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4일 금요일

웨일즈 부흥운동의 주역 이반 로버츠

웨일즈 부흥운동의 주역 이반 로버츠
 

1904년 영국의 웨일즈 부흥운동의 주역은 이반 로버츠이다.
전형적인 웨일즈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로버츠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에 들어가 침체된 신앙의 회복을
위해 10년이상 기도했다.
그러던 1904년 봄 어느 날 밤 로버츠는 새벽 1시에 잠에서 깨어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온 몸으로 체험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외와 기쁨으로 충만한 것을 느꼈다.
그해 여름이 지나고 다시 가을이 되어서 로버츠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다.
학교 주변에서 조그만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집회의 주제는 ‘나를 굴복하게 하소서’였는데 이것이 특별히 로버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것이 네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로버츠는 앞으로 나가서 “오 주여!
나를 굴복하게 하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로버츠는 이 기도 가운데서 자신을 굴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을 느꼈다.
로버츠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굴복하자 그의 마음 속에는 강같은 평화가 가득차게 되었다.
로버츠가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한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게 되었다.
만일 지금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굴복하지 않으면 언젠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무서운 심판 가운데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그들의 영혼이 불쌍해졌다.
그후 그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부흥의 불길
"놀라운 부흥이 웨일즈 전역을 덮고 있다.
나라 전체와 도시에서, 지하의 탄광까지 복음의 영광으로 불타고 있다."
1904년 이 거대한 영적 각성의 지도자는, 머리카락은 탄진으로 뒤범벅이고 손톱 사이에는 새까만 때가 낀 웨일즈
출신의 한 젊은 광부였다.
그는 웅변가의 어떤 기술도 없었고, 박학도 아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책은 성경이었으며,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말씀에 대한 정열로 불타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이반 로버츠 청년은 복음 선포하기를 동경해 왔으며, 그는 자신을 변화시키시고 사용하여 주시기를 하늘
아버지께 날마다 부르짖었다.
로버츠가 25세가 되었을 때, 그가 방에서 큰 소리로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한다고 집주인이 그를 내쫓았다.
지하 탄광 안에서 휴식시간에 동료들이 담배를 피운다든지 웃으며 지내는 동안, 그는 조용히 앉아서 성경을 읽었다.
1904년 어느날 로버츠가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웨일즈에 부흥을 보내실 것이며, 10만명의 불신자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올 것을 계시하여 주셨다.
그런 후 성령님은 로버츠에게 앞으로 올 부흥은 프레리 초원에 불이 번지는 것처럼 영국에 퍼진 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에 퍼져갈 것을 보여주셨다.
이 비전에 불타서, 로버츠는 설교할 기회를 찾았지만, 전혀 없었다.
그는 그의 목사에게 설교를 시켜 달라고 간청했으나, 처음에는 당황한 목사가 이처럼 너무 열광적인 탄광 노동자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여러 번 더 간청한 후에, 목사는 마지못해 허락하였다.
"좋아, 이반, 다음 주 수요일 저녁예배에서 설교를 할 수 있네, 만일 누군가가 남아서 듣는다면 말이야."라고 말했다.
17명이 의아해하며 뒤에 남았다.
젊은 전도자는 담대하게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1) 당신은 생각나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백해야만 한다.
2) 당신은 생활 속에서 좋지 않은 습관은 모두 제거해야만 한다.
3) 당신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즉각 순종해야 한다.
4) 당신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대중에게 나아가야만 한다.
비록 로버츠의 설교는 미숙했지만, 목사와 17명의 교인들은 마음이 하나님을 만남으로 불타기 시작했다.
다음날 밤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젊은 설교자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으며, 부흥의 불길은 순식간에 다른
교회에 퍼져갔다.
그후 30일 안에, 3만7천명이 강단 앞에 나와서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했다.
그리고 5개월 안에, 10만명이 웨일즈 전역에서 울면서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모여들었고 결국 로버츠의 비전은
성취되었다.
양의 뿔이라고 불리는 신문은 다음과 같이 게제했다.
"이반 로버츠는 무명의 청년이지만, 어느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순종하였다.
그는 자신이 지금의 사역에 인도된 것은, 성령님의 직접적인 인도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번의 의심이나 망설임도 없이 그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가 어디를 가든지, 마음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붙었다."
