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7일 월요일

교권주의 비판-3 (니골라당과 기독당)

교권주의 비판-3 (니골라당과 기독당)
 

니골라 당의 행위와 교리
니골라 당´이라는 말은 성경에 2번 나옵니다(요한계시록 2 :6, 2 :14). 성경을 읽지 않는, 소위 선데이 크리스챤(Sunday Christian)들 중에서는 이 용어가 성경에 나오는지조차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 용어의 성경적인 의미를 가르치는 것을 꺼려합 니다. 그러나 이 용어의 의미를 올바로 아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하며, 아마 현대의 교회들에게는 치명적이기까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니골라 당'은 그리스어(헬라어)에서 음역된 것입니다. 그리스어로 '정복하다 또는 지배하다'(conquer, overcome)를 뜻하는 '니카오'와 '일반 백성 또는 평범한 사람'을 뜻하는 '라오스'(laity, layman)의 합성어입니다. 이 '라오스'가 성경에서 사용될 때는 "평신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니골라 당'은 곧 "평신도를 지배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스 목사는 이것에 대하여 "평신도 위에 군림하는 목사의 높아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라킨 목사도 "이들의 목적은 성직제도를 세워서 평신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적 계승'과 성직자를 평신도와 구분 시키려는 교리의 기원을 볼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니골라 당은 구약에서와 같이 하나님 앞에 특별히 부르심 받아 특별한 직분을 받은 성직자(제사장)와 평신도를 구분함으로써, 성직자가 일반 신자들을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목회자와 평신도,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단지 은사와 직분적인 의미만 부여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평신도 할 것없이 거듭난 그리스도인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지체"요, "형제"이며, "기름부음을 받은 성직자(제사장-Priest)"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2 :5, 9을 보십시오.
 
"너희도 산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영적인 희생제물들을 드리는 거룩한 성직자(제사장)이 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같은 성직자(제사장)이며..."

말씀에서 떠난 현대의 많은 교회들은 교회의 감독인 목사는 하나님에 의하여 아주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아 성직으로 성별된 거룩한 종이지만, 평신도는 일반적으로 교회 다니는 신자들을 총칭하여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물리적으로 그들을 지배하고, 평신도들 위에서 군림하며, 자신들을 섬겨줄 것을 강요합니다. 마치 구약의 성직자들처럼 자신들만이 특별하게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평신도들은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절대로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다 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모두 다 한 형제입니다. 주님께서도 이것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 셨습니다(마태복음 23 :8).

단지 구별된 것은 각자가 받은 "은사적 위치"(로마서 12 :1-8;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 :7-12)와 "지역교회적 직분"(디모데전서 3장; 디도서 1,2장)의 차이일 뿐입니다. 목회자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위와 힘은 "영적인 권위와 힘" 뿐입니다. 목회자의 영적인 권위와 힘은 어디서 오는 지 아십니까? 그것은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사도 행전 6 :4; 디모데전서 4 :5).

그런데 목회자가 "말씀과 기도" 이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 교회는 십중팔구 타락하고, 부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 여러분, 위로부터 오는 영적 권위를 힘 입으십시오! 영적 권위와 힘은 결코 물리적인 것이나 신분적인 구별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래로부터 오는 인위적인 권위를 힘입는다면, 이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 사실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교회의 직분을 맡은 목회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의 중 장로들(목사들)에게 권면하노니 ...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마지 못하여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기꺼운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인들 위에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떼들에게 본이 되라"(베드로전서 5 :1-3).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 대해서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너희 젊은이들아, 이와 같이 장로(목사)에게 순복하고, 또 너희가 다 서로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입으라. 이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력한 손 아래서 스스로 겸손하라. 때가 되면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베드로전서 5 :5-6).
 
위의 말씀처럼 서로를 더 낫게 여김으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3 :17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며 스스로 복종하라: 이는 그들이 너희 혼들을 위해 깨어있기를 마치 자기들이 회개해야 할 자들인 것같이 함이니, 그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슬픔으로 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성도들은 인도하는 목자에게 순종하여 성도들로 인하여 낙심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우리 주님께서 일곱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일곱 교회는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는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하던 당시인 A.D. 92년 ~ 95년경 소아시아 지방에 실제로 존재하던 교회들을 말합니다. 영적으로는 교회가 시작한 오순절 성령강림 때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교회역사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 중 니골라 당은 두 곳, 곧 에베소 교회(요한계시록 2 :6)와 퍼가모 교회에 주시는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요한계시록 2 :14). 에베소 교회는 교회사에서 교회가 시작된 때로부터 A.D. 100년까지를 말하며, 퍼가모는 A.D. 325년~ 500년까지의 교회 기간을 말합니다. '에베소'란 "처음 사랑"이란 뜻이며, 퍼가모란 "숱한 결혼"이란 뜻입니다.

