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다음은 佛? 국제투기자본의 먹잇감 되나
[서울신문]
전 세계 신용평가시장의 40%를 차지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10일(현지시간)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가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탈리아의 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한 프랑스는 이번 이탈리아발 금융위기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 ‘이탈리아 다음 차례는 프랑스가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시장에 급속도로 확산됐다.
●실수인가 예견인가?… 佛 금융당국 수사착수
프랑스 금융감독당국은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이런 가운데 국제투기자본이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틈을 타 대규모 투기로 시세차익을 노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S&P는 이날 오후 4시쯤 일부 고객에게 ‘등급 강등’이라는 제목과 함께 프랑스 신용등급을 가리키는 링크가 게재된 메시지를 발송했다. S&P에 따르면 링크를 클릭해도 프랑스 신용등급은 이전처럼 최상등급인 AAA였다. 하지만 일부 고객들 사이에서 혼란이 빚어졌다. S&P는 “기술적 오류” 때문에 일부 고객에게 잘못된 메시지가 자동 송신됐으며 현재 원인을 찾고 있다는 정정발표를 했다. 프랑스 정부는 곧바로 금융시장청(AMF)을 통해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실수라고 넘기기엔 시점이 너무 절묘했다. 이탈리아 재정위기가 악화될 경우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국가로 꼽히는 게 프랑스이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프랑스는 이탈리아 대외부채 가운데 35.5%나 보유한 최대 채권국이다. 더구나 지난달 무디스가 앞으로 3개월 안에 프랑스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상황을 더 민감하게 만들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한 유럽금융 분석가는 “매우 나쁜 시점에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빚어졌다.”고 꼬집었다.
10년 만기 프랑스 국채 금리(수익률)는 S&P가 등급 강등 메시지를 낸 이후 27베이시스포인트(bp=0.01%) 급등해 3.46%로 뛰었다. 같은 만기 독일 국채와 수익률 차(스프레드)가 170.2bp로 사상 최대까지 벌어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S&P가 메시지를 정정하고 나서도 수익률 상승폭이 20bp를 밑돌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분석했다.
●“헤지펀드 공격 그리스·伊 재정위기 단초”
헤지펀드 등 국제투기자본이 이탈리아 다음 공격 목표로 프랑스를 노린다는 경고음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이날 모스크바 회동에 참석해 “프랑스가 이탈리아에 이어 다음 차례로 시장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앞으로 몇 주 혹은 몇 달 사이”를 위험한 시기로 지목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헤지펀드가 프랑스 국채를 다음 공격목표로 삼아 집중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헤지펀드들은 지난해 초 그리스 국채 매도 포지션 비중을 높인 뒤 4~5월에 그리스 국채를 대량 매도해 막대한 시세 차익을 챙겼다.”면서 “이는 그리스를 구제금융으로 내모는 단초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탈리아에 대해서도 “헤지펀드들이 지난 6월부터 국채 매도포지션 비중을 높였고 7월 들어 공매도에 나서면서 국채금리를 급등시켰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1&oid=081&aid=0002242189
2011년 11월 11일 금요일
연금술(Alchemy)
연금술(Alchemy)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나자 특정 원소들에게 특정 에너지의 방사선을 투사시키면 원자의 핵이 변형되면서 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공률이 매우 낮은데다가 비용도 너무 많이 들어 실제로 이 방법으로 금을 만들지는 않는다. 또 원소들 중 이 방법이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 백금인데 실제로 백금의 가치가 금보다 높기 때문에 이 역시 실행된 적이 없다.
당시의 중요한 연금술적 발견으로는 무기산과 알코올을 들 수 있다. 의학화학이나 제약학은 이때의 부흥으로부터 2세기 후에 스위스의 연금술사인 파라셀수스(1493~1541)의 영향을 받아 나타났다. 르네상스 시대의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은 그리스의 원자설에 새로운 흥미를 느끼고 변환의 가능성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연금술사들이 축적해놓은 화학적 사실들은 오늘날 재해석되었고 이를 기초로 근대 화학이 정립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화학적으로 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여 결론적으로 반박할 수 있었다. 연금술적 철학과 기술의 산발적인 부흥은 20세기에도 지속되었다.
아랍의 연금술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연금술의 경향만큼이나 신비하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집트로 전해진 연금술은 오늘날 파노폴리스의 조시모스라고 밝혀진 최초의 연금술사의 연구와 합쳐졌다. 중국과의 교섭을 통해 아랍에서는 후에 유럽의 연금술에서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로 생각한 신비한 물질인 변형시키는 약제의 사용을 채택했다. 12세기에 그리스도교 학자가 알라지(850~923)의 아랍어 연구를 번역하여 유럽에서 연금술이 부흥하게 되었고, 1300년까지 그 시대의 뛰어난 철학자, 과학자, 신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스의 저작자들은 비법을 은폐하기 위하여 고대의 신, 영웅, 왕 또는 철학자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원고를 썼다. 이러한 혼란스런 경향은 신비주의적 성향이 연금술의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헬레니즘 철학이 기술을 중시하는 과학의 관점에서 그노시스주의, 신플라톤주의, 그리스도교의 성스러운 묵시(默示)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함에 따라서 연금술에 관한 저서들이 전반적으로 모호성(模糊性)을 띠며 은밀해지기 시작했다. 그당시에 중국의 연금술사들은 금 자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불로장생을 부여하는 힘을 가진 연금약액(elixir)으로 다른 금속을 금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찾았으며, 실용적인 모든 기술을 희생하면서 비법에 치중하여 기술이 미신 속으로 퇴보했다. 인도에서의 연금술도 결과적으로 비슷한 운명이 되었다.
경험이 풍부한 연금술사들이 오늘날 수정 및 보완하여 쓰고 있는 수많은 실험기구와 실험과정을 창안하여 사용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기술자였고 그들의 직업상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실험상의 비법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의 연구대상인 물질들에 대해 은밀하고 상징적인 이름들을 많이 고안해냈다.