또 감리교 기록지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웨일즈는 지금, 과거의 어떤 부흥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부흥의 격렬한 아픔과 환희의 한가운데 있다.
이것은 이른바 ‘도덕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웨일즈의 신문들은 새롭게 태어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의 명단을 싣기 시작했다.
대학은 문을 닫고, 학생들은 하나님을 찬미하고 노래하면서 기도 모임으로 향했다.
어린이들은 집안에서, 타작마당에서 그들 자신의 모임을 가지면서 그들의 영웅인-교회 목사들을 열심히 흉내 냈다.
남자들의 ‘기도 부대’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보고에 의하면, 그들의 기도는 뜨거웠고 정열적이었다고 한다.
어떤 마을에서는 ‘침대에서 나오자(Get-out-of-the-bed)’라는 기도 부대가 자랑스럽게 생겼다.
이들은 밤 늦게까지 - 때로는 밤새 철야기도로 -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다른 남자들을 침대에서 일으켜 세워서,
그들의 죄를 깨우쳐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한밤중에 일어나 침대에서 기어 나와 집회장소를 찾으며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주 예수께 부르짖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기사에 의하면, 법정에서 재판관과 배심원이 심리를 중단하고 피고를 위해 기도하자 피고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한다.
부흥은 탄광 안에서도 똑같이, 갑자기 시작되었다.
광부들의 불경건한 말투가 완전히 바뀌어져서, 짐을 운반하던 동물들이 광부들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그들을 순종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는 보고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 부흥을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
교회의 성직자들은 경이롭고 엄중한 태도로 종교생활을 하였으므로, 어떤 성직자들은 이반 로버츠를 비전통적인
방법의 젊은 선지자라고 별명을 붙였다.
그들은 왜 로버츠가 기도할 때 미소지으며, 설교할 때 왜 소리를 내서 웃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설교를 들으러 온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빛이 있고, 그의 마음에는 주님의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대로, 로버츠는 영국에 급격한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영국에서 약 200만명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그런 후에 성령님은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부흥을 확산시켰다.
성령님이 노르웨이에 ‘임하셨을’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기 때문에 회중에게 성찬을 베풀 성직자들이
부족하여, 평신도들에게 안수를 주고 성찬을 베풀게 하였다.
그런 후에 부흥의 불길은 한국과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 전세계로 확산되었다.부흥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교회들은 몇번 흥미진진한 예배를 드리고, ‘부흥’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부흥은 그보다 더 큰 것이다.
부흥의 특징을 몇 가지 간단히 살펴보겠다.
첫째로 부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역사이다.
성령은 이반 로버츠를 사용하여 1904년에 부흥의 불을 붙였으며, 이 부흥을 위해 웨일즈의 사람들은 1901년부터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하는 신앙인들은 그들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응답함으로써 성령의 역사에 협력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즉 무한하게 우리의 최고의 기도와 소원,
생각, 소망)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 3:20,21).
성령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까지도 가능하게 하신다.
우리는 말씀에 영감을 주신 성령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이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시지 않으면 기도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없다.
따라서 부흥은 삼위일체 중 제 삼위이신 성령님의 산물이다.
다음은 국제 C.C.C. 창설자 빌 브라잇 박사의 간증이다.
"1951년 주님이 나에게 대학생선교회(Campus Crusade for Christ)의 비전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역사에
의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주님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풀러신학교의 친구들과 같이 최종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나의 체험은 다메섹 도상에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도 바울의 체험과 비슷하다.
바울과 동행한 사람들은 주 예수가 바울에게 이야기하시는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바울의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게 빛나는 빛도 보지 못했다.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을 때, 한 친구가 나와 같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음성을 듣지는 못했지만, 주님의 메시지는 만일 대형 스피커 100대를 사용해서 방송한다 해도 그렇게 확실하고
생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성령님이 나에게 비전을 주신 이후, 나는 너무나 흥분하고 힘이 넘쳐서 나의 모든 혈액 안의 혈구까지도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나와 함께 달리자!"라고 말했다.
그는 나와 같이 달렸으나 내가 왜 그렇게 기쁨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을 찬양하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둘째로, 부흥은 하나님이 방문하신 것이다.