'니골라 당'이 언급된 두 성경구절을 자세히 비교하여 살펴본다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에베소 교회 기간에서는 단순히 "니골라 당의 행위들"이 퍼가모 교회 기간에 가서는 "니골라 당의 교리"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자그마한 씨에 불과하던 것이 뿌리를 완전히 내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초대교회 당시(에베소 교회 기간)에는 "행위들"에 불과했던 '씨'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퍼가모 교회 기간) 교회가 정치권력과 결탁함으로써 "교리"로 그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놀랄만한 일입니다. 콘스탄틴 이후 카톨릭이 그 싹을 트면서 이 "성직 교리"를 자신들의 교리로 정착시켰고, 관료주의적인 성직 계급을 본격화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의 성직 계급제도(신부 - 주교 - 대주교 - 추기경 - 교황)가 바로 이 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직자(제사장)가 되는 이 은혜의 신약시대에 구약에서의 성직자(제사장)들처럼 자신들을 특별한 사제적인 위치로 구별하여 올려놓고, 일반 평신도들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칭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요, 사람들의 죄를 사면할 수 있는 자들이며, 또한 초대교회 사도들의 사도권을 계승한 자들이요, 하나님을 대신하여 대리권을 가진 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God forbid!).

예를 들어, "신부"라는 호칭을 살펴볼 것 같으면, 한자로는 "神父"요, 영어로는 "God-Father"이니, 이를 해석하면, "하나님 아버지", 또는 "하나님의 아버지"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또는 "하나님의 아버지"라고요? 천하에 이렇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 과연 어디 있단 말입니까? 카톨릭의 신부들은 자신들이 "아버지(Father)"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 마태복음 23 :9에서 이미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 "땅 위에서 사는 사람을 너의 아버지라 칭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 그런데도 그들이 지금도 "아버지"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왜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가서 한 번 물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니골라 당의 행위와 교리를 "미워하신다"(hate)는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2:6,15).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에 대해 대항(PROTEST!)했던 개신교, 곧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들이 오늘날 카톨릭의 전통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실로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다시 카톨릭과 손을 잡고, 연합하겠다는 저의는 또 무엇입니까?

카톨릭에 대해 "프로테스트"(protest)했던 개신교가 왜 다시 카톨릭으로 돌아간단 말입니까? 오늘 날 카톨릭의 교리와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니골라 당의 행위와 교리를 그대로 자행하고 있는 교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마지막 날에는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말한 그 말이 그를 마지막 날에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 :48).

목회자 여러분! 주님께서는 먼저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에까지 순종하신 것(빌립보서 2 :2-5)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도 지배하려 하지 말고, 먼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지교회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말씀으로, 그리고 사랑함과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먼저 섬기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안에서 누구보다도 여러분을 존경할 것이며, 양식을 요구하지 않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소리 없이 여러분의 곡간을 채워 줄 것이며, 내세우거나 군림하지 않아도 여러분의 영적 권위를 세워 줄 것이며, 자원하는 영으로 여러분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또한 목자장이신 주님께서 오시면 여러분을 격려하시고, 노고를 치하하시며, 큰 상, 특히 영광의 왕관(면류관)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 중 장로들(목사들)에게 권면하노니 ...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마지 못하여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기꺼운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인들 위에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떼들에게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시들지 않는 영광의 왕관(면류관)을 받으리라"(베드로전서 5 :1-4).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서는 올바른 성경적 가르침을 깨닫기 바라며, 특히 목회자 여러분들께는 성경적인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있길 소원하는 바입니다.


