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6일 일요일

존 웨슬리-3

존 웨슬리-3

9. 웨슬리의 인간론
10. 웨슬리의 기독론
11. 웨슬리의 구원론 -1 (의인과 중생론)
12. 웨슬리의 구원론 -2 (성화와 완전론)

 
9. 웨슬리의 인간론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왜 사는 것이고, 어떤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는 역사 이래 가장 큰 의문입니다.
신학적 인간학은 인간의 기원과 본성, 운명, 존재, 의의, 가치, 사명, 죄와 악 등에 대해 성경적으로 이해합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고, 하나님의 선행은총 하에 다시
다시 그 형상이 회복되는 구원론적 인간론을 전개합니다.
a)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본래의 인간
덴마크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심미적 존재, 윤리적 존재, 종교적 존재로 구분하였습니다.
* 웨슬리는 인간을 '자연적 인간의 상태',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의 상태', '은총 아래 있는 인간의 상태'로 구분합니다.
'자연적 상태'(natiral state)에 속한 인간은 죄의 종으로 하나님과 분리되 죽음에서 잠자고 있는 상태의 인간입니다.
이 상태의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암흑상태의 인간입니다.
그는 자신이 함정에 빠져 있음을 알지도 못한 채 세상의 쾌락을 탐하며 살고, 날마다 죄를 짓기에 죄의 종이며,
법에 매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마음에 근심도 없습니다.
'율법적 상태'(legal state)의 인간은 죽음의 잠에서 깨어난 인간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고의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이들은 죄와 싸우기는 하나 죄를 극복하지는 못합니다.
'복음적 상태'(evangelical state)의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된 상태의 인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찬 빛을 보고, 평화와 자유를 누리며, 죄를 범하지 않고 죄와 싸워 이깁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영원성의 형상' 즉 부패하지 않는 영광의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과 모습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였습니다.(창 1/26)
* 웨슬리는 인간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을 세가지로 설명합니다.
신의 자연적 형상(the natural image of God)으로 인간은 영원한 존재로서 불사(不死)의 존재이며, 이해력과 의지의 자유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지닌 영적 존재(spiritual being)로 고통을 경험하는 일이 없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신의 정치적 형상(the political image of God)은 인간이 다른 동식물 등 피조물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신의 도덕적 형상(the moral image of God)은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의롭고 거룩한 품성을 지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사랑 자비, 정의, 진리, 성결의 품성을 지니게 됩니다.
웨슬리는 인간 창조 목적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인간이 이 세상에 보내진 목적은 영원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며, 이를 위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섬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b)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타락한 인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거룩하고 무죄한 존재였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나누었으나 하나님이 금한
선악과를 따 먹고 타락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이 자유의지로 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불순종은 인간의 원죄가 되어 모든 특원을 잃어버리게 하였고, 후세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브를 유혹한 타락한 천사인 사탄도 책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는 모든 죄의 뿌리는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려는 욕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그 성품과 영혼이 완전히 부패하였으며, 그 생각과 계획이 악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거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없이는 하나님의 형상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는 인간이 죄를 자각할 때 구원이 시작된다고 보고, 복음을 전할 때 먼저 청중이 죄인이란 것을 자각시키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전했습니다.
아담의 의지적 범죄로 온 인류가 타락했고 고통, 슬픔, 온갖 불행을 상속했고, 죄성을 얻어 세상을 더럽히는 모든
죄와 악덕을 낳았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타락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 왔고, 죄로 말미암아 영과 육의 죽음이 들어 왔으며, 그 죽음은 온 인류에게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원죄로 죄성을 유전 받은 사람은 자기 의지로 자범죄(voluntary transgression)를 짓게 되는데, 자범죄는 하나님의
법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로 인간을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자범죄 중 내적인 죄는 하나님 이외의 것을 사랑하고 피조물에서 행복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영혼을 어둡게 해
신앙을 져버리게 하고 외적인 죄로 노출됩니다.
웨슬리는 타락한 자연인을 하나님보다 자신과 세상을 더 사랑하는 우상 숭배자로 보았습니다.
이런 자연인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고, 죄의 삯인 사망 선고를 받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복음의 출발점은 인간이 죄인으로서 자기의 구원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c)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새로운 인간
하나님은 타락해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사망에 거하는 인간을 내 버려 두지 않으시고 선행은총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그의 구원 사역에 복종하게 될 때 아담으로 인해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거듭남과
성화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원죄로 인한 죄책은 그리스도 대속의 무조건적인 공로로 값없이 해결된다고 하였습니다.
웨슬리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가 은혜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공로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길을 가는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상실하였던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면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는 물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사랑으로 회복됩니다.
웨슬리는 인간을 선행은총에 근거를 두고 아담 안에서 잃어 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회복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으로 이해하였습니다.


