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7일 목요일

신지학회 창설자 블라바츠키


블라바츠키는 당시 서양의 과학적 풍조와 기성 종교에 맞서 동양 사상을 전파하였다. 1873년 7월 뉴욕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42세로 드문 영적 능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영매로서의 탁월한 능력 덕분에, 그녀는 심령술에 심취해 있던 헨리 스틸 올코트, 윌리엄 콴 저지 등과 교류하게 되었고, 이들과 함께 1875년 9월 신지학회를 창설했다. 신지학(Theosophy)이란 '신적 지혜' 내지는 '신적인 것에 대한 지혜'를 뜻하는 말로, 고대의 신플라톤주의, 영지주의 등 신비주의 유파들 및 동방의 신비 종교들이 한결같이 추구했던 진리를 추구하고 있음을 표방했다. 1877년에 발표된 그녀의 첫번째 저서 <베일 벗은 이시스 Isis Unveiled>는 비학의 역사와 발전을 소개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며, 과거의 비이성적 전통들에 면면히 이어지는 영적 지혜들을 역설한 책으로, 발간 열흘 만에 초판 1만부가 매진되는 놀라운 호응을 얻었다. 신지학회의 목표는 세 가지였다. 첫째론 인류 보편의 형제단을 조직하는 것, 둘째는 비교 종교 및 철학의 연구를 진작시키는 것, 마지막으로 자연의 숨은 법칙들과 인간의 잠재력을 발현시키는 것. 그러기 위해 1879년 이들은 활동의 본거지를 인도의 봄베이로 옮기고, 최초의 신지학회보인 신지학자(Theosophist)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학회는 급성장했고, 인도는 물론이고 타 지역에서도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 신지학회에 가입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이다.


1882년에는 인도 남부 마드라스 근교의 아디야르에 광대한 영지를 사서 신지학회 세계본부를 마련했고, 그녀는 각처의 지부들을 순회하고 광범한 서신교류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1884년 그녀가 주재하는 심령 현상이 사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제기되었고, 런던의 심령연구협회에서 그녀의 활동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그 해 연말에 나온 이른바 호지슨 보고서는 그녀를 러시아 스파이자 사기꾼으로 간주하고 '그녀의 스승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신지학이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신지학회 간부들까지 그녀의 활동에 제동을 걸자, 그녀는 환멸을 느끼고 유럽으로 돌아갔다. 1887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그녀는 영국의 신지학회 회원들이 마련해 준 런던의 조그만 집에서 집필에 주력하며, 소수의 추종자들과 함께 활동을 계속했다. 자신이 편집진에서 밀려난 신지학자 대신 새로운 회보 계명성을 창간하고, '비밀 교의'를 집필했으며, 1890년에는 신지학회 유럽 본부를 창설하는 등 마지막까지 분투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신지학은 황금새벽회와 뉴에이지에 큰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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