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7일 일요일

유럽을 물들인 이슬람포비아

유럽을 물들인 이슬람포비아





» 노르웨이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서울은 강남과 강북으로 나뉜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는 동쪽과 서쪽으로 나뉜다. 서쪽은 잘살고 안전하다. 동쪽은 가난하고 치안이 불안하다. 서쪽에는 백인이 주로 산다. 동쪽은 이민자, 대부분 무슬림이 산다. ‘평화의 나라’ 노르웨이조차 실상은 이렇게 쪼개져 있다. 지난 7월22일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테러로 그 곪은 상처가 터졌을 뿐이다. 오슬로의 지하철 동쪽 끝 푸루세트에는 1970~80년대에 온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들이 노르웨이 출신보다 훨씬 많다. 이슬람 사원도 자리잡고 있다. 이곳의 한 교사는 영국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7월25일치 인터뷰에서 “학생 40명 가운데 2명이 노르웨이 출신이고, 나머지는 노르웨이어를 몰라서 학습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노르웨이는 전체 인구 490만 명 가운데 약 11%인 55만 명이 이민자다. 1980년대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이민자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 오슬로는 인구의 약 28%가 외국인이다. 절반은 폴란드와 스웨덴 등에서 온 유럽계 백인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무슬림 인구가 절대다수다. 노르웨이 전체 인구의 약 3%가 파키스탄·이라크·소말리아 등에서 온 무슬림으로 추정된다.




9·11 이후 반이슬람 정서 확산된 유럽


노르웨이에서 테러가 벌어진 뒤 유럽 언론에는 자성이 잇따랐다. 반무슬림 극우주의자 문제가 노르웨이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슬람포비아’(이슬람혐오) 현상이 확산돼 무슬림 이민자와 갈등이 깊어져왔다.

2004년 191명이 숨진 스페인 마드리드와 2005년 56명이 목숨을 잃은 영국 런던 테러, 2006년 덴마크의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마호메트) 비하 만평 사건 등이 유럽에서 무슬림 이민자와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프랑스에서는 2005년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파리 교외에서 폭동이 벌어졌고, 2004년 히잡에 이어 지난 4월 온몸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 전통의상 부르카 착용이 유럽 국가 최초로 금지돼 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벨기에에서도 지난 7월23일 부르카 착용 금지법이 시행됐고, 스페인과 네덜란드도 비슷한 법률을 준비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2009년 11월 국민투표로 이슬람 사원의 첨탑 건설을 금지했다. 노르웨이에서도 덴마크에서 논란이 된 무함마드 만평이 게재돼 파문이 일었다.


지금은 꺼리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에 나선 유럽은 이슬람 이민자를 환영했다. 경제성장으로 일손이 필요해지면서 이민자들의 가족 초청 및 망명 등이 허용됐다. 유럽연합(EU)의 2009년 이민 전략 보고서는, 비유럽인 1850만 명이 등록돼 있고 불법이민자 800만 명이 EU에 살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1995~2010년 무슬림이 유럽 전역에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외교협회(CFR)는 전체 5억 명의 EU 거주자 가운데 약 4%인 2천만 명이 무슬림이라고 분석했다. 무슬림의 유럽 이민은 올해 아랍 민주화 시위 사태를 겪으며 더욱 늘어나 이탈리아로 피신한 튀니지인만 2만6천 명에 이르렀다. 노르웨이 정부는 올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등에서 이민자 1만5천여 명을 받아들일 계획이다.


이처럼 늘어나는 무슬림 인구는 문화적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기독교 단일문화권인 유럽인에게 ‘유럽의 이슬람화’로 서구 문명이 위기에 처했다는 불안감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무슬림이 유럽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려 한다는 음모론에 빠져들었다. 무슬림의 출산율이 높고 서유럽인의 출산율이 낮다는 설명 등이 위기감을 부추겼다. 극단적인 외국인 혐오와 종교적 편견이 맞물리며, 이슬람이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에까지 이르렀다. 무슬림 여성이 경우에 따라 검은색 베일로 온몸을 가리는 것에서 드러나는 현실적인 문화적 차이, 9·11 테러 이후 이슬람권에 대한 악마화와 과장된 공포, 경제적 격차에 따른 멸시 등이 맞물린 결과였다. 이런 갈등은 결국 이민국의 언어와 문화에 동화하지 못하는 무슬림 게토의 확장과 이민국 시민들과의 분리와 대립으로 드러났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다문화주의 실패를 선언했다.