10. 웨슬리의 기독론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으로 그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고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독교의 중심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초대 교회사에서는 주로 예수님의 삼위일체와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웨슬리의 기독론은 영국 교회의 '39개조 종교강령'과 기독교 정통주의의 기독론을 따르고 있습니다.
웨슬리는 1738년 올더스게이트 집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중생을 체험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을 연관 짓게 되었습니다.
웨슬리 신학은 구원론이 중심인데 구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정확히 알고 믿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성화는 매 순간마다 주를 의지하고, 교류하며, 그리스도를 중심할 때만 가능합니다.
a) 신이며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웨슬리는 예수님을 신(神)이자 인간(人間)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점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구세주가 되기 위해선 신성과 인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영국 교회 종교 강령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영원 전부터 계신 말씀으로, 아버지와 한 본질을 가진 하나님이며
나뉠 수 없는 신성과 인성을 소유해, 인간과 같이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희생했음을 명시합니다.
웨슬리는 예수님은 아버지와 의지의 일치 뿐만이 아니라 본성에 있어서도 아버지와 일치하며(아리우스설 배격)
예수님과 아버지는 인격적으로 복수성을 띤다고 보았습니다.(시벨리우스 배격)
인간 구원 차원에서 예수님의 신성은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과 중보자로서 강조되고, 예수님의 인성은 예수님의
구속자와 성화모델로서 강조됩니다.
웨슬리는 예수님의 처녀 탄생과 육체적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예수님이 참 신이며 참 인간이심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또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를 강조하였는데,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중보의 역할을
담당하시는 대 제사장입니다.

b) 속죄와 화해의 제사장 역할을 완성한 그리스도
완전한 신이며 완전한 인간으로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켰습니다.
화해는 예수님이 인류의 속죄를 위한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해 저주를 받으시고 영원토록 효력 있는 속죄제사를 드리심으로
모든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죄씻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다면  어떠한 죄인도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웨슬리 속죄론의 중점은 하나님 자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을 치루시고 죄를 사하셨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속죄 행위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한 하나님의 행위로 이해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리스도의 속죄는 천하 만민에게 갚 없이 주어지는 순수한 은혜입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특정인에게만 작용한다는 칼빈주의의 '제한된 속죄' 사상을 반대하고, 속죄의 보편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구원 받거나 유기될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칼빈주의의 '이중 예정론'(double predestination)을
배격하고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스스로 대리적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재해 주시고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구약시대 제사장의 의무는 희생제사와 중재인데 예수님은 속죄와 화해의 사역을 스스로 담당하심으로써 신약시대
유일한 하늘 대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골 1/14, 롬 8/34, 히 4/14)

c) 성화의 표준 모델로서의 그리스도
죄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새 생명을 덧입어 거듭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삶에 모범을 보여주시고 많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 가야 하는지 제시하셨습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가 품었던 마음을 나도 품고, 예수님이 행하신대로 나도 행하는 것을 성결의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웨슬리의 성화는 매 순간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 때 성취됩니다.
웨슬리가 가장 중점을 두는 부문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성경의 삶입니다.
그는 인간은 거듭난 이 후에야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웨슬리의 기독론은 인간의 구속과 관계되고, 구속의 완성은 성결로 이루어집니다.


11. 웨슬리의 구원론 -1 (의인과 중생론)
웨슬리가 일생동안 가장 관심을 두고 추구한 것은 인간의 구원이었습니다.
그의 구원론은 믿음으로 의롭게되는 순간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성화되어 결국 모든 죄성이 사라져 사랑으로
충만해져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웨슬리의 구원에 대하 이해로부터 은총, 의인, 중생, 성화의 교리가 성립됩니다.
웨슬리는 구원의 단계를 ①선행 은총 ②의인 이전의 회개 ③의인 ④중생 ⑤의인 후의 회개와 점진적 성화
⑥성결(그리스도인의 완전) ⑦영화로 구분하여 구원론을 전개했습니다.
그의 구원론은 크게 '의인'과 '성화'의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 단원에서는 그 중 전반기의 '의인'과 '중생'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a) 구원과 은총
인간은 아담으로부터 유전한 원죄와 자신이 범한 자범죄로 인해 죄인 신분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는 원죄를 인간의 교만과 자기 우상(self-idolaty)에서 기인하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보았습니다.
원죄 아래 있는 인간은 저주 아래 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무 조건 없는 은혜인 하나님으로부터의 '선행 은총'이 요구됩니다.
웨슬리는 선행 은총에 의해 모든 사람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보편적 구원'을 주장합니다.(벧후 3/9)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구원 받기를 원하면서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요한 5/40)
인간은 하나님의 선행 은총을 거부할 자유의지가 있으며, 빛으로 나와 자기 행위가 들어날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입니다.

