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3일 금요일

현대판 바벨론 신비종교, 천주교

현대판 바벨론 신비종교, 천주교


 태양신을 숭배하는 미트라교가 달의 여신(성모 마리아와 동일시)을 숭배하는 이시스교와 더불어 천주교로 흡수되었습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삿 2: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삿 3:7).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삼상 12:10).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왕상 18:19).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망하게 한 대표적인 우상 두 가지는 바알과 아스다롯(아세라)입니다. 이러한 우상숭배 풍습은 위로는 원시 바벨론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아래로는 지금의 천주교까지 이어집니다. 바알은 태양신 숭배사상을 대변하며 아세라는 모자신(어미신과 아들신) 숭배사상을 대변하는데 이 양자는 기독교적인 용어로 채색된 채 천주교 안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리실 테지만 아래의 내용을 공정한 마음으로 읽어보시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납득하게 되실 겁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제게 학문적인 측면에서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셨던 어떤 교수님으로부터 천주교에 대해 잠시 배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 교수님께서 워낙 박학다식하고 언변이 뛰어나셔서 천주교에 대한 그분의 가르침도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분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개신교회 안에서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이 천주교를 대적하고 이단시하는데 이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망발이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언동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유주의 신학에 감염된 신학자나 목회자들은 천주교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천주교에 대한 태도는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정도를 가늠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종이라고나 할까요?)

   신학생이 되기 전에 천주교에 대해 신비롭게 채색된 애니메이션을 많이 접했던 저는 본래 천주교에 대해 막연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천주교에서 명성을 떨쳤던 성자들 가운데 존경하는 분들도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공감은 머리에서만 맴돌았고 가슴으로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랐으나, 훗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천주교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고 분석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늘날 우리가 천주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좋은 이미지들은 작위적으로 세뇌된 결과일 뿐 결코 진실에 근거한 결과가 아닙니다.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기독교라는 종교는 개신교, 성공회, 동방정교회, 로마교회까지 크게 네 가지 교파로 구성됩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이라고 하면 로마교회와 동방정교회를 통칭합니다. 이하에서는 성공회와 동방정교회는 제외하고 논의의 초점을 로마교회에만 한정짓고자 합니다. 용어 또한 혼동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 ‘가톨릭’ 대신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명칭인 ‘천주교’로 통일하겠습니다.

   ‘바티칸’(Vatican)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여러분은 제일 먼저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뇌리에는 천주교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교황청에 대한 생각이 스쳐지나갈 겁니다. 오늘날의 바티칸이란 곧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도시국가입니다. 바티칸 시국은 국제법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권국입니다. 비록 크기는 작을지라도 단일한 지휘계통을 가진 전 세계의 모든 가톨릭교회(천주교) 위에 군림하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하에서는 천주교 안에서도 일반적인 성직자나 신도들은 제외하고 교황청을 필두로 한 고위급 수뇌부만을 별도로 지칭할 때 ‘바티칸’이라는 용어를 대유적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유럽영성순례서 본 가톨릭 힘의 뿌리"라는 제목의 한겨레 신문의 보도자료 가운데 일부를 발췌해보았습니다.





  265대 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이르기까지 교황은 로마 교구의 교구장 주교이자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서방교회의 최고 사제, 총대주교, 이탈리아의 수석 대주교, 바티칸시국의 원수, 세계 주교단 단장, 수위권(首位權) 등으로 불려왔다.

   교황이 이끄는 바티칸시국은 불과 0.44㎢에 1천명 안팎의 인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다. 하지만 전세계에 가장 많은 국가와 수교하고, 독자적인 화폐와 우표, 신문, 방송국까지 경영하는 독립 국가다. 교황청엔 국무원과 9개의 성, 법원, 평의회, 학술원, 사무처들이 있다. 하지만 교황청의 힘이 바티칸시국 국경 선 안에만 갇혀 있다고 보면 오산이다. 교황청이 설립한 올비노대와 라테란대 등 종합대학과 수많은 단과대, 신학대, 성당, 수도원 등이 바티칸 시국 바깥에 산재해 있다. 이런 대학들에 한국에서 유학 온 사제와 수녀 등 150여명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온 성직자·신자 수만명이 상주하고 있다.

