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5일 목요일

테러 증오를 사랑으로 승화

9·11로 남편 잃고 아프간 돕기 나선 미국 여성 수전 레틱

[중앙일보 정현목]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아프간 어린이를 안고 있는 수전 레틱(오른쪽). 그는 남편을 잃은 아프간 여성과 어린이들의 문맹퇴치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10년 전 9·11 테러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미국인 여성 수전 레틱(Susan Retik·42). 미 정부는 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하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전쟁을 벌였지만, 수전은 자신처럼 남편을 잃은 아프간 여성들을 감싸 안았다.

8년간 100만 달러(약 11억원)를 모금하는 등 아프간 여성들의 자립을 돕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적'에 대한 증오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수전의 스토리가 감동을 전해 주고 있다고 미 CBS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2001년 9월 11일 수전의 남편 데이비드는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러 떠나며 식탁에 두 아이와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담은 쪽지를 남겼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출장 가있는 동안 무척 그리울 거야.” 남편이 탄 여객기는 그날 테러범에게 납치돼 뉴욕 무역센터 빌딩과 충돌했다. 당시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수전은 세상을 모두 잃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다른 유족들처럼 슬픔에 빠져 살던 어느 날 그는 뉴스를 통해 아프간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접했다. 20여 년간 분쟁에 시달린 아프간은 남편을 잃은 여성이 100만 명이나 됐다. 탈레반에 남편이 희생된 경우도 많았다. 뉴스 화면 속 아프간 여성들은 별다른 생계수단조차 없이 아이들을 부양하며 하루하루를 어렵사리 버티고 있었다.

 수전은 똑같은 폭력의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미 전역에서 위로편지와 위로금이 쇄도하고 있지만 아프간 여성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9·11 때 남편을 잃은 패티 퀴글리와 의기투합, 자신들이 받은 위로금을 아프간 여성들과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2003년 아프간 여성을 돕기 위한 비영리재단 '9·11을 넘어서(Beyond the 11th)'를 설립했다. “더 어려운 처지의 아프간 여성들에게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내밀자”는 게 설립 취지였다.

 '적국'에 대한 분노 대신 아프간 여성들의 아픔에 눈을 돌린 수전의 뜻에 많은 사람이 동참했다. 그는 지구 반대편의 아프간을 안방처럼 드나들며 아프간 여성들을 위한 직업교육, 문맹 퇴치 사업을 벌였다. 양탄자 짜기, 축구공 만들기 등을 통해 수천 명의 아프간 여성에게 자립 기반을 만들어줬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수전은 지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올해의 위대한 시민상'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수상식에서 “수전은 아프간 여성들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수전은 “남편,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그들이나 우리나 똑같다”며 “하늘에 있는 남편도 나를 분명히 칭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9·11 10주년을 맞아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서 보스턴까지 자전거 타기 모금 행사를 벌였다.

정현목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25&aid=000216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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