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3일 금요일

미국 정부보다 더 무서운 ‘21세기의 빅 브라더’ 록히드 마틴

미국 정부보다 더 무서운 ‘21세기의 빅 브라더’ 록히드 마틴



프라이버시의 위기, 또는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을 논의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이나 기관은 어디일까? 페이스북? 구글? CIA? FBI? MI5? 아마도.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록히드 마틴’ (Lockheed Martin)이라는 대답을 떠올릴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록히드 마틴? C-130 허큘리스 전술 수송기, 역대 최강의 전투기로 평가받는 F-22 랩터, 트라이던트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 (SLBM) 등을 만드는 초대형 군수 회사? 그렇다. 뉴아메리카 재단의 무기 및 보안 부문 책임자인 윌리엄 하텅 (William Hartung) 씨는 “록히드 마틴을 일반 대중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무기 제조사로만 여기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지난해 12월25일 출간한 ‘전쟁의 예언자들’ (Prophets of War, 네이션 북스, 오른쪽 사진)에서, 록히드 마틴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군수 회사일 뿐 아니라, 감시 카메라로부터 정보 처리, 인구 센서스, 민간인 사찰, 공항의 신원 검색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개인 정보 수집 및 처리에 관여해 온 명실상부한 ‘빅 브라더’라고 주장한다. “록히드 마틴이 우리 삶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는 것이다.

세금 업무? 모든 납세자들의 정보를 상세하고 종합적으로 담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록히드 마틴이 만들었다. 미국의 인구 조사에 응한다고? 역시 록히드 마틴이 그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관리한다. 2010년 인구조사가 한창일 때는 볼티모어와 피닉스, 그리고 인디애나 주의 제퍼슨빌에 있는 세 개의 데이터 처리 센터로 견인 트레일러 18대 분량의 우편이 매일 쏟아졌다.

록히드 마틴은 또 5억달러의 예산으로 ‘10년제 응답 정보 서비스’ (Decennial Response Informaton Services, DRIS)를 개발 중이다. 전화 기록이나 인터넷, 직접 방문 등 온갖 소스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게 될 시스템이다. 인구조사국의 프레스턴 웨이트 (Preston Waite) 부국장은 DRIS가 “그 소스가 어디든 모든 데이터를 포착할 수 있는 큰 그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소포를 전국 어딘가로 보내거나 받으려 하는가? 록히드 마틴에서 제작한 카메라가 바코드를 스캔해 주소를 인지하므로 사람이 따로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

범죄를 모의한다고? 생각을 바꾸는 게 좋다. 5,500만 세트의 지문 데이터베이스를 갖춘 FBI의 ‘통합 자동 지문 인식 시스템’ (Integrated Automatic Fingerprint Identification System, IAFIS)을 록히드 마틴이 개발했다. 홍채를 스캔하거나, 얼굴을 인식하거나, 또는 지문이나 DNA 정보를 통해 개별 인물의 정체를 분별하는 생체 인식 시스템도 록히드 마틴의 작품이다.

이같은 몇몇 사례에다, 모든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개인 데이터를 ‘열린 책’ (open book)처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이 회사의 언명까지 더하고 나면, 록히드 마틴이 미국 정부를 실제로 운영하지는 않지만 종종 그렇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생체인식 기술 덕택에 사람들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곤란해 하거나, 여러 형태의 신분증을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을 더이상 겪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록히드 마틴은 강조한다.

그뿐이 아니다.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중 상당수도 여기에서 나온다. 록히드 마틴은 2005년 뉴욕시의 메트로 운송 공사 (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hority, MTA)와 계약을 맺고 역 곳곳에 3,000개의 보안 감시 카메라와 동작 감지 센서를 설치하기로 했다. 수상쩍은 패키지와, 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감지하기 위한 조처다. 하지만 본래 광고한 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다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까지 높아지면서 2억달러 규모의 계약은 2009년 취소되었다.