* 출처 :
http://www.blessedhopebaptists.or.kr/



 니콜라파의 "성직 복장"
요한계시록 2:6과 2:15을 보면, 니콜라파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주석서나 강해서를 살펴보아도 "니콜라파"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니콜라파"란 "Nicolaitans"를 음역한 말이다. "Nicolaitans"란, "Nikao"(지배하다)와 "Laos"(Laity, 평신도)의 합성어이다. 말 그대로 평범한 보통 사람을 누군가가 지배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주목해 보면, 계시록 2:6에서는 니콜라파의 '행위'(deeds)라고 언급되었다가, 계시록 2:15에서는 니콜라파의 '교리'(doctrine)로 바뀐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니콜라파"는 보통 사람들을 어떻게 지배할까 하는 행위(deeds)로 드러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도적 권위를 내세웠고, 자신들만이 특별한 사도들인 양, 또한 자신들만이 특별하다는 듯, 구별된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차츰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오늘날도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행위'가 '교리'로 확립되면서 '성직자 계급'이 형성되었고, 자신들만이 특별한 지위인, 제사장 직분이 되어 평범한 보통 그리스도인들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행위는 교리를 확립하기 위한 전 단계일 뿐이다).
이것은 바빌론 종교가 기독교계에 유입된 전형적인 예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로마 카톨릭이나, 사실 개신교회도 만만치는 않다. 얼마 전 신문에서 개신교 목사들의 '성직복장'(목사복)이 소개되었다. '로만 칼라'(Roman Collar)를 놓고 카톨릭과 개신교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더니, 드디어 개신교 목사들만을 위한 '성직복장'(목사복)이 나온 것이다. 카톨릭 대사전은 로만 칼라에 대해 "성직자가 자신의 공식적인 입장을 표시하기 위해 목에 두르는 칼라"라고 정의하고 있다.
검은색 셔츠 위에 받쳐 입는 흰색 칼라인 '로만 칼라'는 신부들의 전형적인 옷차림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개신교 목사들 중 일부가 이러한 복장을 하여 신부들은 내심 못마땅히 여겨 왔다. "하느님 명령에 복종하는 순명(順命)과 가정을 갖지 않는 독신(獨身)의 상징이 바로 로만 칼라입니다." "누가 신부이고, 누가 목사인지 얼른 구분되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습니까?"(조선일보, '98.10)
이에 목사들은 "87년 민주항쟁 때, 일반인들과 복장이 구분되지 않아, 곤란을 겪었던 개신교 목사들이 보라색 와이셔츠에 하얀 칼라를 했던 것이 효시다."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목사들도 로만 칼라를 해 왔다."(어느 외국인가? 그 목사는 배교한 외국교회 목사일뿐이다.)라며 응수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은 98년 12월 '목사복'을 제정하여 발표했다. 그들은 '로만 칼라'란 말 대신 '클레리칼 칼라'(Clerical Collar)란 말을 쓰면서, 베드로복(평상복과 예복 겸용)과 바울과 안드레복(평상복)을 내놓았다(베드로와 바울, 안드레가 들으면 기막혀 할 일이다).
개신교회의 목사들이 '성직복장'(목사복)을 하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법관에게는 법복이 있고, 의사는 의사 가운이 있어 이런 특별한 복장으로 인해 일반 사람들과 구분되듯이 그처럼 목사도 일반인들과는 구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성직복장'(목사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목사를 직업으로 삼아 밥먹고 살기 위해 하는 사람들에게는 '목사복'이 필요한가 보다(롬 16:18, 빌 3:19).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히려 긴 옷(막 12:38, 눅 20:46)을 입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마 23:27)과 독사의 세대라고 저주하셨다(마 23:33). 베드로, 안드레, 바울 등 사도들 중 어느 누구도, '성직복장'(목사복)을 착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성직 복장'(목사복)을 말하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구약시대의 제사장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제사장에게는 제사장 복장에 대해서 명령하셨다(출 28장).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그 어떤 사도에게도, 심지어는 어떤 목사에게도 '성직복장'(목사복)을 입으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다.
신비의 바빌론 종교 제사장들만이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보통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제사장 복장을 차려입었다(알렉산더 히슬롭의 <두 바빌론> 참조). 로마 카톨릭의 요한 바오로 2세가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차려 입은 교황 복장은, 거처조차 변변치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의 모습(눅 9:58)과 전혀 닮은 구석이 없다(재림 때의 모습과는 더 닮은 점이 없다. 계 1:13-16; 19:11-18).
오늘날 개신교에서 로마 카톨릭처럼 '성직복장'(목사복)을 하려는 의도는, 자신들 성직계급의 교리(니콜라파의 교리)를 정당화하려는 것일 뿐이며 '성직복장'(목사복)을 하는 것은 '니콜라파의 교리'를 확립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이제 개신교는 곧 로마 카톨릭을 더 많이 닮은 무언가를 발표할 것이다(성직자가 평신도를 잘 지배하기 위해). 이미 로마 카톨릭과 성공회, 정교회, 루터교, 개신교 내에 '니콜라파의 교리'는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모든 주요 행사가 똑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부활절 계란, 크리스마스 트리, 세례식, 유아 세례식, 성찬식, 예배 때 목사 가운, 기도문 암송, 성가대의 기도송 등등).
그러나 '니콜라파의 교리'를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성직복장'(목사복)이란 미명하에 드러나는 악한 일(스카랴 11:16,17) 때문이다. 그들 '특별한 성직자'들은 자신들만의 '특별한 복장'을 하고, 그들의 양들을 철저히 속이며, 위에서 지배하려고 한다. 혹 '목사복'을 입으면 더 거룩해 보이고 평신도들보다 더 특별해 보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목사가 참으로 신실하게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지는 '성직복장'(목사복)으로 결코 입증되어지지 않는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임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우매한 목사들이 자신들을 성도들과 특별하게 구별짓기 위해 '성직복장'(목사복)을 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니콜라파의 교리'에 흠뻑 젖어 있는 '니콜라파'란 사실을 스스로 만천하에 알리는 어리석은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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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당 출범