b) 구원과 의인
웨슬리에게 있어서 의인은 하나님이 나에게 무죄를 선고한 '죄의 용서'를 의미합니다.
죄사함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나의 죄가 전가되고 깨끗이 씻김을 받게 됩니다.
'의인'은 나의 의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의한 은혜에 의해 주어집니다.
이 과정 중에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과 그의 공로에 대한 믿음, 죄사함에 대한 확신이 요구됩니다.
인간은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면서 흑암 주관권에서 하늘 주관권으로 옮겨 오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의인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렇게 인간이 값 없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내 대신에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한 의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온 인류에 죄와 사망이 들어왔고, 예수님 한 사람으로 인해 의와 생명이 들어왔습니다.(고전 15/22)
의인이 된 사람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되 하나님께 순종하고 선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의인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으로는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의 대속',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인간의 참된
믿음'이 있습니다.
웨슬리는 의인됨으로 완전히 죄성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며, 성화를 통한 내적인 죄의 근절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구원이 순간적이면서 점진적이어서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천국에 가는 '궁극적 구원'보다도 '현재적 구원'을 강조했는데, 현재적 구원 없이는 궁극적 구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웨슬리는 종교 문 앞을 '회개'로, 종교의 문을 '신앙'으로, 종교 자체를 '경건'으로 보았습니다.
회개는 구원의 첫 단계로 의인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인간을 복음을 믿기 전에 회개해야 하며 그리스도를 신뢰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의와 신뢰를 포기해야 합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뉘우치며, 낮아진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비와 용서를 비는 마음입니다.
의인이 되고 난 후에도 죄를 짓는 순간마다 회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용서 받아야 합니다.(계 7/14)
루터는 예수님이 십자가 희생으로 이루어 놓으신 의를 믿음으로써 값 없이 의롭게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웨슬리 또한 선한 일을 통해 구원을 이루려고 하였지만 실패하고, 올더스게이트 집회의 신앙 체험을 통해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원관을 갖게 됩니다.
인간이 의인이 되는 과정은 예수님이 이루신 의를 믿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의가 내 안에서 성취됨으로 이루어집니다.
구원 받기 이전의 웨슬리는 의식주의자(methodist)로서 영국 성공회적 전통에 따라 하나님의 법도를 자신의 힘으로
지킴으로써 신앙과 선행에 의한 의인화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구원에 대한 불 확실성과 죽음에 대한 공포, 조지아주 선교 사업 실패, 모바리아 교도의 영향,
올더스게이트 체험 등을 계기로 심적 변화를 겪게 됩니다.
웨슬리가 말하는 의인은 죄의 용서를 말하며, 회개와 믿음을 의인이 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으로 보았습니다.
웨슬리의 의인관은 루터의 '오직 은혜만'(sola gratia)으로,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루터와 칼빈의 의인관이 믿음만 강조하고 선행을 경시해 신앙인으로 하여금 '도덕 불감증'에 빠질 수 있게 하는데
비해, 웨슬리는 선행을 성화의 조건으로 볾으로써 '신앙 지상주의'를 경계하고 믿음과 행실의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c) 구원과 중생(거듭남)
의인과 중생은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나지만 웨슬리는 의인이 중생에 앞선다고 생각했습니다.
죄인된 인간은 죄사함으로 의인이 되고, 성령을 받아 새 생명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중생으로 의인은 자신 안에 자리잡고 있는 타락된 본성을 새롭게 하게 됩니다.
의인은 죄책을 제거하지만 중생은 죄성을 제거하며, 의인은 하나님 사랑을 복귀하지만 중생은 하나님 형상을 복귀합니다.
웨슬리에게 중생은 내적 변화로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고, 죄의 능력을 제거하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적인
변화입니다.
사람은 중생으로 세상 사랑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교만과 혈기로부터 겸손과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즉 중생은 인간의 타락된 본성을 버리고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웨슬리는 설교에서 '중생'(regeneration)이란 단어보다 새로운 영적 출생이란 의미에서 '신생'(the new born)이나
'다시 태어남'(be born again)을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신생'은 세속적이고 마귀적인 마음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되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의인'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적인 변화라면 '신생'은 인간의 실제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웨슬리는 중생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 죄악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경건한 삶인 성결을 위해서는 먼저 거듭나야만 합니다.
둘째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과 교류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절한 구원을 위해 필요합니다.
셋째 중생은 천국에서는 물론 이 세상에서도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합니다.
중생한 사람은 중생의 표적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갈리디아서 5/22과 같이 성령의 9가지 열매(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친절, 선함, 믿음, 온유, 절제)를 보여주게 됩니다.
웨슬리는 중생의 첫 번째 표적으로 '믿음'을 강조하였는데 이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확고한 의뢰와 믿음이며, 모든
죄를 이기는 힘과 그 결과로 오는 평안입니다.
중생의 두 번째 표적은 '소망'으로 소망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신앙의 철저한 확신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중생한 자는 이 소망으로 인해 절망하지 않고 늘 기쁨과 희망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중생의 세 번째 표적은 '사랑'으로 변함 없이 주를 사랑하며, 주와 한 영혼으로 결합되어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게 합니다.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전파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웨슬리는 중생한 자의 표적으로 '믿음', '소망', '사랑'을 들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으로, 중생한 자는 거룩하고 완전한 상태인 성화를 지향합니다.
중생이 '다시 태어남'(출생)에 중점이 주어졌다면 성화는 '성장함'과 '온전해짐'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웨슬리는 중생을 성결과 성화의 시작으로 보았지만, 성경에서 구원 받기 위한 중생은 성화를 포함합니다.
어린 아이가 출생해도 잘 먹고 성장하지 않으면 병들고 죽을 수도 있듯이 중생한 사람은 반드시 경건한 신앙생활을
해야 하며, 믿음 안에 머물러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웨슬리는 중생한 자에게 남아 있는 죄의 뿌리를 제거하고 사랑으로 충만케 하는 성결도 강조합니다.
의인과 중생은 성화의 입구에 해당하며, 중생한 자는 완전 성화까지 계속적인 성장이 필요합니다.