영적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당신은 발견할 것이다.
신앙인들은 자신들이 다만 하나님께 응답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오셔서 당신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엇이 계기가 되어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전혀
모르며 - 그리고 사실, 그것은 아마도 당신의 경건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빌 브라잇 박사의 간증을 계속 들어보자.
"1947년 나는 남가주 소재 Forest Home Christian Conference Center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나의 절친한 친구이며 허리우드 제일장로교회의 기독교교육 부장인 헨리에타 미어즈 박사가 강사였다.
수석 목사의 아들인, 루이스 이반스 2세와 나는 미어즈 박사를 캐빈까지 걸어서 배웅했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하며 교제를 즐기었고, 그녀는 캐빈 안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우리가 계속 이야기할 때, 갑자기 성령님이 우리를 둘러싸셨다.
아직 초신자였던 나는 성령의 성품에 대해 잘 몰랐으므로,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반스 박사는 마치 불타는 석탄이 그의 척추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리차드 핼버슨 박사가 미어즈 박사의 캐빈에 들어왔다.
그는 남가주 콜링거의 장로교회 목사로 패배감과 좌절감으로 열매가 없었다.
그는 목사직을 사임하고 신앙을 갖기 전에 일하던 허리우드의 오락세계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 미어즈 여사에게
상담하러 들어왔다.
그가 방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기도하고 있었으며 아무도 그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즉시 성령님이 그의 패배감과 좌절감을 치유하셨고, 그의 마음은 기쁨과 사랑으로 넘쳤다.
순간적으로 우리는 완전히 변화되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전과 똑같은 사람은 이제 없었으며,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주님의 포도원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겨 주셨다.
이반스 박사는 후에 전 미국에서 유명한 장로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오랫동안 그는 ‘역대 대통령들의 교회’인 내셔널 장로교회를 목회하였다.
핼버슨 박사는 미국상원의 채플린이 되어 30년 이상 국제적인 그리스도인 정치가로 인식되어졌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방문하심을 경험하였다."

셋째로, 부흥은 성령 안에서 개인적인 겸손과 용서와 회복의 시간이다.
부흥은 성령이 각 사람에게 명백한 죄를 회개하도록 부르시는 때이며, 명백하지 않은 죄-즉, 냉담함, 처음 사랑의 상실,
우리의 개인적인 ‘안전지대’를 넘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 것, 절망적으로 빛과 소금이 필요한
이 사회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비밀 요원’처럼 조용히 사는 죄 등이다.
부흥이 오면 치유하기 전에 먼저 타버린다.
목사나 성도들의 신실하지 못함, 이기적인 삶, 십자가를 무시하는 것 등을 정죄하며, 그들을 일상적인 생활에서 주님과
다시 하나가 된 삶,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고 그리고 매일 깊은 헌신으로 부르신다.
이 이유로 부흥이 교회 안의 많은 숫자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흥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그들이 배웠던 사랑이나, 편안함이나, 성공과 같은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부흥은 그들의 죄를 비난하고, 그들이 죽었다고 말하며, 그들에게 이 세상과 이별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른다.
 
넷째로, 부흥하는 동안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아래 두려움 없이 말씀을 선포한다.
사도행전 4장 31절처럼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 시작’하게 된다.
청교도 설교자이며 후에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이 된 조나단 에드워드의 메시지가 좋은 예이다.
1741년 7월, 그가 코네티컷주 인필드에서 설교를 했을 때 미국의 대각성운동에 불을 붙였다.
설교 제목은, ‘분노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로 지옥을 분명하게 묘사하여서 회중의 많은 사람들이 공포로
하얗게 된 손으로 의자를 꽉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어느 시점에서는 그들이 죄에 대해 크게 자각하여,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잠잠해질 때까지 에드워드는
설교를 계속하기 위해 오랜시간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무난한 제스처로 청중의 눈을 즐겁게 한다든지, 능숙한 화술로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한다든지, 듣기 좋은
말로 즐거운 공상을 하게 하는 것은 전혀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과 양심을 목표로 하여 파멸을 초래하는 환상을 밝히 드러내고, 신앙생활에서 그들의 수많은
은밀한 위선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힘 없고 불경건한 모습으로 그저 쉽게 지내려는 거짓된 도피처에서 나오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았다.