즉 적절한 점성학적 영향을 받게 되면 마치 인간의 영혼이 천상에서 완전해지는 것과 같이 납이 금으로 완성 또는 치료된다고 여기게 되었다. 기술자는 아마도 그의 실험실에서 금속을 조심스럽게 다듬고 오래 가열하여 일단 소멸시키고 더 나은 상태로 소생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완성을 앞당기려고 했을 것이다.
공기, 물, 흙, 불, 공간의 5가지 원소들이 여러 비율로 조합하여 모든 물질을 구성한다는 이론이 고대 중국, 인도, 그리스에서 거의 동일한 형태로 가정되었다. 게다가 물질 세계는 더운 것과 찬 것, 젖은 것과 마른 것, 양성과 음성, 남과 여 등 정반대의 개념들에 의해 작용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유사한 점성학적 개념들이 전해 내려오면서 이 세 문명의 철학자들은 원소, 행성, 금속 사이의 상관성(相關性)을 확립했다. 점성학자들은 자연 세계의 대우주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간의 소우주에 반영되고, 역으로도 반영된다고 믿었다.
납이나 구리 같은 비금속(卑金屬)을 은이나 금 등으로 변환시키려고 시도했던 유사과학(類似科學). 이러한 시도에서 화학적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시도를 하는 동안 유사과학은 화학 자체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중세 아랍에서 발달한 분야로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과학이 아니라 미신이나 마술에 가깝다. 고대로부터 약 2000년 이상 신봉되었던 원소 변환설을 근거로 값싼 철이나 납과 같은 금속을 비싼 금으로 바꾸려고 하였다.
16세기의 파라켈수스는 연금술의 목표를 금 만들기에서 의약품(알카나) 만들기로 바꾸었고, 17세기에는 보일이 근대적 화학관을 제시했으며, 연금술은 쇠퇴해 갔다. 18세기말 이후 연금술의 경험적 지식 쪽은 라부아지에, 돌턴 등의 근대화학에 계승되어 갔다.
13세기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게베르가 무기산의 제법을 비롯하여 경험적 기법의 체계를 정리하였다. 이것들은 현대화학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럽의 연금술은 만물을 금으로 바꾸고, 만병을 고치는 현자의 돌(에릭실)을 추구하여 기도에 의하여 완전한 인간을 만드는 신앙적 성격이 짙어져 갔다.
신비적 성격과 경험적 성격을 아울러 지니며, 구리와 같은 비금속을 금으로 변환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했던 일종의 전근대 과학기술. 1~3세기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발생하여 이슬람 세계에서 발전했으며 유럽으로 전해져 17세기까지 번영하였다. 연금술은 당초에는 가짜 금을 만드는 등 실무적·장인적 성격이 강하여, 8세기 이슬람 세계의 연금술사 자빌 이분 하이얀이라든가 9~10세기의 알 라지(라틴명 라제스) 등은 경험적 물질만들기에서 물질의 분류, 약품제조법, 화학장치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http://blog.naver.com/smilesunkr/120056979703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나자 특정 원소들에게 특정 에너지의 방사선을 투사시키면 원자의 핵이 변형되면서 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공률이 매우 낮은데다가 비용도 너무 많이 들어 실제로 이 방법으로 금을 만들지는 않는다. 또 원소들 중 이 방법이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 백금인데 실제로 백금의 가치가 금보다 높기 때문에 이 역시 실행된 적이 없다.
당시의 중요한 연금술적 발견으로는 무기산과 알코올을 들 수 있다. 의학화학이나 제약학은 이때의 부흥으로부터 2세기 후에 스위스의 연금술사인 파라셀수스(1493~1541)의 영향을 받아 나타났다. 르네상스 시대의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은 그리스의 원자설에 새로운 흥미를 느끼고 변환의 가능성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연금술사들이 축적해놓은 화학적 사실들은 오늘날 재해석되었고 이를 기초로 근대 화학이 정립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화학적으로 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여 결론적으로 반박할 수 있었다. 연금술적 철학과 기술의 산발적인 부흥은 20세기에도 지속되었다.
아랍의 연금술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연금술의 경향만큼이나 신비하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집트로 전해진 연금술은 오늘날 파노폴리스의 조시모스라고 밝혀진 최초의 연금술사의 연구와 합쳐졌다. 중국과의 교섭을 통해 아랍에서는 후에 유럽의 연금술에서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로 생각한 신비한 물질인 변형시키는 약제의 사용을 채택했다. 12세기에 그리스도교 학자가 알라지(850~923)의 아랍어 연구를 번역하여 유럽에서 연금술이 부흥하게 되었고, 1300년까지 그 시대의 뛰어난 철학자, 과학자, 신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스의 저작자들은 비법을 은폐하기 위하여 고대의 신, 영웅, 왕 또는 철학자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원고를 썼다. 이러한 혼란스런 경향은 신비주의적 성향이 연금술의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헬레니즘 철학이 기술을 중시하는 과학의 관점에서 그노시스주의, 신플라톤주의, 그리스도교의 성스러운 묵시(默示)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함에 따라서 연금술에 관한 저서들이 전반적으로 모호성(模糊性)을 띠며 은밀해지기 시작했다. 그당시에 중국의 연금술사들은 금 자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불로장생을 부여하는 힘을 가진 연금약액(elixir)으로 다른 금속을 금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찾았으며, 실용적인 모든 기술을 희생하면서 비법에 치중하여 기술이 미신 속으로 퇴보했다. 인도에서의 연금술도 결과적으로 비슷한 운명이 되었다.
경험이 풍부한 연금술사들이 오늘날 수정 및 보완하여 쓰고 있는 수많은 실험기구와 실험과정을 창안하여 사용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기술자였고 그들의 직업상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실험상의 비법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의 연구대상인 물질들에 대해 은밀하고 상징적인 이름들을 많이 고안해냈다.