조용기 김준곤 목사 등 주도...고난 상징 '물고기' 정당마크 내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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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당이 3월 22일 창당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이날 대회에서 최수환 장로는 상임대표로, 김준곤 목사는 상임대표고문으로 각각 선출됐다. 사진은 만세삼창을 하는 기독당 관계자들. ⓒ뉴스앤조이 신철민
크고 작은 논란의 대상이 됐던 한국기독당(기독당·상임대표 최수환)이 드디어 출항을 선포했다. 기독당은 3월 22일 오후 1시 30분 서울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창당대회를 열고 최수환 장로(새문안교회)를 상임대표로 선출했다. 상임대표고문에는 김준곤 목사, 상임고문에는 김기수 김동권 김소영 박영률 신신묵 조용기 최병두 목사가 선출되었다.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 4부로 나뉘어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이날 대회에는 시종 총선 승리를 자신하는 목소리들이 넘쳐났다. 1부 예배 설교를 한 김준곤 목사는 "교인들에게 기독당을 찍지 말라고 할 목사는 없다"며 "기도하고 표를 모으면 기독당이 제1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희망이 없는 한국정치에 기독당이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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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 신철민
기독당 참여 여부를 놓고 관심을 모았던 조용기 목사는 적극 참여 입장을 드러냈다. 조 목사는 격려사에서 "지금 한국사회는 강도 당한 사마리아인 같다"며 "교회가 이를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면 역사의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창당대회에는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16대 국회의원을 지내다 서울 노원(병)에서 공천 탈락한 조웅규 의원이 기독당 입당 의사를 밝혀 주목을 끌기도 했다.
조용기 목사 적극 참여 '눈에 띄네'
무용과 시낭송 등으로 꾸며진 식전행사 후반부에는 어른과 어린이가 촛불과 소금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와 주목을 끌었다. 사회자는 이 행진의 의미를 "기독인이 분연히 일어나 부패한 정치를 복음화해야 한다"는 말로 설명했다. "소금처럼 온 몸을 던져 한국을 지키겠다"는 다짐도 나왔다. '정치권 복음화' '한국기독당' 구호와 함께 식전행사는 막을 내렸다.
1부 예배 사회를 맡은 최병두 목사는 이날 예배의 의미를 “기독교 120년 역사상 처음으로 의미 있는 예배”라고 평가했다. 기도를 한 김동권 목사는 “조용히 엎드려 기도하던 종들이 모여 예배드리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소서”라고 간절히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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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이어 ‘하나님을 우리 민족의 주님으로 삼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김준곤 목사는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1620년 10월 27일 청교도를 실은 배가 미국에 도착하면서부터 미국 역사가 시작되었다”며 “그 결과 미국은 화폐 안에 ‘In God We Trust'라는 문구를 새기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세계 패권을 쥔 나라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독당 탄생에 대해 “교회사 민족사 정신사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정치에 대한 냉소와 혐오가 극에 달해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한국사회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야 한다”고 기독당 창당에 의미를 부여했다.
기독당에 대한 일반인의 냉담한 반응을 고백한 발언도 관심을 모았다. 김 목사는 “어디를 가도 영하 20도”라며 “나를 만나지도 보지도 않으려 한다. 이단 쳐다보듯 한다”고 토로했다.
김 목사는 이런 분위기에 대해 “영적인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악마의 계략”이라며 “지금 사탄이 정치를 다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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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 신철민
그는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한 유일한 희망이 교회에 있음을 강조하며 “좌익이 나와서 한국정치 70%를 장악할 것이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기독의원들에 대한 질타도 빠지지 않았다. 김 목사는 “지역구도와 부패를 깨기 위해 기독의원들이 손을 잡고 기도했으면 한국정치가 변했을 것”이라며 “교회가 예산을 세워 정치권복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김준곤 목사는 “교회 안에 굉장한 에너지가 존재한다”며 “교인들이 배에 올라온 해적을 무찌르듯이 정치악을 향해 총(표)을 쏜다면 기독당이 제1당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번 기독당을 찍으면 영원히 기독당을 찍을 것이라는 독특한 분석도 나왔다.
힘에 대한 강조도 중요한 핵심이었다. 김준곤 목사는 “정치는 힘이 있어야 한다”며 “내 손 안의 표가 곧 힘이고 힘이 있으면 세상은 변한다”고 외쳤다. 김 목사는 “기독당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소환할 것이다”며 “기독당으로 인해 교회가 부흥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독교를 표방한 정당이 생기면 다른 종교와 갈등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김 목사는 “염려 마라”는 말로 일축했다. 그는 “한국에서 종교 때문에 싸운 일이 없다”며 “절대 싸울 일이 없을 것이다. 겸손하고 사랑 많은 사람이 당선될 것이다. 나쁜 사람이 되면 나라도 끌어내릴 것이다”고 호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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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목사가 설교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조용기 목사는 김 목사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한국정치, 사탄이 장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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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를 외치며 당기를 흔드는 신신묵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김준곤 목사의 설교가 끝나고 박영률 목사의 광고가 이어졌다. 박 목사는 조용기 신신묵 김소영 목사를 특별히 거론하며 감사를 표했다. 김성영 성결대 총장과 노승숙 <국민일보> 사장이 내빈으로 소개됐다. 길자연 백도웅 목사가 화환을 보내온 사실도 광고했다.
