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2일 일요일

프리메이슨 부시가문의 실체

프리메이슨 부시가문의 실체

조지 워커 부시 전 미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 워커 허버트 부시는 전 미 주중 대사를 지냈으며 중앙정보국장,그리고 레이건 행정부시절 부통령을 지냈고 대통령에 올랐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닉슨 대통령의 선거자금을 공급하였으며,케네디 대통령 시절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가담하였고,그 사건에 대한 조사 위원회인 워런 위원회의 감사를 맡기도 하였다.

그는 아이젠 하워 대통령 당시 부통령이던 닉슨과 매우 친밀하였는데 그의 아버지 프리스코티 워커 부시 상원의원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시 엄청난 재력(유니온 뱅크 이사 )으로 미 정계에 그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920년 미국은 물론 전세계는 엄청난 인플래이션에 고 실업률을 경험하게 된다. 1차대전 이후의 과잉 생산으로 인하여 발생한 이 경제 공황의 여파는 1차대전 패전국인 독일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30년대 들어 독일 경제는 계속해서 하락하였으며,이대로 가다간 독일은 그 끝을 맺어야 하였다.그러나 독일은 1933년 이후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은 1939년 폴란드를 합병 ,2차대전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독일은 당시 영국,프랑스,미국,소련과 대등하게 싸울만한 군대와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으며,이는 엄청난 재정적 힘이 없다면 현실화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독일,당시 나치스가 이렇게 독일군사산업과 중공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돌프 히틀러에게 자금을 제공한 기업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당시 나치스에 자금을 제공한 기업중 IG 화밴은 미국계 기업이었으며 미국의 금융 자금의 지원을 받았으며, 포드 자동차,스탠더드 오일사의 기술적 지원도 받았는데 당시 이 기업은 홀로스트로 유명한 독가스 지클론 B를 생산하였다고 한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이 기업은 파괴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당시 폭격 목표에서 이 건물은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 상원의원이자 유니온 뱅크 주주이던 프리스코티 부시 >

이 화밴외 티센이란 기업이 나찌 독일을 지원하였는데 이 기업을 지원하는데 앞장 선 사람이 바로 프리스코티 부시였다.그는 기업가,금융가로서 이 나치스 육성에 앞장 선 사람이었다.

그가 나치스를 지원한 이유는 소련이라는 공산 국가를 키우고, 중동에 이스라엘,그리고 국제 연합 및 세계 기구를 세우는 것이었다.2차대전이 독일과 추축국의 패배로 끝이나게 되자 미국은 반공 정치가 핸리 투루먼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다.

조지 마샬에 의한 마셜 플랜에 의해 긴축자금을 제공 받은 독일은 다시 패전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었으며,소련은 무기 대여법으로 미국에게 무상원조 받은 자금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게 되었으며 패전 후 양극체제를 가져왔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프리스코티 부시 상원의원과 >

투르먼과 아이젠하워는 나치스의 과학자들과 장교를 반공정책기관인 중앙정보부 여러 보직에 가담시켰으며 지금도 중앙정보국은 파시스트들로 이루어져있다고 한다.

전략 사무국(현 CIA)는 당시 원자탄 계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 하고 있었는데 (그당시 기술적 지원을 제공한 EG&G사는 현재 부시 가문이 주주로 있는 미 칼라일 그룹 산하 첨단 방산 기업체이다.)당시에는 이 원자탄을 운반할 수단이 B29폭격기 뿐이었다.
그러나 독일의 로켓 과학자들에게서 로켓 기술을 제공받아 현재는 수천 킬로미터까지 운반이 가능한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만들어 결국엔 미사일 방어망까지 만들수가 있었다.

프리스코티 부시의 나치스 지원으로 독일이 성장하고 히틀러가 유럽과 전쟁을 치르면서 소련이 미국에 의해 급성장하고 패전후 국제 연합 및 여러 세계 기구,그리고 양극 체제가 만들어짐으로써 탄생한 중앙정보국은 그의 아들 조지 허버트 부시를 중앙정보국장으로 오르게 하였다.

지미 카터 시절 중앙정보국장에 오른 조지 허버트 부시는 주중 대사를 지낸 인물로 과거 CIA재직 시절 쿠바 침공 계획에 가담하였으며 린든 존슨 부통령과 리처드 닉슨과 친밀한 사이었다. (현직 대통령 조지 워커 부시는 한때 리처드 닉슨 딸과 교제하기도 하였다.)

중앙 정보국은 창설과 동시에 한반도 전쟁,베트남 전쟁,쿠바 침공을 계획하였으며,조지 부시가 레이건 러닝매이트로 있던 시절에는 이란 콘트라 게이트와 온두라스 침공, 파나마 침공을 시행 성공시켰으며, 이라크의 바트당을 지원 후세인을 이라크 정권에 입성하게 하였다.

베트남 전쟁은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다.그런데 이 전쟁이 마약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하면 누가 믿을까? 전쟁이 끝나고 닉슨 행정부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베트남에 방문하였는데(공식적으로는 노벨 평화상 때문에 ..)그 때, 그는 미 중앙 정보국의 정보활동 자금을 공급할 인도차이나 마약 재배지 뱅골 트라이앵글과 대마 경작지의 대농장주와 만나 일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닉슨은 부시가문에서 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럼 부시 미 대통령이 있게 한 조지 허버트 부시의 아버지 프리스코티 워커 부시는 왜 나치스를 도와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만들었을까?

그는 SKULL AND BONES의 맴버였다.SKULL AND BONES는 미국 아파치 인디언 영웅 재니래모(미국과 맥시코에 대항)의 유골을 예일대학 SKULL AND BONES의 집회실의 관속에 가져왔다고 하는 일화로 유명하다.


이 비밀 단체는 악마를 믿고 사탄을 숭배하는 조직으로 제 3제국 독일 나치스 총통이던 아돌프 히틀러가 1919년에 가입한 비밀 조직 툴레와 매우 유사하다.

독일 노동당을 창설한 이 툴레 조직은 아리안족에 의한 지상낙원을 만드는것을 계획하였으며 흑마술과 악마를 믿는 사이비종교 집단 같은 것이었다.이 조직은 1923년 독일 사회주의 노동당, 나치스를 창설하였다.

즉,미국의 SKULL AND BONES와 독일의 TULRE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음이 확실하다.

영국은 켈트 족과 바이킹 족이 주를 이루었는데 프랑스의 신하국인 노르망디의 윌리엄이 정복함으로써 켈트족과 바이킹족과 토속 영국인들은 모두 북쪽 산악 지대로 물러났으며, 영국의 정치,군사,경제는 노르망디인 즉 게르만인, 아리안에 의해 통치되었다.

영국의 왕실 역시 이때부터 게르만의 피를 이어 받았으며, 조지 부시 가문(케네디 가문도)도 이 영국 왕실의 피를 이어 받은 워커 가문의 후손이다.그리고 히틀러의 나치스는 훈장으로 말타의 십자 (철십자 훈장)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거의 모든 유럽의 왕실에서 사용하는 문장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 말은 미국과 유럽의 왕실과 정치, 경제계는 이 게르만인들이 거의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 조지 워커 부시의 할아버지 프리스코티는 나치스를 재정적으로 지원하였으며 대통령 선거 전략팀이자 그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인 칼로브의 할아버지는 군을 일으켰다,그리고 현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오스트리아 출신,영화배우로 레이건 대통령 당시 대통령 체육 자문 위원회를 맡기도 하였으며, 조지 부시의 지지아래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아버지는 당시 나치스 친위대의 고위장교였다.) 레이건 역시 대통령이 되기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맡았으며, 닉슨 역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다.>

참고 서적:히틀러와 돈 (히틀러가 가입한 툴레)
그림자 정부 정치편 (현대 프리매이슨을 다룬 책)
부시 매이든 인 텍사스 (부시 가문이 미국의 정치계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부시의 언어장애 (부시가문과 skull and bones 와의 관계 )
불량국가:미국의 대외 외교 (남미 침공 및 이란 콘트라 게이트 )
민주주의 제국 :동남아시아 마약과 미 중앙정보국의 관계 부분

2012년 7월 15일 일요일

빌 클린턴의 `프리메이슨` 커넥션 공개

빌 클린턴의 `프리메이슨` 커넥션 공개


親 프리메이슨적 세계 정부(One World Government) 창설이 목적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그리고 타임지를 포함해 이 회의에 참석하신 여러 대형언론사를 운영하고 있는 임원 여러분들께 지난 40년간 보여주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만일 지난 세월 동안 여러분들의 협조가 없었더라면, 세계를 향한 우리의 계획을 발전시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제 세계는 ‘세계정부’(world government)를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아슈케나지 계열 유태계 재벌 `데이비드 록펠러`, 1991년 6월 5일 빌더버그 회의 기조연설>
 

조지 H.W. 부시 대통령에 이어 지난 1993년 대통령에 당선된 클린턴(William J. Clinton)은 1946년 8월 19일 아칸소 주 호프(Hope)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아칸소는 원래 미국의 비밀 테러 조직으로 악명 높은 KKK단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KKK단의 전신은 프리메이슨 조직의 하나인 `금원의 기사단`(Knight of Golden Circle)이며 형제 조직으로는 러시아의 니힐리스트(Nihilists)종단과 독일의 벰게릭트(Vehmegerict)종단 등이 있다.

KKK단의 본래 이름은 그리스어로 쿠클로스(Kuklos), 즉 ‘서클’ 또는 ‘단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후 한 단원이 ‘KKK단(Ku Klux Klan)’으로 이름을 바꾸자고 한 데 동의하여 현재까지 그렇게 불려지고 있다. 한편 클린턴은 어린시절 사탄을 숭배하는 ‘일루미나티’(Illuminati Freemason)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템플 기사단’(Knight Templar)산하 종단인 `드몰리 인터내셔널`(The Order of Demolay)에 가입했다. 드몰리 인터내셔널의 가입조건은 반드시 12~21살 사이의 젊은이여만 한다.