즉 적절한 점성학적 영향을 받게 되면 마치 인간의 영혼이 천상에서 완전해지는 것과 같이 납이 금으로 완성 또는 치료된다고 여기게 되었다. 기술자는 아마도 그의 실험실에서 금속을 조심스럽게 다듬고 오래 가열하여 일단 소멸시키고 더 나은 상태로 소생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완성을 앞당기려고 했을 것이다.
공기, 물, 흙, 불, 공간의 5가지 원소들이 여러 비율로 조합하여 모든 물질을 구성한다는 이론이 고대 중국, 인도, 그리스에서 거의 동일한 형태로 가정되었다. 게다가 물질 세계는 더운 것과 찬 것, 젖은 것과 마른 것, 양성과 음성, 남과 여 등 정반대의 개념들에 의해 작용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유사한 점성학적 개념들이 전해 내려오면서 이 세 문명의 철학자들은 원소, 행성, 금속 사이의 상관성(相關性)을 확립했다. 점성학자들은 자연 세계의 대우주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간의 소우주에 반영되고, 역으로도 반영된다고 믿었다.
납이나 구리 같은 비금속(卑金屬)을 은이나 금 등으로 변환시키려고 시도했던 유사과학(類似科學). 이러한 시도에서 화학적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시도를 하는 동안 유사과학은 화학 자체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중세 아랍에서 발달한 분야로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과학이 아니라 미신이나 마술에 가깝다. 고대로부터 약 2000년 이상 신봉되었던 원소 변환설을 근거로 값싼 철이나 납과 같은 금속을 비싼 금으로 바꾸려고 하였다.
16세기의 파라켈수스는 연금술의 목표를 금 만들기에서 의약품(알카나) 만들기로 바꾸었고, 17세기에는 보일이 근대적 화학관을 제시했으며, 연금술은 쇠퇴해 갔다. 18세기말 이후 연금술의 경험적 지식 쪽은 라부아지에, 돌턴 등의 근대화학에 계승되어 갔다.
13세기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게베르가 무기산의 제법을 비롯하여 경험적 기법의 체계를 정리하였다. 이것들은 현대화학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럽의 연금술은 만물을 금으로 바꾸고, 만병을 고치는 현자의 돌(에릭실)을 추구하여 기도에 의하여 완전한 인간을 만드는 신앙적 성격이 짙어져 갔다.
신비적 성격과 경험적 성격을 아울러 지니며, 구리와 같은 비금속을 금으로 변환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했던 일종의 전근대 과학기술. 1~3세기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발생하여 이슬람 세계에서 발전했으며 유럽으로 전해져 17세기까지 번영하였다. 연금술은 당초에는 가짜 금을 만드는 등 실무적·장인적 성격이 강하여, 8세기 이슬람 세계의 연금술사 자빌 이분 하이얀이라든가 9~10세기의 알 라지(라틴명 라제스) 등은 경험적 물질만들기에서 물질의 분류, 약품제조법, 화학장치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http://blog.naver.com/smilesunkr/120056979703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서커스 불구덩이 넘던 사자·초원의 야생 사자,사람과 감동의 포옹을 하며
[사진=더선·Rex]
사납다. 빠르다. 무섭다. 동물의 제왕 `사자`를 떠올리며 하는 말들이다. 그런 사자가 인간을 끌어안고 정을 나누는 모습, 물론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능하다. 진심이 있다면 말이다.
9일(현지시간) 영국 더선은 맹수로 유명한 동물인 사자와 인간의 12년지기 우정을 소개했다.
현재 콜롬비아에서 동물보호센터를 운영중인 애나 줄리아 토레스(52)는 12년 전, 여행 중 우연히 서커스를 보게 됐다. 이 때 서커스에서 불구덩이를 넘으며 묘기를 보이던 사자가 영양실조 상태로 매우 위험한 상황임을 발견하게 된다. 토레스는 서커스단과의 끈질긴 협의 끝에 사자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로 사자를 데리고 왔다. 그녀의 정성어린 간호 끝에 사자는 기력을 회복했다.
그렇게 12년째, 두 친구는 함께 우정을 나누고 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사자는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도와준 토레스에게 감사의 표시를 포옹으로 한다고 한다. 사자와 인간의 포옹이라, 정말 보기 드문 광경이다.
공개된 사진 속 두 친구는 아주 따뜻한 포옹을 하고 있다. 사자가 토레스를 앞발로 끌어안고 볼을 비비고 있다. 그런 사자에게 토레스는 볼에 입맞춤을 하며 애정을 과시했다.
토레스는 오래 전 교사를 하면서 받은 급여를 모아 동물보호센터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동물 불법 소유, 동물 밀매 등의 위기에 처한 약 600여 마리의 동물들을 구출했다.
[사진=앤서니 에이스 버크·존 렌달]
사자와 인간의 감동적인 우정 스토리는 40여 년 전에도 한차례 있었다. 1969년 영국 런던, 백화점에서 새끼 사자를 구입한 두 남성은 사자에게 `크리스티앙`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집에서 키웠다. 하지만 몇 년 후 사자가 더이상 키울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커지자 이들은 사자를 케냐의 한 국립공원으로 보내게 된다.
그로부터 1년 후, 두 남성은 사자를 만나기 위해 케냐로 향했다. 야생에 적응한 사자가 주인을 기억하지 못해 위험할 수 있다는 주위의 우려도 뿌리쳤다.
밀림에서 슬금슬금 나타난 사자는 이들을 알아보고 힘차게 달려와 안겼다. 사자는 앞발을 들어 남성을 끌어안으며 마치 인간처럼 감격의 포옹을 했다. 더 인상적인 것은 사자가 포옹한 두 발로 남성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는 모습이었다. 또 자신의 가족들을 데려와 소개시키기도 했다.