2시 50분에 시작된 3부 창당대회는 대의원 925명이 참가한 가운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김기수 목사를 대신해 신신묵 목사가 창당대회 사회를 맡았다. 기수로부터 당기(黨旗)를 건네 받은 신 목사는 ‘할렐루야’를 외치며 깃발을 5∼6 차례 흔들었다. 국민의례를 마친 참가자들은 순국선열과 순교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박영률 목사의 경과보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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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조용기 목사가 상임대표로 선출된 최수환 장로에게 당기와 스톨을 건네고 있다.ⓒ뉴스앤조이 신철민
이어 일부 수정된 당헌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당 상임대표로 최수환 장로가 박수로 선출됐다. 최 장로는 꽃다발과 함께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축가를 들으며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김준곤 조용기 목사는 당기와 기독당 마크가 새겨진 스톨을 최수환 상임대표에게 건넸고 최 대표는 기를 흔들며 ‘한국기독당’을 연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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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환 상임대표. ⓒ뉴스앤조이 신철민
최수환 상임대표는 인사말에서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된 이후 150년만에 기독교정당이 생기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최 대표는 기독당의 방향에 대해 △헌법 준수 △국민 삶 향상 △자유민주주 이념 수호 △한미동맹 강화 △국민화합 △국민통합 등을 내걸었다. 최 대표는 기독당의 방향을 ‘건강한 보수’로 규정하며 “4·15 선거에서 기독당에 표를 모아달라. 빛과 소금이 되도록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마지막으로 소감을 마무리했다.
최 대표의 소감에 이어 상임고문 추대가 이어졌다. 최 대표의 안건 상정이 끝나기 무섭게 대의원 한 명이 나와 “상임대표에게 위임하자”고 제청했다. 이 의견은 곧장 받아들여져서 그 자리에서 상임대표고문 김준곤 목사, 상임고문 김기수 김동권 김소영 박영률 신신묵 조용기 최병두 목사가 선출됐다.
정강·정책 역시 한 대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만장일치로 원안대로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상임집행위원 선출은 상임대표단과 창당준비위 상임위원에게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창당대회 발언자는 미리 맨 앞자리에 대기하고 있다가 순서가 되면 질서정연하게 나가 발언을 했으며 단 한 번의 이견이나 반대 없이 모든 안건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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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대회 전경. ⓒ뉴스앤조이 신철민
이어서 민승 목사가 창당선언문을 낭독했다. 민 목사는 창당선언문에서 “부패의 상징이 된 정치의 근본적 변혁을 주도하여 위기 극복을 바라는 국민 여망에 부응하고 신앙과 양심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대안 세력이 될 것을 선언한다”고 밝히고 “정치 개혁의 선두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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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를 부르는 참가자들. ⓒ뉴스앤조이 신철민
선언문 낭독에 이어 참가자들은 구호 제창과 만세삼창을 했다. ‘복음화로 구국을’ ‘사랑으로 통일을’ ‘미래를 주님에게’가 이들이 내세운 구호였다. 만세삼창은 순서지에 나와 있는 문구와는 다르게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한미동맹’ ‘한국기독당’ 이름으로 외쳤다. 순서지에는 ‘자유민주주의 한미동맹’ 구호 대신 ‘17대 총선 승리’가 제시되어 있었다.
반대·이견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
4부 축하의 시간에 격려사를 한 조용기 목사는 ‘기독당에 적극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기독당을 적극 찬성하는 입장을 보여 주목을 끌었다. 조 목사는 “많은 사람들이 왜 정치에 참여하느냐고 질문한다”면서 “지금 한국이 미증유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기독인이 천국만 말하면서 사회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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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조 목사는 강도 만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예로 들며 “지금 한국사회가 강도 당한 상황인데 교회가 책임을 회피하고 이를 그냥 지나간다면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며 “빛은 어두운 곳에 필요하고 소금은 썩은 곳에 필요하다. 가장 어둡고 썩어 있는 정치에 기독인이 가야한다”고 말해 참가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조용기 목사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역사가 오늘을 크게 기록할 것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교회가 자선사업을 벗어나 사회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로 격려사를 맺었다. 조 목사는 발언 도중 수 차례나 박수를 받았고 참가자들 가운데는 조 목사의 말에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하는 사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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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이어서 축사를 한 김소영 목사는 자신을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절에 KNCC 총무를 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정치권복음화라는 말에 매력을 느껴 참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군대, 근로자, 경찰, 학원은 복음화에 성공했지만 정치권은 복음화 되지 않았다”며 “정치권 복음화를 위해 나도 나섰다. 모두 일어나자”고 포효했다.
대회는 김 목사의 축사에 이어 독일 기민당 당수 알글라 메르켈의 축하문을 이기영 박사가 대독하고 비전스타트 행사를 갖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창당대회가 모두 마친 후에는 기독당 관계자들이 주최한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양정지건 nunmul25@newsnjoy.co.kr
(c)2004 뉴스앤조이 2004년 03월 23일




