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9일 금요일

미 국가부도 위기? 지금부터가 시작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 미국도 ‘국가 부도’에 빠질 수 있다?’ 공상 과학소설에 나오는 헛소리가 아니다. 현재 미국은 14조 달러가 넘는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50년 만에 최악 수준이다. 올여름까지 법정 적자 한도액을 올리지 못하면 더는 국채를 발행할 수 없고, 기존의 채무 의무도 이행할 수 없어서 ‘국가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4월8일 야당인 공화당과 385억 달러를 삭감하는 선에서 2011 회계연도 예산안에 극적으로 합의해 연방정부의 폐쇄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그러나 재정 적자 감축안을 둘러싼 진짜 격돌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4월13일 기자회견을 통해 향후 12년 안에 재정 적자를 4조 달러 줄이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연방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이를 두고 벌써부터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공화당이 한도액 인상안을 거부할 경우 국가 부도 위기는 실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에 따른 국가 부도 위기 문제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2월 공화당·민주당의 양당 인사는 물론 경제인 등으로 구성된 18인 부채감축위원회를 발족시켰을까. 올해 초 백악관 직속 경제자문위원회의 오스탄 굴스비 위원장은 ABC와의 인터뷰에서 “의회가 재정 적자 한도액을 인상하지 않으면 행정부가 국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되고, 그럴 경우 경제에도 재앙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AP Photo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4월13일 민주당·공화당의 의회 지도부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예산안과 관련된 초당파 회의를 열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14조 달러를 넘어선 재정 적자가 오는 5월16일이면 법정 한도액인 14조3000억 달러에 이르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한도액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의회에 경고했다. 가이트너 장관은 나아가 의회가 그때까지 한도액 인상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7월8일까지는 그럭저럭 재정을 꾸려갈 수 있겠지만, 더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다시 말해 7월8일까지 의회가 법정 상한선인 14조3000억 달러 이상으로 한도액을 올리는 데 합의하지 않으면 국가 부도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미국인 1인당 약 5000만원 빚져

역대 미국 정부가 부도 위기를 피하기 위해 재정 적자 한도액을 올린 선례는 1962년 이후 72차례나 된다. 그 가운데 10번은 지난 10년 동안에 발생했다. 지금까지 행정부가 한도액 인상을 요청하면 의회는 별다른 말 없이 인상에 동의해줬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는 상황이 180도 다르다. 현재 누적 연방 재정 적자는 14조2940억 달러에 달하는 ‘비상 상황’이라는 데 공화·민주 양당 모두 동의하고 있다. 의회 조사국 분석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는 당장 4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7380억 달러를 더 빌려야 하는데, 그 순간 법정 적자 한도액을 초과한다. 14조 달러는 미국인 한 사람당 약 4만7000달러(약 5000만원)씩 부채를 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고심 끝에 밝힌 재정 적자 감축안의 핵심은 국방비를 포함한 국내 지출을 대폭 줄이고, 대신 세금 인상을 통해 부족분을 보충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앞으로 12년에 걸쳐 부채를 4조 달러 줄이되, 그 가운데 3조 달러는 10년 내에 감축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국내총생산의 9%에 해당하는 재정 적자를 2015년까지 2.5%로 줄일 것도 제안한다. 이 같은 감축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 지출과 국방비를 줄이고, 조세 수입원을 늘리겠다면서, 특히 조세 수입원의 한 방안으로 최대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최상위 부유층에 대한 감세 혜택을 폐지하고, 허점이 많은 조세 체제를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정 요건을 갖춘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의료보험제도인 메디케어(Medicare)와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Medicaid)의 본질은 건드리지 않되, 향후 10년에 걸쳐 2900억 달러를 절약할 것도 약속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검토하기 위해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16인 초당 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이 나오자마자 공화당은 예상했던 대로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우선 ‘12년 내 4조 달러 감축안’과 관련해 공화당은 지난주 자체적으로 제시한 향후 10년 내 4조4000억 달러 감축안에 못 미친다며 불만이다. 또한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는 메디케어를 대폭 수술하거나, 오는 2022년 민간 시장에 이양하자고 주장한다.

공화당은 특히 부유층 감세 혜택 폐지와, 증세를 통해 재정 적자를 줄여보겠다는 오바마의 구상에 극력 반대한다. 증세에 동의할 경우 공화당은 보수 유권자들의 거센 저항은 물론 대거 이탈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화당 예산 감축 투쟁의 선봉장인 폴 리언 하원 예산위원장은 “재정 적자는 국내 지출 감축과 연방정부의 미래 지출 동결, 나아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대수술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공화당·민주당 양당이 핵심 사항에 관해 너무 견해차가 크기 때문에 대타협은 어려울 것이다”라고 강력히 경고한 상태다.

현재 재정 적자 감축안과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것은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사회보장제도와 의료보험제도이다. 먼저 사회보장제도의 경우 의회 예산국(CBO) 추정에 따르면, 적자 폭이 앞으로 10년간 6000억 달러에 달한다. 현재 5400만명이 혜택을 보고 있는 사회보장제도는 올해도 45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고, 오는 2037년에는 자금이 고갈될 위기에 처해 있어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공화당 ‘중산층 의료보험 혜택 줄여라’ 요구

민주당은 연방정부 지출액 가운데 최대인 23%(약 7900억 달러)를 차지하는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비용 절감을 위해 제도 개선은 필요하지만, 공화당이 요구하는 식으로 이를 대폭 삭감할 경우 중산층은 물론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저소득층의 이탈을 부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절대 반대다. 실제로 진보 진영은 실력 행사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단적인 예로 회원 약 500만명을 거느린 최대의 친민주당 풀뿌리 조직으로 지난 대선 때 오바마의 당선에 결정적 구실을 한 ‘무브온’은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보험 혜택 등을 줄이면 2012년 대선 때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래리 사바토 버지니아 대학 교수는 “지금처럼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온건파 의원이 설 자리가 없이 양극화한 상황에서는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절박한 위기가 찾아오거나, 공화·민주 어느 한 당이 차기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기 전에는 문제 해결이 힘들어 보인다”라고 <뉴욕 타임스>에 밝혔다. 내년 11월 대선과 의회 중간선거를 앞에 놓고 오바마의 민주당 진영이나 정권 탈환을 노리는 공화당 모두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일 경우, 7월 초 마지막 시한으로 돼 있는 재정 적자 한도액 인상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화당이 주도한 의회가 인상안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최악의 경우 미국이 국가 부도로 내몰리면, 이제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미국 경제는 물론 전 세계 경제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 확실하다. 이런 점에서 공화당도 여간 부담이 아니다. 따라서 공화당도 어떤 식으로든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파국만은 면하기 위한 타협책을 제시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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