이들의 재회 모습이 담긴 영상은 2008년 유튜브에 공개돼 조회수 총 5000만을 기록했고,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감동 영상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유혜은 리포터
◆ 동영상 보기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074/6640074.html?ctg=1300&cloc=joongang|home|newslist1
사납다. 빠르다. 무섭다. 동물의 제왕 `사자`를 떠올리며 하는 말들이다. 그런 사자가 인간을 끌어안고 정을 나누는 모습, 물론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능하다. 진심이 있다면 말이다.
9일(현지시간) 영국 더선은 맹수로 유명한 동물인 사자와 인간의 12년지기 우정을 소개했다.
현재 콜롬비아에서 동물보호센터를 운영중인 애나 줄리아 토레스(52)는 12년 전, 여행 중 우연히 서커스를 보게 됐다. 이 때 서커스에서 불구덩이를 넘으며 묘기를 보이던 사자가 영양실조 상태로 매우 위험한 상황임을 발견하게 된다. 토레스는 서커스단과의 끈질긴 협의 끝에 사자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로 사자를 데리고 왔다. 그녀의 정성어린 간호 끝에 사자는 기력을 회복했다.
그렇게 12년째, 두 친구는 함께 우정을 나누고 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사자는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도와준 토레스에게 감사의 표시를 포옹으로 한다고 한다. 사자와 인간의 포옹이라, 정말 보기 드문 광경이다.
공개된 사진 속 두 친구는 아주 따뜻한 포옹을 하고 있다. 사자가 토레스를 앞발로 끌어안고 볼을 비비고 있다. 그런 사자에게 토레스는 볼에 입맞춤을 하며 애정을 과시했다.
토레스는 오래 전 교사를 하면서 받은 급여를 모아 동물보호센터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동물 불법 소유, 동물 밀매 등의 위기에 처한 약 600여 마리의 동물들을 구출했다.
[사진=앤서니 에이스 버크·존 렌달]
사자와 인간의 감동적인 우정 스토리는 40여 년 전에도 한차례 있었다. 1969년 영국 런던, 백화점에서 새끼 사자를 구입한 두 남성은 사자에게 `크리스티앙`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집에서 키웠다. 하지만 몇 년 후 사자가 더이상 키울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커지자 이들은 사자를 케냐의 한 국립공원으로 보내게 된다.
그로부터 1년 후, 두 남성은 사자를 만나기 위해 케냐로 향했다. 야생에 적응한 사자가 주인을 기억하지 못해 위험할 수 있다는 주위의 우려도 뿌리쳤다.
밀림에서 슬금슬금 나타난 사자는 이들을 알아보고 힘차게 달려와 안겼다. 사자는 앞발을 들어 남성을 끌어안으며 마치 인간처럼 감격의 포옹을 했다. 더 인상적인 것은 사자가 포옹한 두 발로 남성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는 모습이었다. 또 자신의 가족들을 데려와 소개시키기도 했다.
이들의 재회 모습이 담긴 영상은 2008년 유튜브에 공개돼 조회수 총 5000만을 기록했고,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감동 영상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유혜은 리포터
◆ 동영상 보기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074/6640074.html?ctg=1300&cloc=joongang|home|newslist1
단두대의 역사
단두대의 역사
루이제뜨, 쁘띠 루이종. 참 예쁜 이름들이다. 그런데 이것이 원래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길로틴에 붙었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단두대를 뜻하는 길로틴은 흔히 아는 바와 같이 의사였던 기요탱 박사에 의해 개발된 것이 아니었다. 길로틴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파리대학의 해부학 교수이자 의사이며 정치가였던 조제프 기요탱(길로틴은 독일식 발음이고, 프랑스 발음으로는 기요탱이 된다) 박사는 죄수를 처형하는 방법으로서 길로틴을 제안했던 사람에 불과했다.
사실 기요탱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보다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무시무시한 의도에서 개발된 도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인도주의적이고, 프랑스대혁명의 혁명정신에도 걸맞는 형벌에 있어서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그야말로 형벌에 있어서도 혁명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개발된 것이었다.