기독교총선연대 한국기독당 반대 논평…독재 부역자 회개가 먼저
"차라리 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기독교총선연대 한국기독당 반대 논평…독재 부역자 회개가 먼저 
한국기독당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날로 높아져가고 있다. 기독교총선연대(공동대표 홍근수 홍성현 이문숙 김동한 박천응)는 3월 23일 논평을 내고 기독당에 신랄한 비판을 제기했다. 기윤실 공정연대 등이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서에 이어 교계에서 기독당에 대한 두 번째 공식 반응이 나온 셈이다. 
마태복음 26장 24절 말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를 인용하여 쓰여진 이번 논평은 시종 강경한 어조로 기독당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기독교총선연대 논평이 지적한 기독당의 문제점은 크게 △기독당 참여 주체들의 공적 회개가 없다 △기독당의 정강정책이 민주개혁을 외면하고 있다 △성도들의 헌금이 선거운동에 사용될 것이다는 점이다. 
논평은 기독당 추진 주체들을 "유신시대와 5, 6공을 거치면서 정치권력과 결탁해 온갖 기득권을 향유해 온 독재 부역자"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어떤 회개나 사죄의 뜻을 표명하지 않은 채 정치권을 복음화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성직과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기독당의 정강정책에 대해서는 "시대의 민주개혁 요구를 외면하는 보수수구친미주의적 성격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사랑과 정의, 용서와 화해, 나눔과 봉사라는 기독교의 보편원리를 난폭하게 부정하고 유린하는 수구냉전당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또한 교인들이 낸 헌금이 정치 자금으로 사용되는 것은 배임죄에 해당한다며 헌금 유용 가능성도 지적했다. 
다음은 기독교총선연대가 발표한 논평 전문이다.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마 26:24)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 많은 논란과 우려를 자아냈던 소위 기독교정당(이하 기독교정당)인 한국기독당이 창당했다. 우리 기독교총선연대는 기독교정당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회를 통해 현재의 기독교정당이 가진 문제점을 밝힌바 있다. 하지만 기독교정당이 한국기독당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지금, 우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자 한다. 
1. 한국기독당의 창당에 대해 가장 많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참여 주체들의 공적인 회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잘 알고 있는 대로 한국기독당의 추진주체들은 유신시대와 5,6공을 거치면서 정치권력과 결탁해 온갖 기득권을 향유해 온 독재 부역자들이다. 그들은 민주화를 갈망하는 국민의 뜻을 짓밟고 독재정권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독재권력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던 당사자들이다. 광주민중항쟁의 핏자욱 위에 집권한 권력을 위해 행했던 그들의 행동은 5,6공 청산과 함께 청산해야할 대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기독당의 추진주체들은 이에 대해 어떠한 공적 회개나 사죄의 뜻을 표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이들은 후안무치하게도 회개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직접해야 한다느니 등등 운운하면서 역사와 정의의 심판을 외면해왔다. 이러한 독재부역자들이 그 무슨 정의, 청렴을 운운하며 부패정치권을 깨끗하게 하겠다는 것이며 나아가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치권을 복음화 하겠다고 나서는 것인가? 우리는 독재부역자들이 성직과 하나님의 교회의 이름을 더럽히며 추진하는 한국기독당이 기독교와는 조금도 인연이 없는 독재부역자들의 정치집단이라고 규정하며 이에 유감을 표명한다.