클린턴, 어린 시절에 프리메이슨 가입

드몰리 인터내셔널은 1919년 Frank S. Land라는 마스터 프리메이슨과 9명의 프리메이슨들에 의해 조직됐다. 특히 클린턴의 경우 현재 ‘명예의 전당’(Hall of Fame*대부분 33도 프리메이슨)에 이름이 등록되어 있으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드몰리 인터내셔널은 표면상으로는 형제애, 애국심 그리고 도덕성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이 조직은 현재 미국내 군*정*재계에서 수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드몰리 인터내셔널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이 숭상하는 템플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인 자크 드몰리(Jacques De molay*1244~1310)에 대해 알아야 한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웹스터(Nesta H. Webster*1867~1960)는 ‘비밀사회와 전복운동’(Secret Society and Subversive Movement*1924년 발간)에서 과거 템플 기사단원들이 저지른 호모섹스에 대한 기소를 조사했다. 웹스터는 템플 기사단을 처형한 프랑스의 왕 ‘필립 4세’가 1307년 10월 13일 템플 기사단원들을 체포했을 당시의 죄목 중 하나가 ‘부자연스런 성적 비행’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사실에 대해 프리메이슨들은 이들의 자백이 혹독한 고문의 결과였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1309년 교황 클레멘스 5세가 고문 없이 템플 기사단원들을 조사했더니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특히 그랜드 마스터인 자크 드몰리와 지부 책임자들은 3명의 추기경과 4명의 공증인이 배석한 가운데 고문 없이 조사를 받았는데, 그들은 예수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침 뱉고, 호모 섹스를 벌인 사실을 시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은 계급의 프리메이슨, 사탄숭배

프리메이슨 최고 계급인 33도까지 올라갔던 맨리 P. 홀(Manly P. Hall*1990년 사망)은 그의 저서인 `The Lost Keys of Freemasonry`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일단 프리메이슨의 신비한 의식에 참여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어 참된 신은 ‘루시퍼’(Lucifer)라고 믿게 된다. 프리메이슨이 아니고서는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됨은 사탄과 영매로서 접촉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 한다.”

빌 클린턴은 이처럼 젊은 나이에 프리메이슨이 되었으며 이후 프리메이슨의 반(半)공개 조직이라 할 수 있는 데이비드 록펠러(유대인)와 헨리 키신저(유대인, 이탈리아의 P2 프리메이슨 단원)가 조직한 ‘삼변회’(Trilateral Commission)와 ‘빌더버그’ 그룹(Bilderberg Group)의 정식 멤버가 된다. 클린턴은 이러한 배경을 기반으로 1977년 약관 30세의 나이에 법무장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는 2년간 아칸소주 법무장관을 지내면서 자신의 조직을 단단하게 구축했고, 1979년 1월에는 전 미국에서 최연소 주지사가 되었다.

주지사가 된 클린턴은 주정부 금융기관으로 `아칸소 재정 진흥기관`(ADFA)을 창설하고, 세금으로 거둔 돈을 유망한 사업체, 학교, 대학 등에 낮은 이자로 융자해 주는 일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ADFA의 요직을 자신의 수족들로 채우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ADFA의 원래 목적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정치 자금을 만들기 위해 마약 장사를 하고 이를 통해 돈을 세탁해 주는 일이었다.

클린턴 비리, 미국 내 기독교 단체가 고발

이와 같은 클린턴 비리에 대해 미국 내 메이저 언론사들은 거의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미국 내 독립 침례 교단에서 운영하는 몇몇 홈페이지와 독립 언론들은 그의 비리를 낱낱이 고발해 왔다. 특히 클린턴의 마약밀매 관련 비리를 쫓다 지난 91년 의문사한 대니 카솔라로(Danny Casolaro*프리랜서 기자)의 이야기를 담은 `The Octopus`(짐 케이스-1999년 사망, 켄 토마스 공저)에는 이에 대해 매우 자세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들 언론들이 밝히는 클린턴의 비리는 다음과 같다. 클린턴은 ADFA를 만들기 위해 부인인 힐러리 소유의 변호사 회사 ‘로즈 로펌’(Rose Law Firm)의 웹스터 허벨(Webster Hubbell)에게 ADFA의 기본 취지와 법안을 작성하여 주 의회에 제출토록 하고, 자신은 뒤에서 공작하여 법안이 통과되도록 했다. ADFA창설 직후 클린턴은 허벨을 시켜 ‘파크 오 미터’(Park-O-Meter)라는 주차장 요금기 제조회사를 설립하고 제일 먼저 융자를 받도록 만들었다.


엉터리 회사 차려 마약 밀매

그런데 이 회사는 엉뚱하게도 주차장 요금기가 아니라 경비행기의 앞부분의 둥그런 부분을 만들어 수출했다. 그러나 사실 이 회사는 상대국의 마약업자가 엉터리 회사를 차려 부품을 수입하는 것처럼 꾸미고, 그 엉터리 회사에서는 그 코에 마약을 담아 다시 미국으로 밀수입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클린턴은 마약을 비행기로 수송하기 위해 아칸소 주의 메나(Mena)라는 작은 마을의 비행장에 경비행기 몇 대와 비행사 몇 명을 고용했다.

이중 배리 실(Barry Seal)과 테리 리드(Terry Reed)의 경우 이와 같은 불법적인 활동을 견디지 못하고 클린턴의 비리를 폭로하기도 했으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특히 베리 실의 경우 지난 1995년 ‘워싱턴 포스트’기자에게 메나에서 무기를 싣고 가서 남미의 아르헨티나, 브라질, 니카라과의 콘트라에 수송했으며, 돌아오는 길에는 마약을 싣고 와서 뉴욕 시카고, 디트로이트, 세인트루이스 등 여러 도시로 운반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는 장장 11주 동안 고민한 끝에 특종 기사를 게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로버트 카이저(Robert Kaiser)편집장이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며, 사실 무근의 내용”이라며 기사 게재를 중지시켰다. 이유는 워싱턴포스트지의 발행인이자 사주인 캐서린 그래함(Katherine Graham*유대인)이 클린턴과 함께 삼변회와 빌더버그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테리 리드는 입건되었으며 배리 실의 경우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서는 보수 성향의 언론매체인 ‘FreeRepublic’의 98년 7월 21일자 ‘Clinton`s Rogues Gallery’에서 확인 할 수 있다.

‘FreeRepublic’은 과거 클린턴의 섹스 파트너였던 제니퍼 플라워즈의 옆집에 살면서 그의 섹스행각을 목격하고 이를 폭로했던 게리 존슨(Garry Johnson)변호사가 운영하고 있다. 클린턴의 성욕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여서 경호원들을 이용해 닥치는 대로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끌어들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경호원들 가운데에는 참다못해 클린턴이 바람피운 내용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클린턴 내각, 유대계*동성애자 다수 차지

한편 클린턴은 대통령이 된 후 행정부에 레즈비언과 공산주의자들을 배치했다. 실제로 전직 FBI요원으로 `Unlimited Access`를 저술한 게리 올드리치(Gary Oldrich)는 지난 92년 클린턴 대통령의 인수위 담당자들의 상당수가 백악관 내에서 레닌의 얼굴이 새겨진 뱃지를 달고 있었으며 모택동의 사상을 담은 ‘레드북’(The Red Book)을 지니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미국 내 기독교 언론사인 ‘월드 넷 데일리’(World Net Daily)의 편집인 J.R. Nyquist는 지난 99년 7월 22일자 논평을 통해 클린턴의 친공(親共)적 성향을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前 버클리大 교수 출신으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 美 경제 고문관 협의회 의장을 지낸 로라 타이슨(Laura D. Tyson)은 4천 만 러시아인 소작농을 굶겨 죽인 스탈린 공산주의 경제 신봉자였다.(‘Jeremiah Project’ 97년 11월 23일자) 그녀는 최근 ‘비즈니스 위크’ 기고를 통해 부시 행정부의 감세 정책이 부자를 더 부유하게 하는 반면 영세민들에게는 인색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클린턴 행정부를 구성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동성애자였다. 가령, 백악관 내 보건사회부 비서관 도나 샬라라(Donna E. Shalala*삼변회 회원)는 레즈비언 단체로부터 그녀가 자신들의 회원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클린턴이 퇴임하면서 재임 중 자신이 싫어한 최악의 장관이라고 평한 자넷 리노(Janet Reno)법무장관의 경우도 게이 단체에서 레즈비언이라고 확인해 준 바 있다. 한편 공중 위생국장 이었던 조이슬린 앨더스(Joycelyn Elders)의 경우 예비학생 및 유치원 아동들에게까지 콘돔을 나누어주고 사용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방대법원의 루드 베이더 진스버그(Ruth Bader Ginsburg*유대인)의 경우 극렬 페미니스트 법률가이자 프리메이슨의 전위조직인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의 법률고문으로, 아동과 성인의 성 관계 합법화를 지지한 바 있으며, 남녀 공용 군대와 걸 스카우트와 보이 스카우트의 통합을 요구한 전력이 있다.


힐러리, 점성술*요가*명상 심취

한편 힐러리 클린턴은 힌두교 스승을 두고 점성술과 점괘를 보고, 요가나 명상 등에 심취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예산 부국장을 지낸 엘리스 리블린(Alice Rivlin)은 빌더버그, 삼변회의 멤버였으며 유엔대사, 국무장관을 지낸 메들린 올브라이트(유대인) 역시 삼변회의 멤버였다. 한편 당선과정에서 유대계의 많은 지지를 받았던 클린턴은 미국 역사상 1~2차 임기 중 역사상 가장 많은 유대 인사를 각료로 기용하는 등 유대로비와는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前 마이니치신문 기자이자 정치평론가인 이타가키 에이켄(板垣英憲)은 클린턴 정권의 경제 기반을 ‘(프리메이슨)정치권력+월가의 유대인 자본+헤지펀드’라는 이른바 ‘월가 복합체’(complex)로 일컬어지는 권력구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미키 켄터 무역 대표부 대표, 루빈 재무장관(유대계인 로스차일드家 계열의 골드만 삭스 前 회장), 로렌스 서머스 재무장관(前 세계은행 임원), 윌리엄 코언국방장관, 댄 글릭맨 농무장관, 로버트 라이시 노동 장관, 앨런 그린스펀 美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모두 유대인이다.

특히 클린턴은 루빈, 서머스, 그린스펀과 함께 금융세계화를 추진해 나갔으며 이들은 마치 세계의 돈을 지배하는 ‘머니(money)교’처럼 그 권력을 휘둘렀다. 그리고 이들의 최전선에서는 이번 대선에서 反부시 진영에 자금을 대는 등 존 케리(유대인)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국제적 투기가인 조지 소로스(유대인)가 활약했다. 실제로 소로스는 LA 타임스紙의 지분을 7%가량 소유하고 있으며 5대 금융기업(Quazar, Quntum, Quota등)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이른바 ‘헤지펀드’(단기성 투기자금)를 통해 유럽의 부유한 계층으로부터 대량의 자본을 긁어모아 전 지구적 규모로 자금운용을 촉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 마하티르 前 말레이시아 수상은 “우리가 20~30년 노력해서 얻은 발전을 소로스가 단 2주일 만에 무너뜨린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권력구조 하에서 클린턴 정권과 월가와 헤지펀드는 극비경제정보를 독점적으로 공유하였으며 자유시장원리에 기초한 ‘국제적 표준’(Global Standard)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운 결과 미국 경제를 단숨에 회복시키기기도 했다.