흔히 생각하기에는 사람의 목을 베어 죽이는 것이 더 잔인하게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목을 베는 것은 가장 적은 고통으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깔끔하게 사람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처형방법이었다. 그래서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단두형은 오로지 귀족만의 품위 있게 처형될 수 있도록 하는 전유물이었다. 귀족 이외의 평민들에 대해서는 단두형이 아닌 보다 오래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교수형만이 허락되었다. 지금을 기준으로 본다면야 말이 안 된다 하겠지만 워낙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단숨에 목을 잘라 죽이는 것도 인도주의였고, 귀족들처럼 목을 잘라 죽이자는 것도 평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너무나도 역설적이라 얼핏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숭고한 신념은 마침내 혁명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져 앙트완느 루이에게 기요탱 박사가 제안한 사양에 맞는 장치를 개발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길로틴 혹은 기요틴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처음 쓰인 것이 아마 공포정치가 한창이던 1792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도구 가운데 가장 인간을 위해 쓰였다고 하는 이 역사적인 단두대의 이름으로 주창자였던 기요탱 박사의 이름이 붙여졌다. 기요틴, 길로틴 등은 길로틴을 쓰던 나라에서 각자 읽는 방법의 차이로 다르게 불리던 이름들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길로틴은 프랑스대혁명 당시 처음으로 개발되어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미 13세기부터 독일과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이탈리아 등지에서 초기적인 형태의 단두대가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미 기원전 페르시아 제국에도 이와 비슷한 도구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까지는 확인을 못 해봤다. 아무튼 16세기 그려진 그림에도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모습이 있었다 하니 단지 길로틴은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개량되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그 의미나 결과는 이전과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처음 의도는 이렇게 좋았는데 정작 기요탱 박사는 자신이 길로틴의 사용을 주장했던 것을 평생을 두고 후회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혁명정부 자신이 길로틴의 사용을 받아들인 자체가 기요탱 박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공포정치로 인해 어느새 4만 명까지 늘어난 사형수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한꺼번에 대량으로 처형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였기 때문이었다. 엄정하고 정의로운 법집행으로 사형수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한 제안이 도리어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손쉽게 끊는 수단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누가 있어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당시 "가장 순수한 감정은 공포"라며 프랑스에 혁명정신을 더욱 깊숙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라도 공포로서 기존의 구시대의 잔재를 일소하려고 했던 로베스 피에르와 자코뱅에 있어 길로틴은 신이 내려준 선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 그외 아직 국외로 몸을 피하지 못한 귀족들이 차례로 길로틴에서 목이 잘렸고, 그 뒤로는 혁명에 소극적이거나 혁명정부에 비판적이던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뒤를 이었다. 수 만 명이 그렇게 혁명을 위해, 지극히 고결하고 지극히 정의로운 로베스 피에르의 혁명을 위해 길로틴에서 목숨을 잃었다. 시작은 선의에 의한 것이었어도 결과까지 선의로 이어지지는 못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기요탱 박사의 머리가 어느새 하얗게 새어 버렸다고까지 전해진다. 물론 과연 그것이 정신적인 충격에 의한 것인가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자연적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하얗게 새어버렸다는 자체가 과장된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스스로 일생일대의 치욕이며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라 괴로워했다는 증언으로 보아 그 충격과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해지는 바와는 달리 기요탱 박사 자신이 길로틴에 목숨을 잃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로 인해 평생을 후회와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다. 아니 지금도 그의 이름은 무시무시한 살인도구의 이름으로서 기억되고 있으니 살아서는 물론이고 아마도 영원히 그는 자신의 행위로 인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혁명을 위해, 혁명정부를 위해, 궁극적으로는 자코뱅과 로베스 피에르 자신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끊었던 길로틴은 끝내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에 염증을 느껴 그리고 자신도 언제 저리 죽을 지 모른다는 공포에 반대파가 들고 일어나 그들을 단두대로 보냄으로써 공포정치의 마지막을 로베스 피에르 자신과 그 추종자의 피로서 장식하게 된다. 자업자득이랄까? 하지만 그 이후 혁명정신이 퇴보한 것을 보면 무언가 아쉽기도 하고.
프랑스대혁명 이후로도 혁명정신과 함께 길로틴은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어 처형의 수단으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심지어 길로틴으로 처형하는 장면은 별다른 오락이 없던 그 시대 아주 훌륭한 구경거리이기도 했는데 길로틴 처형이 있는 날이면 처형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심지어 10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까지도 처형하는 장면을 구경하곤 했었다. 처형이 조금이라도 늦춰지면 고함을 질러 재촉하기도 하고, 사형을 당하는 범죄자를 비난하고 저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처형된 범죄자들의 신체의 일부는 부적으로 의약품으로 이리저리 팔려가고 남은 머리는 장대에 꽂혀 사람들에게 전시되었다. 그러한 공개처형이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것이 프랑스 그것도 1939년이었으니 이러한 야만적인 모습들이 아주 최근까지도 근대화된 유럽사회에서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길로틴을 사용한 마지막 사형이 집행된 것이 1977년. 그로부터 4년 뒤에 비로소 프랑스에서는 사형제가 완전히 폐지된다. 1792년부터 장장 185년을 사형을 집행하는 도구로서 쓰인 셈인데 길로틴을 처음 만들고 사용하기도 마지막으로 사용한 프랑스에서 이제는 다른 나라더러 사형제를 야만적이라 폐지하라며 권유라는 입장이 되어 있으니 하긴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기요탱 박사가 바라던 바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인도적인 사형은 사형을 않는 것일 터이니…
http://blog.naver.com/smilesunkr/120063772086
루이제뜨, 쁘띠 루이종. 참 예쁜 이름들이다. 그런데 이것이 원래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길로틴에 붙었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단두대를 뜻하는 길로틴은 흔히 아는 바와 같이 의사였던 기요탱 박사에 의해 개발된 것이 아니었다. 길로틴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파리대학의 해부학 교수이자 의사이며 정치가였던 조제프 기요탱(길로틴은 독일식 발음이고, 프랑스 발음으로는 기요탱이 된다) 박사는 죄수를 처형하는 방법으로서 길로틴을 제안했던 사람에 불과했다.
사실 기요탱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보다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무시무시한 의도에서 개발된 도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인도주의적이고, 프랑스대혁명의 혁명정신에도 걸맞는 형벌에 있어서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그야말로 형벌에 있어서도 혁명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개발된 것이었다.