2. 한국기독당의 정강정책은 이 시대의 민주개혁의 요구를 외면하는 보수수구친미적 성격으로 일관되어 있다. 한국기독당은 그 정강정책에서 한미동맹유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유지, 적조현상차단, 분단유지 등을 내세웠다. 이러한 한국기독당의 정강정책은 기독교의 근본원리인 사랑과 정의, 용서와 화해, 나눔과 봉사의 원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한국기독당은 효순이와 미선이를 살해하고도 무죄석방한 한미동맹체제의 유지를 통해 정의의 원리를 외면하고 있고, 가난한 사람과 나눔을 거부하고 수백만 국민을 비정규직과 대규모실업자, 노숙자로 만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유지를 통해 나눔과 봉사의 원리를 유린하고 있다. 특히 한국기독당의 정강정책은 사회의 적조현상차단을 운운하며 사회를 좌우익의 냉전적 대결구조로 몰아가면서 사랑의 원리를 부정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운 정강정책은 사랑과 정의, 용서와 화해, 나눔과 봉사라는 기독교의 보편원리를 난폭하게 부정하고 유린하는 수구냉전당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이 시대의 정신인 민주개혁과 남북화해와 협력을 통해 통일된 자주번영민족의 시대적 과제를 외면한 채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끝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는 한나라당과 같은 정강정책이 어찌 기독교정당의 정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정강정책으로만 보아도 그 어떤 기독교정치사상과 무관한 한국기독당이 소위기독교정당의 외피를 쓰고 활동하는 것을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

3. 벌써부터 대형교회의 돈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뉴스보도에 의하면 한국기독당창당을 위해 대형교회인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낸 돈이 10억원에 이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최성규목사는 1억 5천정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창당을 위해 쓴 돈이 10억 이라는 소문 가운데 1억5천정도라고 해명했다면 그 돈의 출처는 과연 어디인가? 1억5천만원 이라는 돈은 소중한 교인들이 낸 헌금인 것이다. 또한 앞으로 후보등록과 선거운동을 위해서는 수십 수백억이 소용될 것인데, 그 돈의 출처는 어디일 것인가? 성도들의 헌금은 정치자금으로 전환하여 한국기독당의 선거운동을 위해 사용될 것이다. 한국기독당과 조용기 목사는 교회의 헌금을 정치자금으로 사용하는 배임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정당의 추진주체로 보나 정강정책과 실제 행동으로 보아 기독교정당이 한국교회의 선교와 전도에 장애를 조성하는 존재가 될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26:24)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한국기독당의 장래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주후 2004년 3월23일
2004기독교총선연대 
양정지건 nunmul25@newsnjoy.co.kr
2004 뉴스앤조이 2004년 03월 23일