   교황권이 미치는 영역은 로마만이 아니다. 전세계적이다. 교황은 세계 5천여명의 주교 임명권을 갖고 있다. 사제들은 주교에게, 주교는 교황에게 '순명'하는 게 가톨릭의 철칙이다. 교황권은 세계 사제 40만9천여명(모두 2008년 기준), 수사 5만4천여명, 수녀 74만여명한테 미친다. 그리고 11억6500여만명의 가톨릭 신자를 하나로 묶어내면서 거대한 '가톨릭 파워'가 된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력의 뿌리인 교황권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에 충실할 때 인류에겐 희망이 비쳤다. 하지만 교황권이 그리스도의 본래 정신을 상실할 때는 인류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대희년을 맞은 2000년 사순절 '참회 미사'에서 고백한 십자군 원정과 종교재판, 마녀사냥, 유대인 대학살 방조 등이 그런 경우였다.

   그처럼 단일 절대 권력 체제는 경직화해 폭력적 우익과 결합하거나 개인의 인권을 도외시할 수 있다. 가톨릭 조직의 야누스적인 면모를 파헤친 퓰리처상 수상자 게리 윌스의 <교황의 죄>라든가,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 등은 이를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벌의 부정을 파헤치고 환경 생명 살림을 외쳤던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표 전종훈 신부가 서울대교구 정진석 교구장에 의해 이례적으로 4년째 '안식년 발령'이 지속돼 사실상 징계를 받고 있는 상황도 이런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계 18:24).

   위 말씀은 과거에 천주교가 저지른 엄청난 만행(이어지는 소단원에서 자세히 다룹니다.)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해당 구절에서 ‘그 성’이란 큰 성 바벨론과 동일한 말인데 이는 천주교의 수뇌부로서의 바티칸을 가리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실제로 바티칸은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당시의 왕족들과 결탁했고 종교재판이라는 복술로 만국을 미혹하여 진리를 깨달은 수많은 선지자들과 성도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그 어떤 집단도 바티칸처럼 잔혹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상하지는 않았습니다. 고대의 그 어떤 정복군주도, 그 어떤 독재자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악독하게 고문하면서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인류의 역사 전체를 살펴보더라도 바티칸이 큰 성 바벨론일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원시 바벨론의 신들 가운데 벨(Bel)이라고 불리기도 한 벨로스(Belos)의 그리스 식 이름은 제우스(Zeus)입니다. 벨과 제우스에 대해서는 성경에서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내가 벨(Bel)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끌어내리니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로 몰려가지 아니하겠고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렘 51:44-45).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행 14:11-13).


   이처럼 바벨론 문명은 초대교회의 배경이 된 로마문명 속에도 깊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원시 바벨론과 로마 사이에는 무려 1,500년 이상의 간격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요? 애당초 적그리스도적인 바벨론 문명이 전 세계로 퍼진 이유는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 여기서 바벨론이란 유다왕국을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가 아니라 바벨탑을 쌓은 원시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노아의 대홍수 이후 함의 장남이자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이 등장하여 최초의 정복군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시날 4성읍과 앗수르 4성읍을 건축하여 원시 바벨론 문명을 건설했습니다(창 10:9-12). 바벨론의 초대군주인 그의 영토는 시날 땅의 바벨, 에렉, 악갓, 갈레까지 이르렀습니다(창10:8-10, 대상 1:10, 미 5:6).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창 10:8-9).

   ‘여호와 앞에서’라는 단어는 문맥상 ‘여호와를 대적하여’로 해석됩니다. 니므롯은 여호와를 대적하는 흉폭한 사냥꾼이었습니다. 사냥꾼이란 말 그대로 짐승을 잘 잡는 사람을 뜻하지만 인간을 잘 잡는 사람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짐승 사냥꾼이자 인간 사냥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자나 곰과 같은 야생동물이 인간에게 실로 큰 위협이었기 때문에 그의 짐승 사냥꾼으로서 자질은 많은 명성과 재물을 얻는 기반이 되었을 겁니다. 이를 토대로 세력을 확장한 그는 강력한 인간 사냥꾼(정복군주)이 되어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고 결국 천하를 제패했을 겁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바벨론 문명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류의 언어가 하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벨론 문명권 안에서 니므롯의 통치하에 살고 있었습니다(창 11:1).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의 인류를 향해 전 세계로 흩어져서 각각의 문명을 이룰 것을 명하셨을 것입니다(창 11:4). 유대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자신의 권력이 흔들릴 것을 우려한 니므롯은 전제정치를 확립하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메소포타미아의 시날 평지 위에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하셨습니다(창 11:9).