유럽 극우, 반유대주의에서 친이스라엘로


과거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는 극우 인종주의자들의 극단주의였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간 뚜렷해진 것은 반무슬림 극단주의라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분석했다. 반무슬림 극우주의자들은 반유대인 등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힌 네오 나치와 달리 친이스라엘 성향을 띠며 반이슬람으로 뭉쳤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이들이 친서방·친미·친이스라엘 성향이지만 반무슬림 성향으로 자유주의적·좌파적·다문화적·국제적인 것에 적대적이라고 분석했다. 다양한 극우주의자 그룹이 존재하지만, ‘이슬람은 적이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이들은 무슬림이 인종적으로 열등하다는 주장이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자, 대신 문화적으로 공존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펴고 나선 것이다. 과거에 인종주의적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던 극우주의자들이 이제 급변하는 세계에 맞닥뜨려 민족의 문화와 역사, 민주주의와 자유, 세속주의 수호를 외치는 것이다. 여기서 반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외치는 ‘문화적 충돌’과 ‘국가 정체성 위기’라는 구호가 나왔다. 이들은 세계화와 유럽 통합, 다문화 캠페인 등을 결과적으로 무슬림 인구 증가를 낳은 원인으로 지목하며 반대하고 있다. 테러범 브레이비크는 “우리 세계에 가장 만연한 광기의 증후는 다문화주의다”라고 주장했다. 인종적·종교적·문화적 정체성이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반무슬림 극우주의자들은 기존 정당들이 무슬림 이민자 문제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비난하고, 테러 같은 급진적이고 과감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노르웨이는 1990년대 발칸반도 이민자를 받아들인 데 이어 이라크 난민 등을 수용하면서 반이민 정서가 깊어졌다. 브레이비크 역시 이민과 다문화, 이슬람과 무슬림 공동체의 성장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2083: 유럽 독립선언’에서 이슬람에 맞선 십자군 전쟁을 촉구했다.



» 유럽 극우정당 총선 득표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반무슬림 극우 조직들은 기존 정당들과 달리 자주 해체와 결성을 거듭하며 변신한다. 또 교육을 못 받고 직장을 얻을 기회가 없는 낙오자들로 주로 구성된다. 이런 유럽 극우가 테러를 저지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80년 이탈리아 볼로냐 기차역에서 우익의 백색테러로 85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해 독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를 추종한 27살의 군돌프 쾰러라는 청년이 뮌헨에서 열린 옥토버페스트에서 폭탄을 터뜨려 13명이 숨졌다. 1990년대는 독일 네오나치들이 터키 가족이 머무는 이민자 호스텔을 자주 공격해, 1993년에는 터키인 여성 2명과 아이 3명이 숨졌다. 2008년에는 네오나치 단체 ‘스웨덴 저항운동’을 경찰이 급습해 다이너마이트와 무기 등을 압수했다. 독일 정부는 극우 극단주의자 2만5천 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옛 동독 지역에서 40% 가까이 범죄가 늘었다고 밝혔다. 영국의 반무슬림 극우조직 ‘영국수호동맹’(EDL)은 영국 사회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2006년부터 해왔고, 매번 시위에 2천~3천 명씩 참가하고 있다. 이 단체의 페이스북 가입자는 9만 명에 이른다. 프랑스 극우단체 ‘정체성 연합’(Le Bloc Identitaire)은 이슬람 사원 밖에서 돼지고기를 먹으며 술파티를 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노르웨이 테러를 계기로 반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이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세력 못지않게 위협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스칸디나비아 국가 등에서 극우세력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조직적으로 이끌 지도자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간과됐던 것이다. 극단주의 전문가인 매슈 굿윈 영국 노팅엄대학 교수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기고에서 “폭력적 극단주의와 과격화를 막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너무 오랫동안 무슬림 공동체에만 집중됐다”며 “이제는 새로운 극우정치 현실에 좀더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한스 피터 프리드리히 독일 내무장관은 유럽 치안 당국이 우익 극단주의 세력을 포함해 잠재적 위협에 맞서 조기경고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유럽 공동경찰기구 유로폴은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비이슬람 세력의 위협을 조사하기 위해 50명으로 이뤄진 전담반 구성에 들어갔다. 이 기관은 “우파 조직은 점차 전문적·공격적으로 자신들의 지지자를 끌어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토레 보르고 노르웨이 경찰대학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극단주의자들은 결집력이 떨어지고 온라인을 통해서만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과격화를 차단하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극우 약진에 정체성 문제 작용