프리메이슨과 싸우는 유일 세력, 기독인들

이와 같은 클린턴 행정부의 음모와 불법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아칸소 주에 생긴 `정직한 정부를 위한 시민회`(Citizens for Honest Government: CHV)는 지난 94년 여러 증거 자료들을 모아 ‘The Clinton Chronicles Book’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워싱턴에 있는 상*하 양원의 의원들에게 전달했으나 ‘근거 없는 소리’라며 관심도 갖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뉴욕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등의 주요 언론 매체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CHV를 허황된 인신공격 소문을 퍼뜨리는 악랄한 조직이라며 매도해 버렸다.

미국 UPI통신은 21일 클린턴의 한 측근을 인용, “클린턴 전 대통령이 유엔 사무총장 자리를 맡고 싶어 한다.”며 “미국 대통령을 연임하며 쌓은 노련한 정치력과 넘치는 활력을 새로운 일에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클린턴은 실제로 자서전인 ‘나의 인생’ 출간 후 각종 인터뷰에서 유엔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대다수의 프리메이슨 전문가들은 이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복음적 기독인들뿐이라고 여기고 있다.


김필재 기자 (現 프리존뉴스 기자) spooner1@hanmail.net
미래한국신문



클린턴 비리와 연관되어 `의문사한 사람들`
 
대부분 ‘교통사고’나 ‘단순자살’로 가장
 
<주>아래에 소개하는 명단은 클린턴의 비리와 연관되어 1991년부터 의문사한 사람들이다. 경찰에서 발표한 사인은 대개 ‘교통사고’나 ‘단순자살’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주요 인물들만을 소개한다.

▲William E. Colby 前 CIA 국장 : 73년부터 76년까지 CIA국장을 지냈다. CIA비밀을 과다하게 공개한다는 비판을 받고 물러났다. 97년 4월 27일 사망당시 빈센트 포스터의 ‘자살’에 의문을 제기하는 뉴스레터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발표된 사인은 익사.

▲Vicent Foster : 백악관 고문으로 힐러리와 ‘로즈 로펌’을 공동운영했다. 클린턴 부부의 재정문제에 깊이 개입되어 있었으며 화이트워터 사건과 관련해 증언할 예정이었다. 93년 7월 21일 백악관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발표된 사인은 자살.

▲Paul Wilcher : 메나 비행장 건을 조사하던 워싱턴의 변호사로 1993년 6월 22일 변사체로 발견됨. 공식발표는 자살.

▲Jon Parnell Walker(RTC 수사관) : 아파트 발코니에서 떨어져 죽었다. 빈센트 포스터가 죽기 전에 방문했던 아파트였다.

▲C. LeBleu, T. McKiahan, R.Williams, S. Willis : 클린턴의 경호원들로 1993년 2월 28일 Waco 종교단체 검거 때 모두 총에 맞아 죽음.

▲W. Barkley, B. Hassey, S. Reynolds, T. Sable : 클린턴의 경호원들로 1993년 5월 19일 헬리콥터 사고로 죽음.

▲Alan G. Whicher : 클린턴의 전 경호원이었고 후에 경호 책임자로 발탁되었으나 1995년 4월 19일 오클라호마 빌딩 폭파 사건 때 사망.

▲Kathy Ferguson : 클린턴의 경호원 대니 퍼거슨의 전 부인으로 1994년 5월 11일 의문의 시체로 발견됨. 공식발표는 자살.

▲Bill Shelton : 클린턴의 경호원 대니 퍼거슨의 동료. 州 경찰관이며 캐시 퍼거슨의 약혼자로 1994년 6월 12일 변사체로 발견됨. 공식사인은 자살.

▲Luther (Jerry) Parks(클린턴 경호팀장, 아칸소주 리틀락 담당) : 클린턴의 불법 활동에 관한 문건을 가지고 있었다. 93년 9월 26일 저격으로 사망했다. 문건은 분실 됨.

▲John A. Wilson : 워싱턴 시의원으로 클린턴의 비리 사실을 폭로하려 했으나 1993년 5월 19일 죽음. 공식발표는 자살.

▲John Walker : 화이트워터 건을 수사하던 고위 수사 담당관으로 1993년 8월 15일 변사체로 발견됨. 공식발표는 자살.

▲Luther Jerry Parks : 클린턴 선거유세팀의 경호책임자로 1993년 9월 26일 살해당함.

▲Mary Mahoney : 25세 여성으로 클린턴 밑에서 백악관 인턴으로 근무했다. 클린턴을 성추행으로 고발하기 며칠 전, 근무하던 스타벅스 매장에서 5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

▲Suzanne Coleman : 클린턴이 아칸소 주 법무부 장관 재임 당시 ‘로맨틱한 관계’를 가졌다고 밝혔다. 이후 뒤통수에 세 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사망 당시 26세로, 임신 7개월의 몸이었다. 공식사인은 자살.

▲Paula Grober : 클린턴 연설 수화통역가였던 그녀는 78년부터 죽을 때까지 클린턴과 함께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92년 9월 12일 자동차 사고로 사망, 목격자는 없었다.

▲Judy Gibbs(펜트하우스 모델, 매춘부) : 1996년 화재로 집에서 여동생과 함께 불타 죽었다. 주디 깁스의 가족은 클린턴이 그녀의 ‘고정고객’이었다고 진술했다.

▲James McDougal :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 조사를 위해 케네스 스타 특별 검사 측의 증인으로 출두할 예정이었다. 98년 3월 8일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사인은 약물과다 복용.

▲Dan Casolaro(프리랜서기자) : 아칸소 메나 비행장과 ADFA 건을 조사하고 있었으며 1991년 8월 10일 살해당함. 경찰 발표는 자살.

▲S. Heard, S. Dickson : 클린턴 정부의 의료보건자문위원회 위원으로 1993년 9월10일 의문의 비행기사고로 사망.

▲Ed Willey : 클린턴 대통령 선거 유세팀의 재정위원회 책임자로 1993년 11월 30일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됨. 공식사인은 자살.

▲Herschel Friday : 클린턴 대통령 선거 유세 팀의 재정위원으로 1994년 3월 3일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죽음.

▲Ronald Rogers : 1994년 3월 3일 `정직한 정부를 위한 시민회`(CHV)와 인터뷰를 하러 가는 도중 살해당함.

▲Ron Brown : 민주당 전국위원회 전 의장이었으며 통상부 장관이자 클린턴의 자금 모금인 이었다. 96년 5월 3일 항공기 추락으로 사망.

▲Barbara Wise(통상부 직원) : 96년 11월 29일 통상부 사무실에서 옷이 반쯤 벗겨진 채 변사체로 발견됨.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Charles Meissner(통상부 국제경제정책 담당 서기관보) : 론 브라운 장관 사망 직후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

▲Kevin Ives & Don Henry : 아칸소 주 거주 소년들로 항공기의 낙하물(코카인)을 목격했다. 87년 8월 23일 철로에서 잠을 자다가 기차에 치여 죽은 것으로 발표됐다. 후에 부검의는 소년들이 기차에 치이기 전에 이미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 두 소년의 죽음에 대한 정보를 쥐고 있던 이들이다.

-Keith Coney : 88년 7월 정체불명의 차에 추격을 당하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
-Keith McKaskle : 항공기의 낙하물 목격자로 1988년 클린턴의 주지사 선거날 왜건 힐이라는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으면서 “클린턴이 오늘 선거에서 이기면 나는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88년 11월 칼에 찔려 사망했다.
-Gregory Collins : 89년 1월 얼굴에 총을 맞고 사망. 발표된 사인은 자살.
-Jeff Rhodes : 89년 4월 불탄 시체로 쓰레기장에서 발견됨. 머리에 총상을 입고 고문을 당한 흔적이 있었다.
-Boonie Bearden : 두 소년이 기찻길 죽음을 목격한 소년. 96년 4월 18일 실종됐다.

김필재 기자 (現 프리존뉴스 기자) spooner1


2012년 7월 8일 일요일

제2차 세계대전 비사(秘史)

제2차 세계대전 비사(秘史)

나치의 핵심인물들은 대개 톨레회(Thule society) 단원이었다. 사진 좌측으로부터 세보텐도르프 남작, 디트리히 에크하르트, 아돌프 히틀러, 루돌프 헤스, 하인리히 히믈러
 
지상에서 낙원을 만든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사회를 강압적으로 개조하려 했던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을 포함해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배후에는 악마를 숭배하는 비밀조직이 있었다. 이들의 계획은 기독교 말살과 시민정부의 전복을 목적으로 수세기에 걸쳐 하나의 맥을 이으면서 은밀하고 조직적이며 치밀하게 진행되어 왔다. 이번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후 조종한 사탄숭배 비밀조직의 실체를 밝힌다.<편집자주>

툴레회, 독일 신비주의와 사탄숭배 사상 계승
반기독교적인 히틀러에게 대중선동술 가르쳐

“1919년 말 히틀러는 디트리히 에크하르트(Dietrich Eckart·1868~1923)를 만났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에크하르트가 히틀러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다. 당시 재력가였던 에크하르트는 반유태주의를 표방한 잡지의 편집장이었다. 그는 신비주의자이자 마법에 정통했던 인물로 당시 여러 비밀 단체를 포함해 툴레회(Thule society·프리메이슨)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Wulf Schwartzwaller 著, ‘The Unknown Hitler’, Berlkley Books, 1990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의 10년 동안 전세계에서 독일의 수도 베를린 만큼 혼란과 격변이 계속된 곳도 드물다. 큰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꼭 전염병이 돈다. 실제로 종전되던 해 겨울에는 심한 독감이 독일 땅을 휩쓸어 10만 명이 넘는 독일인들이 사망했다. 한편 전쟁배상금을 갚기 위해 마구 찍어댄 마르크화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불러왔고 파탄에 이른 경제와 대량 실업사태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툴레회’ 프리메이슨 기반으로 조직

이처럼 대부분의 시민들이 식량부족과 정치적 혼란에 고통을 당하는 사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프리메이슨 조직을 기반으로 게르만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Volkisch movements)이 활발히 일어났다. 이에 따라 독일에서는 수많은 프리메이슨 단체들이 생겨났으며 이 가운데 나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프리메이슨 단체가 바로 ‘루돌프 폰 세보텐도르프’(Rudolf Glendeck von Sebottendorf·1875~1945) 남작이 1918년 8월 17일 독일의 바바리아 지방에서 조직한 툴레회(Thule society)이다.