그의 설교는 자주 무섭기도 하고 또 예리하게 마음을 탐색하는 것 같았다."
영국과 미국의 부흥에 크게 쓰임 받았던 존 웨슬레는 이전에 벌써 비슷한 시도를 하였다.
웨슬레는 전도자들이 메시지를 전할 때의 교훈으로 이렇게 말했다.
먼저 일반적으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런 후에 양심을 깊게 성찰하기 위해 가능한 한 온 힘을 다하여 성결의 법칙을 선포한다.
그런 후에, 그때까지는 말하지 않던 용서와 생명의 복음의 영광을 드높인다.
의도적이건 아니건, 그의 설교 방향은 로마서의 전개 방법을 따르고 있다.

다섯째로, 성령의 임재에는 힘이 있다.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 중심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회중이 하나님 앞에서 문자 그대로 ‘엎드려 있는’ 것이
부흥의 상징이 되었다.
요한 웨슬레와 조지 휫필드에 의한 영국의 부흥은 성령의 엄위하신 임재가 항상 임하여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휫필드의 부흥예배에 관해서, 웨슬레는 자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그가 모든 죄인에게 그리스도를 믿도록 초청한 후 얼마 안되어 4명이 거의 동시에 그의 옆에 쓰러졌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의식을 잃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다른 한 사람은 몹시 심하게 몸을 떨었다.
세 번째 사람은 그의 몸 전체에 강한 경련을 일으켰으나, 탄식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네 번째 사람은 똑같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을 향해 크게 울부짖었다."
웨슬레와 휫필드는 이 행동을 이상하게 느껴서 몇 명을 집회에서 내보냈다.
그러나 레이디 헌팅톤이라는 부인이 휫필드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 때문에 설교를 중단하면
예배에 물을 끼얹는 것이 되니까 사람들을 그대로 두도록 조언했다.
"우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것이 당신의 설교보다 휠씬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웨슬레는 일기에 또 이렇게 썼다.
"이 시간부터는 하나님이 당신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역사를 하시도록 우리들은 허용할 것이다."
부흥 설교자에게 내리는 기름 부음에 관해, 찰스 피니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영감에 의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어떻게 설교했는지도 모른다.
자주 경험하지만, 설교의 주제를 나도 놀랄 정도로 내 마음에 깨닫게 된다.
이것은 마치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생각과 말과 예화가 내가 말하는 것과 같은 속도로 계속 무더기로 떠올라서
마치 직감적으로 분명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찰스 피니는 현대 신앙 부흥운동의 아버지로 존경받고 있다.
그가 교회에 오면 하나님의 회개케 하시는 능력이 역사하여 사람들은 의자에서 일어나 통로에 무릎 꿇고 엎드려서
회개하며 통곡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저명한 부흥의 권위자 에드윈 오르는 1858년의 부흥집회에서 신자들이 보인 다른 반응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초만원의 집회가 회중의 깊고 기묘한 정숙에 싸여 엄숙하였다.
죄를 철저히 깨달음과 두려워하는 근심이 집중된 묵상과 거의 죽은 듯한 깊은 한숨에서 나타난다.
한편에서는 희망과 용서의 기쁨을 그 눈물에서 엿볼 수 있었는데, 이 눈물은 그들의 눈동자를 적셔서 이전보다
영롱하게 빛내고 있었다."
1858년의 영적 각성은 전혀 다른 종류의 성령의 은사가 더해져서, 교회를 개척하는 사람, 예언적 설교자, 전도자, 목사,
교사 등의 은사가 나타났다.
이 은사들은 교회의 권위자로부터 안수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 있었지만, 겸손한 평신도 중에도 나타났는데, 이들이
받은 유일한 안수는 성령에 의한 것이었다.
 
여섯째로, 부흥은 지역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킨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의 신학자 토우저는 부흥을 ‘사회의 도덕적 풍조를 바꾸는 하나님의 역사’로 정의한다.
역사를 보면 진정한 영적 각성은 교회의 어떤 벽이라도 뛰어넘으며, 지역 사회를 철저히 개혁하였다.