12. 웨슬리의 구원론 - 2 (성화와 완전론)
중생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에 의미가 있다면 성화는 성장함에 의미가 있습니다.
중생한 자는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성화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성화(Sanctification)의 교리는 웨슬리의 구원론에서 가장 중요한 특색을 가집니다.
'완전 성화'는 구원의 완성이요 구원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a) 웨슬리 성화 사상의 신학적 배경
웨슬리의 성화 사상은 수 많은 경험과 연구를 통해 노력으로 얻어진 결과로 크리소스톰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총과
그 은총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상호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사상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웨슬리는 선행이 의로워진 그리스도인의 자동적 열매라는 루터주의자들의 주장이나, 신앙 지상주의, 도덕 무용론
등을 비판하고 선행은 인간의 의지가 동반된 신인 협력적인 일로 보았습니다.
율법의 역할에 대해 루터는 죄를 깨닫게 하는데 그치지만 칼빈은 선행과 성화의 선행 또는 채찍질과 자극을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의 입장은 칼빈과 비슷하나 칼빈이 성화가 성령으로부터만 나온다고 믿은 반면에 웨슬리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인간 의지의 책임적 응답에 의한 성화'를 강조했고, 칼빈과 달리 이 세상에서 완전 성화가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의 영향을 받아 성화가 믿음을 기초로 사랑의 실천이라는 선행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중세 수도원의 속세를 등지고, 금욕 생활을 하며,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고행적 수련을 통해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루려는 전통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웨슬리는 네덜란드 신학자 아르미니우스(Arminius, 1560~1645)에 의해 시작된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의
영향을 받아 신학적 골격을 아므미니안주의에 입각해 세웠고, '신인 협력설'(synergism)을 주장했습니다.
아르미니안주의자들은 칼빈주의자들과는 달리 인간이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자유의지로 받아들여 믿어 구원 받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믿었고, 구원 받은 사람도 자유의지로 타락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b) 성화 사상의 본질과 특성
'성결'이란 말은 '거룩'과 관련이 있는데 거룩은 히브리어 '카도쉬'(kadosh)로 분리하다는 의미가 있으며, 이 말은
하나님이 구별된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인간이나 사물이나 장소가 하나님과 관련지어질 때에도 거룩하다고 불리며, 어떤 객체가 '거룩'하게 되는 것을
'성결'이라고 하고, '거룩하다'와 '성결하다'는 같은 의미로 쓰여집니다.
그러나 성결과 성화는 다른데 '성결'은 영어로 'holiness' 또는 'being holy'로 표시되는데 반해 '성화'는 영어로
'sanctification' 또는 'becoming holy'로 표기됩니다.
'성화'는 죄에서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체험적 의미가 강한데 비해, '성결'은 성화를 통해 거룩해진
결과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웨슬리의 '성화'는 소극적으로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성결'을 의미하지만 적극적으로는 세상에 사랑과 선행을
실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사랑'을 성령의 최고의 열매이고,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인준된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는 성화란 자기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고, 구원의 최종 조건으로 간주했습니다.
인간이 서로 욕하고 미워하며 자신도 사랑하지 않아 학대하는 이유는 내 마음 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넘치는 사랑을 전파하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교우를 친 형제 자매처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늘 계명이자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마태 22/32~36)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성화'는 루터의 믿음에 의한 '신앙 의인'을 인정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본 받아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성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았습니다.