세보텐도르프 남작의 본명은 루돌프 글라우어(Adam Alfred Rudolf Glauer)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세계 각지를 여행했다. 그는 터키여행 중 오스트리아 출신 귀족의 양자가 되어 세보텐도르프라는 성을 갖게 됐으며 터키 시민권을 얻은 후 동서양의 신비주의를 탐닉했다. 실제로 세보텐도르프는 1910년 이스탄불에서 수피즘(Sufism·이슬람신비주의)과 프리메이슨, 연금술에 입각한 프리메이슨 종단을 세우기도 했다.

1913년 세보텐도르프는 독일로 돌아와 자신의 양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당시 독일에 산재해 있던 여러 프리메이슨 단체 회원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말경 세보텐도르프는 당시 사세가 기울어가던 뮌헨의 한 영세 신문사를 사들여  ‘민족의 파수꾼’(Volkische Beobachter)이라는 이름의 주간 잡지를 발행해 반유대주의와 신비주의에 입각한 국가주의 사상(occult-nationalist doctrines)을 전파했다. 그리고 이 잡지는 훗날 나치당의 공식 기관지가 됐다. (출처: Ellic Howe 著, ‘Urania’s Children: The Strange World of the Astrologers’, London, 1967년, pp. 86~87.)

나치, 신비주의와 사탄숭배 영향 받아

세보텐도르프가 세운 툴레회는 전통적인 독일 신비주의와 루시퍼(사탄)를 숭배하는 종교의 창시자인 마담 블라바츠키(본명: Helena P. Blavatsky)의 신지학(神知學)을 접목시킨 프리메이슨 단체로 단검(dagger)과 하켄크로이츠(나치 상징)를 종단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특히 블라바츠키의 경우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반셈족주의자로 그녀가 주장했던 ‘뿌리 종족’과 ‘레무리아(Lemuria)종족’에 관한 이론은 훗날 나치가 차용해 ‘아리안족’(Aryan)의 우월성을 설파하는 근거가 됐다.
툴레회의 상징은 단검과 갈고리 십자가(하켄크로이츠)이다. 이 가운데 갈고리 십자가는 훗날 나치의 상징이 됐다.

한편 세보텐도르프는 툴레회의 비밀을 언급한 ‘Bevor Hitler kam’(Before Hitler came)을 썼다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체포됐다. 이후 그는 터키로 탈출해 1945년 5월 9일 보스포러스 앞바다에서 투신자살했다.

‘인종말살’주의자로 나치독일의 이론적 지도자였던 알프레드 로젠베르크(나치 외교부장)를 비롯해 히틀러의 심복이었던 루돌프 헤스(부총통), 하인리히 히믈러(나치 친위대 사령관) 그리고 안톤 드렉슬러 등 나치의 핵심인물들은 대개 툴레회의 단원이었다.(1918년 말 툴레회 단원 수는 1500여 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루돌프 헤스의 경우 무신론자로 점성술이나 심령치료 같은 초자연적 현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히틀러의 동상과 사진을 제단에 올려놓고 그 앞에서 불을 켜고 의식을 올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툴레회의 단원 가운데 히틀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은 시인이며 인종주의자이자 모르핀중독자였던 디트리히 에크하르트이다. 당시 툴레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에크하르트는 1919년 8월 14일 히틀러를 처음 만났다. 이후 그는 히틀러를 앞으로 툴레회가 주도하게 될 거대한 갈등과 대규모 학살을 일으킬 ‘제3제국’(The Third Reich)의 지도자로 지목했다.

당시 에크하르트는 대규모 갈등이 인간의 정신에 깊은 상처를 남겨 사람들을 편집증 또는 소심증 환자로 만들게 될 것이며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은 얼마든지 심리 조종이 가능해져서 결국에는 ‘죽음의 형제회’(Brotherhood of Death Society·툴레회의 원래 명칭)와 그 사악한 지도자에게 복종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에크하르트는 히틀러에게 대중선동에 필요한 자신감, 웅변술, 화술 그리고 몸짓 등을 직접 가르쳤다.

1923년 12월 26일 에크하르트는 모르핀 중독으로 인한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는데 그는 임종직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히틀러의 지시를 따르라. 춤(dance)은 그가 추겠지만 실제로 그것을 시킨 것은 나다. 내가 그에게 비밀교리를 따르도록 했고 그의 시야를 열어 주었으며 힘의 세력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했다”(출처: Trevor Ravenscroft 著, ‘The Spear Of Destiny’, p. 91)

독일노동당, 툴레회와 나치당 결성

툴레회는 전직 철도 수리공으로 나치당의 전신인 ‘독일노동당’(GPW·1919년 1월 결성)을 조직한 안톤 드렉슬러(Anton Drexler·1884~1942)를 시켜 히틀러를 주축으로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당’(NSDAP, 일명 나치당)을 결성했다.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이들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히틀러가 태어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절대주의 국가로 늘 민족문제로 고심했다. 독일인 대귀족들은 합스부르크 왕가 치하에서 권력을 독점했고 관료·군인·대지주·자본가·교원등 지식인들의 대부분도 독일인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세력을 확장한 마자르인·체코슬로바키아인·폴란드인·남슬라브인은 민족자치와 생활향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오스트리아에 거주하고 있던 독일인들 사이에서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20세기 초에는 독일인과 체코슬로바키아인 간에 격렬한 민족투쟁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회에서 히틀러는 열렬한 독일민족주의자·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히틀러는 젊은 시절부터 반기독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를 유태교에서 파생되어 나온 사악한 본 뜻을 감춘 악마의 종교라고 까지 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유태인이 아니었고 유태인의 세계지배로부터 인류를 구하려다가 그만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예수의 후임으로 나타난 자신이 유태인의 세계지배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고 여겼다.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히틀러는 독일 군에 자원입대하여 바이에른 보병 제16예비연대에 배치되었고 플랑드르 지방에서 주로 영국군과 싸웠다. 연락병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1914, 1918년에 각각 2급과 1급 철십자훈장을 받았는데 히틀러는 이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겨 만년까지 가슴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아이러니 하게도 히틀러에게 훈장 수여를 추천했던 사람은 유태인 장교인 후고 구트만 대위였다.)

한편 전후인 1919년 당시 하사관이었던 히틀러는 독일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던 군소 정치단체들의 동향을 체크하여 보고하는 정보관계 임무를 맡고 있었다. 1919년 9월 12일 히틀러는 상부로부터 ‘독일노동당’이라고 불리는 어느 작은 정치단체의 집회를 참관하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물론 그는 이 때까지만 해도 이 작은 사건이 자신의 일생을 극적으로 반전시켜 놓는 계기가 되리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반유태주의에 기반 둔 독일노동당

당시 툴레회가 주축이 되어 조직된 독일노동당은 반유태주의에 기반을 둔 반혁명정당으로서 사회주의적 정책과 애국주의를 결합시킨 중간계급 위주의 정강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 집회의 토론에 참여한 히틀러는 당 간부이자 툴레회의 단원이었던 드렉슬러의 주목을 끌었고 며칠 뒤 ‘귀하의 입당을 허가함. 9월 16일에 열리는 독일노동당 위원회에 출석하기 바람’이라는 통지를 받았다. 히틀러는 심사숙고한 끝에 이 위원회에 출석하여 555라는 당원번호를 받았고 제7 당위원이 되었다.

당시 거의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던 독일노동당은 히틀러의 노력으로 공공연한 대중활동을 강화했다. 히틀러는 군대 동료들을 입당시키고 잇달아 공개연설회를 개최하여 당세 확장에 노력했다. 그의 뛰어난 연설 솜씨도 당의 명성에 일조했다. 특히 나치의 집회는 사람들이 흥분하기 쉬운 밤 8시 이후에 주로 열렸다. 매번 집회에서 나치의 최대 무기는 정강 정책이 아니었다. 바로 에크하르트로부터 배운 히틀러의 카리스마적인 웅변술이었다.

1920년 초 히틀러는 드렉슬러를 당의 총서기로 추대했으며 자신은 당 선전부장이 됐다. 당 조직을 개편한 독일노동당의 당세는 1920년 2월 뮌헨의 한 맥주홀에서 2,000명 이상의 청중을 모으는 대중 집회를 개최할 정도로 신장되었다. 이날 집회에서 25개조의 당강령이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베르사이유 조약의 폐기와 독일의 영토확장이 포함되었다. 이 강령은 툴레회의 단원이었던 에크하르트·드렉슬러·페더 등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이후 나치 ‘불변의 강령’이 됐다.

히틀러는 초기 나치 집회에서 항상 유대인 배척을 강력히 주장했으며 패전 후 독일공화국의 나약함과 내부분열 및 부패를 공격했다. 또한 독일의 강력한 국민정부 수립을 주장했고 베르사이유 조약의 불합리성과 잔혹성을 강조했다. 한편 1920년 3월 군에서 제대한 히틀러는 나치 운동에 전념했으며 같은 해 여름에는 툴레회의 상징에서 차용한 갈고리십자가(하켄크로이츠) 모양의 당기를 만들었다.

툴레회 간행물, 나치당 기관지로 둔갑

히틀러가 당의 독재자로 부상한 것은 1921년 7월 29일 나치당의 임시 당 대회에서였다. 그는 드렉슬러 등 옛 당 간부들의 운동방침에 대한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여 드렉슬러를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이 당의 총서기가 됨으로써 당의 실권을 장악했으며 당위원회를 무력화하고 당내 독재체제를 확립했다. 당시 히틀러는 정계와 재계의 유력자들과 교류하면서 자금을 조달했고 학생과 군부관계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이때부터 히틀러의 신격화가 시작되어 그는 동지가 아니라 ‘우리들의 지도자’(Fuhrer : 나중의 총통)로 불리게 됐다. 또한 툴레회의 정기 간행물이었던 ‘민족의 파수꾼’(Volkischer Beobachter)을 나치당 기관지로 만들어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1921년 이후 나치당의 당세는 급속히 확장되었는데 특히 바이에른의 군부와 경찰 그리고 왕당파가 나치를 보호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나치는 바이에른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바이에른 동맹을 폭력으로 습격하여 집회를 해산시켰다. 이에 바이에른 정부는 나치당을 탄압했고 히틀러는 1922년 6월 24일부터 7월 27일까지 수감되었다.