예를 들면, 웨일즈에서 부흥이 일어나는 동안, 사회에 미친 영향은 놀랄 정도였다.
한때는 범죄가 완전히 없어졌다.
강간, 강도, 살인, 주거침입, 공금횡령 등이 완전히 없어져서 판사들은 재판할 사건이 없었다.
지방 영사는 긴급회의를 열어, 할 일이 없어진 경찰에 대해 논의했다.
술주정뱅이들은 반으로 줄었다.
부흥이 시작된 후 1년 간 2개의 주에서 사생아의 출생률이 44% 감소하여, 부흥운동의 영향이 너무나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부흥은 또한 영국의 미래를 형성하였다.
존 웨슬레와 함께 영국의 부흥을 신선하게 경험한 젊은 조지 휫필드가 뉴잉글랜드 지역에 상륙하였다.
그가 ‘영국의 압박으로부터 정치적 자유와 죄의 노예상태로부터의 자유’를 예언적으로 말했을 때 수천 명이
기독교인으로 회심하였다.
에드워드와 휫필드 같은 사람들 속에서 성령의 불이 타는 동안에 그 지역일대 인구 25만명 중 5만명의 영혼이 구원되었다.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합하면, 그 숫자는 ‘이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기’에 충분했다.
하나님은 에드워드나 휫필드 등의 사람을 이용하여 식민지 사람들을 당신에게 돌아오게 하시고, 독립선언을 하기에
앞서서 기독교적인 기초를 재건하셨다.
1800년 켄터키주의 대부흥은 테네시, 북캐롤라이나, 남캐롤라이나, 그리고 개척지의 최전선까지 확장되어 갔다.
오르의 보고에서 "이 영적 각성으로 전교인 선교사 운동, 노예제도의 폐지, 대중교육이 실시되었다.
중서부 지방에서는 600개 이상의 대학이 부흥의 사역자들에 의해 세워졌다."라고 했다.
부흥을 위한 우리의 사명
우리는 부흥을 가져올 하나님의 절대적인 행위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우리는 교회와 국가에 성령의 일반적인 강한 임재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할 일은 그리스도의 주권과 성령의 통제에 순복하며,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채울 때, 성령이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켜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두 명의 그리스도인 농부의 이야기와 비교해 본다.
그들은 인접한 농장에서 함께 살았다.
그들은 처음에 모두 다 가난했으며, 가진 농기구도 비슷했다.
오늘날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하다.
부자 농부는 열심히 일했다.
그는 밭에 뿌리는 씨를 신중하게 골랐다.
땅을 비옥하게 하고, 물을 주었으며, 세심하게 농지를 관리했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곡물을 수확했다.
다른 농부는 게을렀고 훈련되지 못했다.
그는 좋은 씨를 고르지 않았다.
토지에 적절히 비료를 주지 않았고, 많은 것을 운에 맡겨 버렸다.
그는 단지 현관 앞에 앉아서 쉬며 이 세상의 갖가지 것들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
하나님은 모든 농장에 태양빛과 비를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부탁하신 토지를 그들이 정성들여 관리하며 수고하여 일할 것을 바라셨다.
나는 이 이야기가 영적으로도 진리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원하여 회개하고 당신을 찾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부흥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게으른 자나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은 없고, 훈련만 있을 뿐이며, 혹은 더 나쁠 수도 있다.
주님은 당신이 택한 때, 당신이 택한 곳에서 역사하시는 절대주권자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민족과 여러 나라의 모든 사건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계획해야만 한다.
그러나 개인의 부흥은 성령이 우리의 속마음에 말씀하시고 불러 주시면서 시작된다.(빌 2:13, 요 16:8~11).
이러한 부르심에 의해 양심이 움직이며 눈을 뜬다.
우리의 의지가 그 부르심에 순종하든지 혹은 무시하든지를 결정한다.
오늘날 우리의 결단은 개인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존재의 전체를 가지고 당신을 찾기를 원하신다.
주님이 약속하신 부흥은 우리가 자신을 낮추며 겸손해져서, 회개하며,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얼굴을 구하면서
우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설 때 시작된다.
하나님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사랑하며 신뢰하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흥의 불길로 응답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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