 
기독당, 한미동맹 강화 '반공·친미 이데올로기 부활'
한국 교회와 사회 분열 초래...우선 과거 죄악 참회부터 해야
한국기독당이 △헌법 준수 △국민 삶 향상 △자유민주주 이념 수호 △한미동맹 강화 △국민화합 △국민통합이라는 매우 의욕적인(?) 정강정책을 가지고 마침내 창당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기독당에 다른 당의 정강 정책과는 도드라지게 차이가 나는 한 가지 정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미동맹 강화'입니다. 
헌법 준수, 국민 삶 향상, 자유민주주의 이념 수호, 국민화합, 국민 통합 등등과 같은 정강 정책이야 일반 정당에서도 다 말하는 아주 기본적인 사항들이기에 솔직히 그렇게 주목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당 이름은 달라도 이처럼 그럴싸한 구호나 문구는 거의 모든 정당이 다 구색 맞추기로 늘어놓는 것이기에 별 관심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다른 정당에는 없는 ‘한미동맹강화’라는 정강 정책의 본질을 깊이 살피면서 저는 한국기독당의 정체성을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과문(寡聞)한 탓인지 아직까지 저는 한국 정당사에서 ‘한미 동맹 강화’를 주요한 정강정책으로 내세운 것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한국기독당의 정체성을 대표할 만한 이 정강정책과 힘차게 만세삼창을 외치는 보도사진을 보면서 놀라는 한편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한국사회 내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던 과거의 반공·사대·친미 통치이데올로기’가 다시 부활하는 뚜렷한 징후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한국기독당 한국교회와 사회를 심각하게 분열시킬 것 
한국 사회는 해방을 전후하여 사회주의와 깊은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특히 그 갈등의 주요 상대가 바로 기독교였음을 모르는 이는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여하튼 그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이승만 정권은 미군정의 도움으로 남한 단독 선거에서 승리하여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어 남한 내 단독 정부를 세웁니다. 
그 이후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을 대거 등용합니다. 특히 6.25 전쟁 이후 북한에서 기독교인들이 무자비하게 축출되고 남한 내에서도 전쟁 중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되자 이승만은 이것을 이용해서 반공을 국시로 삼고 기독교인들도 동참해주길 호소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와 한국정부는 한 목소리로 '반공’을 외쳤고, 정치하는 사람들은 이 반공이데올로기를 한국 국민들을 통치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이제껏 잘 사용해 왔습니다. 그래서 60년대 말까지 한국 내 통일론은 늘 ‘북진 통일론’이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평화통일을 얘기하기만 하면 다 '빨갱이 불순분자’가 되어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70년대 초부터 한국교회는 이런 일방적인 태도를 조금씩 되돌아보기 시작하였고, 그런 과정에서 먼저 인권운동과 도시산업선교를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진정한 민주화는 남북의 자주적·평화적인 통일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아주 조심스럽게 평화통일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이중적인 종교 차별 정책을 쓰면서, 유신체제를 옹호하는 어용(?) 교회에는 특혜를 주어 무한대로 성장하게 하고 반대하는 교회와 지도자들은 대대적으로 탄압합니다. 그래서 보수 진영이 70년대에 박정희 경제개발독재 시대에 맞춰 세계 기독교사에 유례 없는 대부흥(?)을 맞게 된 것은 함부로 부인할 수 없는 서글픈 사실입니다. 
이런 흐름을 이어받아 80년대에 와서는 일부 교계 지도자들이 '국가 조찬 기도회’등을 통해 신군부 독재자들을 축복하며 민족 앞에 씻지 못할 죄를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슬픈 80년대를 지나왔습니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에 많은 이들이 해방전후사를 진지하게 되돌아보면서 미국이라는 우방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다시 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일부 보수진영만큼은 꿈쩍도 하지 않고 일편단심, 미국을 하나님처럼 떠받들었습니다.
마치 미국이 없으면 이 나라가 당장 망할 듯이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을 향한 짝사랑의 어설프고 서글픈 목청을 높였습니다. 80년 광주 민중항쟁 때 그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간 것은 미군(미국)이 전두환 신군부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인데, 이것을 알면서도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오히려 바로 그 때 그 일을 주도했던 독재자들을 조찬기도회 때마다 마음껏 축복하였고 미국을 한껏 찬양하였습니다. 
이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 일부 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과 관계를 끊어버리고 맙니다. 아직도 그 분열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상황입니다. 왜곡된 역사가 아직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80년대 말, 90년대 초부터 진보와 보수가 다시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복음에 기초한 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다시 하나로 만나자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그 깊었던 골이 조금씩 메워지고 해묵은 앙금이 차차 졸아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엉뚱하게도 ‘한미동맹’을 정강정책으로 내세운 한국기독당 출범 소식을 접하게 되니 다시 그 무서운 ‘반공 통치 이데올로기’와 무분별한 ‘친미사대주의’가 부활하여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또 다시 심각한 분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낯뜨거운 역사의 후퇴를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지금은 미국이 아닌 하나님을 구원과 해방의 반석으로 삼아야
새로 출범한 ‘한국기독당’인사들은 새로운 정종 유착을 만들 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 앞에나 하나님 앞에 씻지 못할 큰 죄악이 될 수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기독당 인사들은 마치 예레미야 시대에 “애굽도 바벨론도 의지하지 말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외치던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생매장시키려 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줄기차게 거역했던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한국기독당은 자신들이 의지하고 싶은 현대판 애굽(미국)을 선택한 어리석음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한국기독당이 주창하는 △헌법 준수 △국민 삶 향상 △자유민주주 이념 수호 △국민화합 △국민통합을 싫어할 기독교인(한국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국기독당의 창당에 의심과 염려의 눈길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정강정책에서 강력하게 주장하는 ‘한미동맹’은, 결코 한국 기독교 전체 성도들이 동의하거나 합의한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기독교 복음의 본질에도 전혀 걸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정도의 저급한 역사의식을 가진 자칭 타칭 한국기독교의 지도자들 몇 분이 한국기독교 전체를 대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기독교를 대표한다는 한국기독당 출범으로 인한 부작용은 실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마치 한국기독교인의 대표인 양 ‘한국기독당’의 이름으로 ‘한미동맹’을 외쳤으니 이에 반대하는 우리 같은 기독교인들은 ‘한국기독당’에 대응할 만한 ‘딴나라 기독당(?)’이라도 만들어야 한단 말인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 서글픈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빗대어 이미 시작된 한국기독당의 성급한 행위로 그렇지 않아도 깊었던 보수와 진보의 골이 다시 깊어지지나 않을까 몹시 두렵습니다. 
'한국기독당’이 마치 한국 사회 일반 시민들에게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여져서 한국사회가 더 이상 한국 기독교를 민족의 소망으로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현실이 몹시 두렵습니다. 조금만 더 올바른 기독교 역사 의식과 신앙 양심이 있다면, 지금은 미국이 아닌 하나님을 우리 구원과 해방의 반석으로 선택할 때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이미 제국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인류역사상 어떤 제국도 영원하지 못하고 결국은 망했습니다. 우리 한민족이 민족 자주의 원칙을 가지고 남과 북이 서로를 용서하며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진정으로 한국 사회를 통해서 이루고자 할 세계 평화와 일치와 화해는 꿈도 꿀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 정치 이름 민족통합 장애물 놔서는 안돼
이제 진정한 해방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친미(숭미) 사대주의가 아니라 민족 자결의 원칙에 따라 민족 화해와 일치를 꿈꾸고 그 꿈의 열매를 조금씩 거두어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꿈을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가꾸어 가야 합니다. 또다시 기독교(의 진리)가 일부 교권정치가들의 야망이나 채워주는 추악한 이데올로기로 수단화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나아가, 그렇지 않아도 뿌리깊게 자리 잡은 기독교계 보수와 진보의 골을 또 다시 깊게 해서도 안되고, 이제 겨우 조금씩 그 아픔을 치유해 가기 시작한 그 거룩한 흐름을 해쳐서도 안될 것입니다. 더 이상 한국기독당은 기독교 정치라는 이름으로 민족이 하나되는 일에 무서운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한미동맹’과 ‘국민화합·국민통합’이라는 정강 정책이 얼핏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 자체로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정책들은 적어도 현대 한국 사회 안에서는 동시에 추구할 수 없는 모순된 정책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미동맹’을 부르짖고 있는 한국기독당은 한국교회 내에 잠재된 부질없는 이념 논쟁에 기름을 부어 분열을 초래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기독당에 대해 상당수의 건전한 기독교인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참여하기를 꺼릴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 그럴 경우 앞으로 한국 기독교는 그 내부에서부터 엄청난 이념 논쟁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또 한 번의 뼈아픈 분열을 경험할 지 모릅니다. 이렇게 분열된 한국교회가 분열된 한국사회를 통합하고 국민을 화합시킬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한미동맹’이라는 구호를, 정당을 만들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적 소신을 따라 개인 자격으로 주장한들 그것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한국기독당’이라는 정당의 이름을 내걸고 이것을 외칠 때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한국기독당’이 한국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정당처럼 오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국기독당의 정강 정책 안에 이미 국민을 통합할 수 없는 한계와 모순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기독당은 그럴듯한 구호로 더 이상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현혹하거나 분열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기독당, 지난 날의 추악한 죄부터 회개해야
한국기독당 소속 당원 여러분, 정말 민족화해와 번영을 위해 정치를 하고 싶다면,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외세를 의지하면서 군부독재는 축복하면서 민중의 아픔은 나 몰라라 했던 지난날의 추악한 죄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그 회개가 전체 한국 기독교인들과 공감대를 이루고 난 후에, 정말 의식 있고 선한 기독교인들이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에 의지하여 세상을 섬기는 정치하겠다고 나서도 결코 늦지 않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나선다면 그 어떤 기독교인이 그 일을 반대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한국기독당 같은 한국기독교의 대표를 자처하는 정체불명의 정당이 출범할 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정당한 절차도 밟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국기독당 안에 그럴 만한 의지나 건전한 역사의식을 가진 인물이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더 큰 분열과 상처를 재생산하기 전에 한국기독당은 속히 깃발을 내려야 합니다. 정녕 정당의 깃발을 들고 싶으면, ‘한국기독당’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당명을 (가칭)‘한국기독교반공친미보수당’처럼, 정당 구성원들의 색깔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 빨리 바꿔 선량한 대다수 기독교인을 함부로 욕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임완철(전주열린문교회 청년대학부 담당목사 / 전북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총무 / 생명평화전북기독인연대 청년대학생위원장)
임완철 juchan98@newsnjoy.co.kr
2004 뉴스앤조이 2004년 0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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