탄도미사일과 전투기를 만드는 회사가 민간인의 세금 문제를 처리하고, 일반 대중의 지문과 DNA 정보에 접근하며, 그들이 주고받는 소포까지 스캔한다는 사실은 상상만 해도 웬지 으스스하다. 그러나 정보 수집과 온갖 감시망을 통해 개인 정보를 수집, 관리하려는 록히드 마틴의 야심은 더없이 강렬해 보인다. ‘고용 스파이’ (Spies for hire)라는 책으로 유명한 팀 셔록 (Tim Shorrock)은 록히드 마틴이 “세계에서 가장 큰 군수 계약사이자 사설 첩보 기관”이라고 주장했다. 미국민의 모든 개인 정보를 한데 통합하는 미 국가안전보장국 (NSA)의 이른바 ‘통합 정보 인지’ (Total Information Awareness, TIA) 프로그램에도 록히드 마틴은 깊숙이 관여한 바 있다. 전화번호, 신용카드 번호 등 모든 개인정보를 한 시스템으로 통합하겠다는 이 프로그램은 2002년 제안되었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았고, 이듬해 의회의 예산 삭감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NSA에 의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음모론도 만만찮다.


록히드 마틴의 F-22 제작 공장. 구글에서 퍼옴.



TIA 프로그램의 취소, MTA 감시 카메라 프로젝트의 좌절 등에도 불구하고 록히드 마틴의 비즈니스는 여전히 공고해 보인다. 2009년에는 그 해 매출총액 450억달러 (약 50조원) 중 미국 정부와의 계약으로만 380억달러 (약 42조원)의 매출을 올려 세계 기업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국방부, 에너지부를 비롯해 농무부, 환경보호국 등 20여 부처와 기구에 서비스 계약을 맺고 있으며, 중앙정보부 (CIA),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IRS), 국가안전보장국 (NSA), 국방부, 인구 조사국, 미국 우정(郵政) 공사 등을 위해 감시 및 정보 처리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근래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교통안전청 (TSA)이 공항 검색을 강화하면서 논란이 된 ‘몸 더듬기 검사 (pat down)' 프로그램에도 관여했다.

물론 록히드 마틴의 핵심 사업은 집속탄 (集束彈, Cluster bomb) 생산, 핵무기 설계, 전투기 제작 같은 군수 분야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무기 판매를 넘어 첩보 및 정보경영 분야에까지 손길을 미치고 있다. 쿠바의 관타나모만,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등 미군이 해외에서 관리하는 형무소의 수감자를 심문하기 위한 요원을 선발하는가 하면, 파키스탄에서는 사설 첩보망을 운영하고 있고,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의 헌법을 작성하는 데도 관여했다.

도대체 어떻게 록히드 마틴은 군수 회사의 영역을 넘어 웬만한 정부 못지 않은 ‘빅 브라더’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하텅 씨는 1990년대 록히드가 아직 마틴 마리에타와 합병하기 전, 주 정부와 시 정부에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이터콤 (Datacom)을 인수해 ‘록히드 정보 관리 서비스’ (Lockheed Information Management Services, IMS) 부문으로 발전시킨 대목을 그 계기로 본다. 록히드 IMS는 이후 미국내 44개 주와 해외 여러 나라들에서 계약을 따냈다. 그 결과 주차료 징수 프로그램이나 자녀 양육비를 내지 않는 아버지들을 추적하는 시스템, 정부의 실업자 정책에 따른 직업 훈련 프로그램 등을 선보였으나 몇몇 큼직큼직한 실패를 경험하면서 월가의 압력을 받았고, 결국 2001년 매각했다. 그러나 이즈음 록히드 마틴은 이미 비(非) 무기 사업, 특히 데이터 수집 및 처리 부문의 잠재성과 매력을 간파했고, 연방 국세청, 인구 조사국, 미 우정 공사 등 여러 정부 기관들의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록히드 마틴은 현재 미 정부의 거의 모든 정보 업무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다.

현재 록히드 마틴은 미국의 실질적 ‘그림자 정부’라는 명성을 곳곳에서, 그러나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록히드 마틴은 펜타곤 (국방부)뿐 아니라 에너지부로부터도 가장 많은 계약을 따낸 ‘넘버 원’ 기업이며, 미 국무부에서는 두 번째, 미 항공우주국에서는 세 번째, 법무부와 주택 및 도시개발부에서는 네 번째로 많은 계약을 따냈다. 그뿐 아니라 농무부, 토지관리부, 인구조사국, 해안경비대, 국토안보부, 교육부, 환경보호국, 연방항공청, 식약청, 교통부, 국립보건원 등 미국의 거의 모든 정부 기관과 하위 부처, 공사 등에까지 발을 들여놓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군산복합체’라는 말을 군과 무기의 영역을 넘어 개인 정보의 영역에까지 확장해 명실상부한 ‘21세기의 빅 브라더’로 자리매김해 가는 록히드 마틴. 이 거대 기업의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기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일까?




(엠톡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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