1923년 1월 프랑스군이 루르 지방을 점령하자 독일에서는 이에 대한 수동적 저항운동이 전개되면서 심각한 물가상승현상이 초래되었다. 좌파에서 우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독일인이 소극적 저항에 동조했지만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투쟁과 베를린의 민주공화정부에 대한 투쟁을 더욱 강조했다. 그러나 나치당 내에도 반프랑스 투쟁을 중시하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히틀러도 이에 가담하여 적극적으로 프랑스에 대한 민주공화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공격했다.

1923년 9월 26일 독일정부는 프랑스에 대한 수동적 저항을 중지하고 독일 경제의 재건을 도모하기로 결정했으나 이 결정에 반대한 극우파는 공화정의 타도를 외쳤다. 바이에른에 있는 극우운동의 공동단체인 ‘독일투쟁동맹’을 이끌고 있던 히틀러는 바이에른 우익정부에 의한 베를린으로의 진격, 전독일 우익독재정부의 수립을 제창했다. 1923년 11월 8일 히틀러의 ‘독일투쟁동맹’은 뮌헨에 있는 한 맥주 홀에서 폭동(일명 ‘맥주홀 쿠데타’)을 일으켰다.

이에 바이에른 정부는 처음에는 히틀러에게 협력을 약속했으나 군부의 반대에 부딪히자 봉기를 진압하는 쪽으로 돌아서 이 맥주 홀 폭동은 실패로 끝났다. 봉기의 주동자였던 히틀러는 같은 해 11월 11일 은신처에서 체포됐다.

그는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실제로는 9개월 동안 란츠베르크의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반(半)자서전 겸 나치사상의 해설서인 ‘나의 투쟁’(Mein Kampf)을 정리하는 데 전념했다. ‘나의 투쟁’은 툴레회 단원이었던 루돌프 헤스가 히틀러의 구술을 필기했고 이것을 매주 토요일 저녁 감옥 내 나치 동료들이 개최하는 공동 집회에서 발표했다.

히틀러가 감옥에 있는 동안 나치당은 내부적으로 분열되었다. 감옥에서 석방된 그는 나치당의 재건을 시도했으나 1923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속출했다. 독일의 경제가 통화개혁을 통해 안정을 되찾았고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평판도 좋아졌다. 그러나 나치당은 점차 세력을 확장했고 1926년 2월 당 간부회의에서 히틀러는 북부 독일에서 경쟁조직을 이끌고 있던 G. 슈트라서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히틀러, 이복누이의 딸과 관계 맺어

1926년 1월 히틀러는 친위대(Schutzstaffel)를 설립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나치 돌격대의 재건을 완료했다. 이 무렵 도시와 농촌에서 중산계급의 지지를 확보한 나치당은 의회를 통한 합법적인 활동에 의해 대중정당으로 성장했다. 물론 히틀러는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으면 민주공화제를 전복할 생각이었다. 이 시기 그는 이복누이의 딸로 자신의 조카인 겔리 라우발을 사랑하게 되었고 1931년 9월 18일 그녀가 히틀러의 치열한 지배욕과 독점욕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할 때까지 항상 행동을 같이했다.

한편 나치당은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공격과 대중선동으로 1930년 9월 14일의 총선에서 600만 표 이상을 득표하면서 독일의 제2당으로 부상했다. 1930년 가을 이후 히틀러의 대중적 인기와 연설력에 힘입어 나치당의 당세는 크게 신장되었다.

1932년 11월 총선거에서 나치당은 33.1%를 득표하여 당세가 약화되었다. 그러나 독일 지배세력의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를 지지했고 1933년 1월 그는 독일 총리로 임명되었다. 1933년 2월 그는 육·해군 수뇌부와 회담하여 그들의 지지를 확인했고 이후 자본가들의 지지도 확보했다. 또한 같은 해 2월 27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네덜란드 공산주의자의 소행으로 알려짐)을 이용하여 공산당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적들에게 대대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정권 획득 후 반대파 모두 처형

1933년 3월 5일 이러한 상황 속에 실시된 선거에서 나치당은 43.9%를 득표했다. 같은 해 7월 히틀러는 보수파와 군부의 협력을 얻어 반대파를 탄압하고 일당독재체제를 확립했다. 일단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는 권력을 잡자 친위대를 앞세워 1934년 6월 30일 소위 ‘피의 숙청’이라 불리는 대규모 숙청을 감행했는데 이 때 자신의 반대자들을 모두 처형시켜 버렸다.

1934년 8월 2일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죽자 히틀러는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자신이 총통 겸 총서기로 취임했다. 히틀러가 나타나면 독일 국민은 열광하며 그를 환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독재정치가 진행되어 국민생활은 획일화되었고 언론·집회의 자유를 비롯한 각종 자유가 사라졌으며 히틀러의 반대파는 강제수용소에 수용되거나 살해됐다.

1937년 11월 5일 히틀러는 군부와 정부의 수뇌들을 모아 은밀히 전쟁의지를 표명했다. 1938년 2월 4일 이들 가운데 전쟁개시를 주저하는 인물들을 파면한 히틀러는 자신이 국방장관을 겸임하여 군부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39년 9월 히틀러는 불시에 폴란드를 침공해 인류역사상 가장 큰 재산·인명 피해낸 전쟁으로 기록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김필재 기자  spooner1@
미래한국신문

2012년 7월 1일 일요일

1차 세계대전과 비밀조직 `크루나루카`(검은 손)


1차 세계대전과 비밀조직 `크루나루카`(검은 손)
인류를 파괴한 악마적 사상들-7 

인류를 파괴한 악마적 사상들


지상에서 낙원을 만든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사회를 강압적으로 개조하려했던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을 포함해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배후에는 악마를 숭배하는 비밀조직이 있었다. 이들의 계획은 기독교 말살과 시민정부의 전복을 목적으로 수세기에 걸쳐 하나의 맥을 이으면서 은밀하고 조직적이며 치밀하게 진행되어 왔다. 이번에는 제1차 세계대전을 배후에서 조종한 비밀조직의 실체를 밝힌다.<편집자주>
제1차 세계 대전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

제1차 세계대전과 비밀조직 `크루나루카`

“대공(오스트리아 황태자)은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위험이 다가왔음을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이 있기 일년 전, 그는 내게 프리메이슨들이 자신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내게 암살이 착수된 곳으로 알려지고 있는 마을까지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이 사실에 대해 알고 있는 몇 몇 헝가리인과 오스트리아 정치인들의 이름을 언급했다.”(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외무대신 ‘체르닌’著, ‘In the World War’(1919)에서)

그동안 일반역사학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의 연합국과 독일*오스트리아 등의 동맹국 사이에 벌어진 세계 규모의 제국주의적 전쟁이었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부 역사학자들에 의해 제1차 세계대전의 배후에는 프리메이슨으로 알려진 비밀조직들이 베르사이유 평화조약과 유럽 전제왕정의 몰락, 그리고 기독교 세계의 파괴라는 자신들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계 전쟁을 유발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이들이 어떤 수법으로 분쟁을 조장해 세계대전을 유발시켰는지 살펴본다.

합스부르그 왕가와 세르비아의 대립

제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은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Balkan)반도를 둘러싼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1867~1918년까지 존속)의 대립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합스부르크왕가의 영도아래 기독교 문화권에 속했던 발칸의 서북쪽에서는 현대 자본주의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과학혁명, 르네상스, 종교개혁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터키제국에 속했던 세르비아*알바니아*마케도니아 등은 서구문명의 발전사와 격리된 채 아시아적 생활양식을 깊이 받아들였다.

특히 알바니아인들의 경우 대거 회교도로 개종하기도 했으며 보스니아에서도 회교도가 생겨났다. 이로 인해 이 지역은 유럽적인 국가발전이 중단되고 서유럽 역사와도 분리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19세기 들어서면서 슬라브 민족주의가 태동하게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발칸반도 내에서는 민족주의의 맹아라고 할 만한 민족의식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데다 민족간 교류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슬라브 내 모든 민족간의 공존과 동등한 권리를 전제로 한 ‘발칸통일’논리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터키로부터 독립을 쟁취해 대(大)세르비아를 실현해 가려던 세르비아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왕가에 복속된 채 슬라브민족주의를 슬로건으로 이 두 세력간의 경쟁은 20세기 들면서부터 본격화 된다. 특히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틈을 이용해 세르비아에서는 군부를 중심으로 대(大)세르비아주의를 실현하려는 세력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비밀결사단체, ‘크루나루카’(黑手組)

당시 군부에서 만들어진 가장 대표적인 비밀결사단체로는 1911년 육군 대령인 디미트리예비치(Dragutin Dimitrijevic*세르비아 정보부장)와 탄코시치(Voja Tankosic*소령) 그리고 시가노비치(Milan Ciganovic)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크르나루카’(Crna Ruka*영어명-Black Hand)라는 프리메이슨 조직이 있었다.

당시 이들은 대중에게 자신들의 목적이 폭력을 통한 대(大)세르비아의 건설이라고 주장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보스니아거주 세르비아인들을 선전*선동했다.  당시 이 조직의 1차 목표는 보스니아를 합병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요인암살이었다. 실제로 1911년 디미트리예비치는 크르나루카의 조직원들을 시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조셉 황제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게 된다.

이후 그는 메메드바시치(Muhamed Mehmedbasic)를 고용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주지사인 포티오렉(Gen. Oskar Potiorek)장군에 대한 암살을 시도했으나 이 또한 실패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이르러 크루나루카는 단원 수만 2500여명에 달하는 거대한 조직이 된다. 특히 크루나루카의 조직원들은 대부분이 변호사, 언론인, 대학 교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들 가운데 30여명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거주하고 있었다.  