웨슬리는 믿음과 행위를 대립시켜 신앙만을 찬양하고 선행을 경시하는 것을 사탄적인 일로 보면서 "신앙에 아무런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가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행위가 믿음을 온전케하고 증명한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선행과 복음 사역을 할 때 믿음이 더 굳건해지는 것을 보면 믿음과 행함은 서로 대립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화는 성결을 목표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해 서서히 전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화를 수행하는 주체가 '성령'이며, 성화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성화는 스스로 이룰 수 없으며 성령을 통해 끊임 없는 하나님의 교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즉 성화는 온전한 진리와 믿음의 바탕 위에 성령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이 합쳐져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c) 성화의 단계
1. 초기의 성화 (initial sanctification)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죄사함으로 중생될 때 성화가 시작되는데 이를 '초기의 성화'라고 합니다.
칭의와 중생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에 '관계적 성화'라고도 합니다.
관계적 성화는 내적인 변화가 아니라 외적인 변화이며 내 과거의 죄를 용서 받은 상태입니다.
관계적 성화를 이룬 사람은 영적 성장을 거쳐 온전한 성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2. 점진적 성화 (gradual or progressive sanctification)
어린 아이가 태아나면 젖을 먹고 성장해야 하듯 내 영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과 은혜로 성장해야 합니다.
점진적 성화 기간동안 주님을 믿고 의지해 육신의 본능과 사탄의 시험·유혹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인간은 죄사함을 받았어도 죄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죄의 유혹이 있는 순간마다 회개하며 나아갑니다.
또한 내 스스로 육신을 이길 수 없으므로 자아를 버리고 주님 뜻에 맡겨 성령이 작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3. 온전한 성화 (entire sanctification)
'온전한 성화'란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된 상태이고,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됨을 말하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의 아가페적인 사랑이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초기 성화는 불신자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얻는 순간적인 체험이라면, 온전한 성화는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죄성을
일소하고 주님과 하나되 경건하고 깨끗해지는 체험입니다.
웨슬리는 '온전한 성화'를 '제 2의 축복', '두 번째 변화', '온전한 구원', '그리스도의 완전',이라고 불렀고, 그 본질을
'온전한 사랑', '순수한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나아가라고 권고했습니다.
웨슬리는 점진적 성화가 계속 되다 보면 죽기 전에도 어느 순간 완전한 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4. 영화 (glorification)
영화는 구원의 마지막 단계로 천국의 시민으로 살 수 있는 흠 없이 완전하고 거룩한 영적 인격의 완성 내지는 성취입니다.
영화는 최종적인 완전(final stage of perfection)이며, 그는 죽음과 함께 영화에 이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온전해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벽한 구원의 길을 제시했기 때문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라는 것을 명심하면 이룰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1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d) 웨슬리 성화(완전) 사상의 성경적 근거
마태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야고보서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에베소서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마태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히브리서 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골로새서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고후 13/9 우리가 약하더라도 여러분이 강하면, 그것으로 우리는 기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완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골로새서 2/10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어떤 권세나 세력보다
더 높은 분이십니다.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벧전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요한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로마서 8/29-30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첫 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하여 예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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