   이 때문에 인류는 서로 말이 통하는 무리들끼리 뭉쳐서 사방으로 뿔뿔이 이주해갔습니다. 비록 언어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전까지 공유하던 바벨론 문명은 사람들의 삶 가운데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각각의 무리는 서로 다른 정착지에서 바벨론 문명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문명을 일구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본바탕 자체가 바벨론 문명이었던 탓에 그 이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을지라도 여전히 공통점이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고대문명들의 뿌리는 종교입니다. 모든 삶이 종교를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다 변할지도 종교사상만큼은 쉽사리 바뀌지 못합니다. 그래서 언어의 혼잡사건 이후 많은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에서 피어난 다양한 문명들 속에는 여전히 바벨론의 종교적 특성이 짙게 남아있었습니다. 언어의 혼잡사건으로 인해 비록 명칭 자체는 달라졌으나 태양신을 숭배하는 사상은 줄기차게 이어졌습니다. 또한 어미 신(하늘의 여왕)과 아들 신 숭배 사상도 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런 요소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의 모든 우상종교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성경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일컬어 ‘큰 성 바벨론’이라고 부릅니다(렘 51:44-45, 계 14:8, 계 17:4-5, 계 18:2-3, 계 18:10, 계 18:21). 즉, 재건된 인류역사 초기의 바벨론 문명은 적그리스도 세력의 영적 DNA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대로 말세에는 바벨론이 재건됩니다. 세계단일정부에서 시작되었던 인류의 문명이 언어의 혼잡사건 이후 우여곡절 끝에 결국 또다시 세계단일정부로 회귀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 타락한 인간의 죄성에 기인한 불가피한 귀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말세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징조를 잘 분별하고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바벨론 문명의 특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바벨론 문명을 가장 잘 이어받은 세력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로마가톨릭교회(천주교)입니다. 천주교는 외연만 기독교적인 분위기로 채색된 또 하나의 바벨론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벨론 문명을 거의 완벽하게 계승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비밀종교는 노아의 대홍수 이후 최초의 적그리스도인 니므롯에 의해 만들어진 사탄숭배종교입니다. 비밀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이는 이유는 바벨론의 종교가 그 어떤 대상과도 교묘하게 뒤섞을 수 있는 은밀한 상징들로 대변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밀교에는 많은 특징들이 있지만 딱 두 가지만 꼽으라면 '태양신 숭배사상'과 '어미 신 및 아들 신 숭배사상'을 들 수 있습니다. 개신교와 유대교를 제외하면 바벨론 밀교는 현존하는 거의 모든 우상숭배 종교들의 원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니므롯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스스로를 태양신으로 신격화시켰습니다. 이때부터 니므롯의 호칭은 ‘주인’이라는 뜻의 바알(Baal) 혹은 벨루스(Belus)로 정해졌으며,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의 호칭은 ‘여주인’이라는 뜻의 바알티(Baalti) 혹은 벨티스(Beltis)로 정해졌습니다. 이를 통해 강력한 전제정치를 확립한 니므롯은 기념으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비록 그의 계획은 도중에 좌절되었지만 태양신 숭배사상만큼은 사람들의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시켰습니다.

   한편, 세미라미스는 남편 니므롯이 죽은 다음에 사생아를 낳고 담무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언어혼잡 사건 이후에도 남편의 후광 덕분에 세미라미스는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녀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에게는 니므롯을 대신한 여왕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영악한 세미라미스는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기 위한 계략을 획책합니다. 그것은 그때 당시 사람들에게도 구전을 통해 널리 퍼져있었을 구세주 사상을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구상을 마친 세미라미스는 자신이 낳은 아들 담무즈가 태양신 니므롯의 환생일 뿐만 아니라 여인의 후손, 곧 구세주(창 3:15)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바벨론의 수많은 기념비들은 어미 여신 세미라미스가 아들신 담무즈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비록 언어가 혼잡케 되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을지라도 태양신 숭배사상뿐만 아니라 구세주에 대한 공통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사상이 빠르게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자신(어미 신과 아들 신) 숭배사상으로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언어가 다르다 보니, 모자신에 대한 호칭 역시 다양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Alexander Hislop, 안티오크 번역실 역, 『두 개의 바빌론』(서울:도서출판 안티오크, 1997), 28-30.]