한편 크루나루카는 6번에 걸친 오스트리아 요인암살에 실패한 후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1863~1914)에 대한 암살을 모의하게 된다. 당시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삼원화(三元化) 구상으로 인해 세르비아인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어왔다. 당시 크루나루카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목적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외에 체코인을 중심으로 한 제3의 반(反)독립적 국가를 만들겠다는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구상이 남슬라브민족의 여러 민족들의 단결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크루나루카,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지시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아내와 함께 오스트리아 육군의 훈련을 시찰차 보스니아를 방문하고 1914년 6월 28일 수도 사라예보에 도착하게 된다. 이윽고 디미트리예비치는 크루나루카의 열성분자인 프린시프(Gavrilo Pribcip*유태인)와 카브리노비치(Nedjelko Cabrinovic), 그라베즈(Trifko Grabez), 일릭(Danilo Illic)으로 하여금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암살토록 지시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페르디난트 황태자와 황태자비는 사라예보에서 이들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게 된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한 달 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 기회에 세르비아를 타도하고 범슬라브주의의 근거지를 완전히 없애려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맹국 독일의 지지가 필요했으며 오스트리아 특사인 A. 호요스를 단장으로 한 사절단이 빈에서 베를린으로 파견되었다. 당시 독일재상 테오발트 폰 베트만 홀베크(프리메이슨*유대인)는 1914년 7월 5일 베를린에서 호요스 편으로 실질상의 백지위임장을 오스트리아 측에 준다는 취지의 회신을 보냈다. 이 때 베트만 홀베크는 영국과의 전쟁은 차치하더라도 프랑스*러시아 양국과의 전쟁을 계산에 넣고 있었다.
단란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내외의 모습

한편 독일의 회신으로 힘을 얻은 오스트리아 정부는 세르비아정부가 암살사건에 관여한 사실을 증명할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7월 24일 세르비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담은 최후통첩을 보냈고, 7월 28일에는 세르비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 이후 각 나라 나름대로의 연쇄반응의 결과, 며칠 뒤에는 유럽의 주요국가가 관련되는 세계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1914년 10월 12일 20명의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암살 연루자들은 사라예보 군사법정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 암살범 가운데 한 사람인 카브리노빅은 법정의 판사들 앞에서 태연히 “프리메이슨 조직에서 암살지령을 내렸다”고 밝혔다.(James W. Von Braun著, ‘Kill The Best Gentiles’) 이에 대해 프리메이슨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당시 이들의 대부분이 황태자인 페르디난트의 강한 성격이 혁명의 길을 방해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때로는 서로 반대 성향을 지닌 다양한 혁명가들을 하나로 묶어준 증오심이 이들로 하여금 암살이라는 합의점에 도달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쟁발발 2년 전부터 황태자 암살계획 세워

실제로 이러한 사실들은 당시 암살범들의 진술내용은 Mary Edith Durham의 ‘The Serajevo Crime(1925)’과 Henri Pozzi의 ‘Black Hand Over Europe(1935)’등의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이들의 법정진술 내용이다.

▲암살범 프린시프(Princip)의 진술내용

-프린시프 : "우리는 남부 슬라브족을 돕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동의했다"
-판사 : “그 방법들은 무엇인가?”
-프린시프 : “암살이다. 범슬라브주의를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자와 인민에게 불공정한 자를 모두 처단하는 것이다.”

▲암살범 카브리노비치(Cabrinovic)의 진술내용

-카브리노비치 : “그(카지미로비치*Radoslav Kazimirovitch)는 프리메이슨이다.  그것도 어느 정도 그들 우두머리중의 한 명이다. 암살을 지시한 뒤 그는 곧 해외로 여행했다. 그는 러시아, 프랑스, 헝가리를 돌아다녔다. 내가 시가노비치(‘크루나루카’의  핵심단원*프리메이슨)에게 우리 계획이 얼마나 진척됐는지 물을 때마다 그는 내게 카시미로비치가 돌아올 때를 알아야만 한다고 대답했다. 시가노비치는 내게 프리메이슨들이 이미 2년 전에 황태자에 대한 제거 결정을 내렸지만 이를 실행할 인물들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훗날 그는 나에게 총과 카트리지(탄창)를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사람(카지미로비치)이 지난 밤 부다페스트에서 돌아왔소. 나는 그가 우리가 떠맡은 일(암살)과 관련해 여행을 했으며 해외에 있는 어떤 단체와 협의한 것으로 알고 있소”

당시 암살범들에 대한 재판은 전쟁 중 벌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공판기록을 통해 페르디난트 황태자에 대한 프리메이슨들의 제거 결정이 이미 오래전부터 내려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황태자에게 치명적인 사격을 가한 프린시프는 시가노비치와 암살수단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 시가노비치 스스로 프리메이슨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곧 모 인사와 접촉하여 필요한 모든 수단(무기)을 받을 것이지만 암살이 실패할 경우 황태자를 메이슨의 랏지(Lodge*프리메이슨의 회합장소)에서 죽일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프리메이슨, 세계적 사건 배후 조종

제1차 세계대전의 성격은 개전의 경위가 매우 복잡해 어느 한 나라의 특정행위가 대전을 초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암살범들의 진술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단초를 제공한 것은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방대한 조직을 확보하고 있는 프리메이슨단(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프리메이슨단(團)은 나폴레옹 전쟁, 러시아혁명, 프랑스혁명, 남북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 세계적인 사건을 배후조종하거나 사건에 개입하면서 경제뿐 아니라 정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집단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범 가운데 한명인 프린시프의 모습

이 조직이 역사 속에서 늘 내세우는 모토(Motto)는 자유*평등*박애, 그리고 형제애(brethren)를 강조하지만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사탄 숭배를 드러낸다. 실제로 프리메이슨 최고 계급인 33도까지 올라갔던 마리 P. 홀(Manly P. Hall*1990년 사망)은 그의 저서인 `The Lost Keys of Freemasonry`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일단 프리메이슨의 신비한 의식에 참여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어 참된 신은 ‘루시퍼’(Lucifer)라고 믿게 된다. 프리메이슨의 입회의식 후 탈퇴할 경우는 살해를 당하고, 프리메이슨이 아니고서는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됨은 사탄과 영매로서 접촉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 한다.”

실제로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암살을 모의한 ‘크루나루카’ 조직의 우두머리인 디미트리예비치는 ‘아피스’(Apis)라는 암호명을 사용했는데 ‘아피스’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황소의 신’을 뜻한다.

제1차 세계대전, 역사상 최초의 총력전

한편 이들에 의해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 후 전승국은 패전국인 독일에게 일방적으로 전쟁을 전가시켜 독일국민의 불만을 품게 되었고 이것은 후에 히틀러의 나치즘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전쟁이 역사상 최초의 총력전(total war)이었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은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국민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독가스*전차*항공기 등의 신무기가 투입된 것도 이 전쟁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세르비아의 비밀조직 크루나루카의 상징문양, 해골과 뼈(Skull & Bones)는 대표적인 프리메이슨의 상징이다.

이 때문에 전사자의 수도 그 때까지의 전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았다. 1차대전 중의 정확한 사상자를 통계로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유는 전쟁전과 전쟁후의 정부가 같았던 대부분의 연합국에서는 비교적 정확한 통계가 이루어졌으나 정부가 뒤바뀐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등의 정확한 통계가 산출되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총 3천7백 5십만 명의 사상자를 낳은 이 전쟁에서 독일과 러시아가 각각 170만 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프랑스가 136만, 오스트리아가 120만, 영국이 90만, 미국은 12만 6000여 명이었다. 한편 전쟁 기간 중 2500만 명의 사람들이 인플루엔자(스페인독감)로 사망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

2012년 6월 27일 수요일

WCC 따라가면 교회 다 죽는다

WCC 따라가면 교회 다 죽는다
 
최덕성 (전 고신대 고려신대학원 교수)
 
 
1. WCC의 의도
 
WCC의 총무 울라프 트베이트 목사는 부산총회를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교회는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교회의 경험을 수용하라”(경향신문, 2012.3.16.)고 말했다. 한국교회로부터 겸허히 배우겠다고 말한 몇 달 전의 음조와 판이하다. 한국교회 안의 WCC 부산총회 개최 반대 목소리를 의식한 듯하다. 트베이트의 말은 성경적 신앙과 신학을 버리고 자유주의 신학, 종교혼합주의, WCC 에큐메니칼 신학으로 이동, 전환하라는 말로 들린다.
 
한국교회는 성숙해야 하고 배워야 할 과제를 많이 안고 있다. 지상교회는 마지막 날까지 미완성 공동체이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고, 어느 단체가 유익한 면이 있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의 경험’을 배우고 수용하고 새로운 교회 모델로 삼으면 그 뒤에는 무엇이 따라오는가? 생명력이 넘치는 성경적 교회가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와는 정반대일 수 있다. 여기에 WCC의 심각성이 있다. WCC를 따라가면 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하고, 퇴락하고, 사라지게 된다.
 
WCC의 종교 간의 대화와 에큐메니칼 신학을 추종하던 유럽, 북미, 대양주 주류교회들은 생명력을 상실하고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다. 퇴락의 원인은 프로그램의 결핍이나 시대적 변화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한 까닭이 아니다. 새벽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 주일성수를 하지 않은 탓이 아니다. 상대주의 진리 관, 만인 보편 구원관, 종교다원주의, 포용주의, 신앙무차별주의에 기초한 ‘신학’ 때문이다. 기독교 진리에 대한 확신의 부재, 십자가 도리 중심의 복음의 실종, 하나님의 말씀 결핍 때문이다.
 
2. WCC의 신학
 
WCC가 널리 알리고자 하는 신학적 특징은 15가지로 집약된다. 이 점들은 역사적 기독교와 복음주의적인 한국교회의 신앙과 완전히 상반된다. 상이한 진리 인식 패러다임이 가져다준 이 주지들은 역사적 기독교와 신학충돌을 일으킨다.
 
1)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다. “하나님의 구원이 특정 문화-종교, 인종, 지역에 제한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 모든 종교인들을 다 사랑한다고 한다. 종교다원주의는 만인보편구원 사상에 기초해 있다. 종교다원주의는 WCC 안에 소수 종교인들의 주장이 아니라 이 단체가 몇 가지 문서들을 통해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신학이다.
 
2) WCC는 기독교 진리의 상대적 가치만을 인정하는 종교대화주의를 표방한다. 타종교간의 대화에서 새롭게 참된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3) WCC는 종교혼합주의를 추구한다. 기독교공동체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들을 아우르고 하나로 묶으려고 한다. ‘폭넓은 에큐메니즘’(wider ecumenism)과 ‘거대 에큐메니즘’(macro-ecumenism)을 추구한다.
 
4) WCC 신학은 예수를 꼭 믿어야 할 당위성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 단체의 선교와 복음전도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리가 없다. 부산총회에 보고할 세계선교복음전도위원회의 최근 문서에도 십자가 진리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일컬음을 받는 진리 제시가 없다. WCC는 ‘전 복음’(whole gospel)과 통전적 신학(holistic theology)를 읊조린다. 그라나 이 단체의 신학과 그 진리인식 패러다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 신앙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오직 예수 구원’이라는 신앙은 WCC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최대의 장애물이다. WCC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구원의 도리와 이 진리의 복음 전도를 위해 동전 한 닢도 사용하지 않는다. 사회구원지상주의 선교에 매진한다.
 
