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0일 화요일

설탕의 달콤한 그리고 치명적 유혹

회사원 신상익 씨(40)는 설탕 마니아다. 그는 당분이 몸에 좋지 않다고 알고 있지만 커피에 곽 설탕 서너 개 이상을 넣어 먹는다. 음식을 먹을 때도 달지 않으면 맛이 없어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신씨는 키 165㎝, 몸무게 82㎏으로 체질량지수(BMI)가 30이다. 그는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비만이 된 이유가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설탕 입맛'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신씨는 유아기였을 당시 밥을 먹지 않아 엄마가 밥에 설탕을 비벼서 주곤 했다고 회상한다. 신씨의 어린아이도 그의 영향을 받아 설탕을 무척 좋아한다. 갓난아이 때부터 쓴 약을 먹거나 음식을 먹일 때 설탕을 듬뿍 섞어 먹이곤 했던 게 그 이유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인구 4명 중 1명꼴로 앓고 있는 현대병(비만, 성장저해, 성인병, 우울증)의 주범이 '설탕 중독'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낸시 애플턴 박사(설탕중독 저자)는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면 치아만 썩는 것이 아니라 뇌와 세포의 손상으로 이어져 치매나 암, 간질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학협회 회원들도 설탕의 위험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 하루 설탕 소비량은 반 컵으로

= 우리는 매일 설탕이나 감미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 하루에 한 병, 두 병, 세 병, 혹은 네 병을 넘는 탄산음료를 마신다.

또 모닝커피를 달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넣는가? 설탕 아니면 꿀을 넣거나 도넛을 곁들여 먹는다. 매번 식사 후에도 달콤한 디저트를 주문하거나 대부분 설탕으로 범벅을 한 과자를 먹는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신생아들도 집으로 가기 전에 병ㆍ의원에서 포도당이 5% 섞인 정맥영양제를 맞는다.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설탕(당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문제는 과잉 섭취다. 설탕이 중독물질로 간주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부터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몸은 당(糖)이 저장되기 때문에 당에 중독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 중 탄수화물은 모두 포도당으로 분해된다. 단백질과 지방 역시 일부 포도당으로 분해된다. 이 때문에 우리 몸은 항상 당을 보유하고 있다.

설탕 소비는 미국이 1966년부터 공식적으로 처음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과잉섭취' '중독' 여부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인의 한 해 설탕 소비량은 1966년 54㎏이었는데, 그 후에 점차 늘어 1990년에는 90㎏으로 최정점을 기록했다.

현재 1인당 연간 설탕 소비량이 66㎏으로 떨어졌지만 이는 하루 반 컵 정도의 분량으로 여전히 과잉 섭취를 하고 있다.

설탕 중독은 최근 들어 과학계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일반인들은 오래 전부터 설탕에 중독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중독은 3단계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먼저 설탕 섭취가 늘어난다. 둘째 설탕을 제한했을 경우 금단 현상이 찾아오고, 셋째 설탕에 대한 갈망을 못 견뎌 설탕을 다시 찾게 된다.

마약, 알코올, 설탕 모두 중독에 빠진 사람은 내분비계를 손상시키는 물질을 끊임없이 더 많이 섭취하게 된다. 어떤 물질에 중독됐을 경우 그 물질이 없으면 뇌 안의 세로토닌 수치가 떨어져 뇌 의존성을 만들어낸다. 결국 뇌의 신경전달물질로 몸 전체에 자극을 전달하는 세로토닌은 기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중독물질을 계속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 설탕 과잉 섭취 땐 췌장 망가져

= 설탕을 먹게 되면 제일 먼저 췌장이 알아챈다. 설탕을 섭취하면 혈당이 오르고 췌장이 인슐린을 분비한다. 인슐린이 분비되면 혈당이 낮아지고 항상성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췌장이 감당하기 어려을 정도로 설탕을 많이 먹었을 경우 지쳐버린 췌장은 인슐린을 과다하거나 부족하게 분비한다. 인슐린이 너무 많이 분비되면 혈액 내 당이 불충분해 '저혈당'이 나타난다. 반면에 췌장이 인슐린을 충분하게 분비하지 않으면 혈액이 당을 과다하게 흡수해 '고혈당증'이나 '당뇨병'이 생긴다.

췌장이 곤경에 처하게 되면 서로 지원을 약속(?)한 일부 다른 장기들이 너무 많거나 적은 양의 호르몬을 혈류로 내보낸다. 이럴 경우 내분비체계가 혼란에 빠져 저혈당, 당뇨병을 비롯해 갑상선 증상, 부신고갈로 인한 만성피로 등이 나타난다.

설탕은 면역체계도 억제하여 감염과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그 이유는 설탕이 포식세포(강력한 면역기능과 유해한 세균을 먹어 치우는 백혈구)의 수치를 낮춰 면역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높은 혈당은 비만으로 이어진다. 당분이 많은 음식을 먹고 나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많은 양의 포도당이 지방으로 전환된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의 제프리 고든 박사가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설탕(당분)과 비만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바 있다.

존스 홉킨스 불룸버그대학의 공중보건센터는 지금과 같이 '고당분 식습관'을 유지할 경우 미국 성인 중 75%, 어린이와 청소년 중 24%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미국식 식습관을 따라가는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미국은 비만 관련 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매년 28만~32만명을 웃돌고 있다.


 

◆ 암 찾는 검사 때 포도당 주입

= 설탕이 충치를 유발한다는 데 이의를 다는 치과의사들이 거의 없다. 설탕이 심장병, 뇌졸중, 당뇨병, 암을 만든다는 견해에 동의하는 의사들이 많지 않지만 최근 들어 이 주장에 공감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설탕은 치매라고 불리는 뇌의 부식을 유발한다고 낸시 애플턴 박사는 주장한다.

그 이유는 설탕의 대사과정에서 생기는 최종 산물이 신경종말을 직접 공격하기 때문이고, 보다 더 널리 수용되는 견해는 뇌졸중, 고혈압, 당뇨병이 모두 뇌 속 혈액의 흐름을 막아 뇌세포가 죽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혈당수치가 정상인 여성의 경우 치매증상이 악화된 사람은 6%였지만 당뇨병 환자는 12%에 달했다.

암 발병에도 설탕이 작용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암은 세포가 손상되거나 비정상적일 때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하는 병이다. 암은 또 설탕을 먹고 산다는 증거도 있다. PET(양전자방출 단층촬영술)를 할 때 약간의 방사성 포도당 용액을 혈류에 주입한 후 암을 찾아내는 이유가 바로 암이 설탕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용액이 암에 곧바로 도달하면 방사선이 뇌와 기타 조직의 비정상적인 부분을 빛나게 하여 암을 찾는다.

설탕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뭐든지 설탕 양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 커피나 차, 레모네이드 등에 설탕을 반만 넣어 먹도록 한다. 또 이미 설탕이 들어간 식품은 아예 사지를 말고 가급적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조=설탕중독(낸시 애플턴ㆍ제이콥스 지음, 싸이프레스 출간)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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