   고대의 저명한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종교들의 의식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의 시초가 바벨론 밀교임을 증언했습니다. 분섹 역시 이집트의 종교제도가 원시 바벨론 문명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레아야드는 자신의 저서 『니느웨와 그 유적들』을 통해 원시 바벨론 문명으로부터 모든 우상숭배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구속사와 세속사가 동일하게 증언하는 바라고 설파했습니다.

   담무즈는 니므롯의 환생이라고 여겨졌으므로 그의 아버지의 호칭인 바알 역시 담무즈에게도 고스란히 붙여졌습니다. 한편, 세미라미스가 원래 가지고 있던 바알티라는 호칭에는 중보자의 의미가 더해지면서 밀리타(Milita)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어미신 세미라미스가 아들신 담무즈와 사람들을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천주교에서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는 중보자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고대의 중국인들은 아들 신을 안고 있는 어미 여신을 ‘싱무’(Shingmoo)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거룩한 어머니, 곧 성모(聖母)입니다. 또한 드루이드 교도들은 어미 여신 비르가 파티튜라(Virga-Patitura)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숭배했습니다. 이집트의 어미신 이시스(Isis)의 별칭 역시 ‘하나님의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여 섬겼던 아스다롯(아세라)의 별칭은 ‘하늘의 여왕(모후)’이었습니다.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함이냐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렘 7:17-19).

   이처럼 오늘날 천주교가 마리아에게 붙여준 ‘(신적인) 중보자’, ‘성모’, ‘하나님의 어머니’, ‘하늘의 여왕(모후)’이라는 호칭들은 놀랍게도 바벨론 밀교의 영향을 받은 이교도들이 문자 그대로 사용하던 별칭들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아데미(Ardemis) 역시 성모, 하나님의 어머니, 하늘의 여왕 등의 별칭으로 불리는 세미라미스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행 19:34).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행 19:27).


   위 말씀에서 잘 드러나듯 위대한 어미 여신을 숭배하는 사상은 로마제국 전체에 심각하게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비문들은 모자신이 그 당시 로마 사회에서 엄청난 영예를 누리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현상은 비단 로마에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독일, 불가리아 등 다른 지방들에서도 발생했습니다. [James George Frazer, The Golden Bough, 박규태 역, 황금가지(서울: 을유문화사, 2005), 제1권, 356.]

   아기를 안고 있는 여신 밀리타가 앗시리아에서는 이쉬타르(Ishtar, 이스터)로, 슈메르에서는 나나(Nana)로, 페니키아에서는 아스다롯(Ashtaroth)으로,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Aphrodite) 혹은 케레스(Ceres)로, 독일에서는 헤르타(Hertha)로,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디사(Disa)로, 에투리아 지방에서는 누트리아(Nutria)로, 인도에서는 인드라니(Indrani)로 불렸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고린도에서는 아프로디테(Aphrodite)로, 에베소에서는 다이아나(Diana) 혹은 아르테미스(Atremis, 아데미)로 불렸다고 합니다.



   한편, 바알인 니므롯(담무즈)은 니누스(Ninus), 솔(Sol), 아도니스(Adonis), 플루투스(Plutus), 바쿠스(Bacchus), 아폴로(Apollo), 제우스(Zeus) 등으로 불렸습니다. 어미신과 아들신이 모자신으로서 짝을 이루어 지칭되기도 했는데 이집트에서는 이시스(Isis)와 호루스(Horus)로, 인도에서는 이시(Isi)와 이스와라(Iswara)로, 소아시아에서는 시벨레(Cybele)와 데오이우스(Deoius)로, 로마에서는 비너스(Venus)와 쥬피터(Jupiter)로 불렸다고 합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두 신의 이름이 함께 언급됩니다.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행 19:35).

   물론 학자들에 따라 호칭이나 그 호칭에 부여된 의미에 차이가 많습니다. 같은 신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제각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국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설명하면, 구약시대에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겼던 바로 그 바알과 아세라이며, 이는 원시 바벨론에서의 니므롯(담무즈) 및 세미라미스와 직결됩니다. 이처럼 바벨론 밀교는 인류역사상 이어져온 거의 모든 우상숭배 종교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를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5).
 