5) WCC는 용공주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민족주의 인민해방운동과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들에게 거액을 제공했다. 쿠바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소련제 무기를 들고 인종차별 정책을 펼치는 정부를 전복하려는 단체들을 지원했다. WCC의 용공정책은 폭력을 용인한 데까지 나아갔다.
 
6) WCC는 개종전도금지주의를 표방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 신자들에게 이신칭의의 구원론 중심의 개종전도 활동을 금한다. 우상숭배, 성인숭배,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마리아 숭배가 잘못이라고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 선점(先占)한 이들 교회와 협조하여 인간화, 해방투쟁, 피조물들과 상생을 추구하는 등 이른바 ‘하나님의 선교’만 하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도를 도외시한다. 인민해방, 구조 악 철폐, 빈자 구제를 선교와 복음전도의 지상(至上) 과제로 삼는다.
 
7) WCC는 로마가톨릭주의화되었다. 로마와 가시적 교회 일치를 도모하려고 종교개혁 신앙의 정박지를 버렸다. 가시적 일치의 장애물인 ‘오직 성경’ 원리를 포기했다. 그 자리에 ‘전통론’이라는 모호한 이론을 대체하여 모든 기독교 전통이 유효하다고 본다. 신학은 ‘오직 의견수렴’의 원리에 따른다.
 
8) 로마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를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현 로마 교황은 2007년에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로마가톨릭교회만이라고 성명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종래의 배타적 교회관을 쇄신하거나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9) 교황청의 태도변화로 말미암아 반세기 동안 지속해 오던 WCC 세계교회일치운동은 ‘물 먹은 격’이 되었다. WCC는 딜레마에 빠졌다. 개신교회들을 이끌고 교황좌 아래로 ‘귀정’(歸正)하든지, 에큐메니칼 은동의 목표를 사회복음주의 활동과 교제에 제한해야 할 처지이다. 부산총회에 보고할 세계선교복음전도위원회의 새 문서는 인간과 피조물들의 ‘상생’(相生)에 초점을 맞춘다.
 
10) WCC는 성경적인 교회일치운동의 전제인 신앙고백적 일치를 보호하는 울타리를 갖고 있지 않다. ‘다른 복음’을 외치는 자와 ‘거짓 교사’를 규제, 제재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 WCC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381)를 회원들이 고백해야 할 신조로 천명한다. 사도신경과 마찬가지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훌륭한 문서이다. 그러나 21세기 교회 일치의 신조로는 불충분하다. 현대교회의 일치고백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간의 부패성, 이신칭의 교리,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화목제물 사역,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성경의 권위와 신적 속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죄와 회개, 은혜의 수단, 천국과 지옥, 내세의 실재와 상벌을 다루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로마가톨릭교회의 미신적인 오류를 반박하는 내용이 없다. 뉴에이지운동, 프리메이슨, 포스트모더니즘, 진리 상대주의에 근거한 짝퉁 기독교 대한 지침이 없다.
 
11) WCC는 교회의 본질에 해당하는 신앙고백적 일치는 도외시하고, 다만 가시적 교회 일치에만 관심을 가진다. 성경적 신앙고백적 에큐메니즘을 사실상 무시한다. 이러한 구도에서 이 단체는 실제로 하나의 세계적 교회(Una Sancta) 건설을 추구해 왔다.
 
12) WCC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는다. 역사서와 문학서와 같은 인간의 책으로 여긴다. 다만 하나님이 독자들의 마음속에 특별한 무엇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책이 권위를 지닌다고 한다. 무모하다거나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라는 논의는 하지 않는다. 종교다원주의, 종교대학주의, 종교혼합주의는 성경관과 궤를 같이 한다.
 
13) WCC는 시류(時流)에 따라 순교자 개념을 바꾸었다. 인도주의 활동, 인간화, 혁명투쟁, 해방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기독인을 순교자로 추서한다. 예수 그리스도 신앙에 대한 신앙고백 차원의 순교에는 무관심하다.
 
14) WCC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다. 한 입으로는 예수를 주(Lord)로 고백한다. 그러나 다른 한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한다. WCC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를 회원교회들이 고백해야 할 신조, 곧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신조를 고백문으로 천거하던 그 해(1990)에 예수 그리스도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 표방 문서를 발표했다.
 
15) WCC는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indifferentism, latitudinarianism)을 추구하면서 복음주의자들을 앞세워 진리를 위협하는 ‘다른 복음’에 대한 교회의 경계심, 민감성을 갖지 못하게 한다. WCC에 들러리 서는 복음주의자들은 이단보다 더 위해(危害)하다.
 
3. 패러다임의 충돌, 신학충돌
 
WCC에 들어가서 리더십을 발휘하여 이 단체가 복음적으로 전향하도록 하자는 일부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진리 패러다임의 성격과 신학충돌을 고려하지 않은 오판이다.
 
역사적 기독교와 WCC 기독교는 서로 다른 신학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진리와 인식에 관련된 패러다임의 속성은 중간을 배제하며,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다. 패러다임의 차이는 지동설과 천동설의 관계와 같다. 하나의 패러다임은 다른 패러다임을 포용하거나 다원성을 수용하는 태도를 거부한다. 상대 패러다임의 이동, 전환, 포기를 요구한다.
 
부산총회를 기회로 이 단체가 복음적으로 변하기를 희망하는 신학자들의 기대는 공상(空想)에 지나지 않는다. 트베이트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의 경험’을 따라 배우라고 한다. 복음주의적인 한국교회가 변화하고 패러다임을 이동하여 WCC 에큐메니칼 신학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WCC에 가담하는 복음주의자들은 반기독교 운동의 들러리 역할을 했을 뿐, 이 단체의 신학 노선을 ‘쬐끔’이라도 복음적으로 바꾼 적이 없다. 비성경적 홍수의 물줄기를 가로막거나 중단시킨 전례가 없다. 이 단체의 신학이 피사의 사탑처럼 로마가톨릭주의, 자유주의 신학, 종교다원주의, 진리상대주의, 성경불신주의로 기울어져도, 개신교회를 떠받들고 있는 기둥들이 뽑혀져도, 기독교의 중추적인 진리가 부정되어도, 그 흐름을 막지 못했다. WCC는 자신의 신학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신학적 소양을 갖춘 복음주의자들을 초대하지 않는다.
 
신학사상은 하루아침에 개조할 수 있거나 끌어당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한 통 속에 집어 넣고 섞을 수 있는 성질의 어떤 것이 아니다. 검정색 페인트 통에 한 숟갈의 흰색 페인트를 집어넣는다고 하여 통 안의 페인트가 희게 되지 않는다. 맑은 강물과 탁류의 강물이 합치면 탁류의 강이 된다.
 
역사적 기독교와 자유주의 기독교 합하면 자유주의 기독교가 된다. 유서 깊은 기독교와 WCC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관계 아니다. 두 그룹은 결합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사고구조, 패러다임,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다. 신학충돌이 불가피한 신념체계, 신앙이해, 진리관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앎이 무엇인가를 알아 갈수록 겸손해 진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에게서 배우고 상호보충적으로 타인을 수용하는 관용성은 필요하다. 자기의 약점을 변명, 미화, 게토화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와 WCC의 신학충돌은 중간을 배제하는 진리와 패러다임의 갈등이다.
 
WCC는 한국교회의 ‘패러다임의 이동’을 재촉한다. 그리스도 구원 유일 신앙을 고백하는 복음주의 신앙, 개혁주의 신학을 버리고 WCC 신학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라고 재촉한다. 한국교회가 WCC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신학,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신학을 따라가면 어떻게 될까? WCC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에 앞장선 유럽과 북미와 대양주 교회들의 조종(弔鐘)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4. WCC와 영적 쓰나미
 
알렉산드리아의 정교회 감독 파르테니오스는 WCC 제7차 총회(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1991)의 개회 기조연설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악의 신비,’ 악마, 사탄, 그리고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의 신비,‘ ’악령의 실재성‘을 너무나 쉽게 잊는다고 용감하게 말했다. WCC가 ‘무당신학자’ 정현경 교수(당시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를 앞세워 총회 개회식 행사로 초혼제(招魂祭) 푸닥거리를 한 마당을 펼치던 자리였다.
 
사탄의 선교(mission)의 최대 과제는 예수가 그리스도 또는 유일한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하고, 이 같은 신앙고백의 터에 세워진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사탄의 선교는 WCC의 신학에 힘입어 유럽교회를 괴멸시키는 데 성공했고, 북미와 대양주의 주류 교회들의 생명력을 앗아갔다.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사단의 지능은 신학자보다 훨씬 높다. 사단과 신학자가 의기투합하고, 복음주의자들이 맞장구쳐주면,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은 아주 쉽다.
 
성경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라고 가르친다. 성경이 이 같이 가르치는 데는 이에 상응하는 어떤 까닭이 있지 않겠는가? 천둥이 치면 만물이 응하는 것처럼 함께 어울리다보면 남의 의견을 무의식 가운데 따라 가게 되고 동화된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부화뇌동(附和雷同)과 사문난적(斯文亂賊: 이단적 언동으로 종교의 도를 어지럽힘)으로 발전할 수 있다.
 
WCC 부산총회는 영적 쓰나미이다. 한국교회를 죽음으로 몰고 갈 핵 방사능 분진을 몰고 온다. 신앙무차별주의 교회일치운동의 위험을 자각하지 못하게 한다. 한국교회로 하여금 포용주의, 다원주의를 조장한다. 진리에 대한 민감성을 잃게 한다. ‘모든 교회, 모든 기독교, 모든 종교는 다 똑 같다’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원수에게 대항할 힘을 뺀다. 근육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진리의 전신갑주를 취하지 못하게 한다. ‘주전자 안의 개구리’가 되게 한다. 진리의 터에 세워진 신앙고백공동체의 성문(城門)을 거짓 교사와 이단에게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5. WCC는 부산총회를 철회하라
 
한국교회는 전체로 보아 복음적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믿는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는 진리를 믿는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
 
WCC 총무 트베이트가 말한 대로 이 단체의 총회는 개최되는 지역 교회와 상호 교류하고 배우는 마당이다. WCC는 한국교회의 변화를 원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재촉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에 걸림돌인 복음주의 신앙, 개혁주의 신학을 버리라는 말이다. WCC의 15가지 신학적 특징들을 수용하여 새로운 교회모델로 삼으라고 한다.
 
자기 동네에 교회당이 들어서면 마을 사람들이 땅값 내려간다고 데모한다. 이웃집에서 날라 오는 독성 물질에 항의한다. 일조권 시비가 벌어지기도 한다. 짝퉁 물건 제조자, 판매자, 구매자를 처벌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자신을 괴멸시키려고 달려드는 거대한 ‘쓰나미’ 행사에 침묵한다. 교회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재앙을 가져올 ‘짝퉁 기독교’ 부산총회 계획을 무감각하게 바라보고만 있다.
 
