다. 그들은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인종의 보존을 적용했다. 이것의 가장 악명 높은 결과는 홀로코스트(Holocaust)였다. 사회 다윈주의는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시기의 지성인들은 기독교 신앙과 윤리를 대체하는 것으로 다윈주의 사상을 환영하고 받아들였다. 그 시대 가장 유명한 독일의 다윈주의자이자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은 진화론이 인류의 세계관에 완벽한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믿었다. 그는 다윈주의가 기독교적 윤리의 포기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다윈주의의 출현 전까지, 인간 생명의 고귀함은 유럽의 법률과 사상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많은 독일의 지성인들이 사회에서 가치 있는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비균등은 인종(race)에 주로 기초하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독일의 다윈주의자들은 전쟁이 지배 인종에 유익한 지에 관해서 나뉘어졌다. 헤켈을 포함한 일부는 반전론자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쟁이 지배 인종의 최고 구성원들을 죽여버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류학자인 오토 암몬(Otto Ammon, 1842~1916)은 전쟁은 나라가 더 강해지고, 적자의 위대한 승리를 시험하는(최적자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물론 독일의 인구 중에도 탐탁하지 않은 개인들이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플뢰츠는 이들을 전쟁의 최전선으로 내보내 더 적합한 사람들보다 앞서서 죽임을 당하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전쟁을 진화의 도구로써 보는 이러한 관점 때문에, 독일의 지도자들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을 지라도, 전쟁을 바람직한 선택으로 간주했다. 또한 거기에 숙명론적인 요소도 있었다. 즉, 그들은 전쟁은 그들의 운명이고, 그들은 세계의 발전에 예정된 역할을 완수하고 있었다고 믿었다. 어떤 사람들은 다윈이 직접적으로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의 원리를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용어는 그리고 진화론적 사고와의 연결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윈은 동물 사회에서 살육은 진화가 진행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여왕벌이 자신의 딸인 어린 여왕벌들이 태어나자마자 즉시 죽여버리는 야만적이고 본능적인 증오는 동경해야 한다. 의심 없이 이것은 사회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어미의 사랑과 어미의 증오는 자연선택의 냉혹한 원리에서 모두 같은 것이다. 다윈은 단순이 이 이론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을 탐탁하지 않아 했다. 그러나 독일의 사회 다윈주의자들은 다윈의 거리낌을 공유하지 않았다. 세계대전을 유발한 다른 요소들이 있었지만, 사회 다윈주의와 반기독교 윤리 체계에 대한 독일 지도자들의 보편적인 믿음은 그들의 군국주의를 정당화했으며, 그것을 도덕적 선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신세계질서의 비밀'(http://cafe.daum.net/aspire7/DZ2w/1) 관련자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