 
   정리하면, 바벨탑의 언어혼잡사건 이후 니므롯의 통치 아래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지구의 곳곳에 정착하여 새로운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곳곳에서 왕국이 세워졌고 더 나아가 제국도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열국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끊임없이 힘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로마제국이 출현하여 발견된 거의 모든 세계를 정복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명실 공히 세계제국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무력만으로는 세계제국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알렉산더가 세운 헬레니즘 제국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던 로마제국은 특별한 위협만 되지 않는다면 정복지의 모든 문화들을 고스란히 포용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로 인해 바벨론 문명을 모태로 하여 전 세계 곳곳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던 제반 문명들은 로마제국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서 재차 집대성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바벨론 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정복지들 가운데 매우 이질적인 문명을 가진 민족이 하나 섞여 있었는데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속에서 더욱 이질적인 문명이 갑자기 출현했으니 소위 유대교 예수파(기독교)였습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던 이 기독교가 갑자기 급성장하면서 로마제국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해갔습니다. 이에 당황한 로마제국에서는 기독교인들을 모질게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멸되기는커녕 성장이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급기야 로마제국 내에서의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큰 세력이 되었습니다.

   한편, 로마제국 내에서도 복잡한 역학구도 가운데 정치적인 파워게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는 정략적으로 기독교 세력과 결탁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했습니다. 문제는 전술한 것처럼 로마제국이 제2의 바벨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교도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기독교 세력을 이용하여 정권을 잡자 그의 입장은 달라졌습니다. 통치기반을 보다 공고히 다지려면 바벨론 종교에 물든 대부분의 로마인들까지 아울러야 했습니다. 결국 방법은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인데 그러자면 지나치게 극단적인(?) 기독교를 적당히 변질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정략적 이해관계에 기초하여 그 이후의 로마 황제들은 종교지도자들과 결탁하여 기독교의 이교화를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쉽게 말해, 태양신 숭배 및 모자신 숭배로 대변되는 당시의 이교도 신앙을 기독교적으로 채색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물론 초창기에는 신실한 종교지도자들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질게 핍박만 받다가 권력의 달콤한 맛을 본 새로운 종교지도자들이 로마교회의 교권을 장악하면서 기독교의 이교화는 급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로마인들이 이교도의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크리스천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상황까지 비화되고 말았습니다. 태양신 숭배사상과 모자신 숭배사상이 교회 안에서 완전히 뿌리를 내려버렸던 것입니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아래의 내용들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주후 633년 토레토 종교회의에서는 모든 성직자들이 머리를 둥글게 체발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체발이라 함은 사제 서품식에서 사제의 뒷머리를 둥글게 깎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체발은 얼마든지 태양신의 상징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화 되기 전의 이교 로마에서 바쿠스를 숭배하는 제사장들도 대머리 독수리를 연상시키는 스타일로 체발을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 유명한 바알신을 섬기던 제사장들 역시 태양을 상징하는 둥그런 원의 형태로 체발했습니다. 구약성경에도 이에 대해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레 19:27).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레 21:5).

   천주교에서는 나름대로 이유를 대고 있으나, 왜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헤어스타일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끝내 멸망으로 몰고 갔던 그 가증한 바알의 제사장들을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을 따라해야만 했는지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둥근 체발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근거를, 미사 때 사용하는 성병(wafer)에 연결시키는 것 역시 자충수라고 생각됩니다. 체발보다 그 둥근 빵이 더더욱 태양신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심을 기념하는 뜻에서 손으로 찢어 나눈 빵을 성찬식에 사용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천주교에서 이러한 빵 대신 사용하는 성병은 둥그런 원반 형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에 대한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병의 이러한 형태는 태양신을 상징하는 태양원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당위성이 충분합니다. 실제로 태양신을 숭배하는 미트라교의 제사장들은 태양원반 형태의 빵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위의 그림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성병과 짝을 이루는 성체안치기(monstrance) 역시 태양원반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태양에서 발산되는 햇살을 연상시키는 문양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성체(Host)란 화체설(化體說)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 성병을 구별하여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소위 성체로 변화된 성병을 성체안치기에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미사에 참여한 신도들은 그것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숭배합니다. 마치 모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론이 만든 황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왕하 23:11).
   “무리가 왕 앞에서 바알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왕이 또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대하 34:4).

