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30일 월요일

꿈틀대는 ‘팔레스타인의 봄’

중동 혁명 여파로 손 맞잡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하마스

오바마의 1967년 이전 국경 인정 요구에 이스라엘은 어떻게 대응할까


 


“63년 전, 13살짜리 한 팔레스타인 소년은 집을 떠나 시리아로 가족과 함께 도망쳐야 했다. 그는 난민들에게 제공된 천막에 자리를 잡았다. 그와 그의 가족은 지난 수십 년간 고향 집과 고국으로 돌아가기 기원했지만, 이런 인간의 가장 기본적 권리를 거부당했다. 이 소년의 이야기는 다른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사연처럼, 바로 내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청년 깨운 아랍 혁명



이 글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5월16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다. ‘오랫동안 지체된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그는 독립국가 수립을 향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았다. 그는 지금 왜 이런 글을 미국 일간지에 보냈을까? ‘팔레스타인의 봄’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5월15일 '나크바(대재앙)의 날'을 맞아 서안 지역과 예루살렘 사이의 이스라엘 검문소 앞에서 이스라엘의 점령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봄바람은 살랑인다.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가 4년간의 분열 끝에 손을 맞잡았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수반과 칼레드 마샤알 하마스 최고지도자는 5월3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통합정부 출범 등을 포함한 화합협정을 체결했다. 아바스는 “분열의 검은 페이지를 영원히 넘겼다. 평화를 향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양대 정파는 조만간 과도정부를 구성한 뒤 1년 안에 요르단강 서안 지역과 가자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총선 및 정부 수반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이런 분위기는 분열과 대립으로 점철된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놀라운 변화다. 팔레스타인을 양분한 두 정파는 2006년 1월 총선에서 강경 하마스가 압승했으나 온건 파타당과 서방이 승리를 인정하지 않아 갈등이 깊어졌고, 2007년 6월 내전까지 벌인 끝에 팔레스타인은 온건 파타가 주축인 요르단강 서안의 자치정부와 가자지구의 하마스 정부로 쪼개진 채 대립해왔다. 화합협정 체결 뒤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아바스는 7월9일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10월22일로 미뤄 하마스도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등 화합 분위기를 키워가고 있다.

두 정파의 화해는 중동을 휩쓴 민주화 혁명의 열매다. 친미 성향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미국의 압력을 받아 두 정파의 화해에 미온적이었지만, 그가 권좌에서 쫓겨난 뒤 전격적으로 타협이 이뤄졌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칼레드 엘진디 연구원은 “수년간 못하던 화해협정을 아랍의 봄 뒤 몇 주 만에 체결한 것은 중동의 민주화가 이집트와 중동에 끼친 영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젊은 층이 주도한 아랍의 시민혁명은 팔레스타인의 청년들도 깨웠다. 수십 년간 집권한 장기 독재자를 쫓아낼 수 있는 민중의 힘을 목격한 이들은 팔레스타인 정치 엘리트에 분열의 정치를 끝내도록 강력히 요구했다. 양대 정파를 협상 테이블로 이끈 힘이다. 또 아랍의 시민혁명은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억압의 점령을 끝내라는 저항의 열기를 불어넣었다. 이런 열기는 5월15일 드러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일이자 그들에겐 ‘나크바(대재앙)의 날’인 5월15일을 맞아, 시리아와 레바논 국경 일대와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지역, 예루살렘 등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점령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특히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때 시리아에서 빼앗은 골란고원에서는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국경을 넘어갔다가 4명이 총에 맞아 숨지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5월17일 “아랍을 휩쓴 봉기에 고무된 시위는 고국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인들이 60여 년 전 잃어버린 집을 요구하며 떨쳐 일어나게 했다”고 전했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살폭탄 테러에서 비무장 대중 시위로 전략을 바꿈에 따라 이스라엘은 그리 단순하지 않은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바마,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등 돌려주라”



미국의 대팔레스타인 정책 전환도 팔레스타인의 봄을 재촉하고 있다. 친이스라엘 정책을 벗어나지 못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5월19일 연설에서 변화를 예고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은 1967년 당시 경계에 근거를 두고 영토교환에 합의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안정적이고 명확한 국경선이 두 나라를 위해 설정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곧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을 통해 빼앗은 동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 등을 팔레스타인에 돌려주라는 말이다. 오바마는 “현상유지는 지속될 수 없고, 이스라엘은 지속적인 평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과감히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평화재단 스콧 라슨스키 연구원은 “미국이 1967년 전 국경선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기본으로 정하는 것을 지지했지만, 이를 정책적으로 공식화한 게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미국이 테러조직으로 간주한 하마스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는 지켜볼 대목이다. 팔레스타인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지원하는 한 해 수백만달러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하마스가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는 것 못잖게 미국과 유럽연합의 하마스에 대한 태도 변화가 관건이다. 오바마는 5월19일 연설에서 “상대방의 존재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쪽과 어떻게 협상을 벌일 수 있겠느냐?”며 “향후 몇 주, 몇 달 안에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이런 질문에 신뢰할 만한 대답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1993년 파타가 주축이 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당시 의장은 이스라엘과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이스라엘과 공존을 모색했지만,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무력투쟁 노선을 걸어온 사실을 염두에 둔 촉구성 메시지다.