흔히 생각하기에는 사람의 목을 베어 죽이는 것이 더 잔인하게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목을 베는 것은 가장 적은 고통으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깔끔하게 사람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처형방법이었다. 그래서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단두형은 오로지 귀족만의 품위 있게 처형될 수 있도록 하는 전유물이었다. 귀족 이외의 평민들에 대해서는 단두형이 아닌 보다 오래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교수형만이 허락되었다. 지금을 기준으로 본다면야 말이 안 된다 하겠지만 워낙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단숨에 목을 잘라 죽이는 것도 인도주의였고, 귀족들처럼 목을 잘라 죽이자는 것도 평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너무나도 역설적이라 얼핏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숭고한 신념은 마침내 혁명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져 앙트완느 루이에게 기요탱 박사가 제안한 사양에 맞는 장치를 개발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길로틴 혹은 기요틴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처음 쓰인 것이 아마 공포정치가 한창이던 1792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도구 가운데 가장 인간을 위해 쓰였다고 하는 이 역사적인 단두대의 이름으로 주창자였던 기요탱 박사의 이름이 붙여졌다. 기요틴, 길로틴 등은 길로틴을 쓰던 나라에서 각자 읽는 방법의 차이로 다르게 불리던 이름들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길로틴은 프랑스대혁명 당시 처음으로 개발되어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미 13세기부터 독일과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이탈리아 등지에서 초기적인 형태의 단두대가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미 기원전 페르시아 제국에도 이와 비슷한 도구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까지는 확인을 못 해봤다. 아무튼 16세기 그려진 그림에도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모습이 있었다 하니 단지 길로틴은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개량되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그 의미나 결과는 이전과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처음 의도는 이렇게 좋았는데 정작 기요탱 박사는 자신이 길로틴의 사용을 주장했던 것을 평생을 두고 후회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혁명정부 자신이 길로틴의 사용을 받아들인 자체가 기요탱 박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공포정치로 인해 어느새 4만 명까지 늘어난 사형수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한꺼번에 대량으로 처형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였기 때문이었다. 엄정하고 정의로운 법집행으로 사형수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한 제안이 도리어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손쉽게 끊는 수단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누가 있어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당시 "가장 순수한 감정은 공포"라며 프랑스에 혁명정신을 더욱 깊숙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라도 공포로서 기존의 구시대의 잔재를 일소하려고 했던 로베스 피에르와 자코뱅에 있어 길로틴은 신이 내려준 선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 그외 아직 국외로 몸을 피하지 못한 귀족들이 차례로 길로틴에서 목이 잘렸고, 그 뒤로는 혁명에 소극적이거나 혁명정부에 비판적이던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뒤를 이었다. 수 만 명이 그렇게 혁명을 위해, 지극히 고결하고 지극히 정의로운 로베스 피에르의 혁명을 위해 길로틴에서 목숨을 잃었다. 시작은 선의에 의한 것이었어도 결과까지 선의로 이어지지는 못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기요탱 박사의 머리가 어느새 하얗게 새어 버렸다고까지 전해진다. 물론 과연 그것이 정신적인 충격에 의한 것인가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자연적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하얗게 새어버렸다는 자체가 과장된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스스로 일생일대의 치욕이며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라 괴로워했다는 증언으로 보아 그 충격과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해지는 바와는 달리 기요탱 박사 자신이 길로틴에 목숨을 잃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로 인해 평생을 후회와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다. 아니 지금도 그의 이름은 무시무시한 살인도구의 이름으로서 기억되고 있으니 살아서는 물론이고 아마도 영원히 그는 자신의 행위로 인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혁명을 위해, 혁명정부를 위해, 궁극적으로는 자코뱅과 로베스 피에르 자신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끊었던 길로틴은 끝내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에 염증을 느껴 그리고 자신도 언제 저리 죽을 지 모른다는 공포에 반대파가 들고 일어나 그들을 단두대로 보냄으로써 공포정치의 마지막을 로베스 피에르 자신과 그 추종자의 피로서 장식하게 된다. 자업자득이랄까? 하지만 그 이후 혁명정신이 퇴보한 것을 보면 무언가 아쉽기도 하고.
프랑스대혁명 이후로도 혁명정신과 함께 길로틴은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어 처형의 수단으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심지어 길로틴으로 처형하는 장면은 별다른 오락이 없던 그 시대 아주 훌륭한 구경거리이기도 했는데 길로틴 처형이 있는 날이면 처형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심지어 10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까지도 처형하는 장면을 구경하곤 했었다. 처형이 조금이라도 늦춰지면 고함을 질러 재촉하기도 하고, 사형을 당하는 범죄자를 비난하고 저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처형된 범죄자들의 신체의 일부는 부적으로 의약품으로 이리저리 팔려가고 남은 머리는 장대에 꽂혀 사람들에게 전시되었다. 그러한 공개처형이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것이 프랑스 그것도 1939년이었으니 이러한 야만적인 모습들이 아주 최근까지도 근대화된 유럽사회에서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길로틴을 사용한 마지막 사형이 집행된 것이 1977년. 그로부터 4년 뒤에 비로소 프랑스에서는 사형제가 완전히 폐지된다. 1792년부터 장장 185년을 사형을 집행하는 도구로서 쓰인 셈인데 길로틴을 처음 만들고 사용하기도 마지막으로 사용한 프랑스에서 이제는 다른 나라더러 사형제를 야만적이라 폐지하라며 권유라는 입장이 되어 있으니 하긴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기요탱 박사가 바라던 바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인도적인 사형은 사형을 않는 것일 터이니…
http://blog.naver.com/smilesunkr/120063772086
배터리 없이 구동되는 메모리칩 등장
별도로 배터리 없이도 자가발전을 통해 구동되는 메모리칩이 나왔다. 주로 전자태그(RFID)나 근거리무선통신(NFC)칩과 같이 휴대성이 높으면서도 전력소모량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칩에 활용될 전망이다.
EE타임스는 7일(현지시간)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필요한 전력을 스스로 공급하는 16킬로비트(kbit) 메모리칩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40년간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으며, 100만번 데이터를 읽고 쓸 수 있다고 ST마이크로 측은 밝혔다.
이 칩(제품명 M24LR16E)은 기존에 낭비되는 전파와 폐열, 움직임에 따라 발생하는 동작에너지와 같은 미세한 에너지를 모아 메모리칩을 구동하는데 재활용한다. 교통카드를 리더에 찍을 때처럼 전자태그를 읽고 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파에너지를 주 동력원으로 사용한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 ST마이크로 배터리 없이 구동하는 메모리
이 제품은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그대로 남아있는 비휘발성 메모리(EEPROM)로 소형 전자기기에도 사용될 전망이라고 회사측은 덧붙였다. 이밖에 상점 내 가격표 대신 액정디스플레이를 설치해 가격을 표시하는 전자선반라벨(Electronic Shelf Label, ESL)에 사용되는 전자종이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말했다.
