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6일 목요일

"뇌에서 뇌로 정보 전달하는 무선통신 시대 성큼 "주말 골퍼도 우즈처럼 칠 수 있다"

뇌파를 컴퓨터에 입력 동물·로봇 조종 가능해
미래엔 두뇌칩 등 활용 사람들간 노하우 공유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대 의대 유승식 교수 연구실. 실험용 쥐가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유 교수가 컴퓨터 키보드를 누르자 이내 쥐가 다리를 움직인다. 쥐 몸엔 전선 하나 안 붙어 있다. 도대체 뭐가 쥐를 움직이게 한 것일까?

"다리를 움직이는 상상을 할 때 발생하는 제 뇌파(腦波)를 컴퓨터에 입력해뒀어요. 키보드를 치는 순간 그 뇌파가 컴퓨터에 연결된 초음파 발생기를 통해 쥐의 다리 운동을 담당하는 뇌 부위를 자극한 것이죠. 결국 제가 '다리를 움직이겠다'고 생각한 것이 쥐의 다리를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영화 '아바타'에서 주인공의 생각은 분신(分身)인 나비족 전사의 몸을 통해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진다. 이것과 같은 이치다. 유 교수와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 민병경 박사는 "프로젝트 이름이 '아바타'인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뇌로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 눈앞에

생각만으로 로봇을 자신의 분신처럼 움직이게 하는 영화 속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국제IT전시회 세빗(CeBIT)에선 장애인이 생각만으로 휠체어를 움직이고, 자판을 입력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모니터에 글자를 입력할 수 있는 장비들이 선보였다.

이를 가능케 하는 기술이 바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 Computer Interface)이다. 어떤 동작을 상상할 때 발생하는 사람의 뇌파(뇌에서 나오는 일종의 전기신호)를 컴퓨터에 보내면, 컴퓨터가 이를 컴퓨터나 로봇이 알아들 수 있는 기계적인 명령어로 바꾸어 전달하는 기술이다.

유승식 교수와 민병경 박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만으로 살아 있는 동물을 조종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먼저 뇌파를 컴퓨터에 전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을 거쳐, 다시 컴퓨터에 입력된 뇌파를 동물의 뇌에 전하는 '컴퓨터-뇌 인터페이스'(CBI·Computer Brain Interface)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유 교수는 "BCI와 CBI를 거치면 결국에는 뇌와 뇌가 연결되는 '뇌-뇌 인터페이스'(BBI·Brain Brain Interface)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팀은 특히 뇌에 전극(電極)을 심어 전선으로 뇌 신호를 주고받던 기존의 방법 대신 초음파를 통한 '무선 뇌 통신'을 실현했다.

작년 여름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미래학회에서 미래학자 커즈와일(Ray Kurzweil)은 "미래엔 뇌 스캐닝(뇌에 저장된 정보를 읽어들이는 것)을 통해 사람의 뇌를 (컴퓨터에) 보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타이거 우즈의 뇌에 저장된 세계 최고급 스윙 노하우를 초보 골퍼들의 뇌에 전달해, 초보도 타이거 우즈처럼 스윙할 수 있는 것도 가능하다. 또 화성에 로봇이나 침팬지를 보낸 뒤, 지구에서 사람의 생각대로 로봇과 침팬지가 탐사하게 할 수도 있다.

뇌공학 기술이 발달하면 사람과 사람 간에 지식과 노하우를 이식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예컨대 타이거 우즈의 뇌에서 읽어들인 스윙 노하우를 컴퓨터에 저장했다가 초보 골퍼의 뇌에 이식할 수 있다. /AFP

◆미래엔 타이거 우즈의 스윙 노하우를 뇌에 이식

국방과 의료분야에선 현실적인 응용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예컨대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병사의 뇌 속에 칩을 심어 두려움을 없애거나 시각과 청각을 강화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유승식 교수는 "우리가 진행하는 연구도 건강한 사람의 뇌 신호를 환자의 뇌에 전달해 만성통증이나 우울증 등 뇌 질환을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정재승 교수, 전산과 조성호 교수 공동연구팀이 사람의 뇌파로 인간형 로봇을 움직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사람이 수영모처럼 생긴 뇌파탐지기를 쓰고 손발을 움직이는 상상을 하면 로봇이 이에 맞춰 좌우로 돌기, 좌우로 보기, 전진 등 5가지 동작을 한다.

이 기술이 더 발전하면 전신마비 환자가 전동휠체어나 시중들기 로봇을 통해 혼자서도 생활을 할 수 있다. 정재승 교수는 동작과 관련된 뇌파를 넘어, 희로애락 같은 감정을 로봇에 전달해 학습시키는 일을 연구할 계획이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뇌 과학은 21세기 인류 과학의 최후 영역으로 손꼽힌다. 미국은 이미 1990년대에 '뇌의 10년'(Decade of the Brain)을 선포했고, 일본도 21세기를 '뇌의 세기(Century of the Brain)'라고 규정한 뒤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다.

한국은 1998년 '뇌 연구 촉진법'을 제정해 법적인 토대는 만들었지만 구체적 실행단계에서 예산과 정책집행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가 수준의 뇌과학 연구를 위한 '뇌연구원' 설립도 2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서유헌 교수는 "뇌 연구는 21세기형 융합 연구의 최적 모델"이라며 "이 분야에 대한 지원확대가 한국이 과학 선진국으로서 세계적인 위상을 단단히 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원문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11/20110111022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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