유럽 극우 정당들의 득세는 반무슬림 정서가 일부 극단주의자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민 문제는 1980년대 유럽에서 등장한 뒤 우익이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90년대 난민 증가와 맞물려 커져왔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진정한 핀란드인’(TF)은 2007년 총선 때보다 5배 가까이 많은 19%를 득표해 200석 가운데 39석으로 3당에 올랐다. 스웨덴 민주당(SD)은 2010년 9월 선거에서 5.7%를 득표해 사상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네덜란드 자유당은 2010년 총선에서 15.5% 득표하고 24석을 차지한 제3당이다. 자유당 당수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이슬람 성전 꾸란(코란)을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에 비교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진보당(FrP)은 2009년 9월 총선에서 노동당과 보수당의 의석을 빼앗으며 22.9%를 득표해 제2당에 올랐다. 덴마크 국민당(DVP)은 의회 179석 가운데 25석을 차지하고 있다. 2009년 독일 작센 주선거에서는 인종주의·반유대주의 극우정당인 국가민주당(NPD)이 5%를 득표하기도 했다. 헝가리는 요비크가 3당으로 지난 선거에서 의석을 2배로 늘렸다. 프랑스 국민전선은 지난 3월 치러진 지방의회 선거 1차 투표에서 15%를 차지했고, 국민전선을 이끄는 마린 르펜은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른 상태다. 미국 뉴스 채널 〈CNN〉은 “수세대 동안 유럽에서 정치는 계급적 측면에서 정의돼, 좌파 대 우파, 사회주의자 대 보수주의자 또는 기독교 민주주의자로 나뉘었다. 여전히 이런 구분이 지배적이지만 최근 선거에서 극우파의 확산은 정체성 문제가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현실적 해법 마련 쉽지 않을 듯


극우 정당들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무슬림 등에 대한 강력한 이민 규제를 외치고 있다. 덴마크는 극우 국민당의 주장으로 지난 5월 일방적으로 국경 통제를 재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이민자 증가를 부른 EU 확대 및 유럽 통합 강화에도 반대한다. 이런 분위기는 경제위기에 빠진 그리스나 포르투갈에 대한 금융지원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극우파들은 테러범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발언은 이들의 의식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북부동맹의 중진 의원 프란체스코 스페로니는 7월27일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이 ‘유라비아’(유럽+아라비아)가 돼가는 상황에서 서구 기독교 문명을 지켜야 한다는 게 브레이비크의 생각이라면 나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극단주의 전문가인 매슈 굿윈 교수는 “지난 20년간 유럽에서 극우정당 지지가 높아졌다”며 “정부와 정책 입안자들이 어떻게 저변에 깔린 폭넓은 지지층의 우려에 대처할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유럽 전역에서 무슬림 이민자에 대한 우려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은 실업에 대한 불만 탓도 있지만 정체성 위기감 탓이기도 하다. 피해망상을 부추기며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감출 게 아니라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이민과 다문화주의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7월24일 연설에서 “이번 사건이 충격스럽지만 우리의 가치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더 민주적이고 더 개방적이고 더 인간적으로 대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7월25일 오슬로에서는 지금까지 추모 행사의 최대 인원인 15만 명이 참여해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진이 열렸다. 노르웨이 하콘 왕세자는 7월26일 이슬람 사원을 방문하는 등 화합 행보에 나섰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것을 노르웨이와 스칸디나비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커지는 불관용과 인종주의, 증오에 맞서 싸울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다. 무서운 것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을 뿐 반무슬림 증오심에 공감하는 상당수가 저변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선거 때마다 우파의 반이민 정서 자극은 되풀이될 게 뻔하고, 경제위기 속에서 ‘무슬림이 일자리를 빼앗고 정부 재정을 축낸다’는 반감은 깊어질 것이다. 그간 유럽 각국의 행보를 보면, 노르웨이가 보여준 톨레랑스를 유럽 전체가 앞으로 보여줄지는 회의적이다. 현실적 해법은 ‘관용’과 ‘공존’이라는 이상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막 터져나오는 한국의 다문화 사회 갈등에서 확인되듯이.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301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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