베노이트 로드리게스 ST마이크로 메모리 담당 본부장은 "이러한 제품이 그린에너지 관련 솔루션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ABI리서치에 따르면 RFID는 공급망과 유통사업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NFC기술은 2015년까지 매년 5억만개 이상의 휴대폰에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ST마이크로는 배터리 없이도 구동할 수 있는 메모리가 앞으로 널리 사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11108103427
EE타임스는 7일(현지시간)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필요한 전력을 스스로 공급하는 16킬로비트(kbit) 메모리칩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40년간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으며, 100만번 데이터를 읽고 쓸 수 있다고 ST마이크로 측은 밝혔다.
이 칩(제품명 M24LR16E)은 기존에 낭비되는 전파와 폐열, 움직임에 따라 발생하는 동작에너지와 같은 미세한 에너지를 모아 메모리칩을 구동하는데 재활용한다. 교통카드를 리더에 찍을 때처럼 전자태그를 읽고 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파에너지를 주 동력원으로 사용한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 ST마이크로 배터리 없이 구동하는 메모리
이 제품은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그대로 남아있는 비휘발성 메모리(EEPROM)로 소형 전자기기에도 사용될 전망이라고 회사측은 덧붙였다. 이밖에 상점 내 가격표 대신 액정디스플레이를 설치해 가격을 표시하는 전자선반라벨(Electronic Shelf Label, ESL)에 사용되는 전자종이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말했다.
베노이트 로드리게스 ST마이크로 메모리 담당 본부장은 "이러한 제품이 그린에너지 관련 솔루션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ABI리서치에 따르면 RFID는 공급망과 유통사업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NFC기술은 2015년까지 매년 5억만개 이상의 휴대폰에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ST마이크로는 배터리 없이도 구동할 수 있는 메모리가 앞으로 널리 사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11108103427
2011년 11월 8일 화요일
150년 만에 초대형 태양폭풍 덮치나
150년 만에 초대형 태양폭풍 덮치나
[J 스페셜 - 수요지식과학] 지구 위협하는 태양 흑점
2013년 ‘수소폭탄 수십억 개’ 에너지, 지구 향해 터지면
최근 태양에 새로 생긴 거대한 흑점에서 플레어가 폭발하는 모습. 3일(현지시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태양역학관측위성(SDO)이 포착한 장면이다. 2013년 흑점 극대기를 앞두고 최근 태양에선 이 같은 대규모 폭발이 이어지고 있다. [NASA 제공]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아칸소주 오자크시 밤하늘에 황홀한 ‘빛의 커튼’이 나타났다. 오로라(aurora)였다. 태양에서 날아온 입자들이 지구 대기와 반응해 일어나는 방전(放電) 현상이다. 통상 위도 60도 이상의 극지방에서 나타나 극광(極光)이라고도 불린다. 한데 오자크시는 미국 남부다. 북위 35도 로 서울(북위 37도)보다도 아래쪽이다. 이런 중위도 지방에서 오로라가 관측되는 건 태양 활동이 이례적으로 강할 때뿐이다. 역사상 가장 강한 태양 폭풍이 몰아친 1859년, 하와이(북위 21도)에서 오로라가 관측된 게 대표적이다. 지금 태양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 3일 미 항공우주국(NASA)의 태양역학관측위성(SDO)이 태양에서 거대한 흑점(黑點, solar spot)을 새로 발견했다. 길이 8만㎞에 폭 4만㎞로 지구의 3배 이상 크기였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타난 흑점 가운데 가장 컸다. 이런 흑점은 왜 생기는 걸까. 양극이 뚜렷한 지구와 달리 태양의 자기장은 거미줄같이 얽혀 있다. 이 자기장들이 좁은 지역에서 뒤엉키면 플라스마의 대류(對流)가 둔해지고 온도가 떨어진다. 이 때문에 주변보다 어둡게 보이는 부분이 태양 흑점이다.
◆태양폭풍 부르는 흑점=흑점이 생기면 주변에 높은 에너지가 쌓인다. 이 힘은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밖으로 터져 나온다. 1메가t짜리 수소폭탄 수십억 개가 일시에 터질 때의 에너지와 맞먹는 규모다. 플레어(solar flare)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플레어가 발생하면 X선 등 강한 방사선이 쏟아져 나온다. 이어 코로나질량방출(CME)이 시작된다. 코로나는 태양 가장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초고온 가스층이다. 섭씨 100만 도가 넘는 입자들로 이뤄져 있다. 평소 태양 중력에 붙잡혀 있던 이 입자들이 플레어의 충격으로 함께 방출되는 것이다. X선 등은 폭발 후 약 8분, 코로나 물질은 30분~3일 뒤면 지구에 도달한다. 둘을 합해 태양폭풍이라고 부른다.
◆전기 끊기고 위성 ‘먹통’=태양폭풍은 지구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과거 인공위성이 코로나 물질에 맞아 고장 나거나 궤도에서 이탈하는 사고도 있었다. 1994년 캐나다 통신위성 두 대(ANIK E1, E2)가 동시에 고장 나 전화·TV 중계가 수 시간 동안 중단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전기를 띤 입자가 지구 자기장과 충돌해 일어나는 지자기(地磁氣) 폭풍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수신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송전 시스템을 마비시킨 사례도 있다. 89년 캐나다 퀘벡에서다. 강한 지자기 폭풍으로 수력발전소 변압기가 타버린 것이다. 이 사고로 9시간 이상 전력 공급이 중단돼 900만 명이 피해를 봤다. 지난 3일 발견된 흑점에서도 강력한 X1.9 등급의 플레어가 발생했다. 다행히 태양폭풍이 지구와 다른 방향으로 향해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1년 반 뒤가 최대 위기=태양 흑점은 11년 주기로 늘었다 줄었다 한다. 기록이 시작된 1755년 이래 현재 24번째 주기(solar cycle 24) 중에 있다. 2008년 1월 최저점을 지난 이래, 해마다 가파르게 흑점이 늘고 있다. 미 해양대기청(NOAA)이 주도한 국제 전문가 패널은 이번 주기 극대기를 2013년 5월로 전망했다. 예상 흑점 개수는 월 평균 90개. 16번째 주기 극대기였던 1928년(78개) 이래 가장 적은 숫자다.