   비단 이교도들만이 아닙니다. 가나안의 바알종교에 미혹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양신을 위해 태양상과 태양수레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요시야 왕을 통해 이런 것들을 완전히 박살내어 가루로 만들어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천주교의 많은 건축물이나 구조물 등에서 태양 수레바퀴의 문양들이 발견됩니다.


   특히, 성 베드로 성당 앞의 정원에는 거의 동일한 도안의 문양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단의 좌측 그림은 바벨론의 태양신 쉐메쉬의 상징이며 우측 그림은 바티칸 광장을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심지어 중앙에 원이 하나 더 있는 것까지 동일합니다.


   더욱 결정적인 증거는 바티칸 광장이 주피터 신전과 아르테미스 신전을 중심으로 우상숭배를 일삼던 로마의 제라시 성전 광장과 그 형태가 동일하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바티칸의 수많은 건축물과 구조물 가운데 사탄을 상징하는 용(뱀)의 상징이 난무한다는 사실입니다. 독수리는 기독교 안에서도 선지자를 상징하는 등의 긍정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의 경우에는 사탄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처럼 모양이라도 버려야할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 바로 용입니다. 태양신이 사탄을 가리키듯 용도 사탄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역사상 수많은 교황과 추기경의 문장이나 무덤 등에서 날개달린 용의 문장을 아주 광범위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녕 이 모든 것이 다 우연이란 말입니까? 어떤 의도도 담겨있지 않단 말입니까? 진화론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처럼 저절로 생겨난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교황청의 지시에 따라 체계적으로 설계되고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비용을 들여 만든 건축물과 구조물의 문양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냥 지어졌단 말입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이집트를 비롯하여 바벨론 문명의 영향을 받은 태양신 숭배 계열의 종교들에서는 그것과 거의 흡사한 문양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Thomas Imman, Ancient Pagan And Modern Christian Symbolism (Bristol, 1874), 34.]

   과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태양신 숭배사상을 기독교적인 색채로 위장한 것이라면 과장인가요?

   바벨론 문명의 재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이교 로마에서 복음진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지혜의 차원으로 접근한다면 그 당시 로마교회의 행태를 무조건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바벨론 밀교에서 기원한 태양신 숭배 및 어미여신 숭배가 너무나 강하게 만연하던 당시의 로마사회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접촉점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리고 고심 끝에 당시의 이교도들이 보다 쉽게 기독교로 개종할 수 있도록 가급적 태양신 숭배 및 어미여신 숭배와 비슷한 모양새를 취했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현대교회가 불신자들이 부담 없이 다가설 수 있도록 열린 예배를 비롯한 각종 문화사역을 통해 문턱을 낮추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적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 역시 복음 전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그야말로 팔색조처럼, 카멜레온처럼 처신했기 때문입니다.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0-23).

   다만, 관건은 진리의 영역과 지혜의 영역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데에 있습니다. 만약 이 양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무작정 문턱만 낮출 경우 언제든지 야합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엄격하게 이 기준을 지켰습니다. 아무리 카멜레온처럼, 팔색조처럼 스스로를 변모시켰을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혜의 영역 안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진리의 영역에 관한 한, 목에 칼이 들어올지라도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로마교회는 어떠했을까요? 적어도 아직까지 초대교회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던 초창기에는 사도 바울처럼 양자를 제대로 구분하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톨릭 백과사전』 제15권 460페이지에 따르면, 그동안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마리아가 본격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한 주후 4세기 초, 트레이스와 아라비아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사람들이 마리아를 여신으로 숭배하면서 제물까지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저명한 교부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315-40)는 그것을 비난하면서 “마리아를 존경할 수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를 숭배해서는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선언했습니다.

   이처럼 초창기만 해도 로마교회에서는 지혜의 영역과 진리의 영역을 제대로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양자 간의 벽은 급격하게 허물어져버렸고 그 이후, 무려 1,000년 동안 변질의 역사가 끊임없이 진행되어왔습니다. 그것의 결산이 바로 외경의 정경화입니다. 그동안의 변질이 고스란히 반영된 천주교의 신학과 교리를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진리로 천명하고 그것의 합리화를 위해 외경을 정경화 시켰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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