»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는 지난 4월27일 통합정부 구성 등에 합의했다. 2007년 3월17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마무드 아바스(왼쪽)와 하마스 행정부 이스마일 하니야 총리가 단일정부 구성에 합의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팔레스타인에도 과연 봄은 올까? 양대 정파가 화해협정대로 실천하느냐가 첫 관문이다. 두 정파는 2009년 9월에도 수반 선거와 총선 일정에 합의했다가 수개월 뒤 약속을 뒤집고 대립하는 등 분열을 되풀이해왔다. 달라졌다면, 이제 팔레스타인의 젊은 층이 독립국가 건립이라는 염원을 가로막는 두 정파의 분열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을 겨냥한 분노는 언제든 그들을 겨눌 수 있다. 두 정파가 화해협정을 맺은 뒤 환호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은 그 희망의 간절함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두 정파의 화해가 불안한 수준이라면, 이스라엘의 ‘딴죽’은 직접적 위협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화해협정이 “평화에 대한 심각한 타격이자 테러리즘의 대승리”라며 “하마스와의 협정을 무효화하고 이스라엘과 평화의 길을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네타냐후가 “팔레스타인 정부의 절반이 이스라엘의 파멸을 요구하고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을 미화하는데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밝힌 데서, 이스라엘의 하마스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난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두 정파가 화해협정을 체결한 직후 팔레스타인을 대신해서 대리 징수한 세금 이전을 한때 중단했다. 연간 10억~14억달러에 달하는 이 돈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예산의 3분의 1 가까이 이른다.



팔레스타인으로 기우는 국제여론





» 이스라엘 국경 지역
사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타협하기 어려운 간극이 있다. 하마스는 “우리 목표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독립적인 팔레스타인 주권국가를 요르단강 서안 지역과 가자지구에 수립하는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오바마가 5월19일 밝힌 것과 마찬가지로 1967년 이전 국경을 독립국가 출범을 위한 이스라엘과의 대화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5월19일 오바마 연설 뒤 “팔레스타인의 존립은 유대인 국가의 존립을 희생해서 얻어질 수 없다. 1967년 경계는 옹호할 여지가 없다”며, 동예루살렘 등을 양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앞선 5월16일에 네타냐후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의 조건으로 팔레스타인의 무장해제, 요르단강 연안 및 서안 지역의 이스라엘군 장기 주둔, 주요 정착촌 유지 등을 내걸고 있다. 어느 하나 팔레스타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팔레스타인을 자극하는 유대인 정착촌 건설은 지난해 9월 이후 재개돼 계속되고 있다. 사실 이스라엘은 1993년 맺은 역사적인 오슬로 평화협정에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등 점령지를 반환해 팔레스타인 자치국가를 설립토록 하고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보장받는 ‘땅과 평화의 교환’ 원칙을 지키지 않아 왔다.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1967년 국경선 이전으로 돌아서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오는 9월 유엔총회에서 독립국가로 승인받기를 추진하고 있다. 아바스 수반이 5월16일 <뉴욕타임스>에 글을 보낸 것도 5월19일 오바마의 대중동 정책 발표 및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5월20일 미국 방문에 앞서 ‘경고’를 보낸 셈이다. 아바스는 “팔레스타인은 우리 앞에 던져지는 어떤 조건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패배자가 아니라, 자국의 영토가 다른 나라에 의해 군사적으로 점령된 유엔의 한 회원국으로서 협상을 벌여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두 정파가 화해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게 됐다. 팔레스타인은 유엔총회의 독립국가 승인이 이뤄지면,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은 5월19일 “오바마의 연설로 팔레스타인이 미국이 반대하는 유엔총회(의 독립국가) 승인 추진을 포기할지는 불투명하다”고 내다봤다. 팔레스타인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크고, 승인을 포기한다고 중단된 이스라엘과의 대화 재개를 보장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사마 빈라덴은 미군에 사살되기 전 녹화된 마지막 동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에 안정적으로 살 때까지는 미국은 안전을 꿈꿀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형제가 가자에서 불안정 속에 사는데 너희은 평화롭게 사는 것은 불공평하다.” 극단주의자의 말이긴 하지만, 아랍인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화당에서 “이스라엘을 배신했다. 통탄할 실수를 저질렀다”고 반발했지만, 미국은 5월19일 오바마의 정책 전환으로 일단 평화의 계기는 만들었다. 미국은 정부 차관과 민간 지원으로 한 해 약 100억달러를 이스라엘에 지원하고 있는 만큼, 이런 지렛대를 얼마나 활용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오바마는 5월19일 연설에서 예루살렘과 서안 지역 분할 및 팔레스타인 난민 등 난마처럼 얽힌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구체적인 청사진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선택이 변수



홍미정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는 5월20일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의 정착촌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은 앞으로도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이스라엘의 태도가 바뀌어야 팔레스타인 문제가 실제로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이 유엔총회에서 독립국가로 승인받더라도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중동발 봄바람은 미국의 정책 변화로 더 거세졌다. 결국 이 역사적 흐름을 따를지는 이스라엘의 선택에 달렸다.

김순배 기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