하지만 흑점 숫자가 적다고 태양 폭풍이 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하와이에서 오로라가 관측되고, 지자기폭풍으로 미국에서 22만5000㎞의 전신망이 마비됐던 1859년 사례(캐링턴 이벤트)가 증거다. 이 사건은 흑점 극대기 규모가 이번과 같았던 때(주기 10) 발생했다. “물방울 개수가 많을 때보다 적을 때, 각각의 물방울이 터지는 힘이 더 센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게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 홍순학 연구사의 설명이다.
김한별 기자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264/6619264.html?ctg=1603&cloc=joongang|home|newslist1
[J 스페셜 - 수요지식과학] 지구 위협하는 태양 흑점
2013년 ‘수소폭탄 수십억 개’ 에너지, 지구 향해 터지면
최근 태양에 새로 생긴 거대한 흑점에서 플레어가 폭발하는 모습. 3일(현지시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태양역학관측위성(SDO)이 포착한 장면이다. 2013년 흑점 극대기를 앞두고 최근 태양에선 이 같은 대규모 폭발이 이어지고 있다. [NASA 제공]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아칸소주 오자크시 밤하늘에 황홀한 ‘빛의 커튼’이 나타났다. 오로라(aurora)였다. 태양에서 날아온 입자들이 지구 대기와 반응해 일어나는 방전(放電) 현상이다. 통상 위도 60도 이상의 극지방에서 나타나 극광(極光)이라고도 불린다. 한데 오자크시는 미국 남부다. 북위 35도 로 서울(북위 37도)보다도 아래쪽이다. 이런 중위도 지방에서 오로라가 관측되는 건 태양 활동이 이례적으로 강할 때뿐이다. 역사상 가장 강한 태양 폭풍이 몰아친 1859년, 하와이(북위 21도)에서 오로라가 관측된 게 대표적이다. 지금 태양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 3일 미 항공우주국(NASA)의 태양역학관측위성(SDO)이 태양에서 거대한 흑점(黑點, solar spot)을 새로 발견했다. 길이 8만㎞에 폭 4만㎞로 지구의 3배 이상 크기였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타난 흑점 가운데 가장 컸다. 이런 흑점은 왜 생기는 걸까. 양극이 뚜렷한 지구와 달리 태양의 자기장은 거미줄같이 얽혀 있다. 이 자기장들이 좁은 지역에서 뒤엉키면 플라스마의 대류(對流)가 둔해지고 온도가 떨어진다. 이 때문에 주변보다 어둡게 보이는 부분이 태양 흑점이다.
◆태양폭풍 부르는 흑점=흑점이 생기면 주변에 높은 에너지가 쌓인다. 이 힘은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밖으로 터져 나온다. 1메가t짜리 수소폭탄 수십억 개가 일시에 터질 때의 에너지와 맞먹는 규모다. 플레어(solar flare)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플레어가 발생하면 X선 등 강한 방사선이 쏟아져 나온다. 이어 코로나질량방출(CME)이 시작된다. 코로나는 태양 가장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초고온 가스층이다. 섭씨 100만 도가 넘는 입자들로 이뤄져 있다. 평소 태양 중력에 붙잡혀 있던 이 입자들이 플레어의 충격으로 함께 방출되는 것이다. X선 등은 폭발 후 약 8분, 코로나 물질은 30분~3일 뒤면 지구에 도달한다. 둘을 합해 태양폭풍이라고 부른다.
◆전기 끊기고 위성 ‘먹통’=태양폭풍은 지구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과거 인공위성이 코로나 물질에 맞아 고장 나거나 궤도에서 이탈하는 사고도 있었다. 1994년 캐나다 통신위성 두 대(ANIK E1, E2)가 동시에 고장 나 전화·TV 중계가 수 시간 동안 중단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전기를 띤 입자가 지구 자기장과 충돌해 일어나는 지자기(地磁氣) 폭풍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수신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송전 시스템을 마비시킨 사례도 있다. 89년 캐나다 퀘벡에서다. 강한 지자기 폭풍으로 수력발전소 변압기가 타버린 것이다. 이 사고로 9시간 이상 전력 공급이 중단돼 900만 명이 피해를 봤다. 지난 3일 발견된 흑점에서도 강력한 X1.9 등급의 플레어가 발생했다. 다행히 태양폭풍이 지구와 다른 방향으로 향해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1년 반 뒤가 최대 위기=태양 흑점은 11년 주기로 늘었다 줄었다 한다. 기록이 시작된 1755년 이래 현재 24번째 주기(solar cycle 24) 중에 있다. 2008년 1월 최저점을 지난 이래, 해마다 가파르게 흑점이 늘고 있다. 미 해양대기청(NOAA)이 주도한 국제 전문가 패널은 이번 주기 극대기를 2013년 5월로 전망했다. 예상 흑점 개수는 월 평균 90개. 16번째 주기 극대기였던 1928년(78개) 이래 가장 적은 숫자다.
하지만 흑점 숫자가 적다고 태양 폭풍이 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하와이에서 오로라가 관측되고, 지자기폭풍으로 미국에서 22만5000㎞의 전신망이 마비됐던 1859년 사례(캐링턴 이벤트)가 증거다. 이 사건은 흑점 극대기 규모가 이번과 같았던 때(주기 10) 발생했다. “물방울 개수가 많을 때보다 적을 때, 각각의 물방울이 터지는 힘이 더 센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게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 홍순학 연구사의 설명이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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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7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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