주님의 신실한 신부는 WCC가 예수 구원 유일성을 부정하고,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특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일까?. 한국 기독인들은 WCC를 향하여 부산총회를 철회하라고 요구함이 마땅해 보인다. 한국교회가 살아 있음을 세계인에게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종교, 언론, 신앙,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다. 그러나 교회의 생명을 위협하는 ‘짝퉁 기독교’ 행사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교회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구원에 감사하여 바친 거액의 헌금이 교회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종교다원주의 따위의 반기독교적인 신학 계발에 사용된 것도 확인하고 따져볼 사안이다.
 
나팔은 분명한 소라를 낼 때만 가치를 가진다. 침묵은 인정, 동의를 뜻한다. WCC 부산총회 개최에 침묵하는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종교개혁신학자 존 칼빈이 나바르의 마아가렛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개는 자기 주인이 공격을 받으면 짖는다. 만일 하나님의 진리가 공격을 받는 데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한다면 나는 개만도 못한 겁쟁이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 구성원은 당당히 외칠 수 있다. "WCC는 부산총회를 철회하라."
 
WCC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가 WCC의 신학과 정체에 관심을 가지고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필자가 최근 출간한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본문과현장사이, 2012)는 WCC의 신학을 분석하고, 기독교와 WCC의 신학충돌을 상론한다. 반론이나 구체적인 학문적 논의는 이 책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바란다. WCC의 신학을 정확히 알리고, 이 단체의 부산총회에 대한 심각을 깨닫게 하고, 항의나 반대의 신학적 논거를 정확히 밝힌다. WCC의 독성과 위험이 무엇인가를 밑바닥에서부터 여론이 형성되어 올라오도록 할 목적으로 저술했다
 
[최덕성은 한국복음주의신학회로부터 ‘신학자 대상’을 수상한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2000), 교회일치운동의 중요성을 다룬 <에큐메니칼운동과 다원주의>(2005), 1910-1960년의 한국교회사를 신앙고백사관으로 서술한 영서 KOREAN CHRISTIANITY(2008) 등 여러 권의 신학서들을 저술했다. 현재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런던올림픽 테러를 암시하고 있는 헐리웃 개봉 영화들


런던올림픽에 테러가 일어날 것을 암시하고 있는 일루미나티 카드 - 테러로 런던의 시계탑이 파괴되고 있다.   
테러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이 입은 옷이 정확히 올림픽 오륜기 색깔을 하고 있다.

유태자본가들이 장악한 헐리웃 영화들이 일루미나티의 어젠더를 실현하는 도구로 쓰여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헐리웃 영화들을 통해 대중들을 도덕적, 신앙적으로 타락시키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앞으로 다가올 NWO를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마인드 컨트롤하고 있다. 이처럼 헐리웃 영화를 통해 실현하고 있는 일루미나티의 중요한 어젠더들 가운데 하나가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미리 암시하는 것이다.

일루미나티들은 저들이 계획한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하기 전 각종 매체들을 동원해서 이 사실을 미리 대중들에게 알려줌으로(암시함으로),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자신들이 있음을 은근히 과시해왔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911사태인 것이다.  
2001년 911사태가 발생하기 오래 전부터 저들은 여러 매체들(일루미나티 카드, 만화, 영화 등)을 통해 이미 이 사건이 발생할 것을 암시해왔다. 이것이 바로 일루미나티의 예언 사역인 것이다.



911사태가 있을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헐리웃 영화들
 

911사태가 발발한지 11주년이 되는 2012년은 저들에게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한 해이다. 2,000년 가까이 지속되던 물고기자리가 물병자리(new age)로 바뀌는 해가 2012년이고, 태양신을 숭배하는 마야인들이 지구의 종말 혹은 지구의 대격변기가 될 것으로 예언한 해가 바로 2012년이다.   마야인들과 같이 태양신(루시퍼)을 섬기고 있는 일루미나티들도 2012년을 New World Order가 실현되는 원년으로 보고 있다.   몇 년 전 개봉한 헐리웃 대작 <2012>가 바로 이런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 만든 영화인 것이다.  
 
저들이 그토록 집착하고 있는 2012년(정확히 말하면 2012년 12월 21일)에 New World Order를 실현하려면 먼저, 이를 견인할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 중동의 사태 혹은 인위적인 전염병 창궐 등이 그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예측과 함께, 루시퍼의 제전이 될 것으로 보이는 런던 올림픽에 엄청난 테러가 발생하여 이것이 New World Order를 수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런던 올림픽에 테러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매체들을 통해 확인되어 왔는데, 최근에는 개봉을 앞두고 있는 두 헐리웃 영화 G. I. Joe 2와 Batman The Dark Knight Rises에서 내놓은 예고편(trailer)에 런던 올림픽 테러를 암시하는 듯한 장면들이 등장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두 영화 가운데 G. I. Joe 2는 본래 하지(태양을 섬기는 일루미나티들에게 중요한 날 가운데 하나)인 6월 21일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별 다른 이유 없이(제작사에서는 3D로 변환하기 상영을 연기했다는 설명을 하고 있으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음)  내년 3월로 그 개봉일이 연기된 상태이고, 배트맨 시리즈 신작 Batman The Dark Knight Rises는 런던 올림픽 개막 일주일 전인 7월 20일을 개봉일로 잡고 있다.
 
두 영화를 소개하는 예고편(trailer) 가운데,  G. I. Joe 2에서는 테러범들에 의해 런던이 파괴되는 장면이 등장하고, 배트맨 시리즈 The Dark Knight Rises에서는 배트맨의 배경인 고담시 곳곳에 테러가 발생하여 이로 인해 혼란해진 도시를 Dark Knight가 장악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우려했던 테러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하게 된다면, 아마도 똑 같은 과정을 통해 어둠의 세력들(Dark Knight)이 세계를 장악하게 될 것이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런던 올림픽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는지, 걱정스런 마음을 거둘 수 없다.
 
                                        - 예레미야 -

영화 지 아이 조2 예고편에 등장하는 한 장면 -  런던이 테러당하고 있다.   
본래 6월 21일 개봉할 것으로 알려졌던 지 아이 조2는 내년 3월로 개봉을 연기한 상태이다. 







Batman The Dark Knight Rises 예고편에 등장하는 여러 테러 장면들 중에 하나이다.  경기 중인 선수들이  테러를 당하고 있다.  혹시 올림픽 경기장이 테러 당할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배트맨 시리즈 최근 작 The Dark Knight Rises 에는 '혼란을 통해 질서를 만든다(Order out of Chaos)'는
일루미나티의 어젠더가 충실히 담겨져 있다.

2012년 6월 24일 일요일

로마 카톨릭의 마리아숭배 내력

로마 카톨릭의 마리아숭배 내력






신광철 목사
로마 카톨릭에는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마리아 기도문들(Marian Prayers)이 있으며, 그 전통적 기도문들(Traditional Marian Prayers)은 아래와 같다.
Rosary (로사리오) :  officially established by Pope Pius V (1569)
The Angelus :  Officially approved by Pope Benedict XIV (1724)
Hail Holy Queen (Salve Regina) :  Current form by Bernard of                             Clairvaux and the Abbey of Cluny in 12th century.
Hail Mary (Ave Maria) :  Codified by the Council of Trent (1568)
Magnificat : 
Memorare :  composed by the Cisterian St. Bernard of Clairvaux
Queen of Heaven (Regina Coeli) :  Officially designated by                                Pope Benedict XIV in the 18th century.

이 외에도 교부들이나 교황들이나 성인들이 마리아에게 드린 기도의 기록들(Marian Prayers)이 많이 있다 (참고: "Click Here").   로마 카톨릭에서 마리아기도경배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녀가 거룩하신(Holy), 하나님의 어머니(Mother of God)이고, 하늘황후(Queen of Heaven: 천상모후)이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Mediatrix) 또는 공동-구속자(Co-Redemptrix)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로마 카톨릭의 교법(Dogma:교의)과 마리아의 위상은 무염시태 > 성모승천 > 천상모후 > 중보자 순서로 격상 되었다고 본다.

1. 무염시태(Immaculate Conception)

마리아가 거룩한 존재로서 경배와 기도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녀에게 절대로 죄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에서는 마리아의 무죄설(무염시태)를 제창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마리아 숭배의 기초가 되었다.  마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원죄(original sin)없이 무죄 상태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무염시태(Immaculate Conception: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라고 한다.
무염시태는 로마 카톨릭의 중요한 교회법 중에 하나인데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ent, 1957; Pius XII)에서 공인 되었으며, 12월 8일을 무염시태의 우주적 축제일로 정하였다(Pope Sixtus IV).  그리고 교황 피우스 9세(Pius IX)는 "무염시태"를 로마 카톨릭의 교회법(Dogma: 교의)으로 제정하였다(Ineffabilis, 1854).   그는 "무염시태" 교회법 제정 50주년을 기념하여 성직자들에게 보낸 회칙(encyclical)에서 강조하기를 마리아는 인류 구속에서 중보자(Mediatrix)와 공동-구속자(Co-Redemptrix)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교황 피우스 9세의 이러한 마리아론(Mariology)에 의하여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To Jesus through Mary) 길(Path)로 여기게 되었고, 로사리오(Rosary)그 길을 포장하는 역할이 되었다(en.wikipedia.org).

죄(origianl sin) 없이 태어난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낳았다고 주장하였므로, 마리아는 마땅히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어야 하며 정식으로 "거룩한 분"이라는 명칭이 주어져야 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은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ent, 1568)에서 마리아를 "거룩한 마리아(Holy Mary)", "하나님의 어머니(Mother of God)"로 부르기로 법조항에 성문화 하였다.   그후 카톨릭 신자들은 로사리오 기도 때마다 빠지지 않고 기도하는 소위 "마리아송(The Hail Mary)" 기도문에서 마리아를 "거룩한 분", "하나님의 어머니"로 부르며 그녀를 경배하고, 그녀에게 기도하면서 은총을 구한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마리아하나님의 어머니이고 거룩한 분이므로 경배와 기도의 대상이 되도록 법제화 하였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이러한 교법(Dogma)를 거절하면 정죄받고, 저주의 대상이 된다(Canon 1325, 1917, Benedict XV).   그러므로 카톨릭 신자들은 카톨릭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마리아를 "거룩한 분" 또는 "하나님의 어머니"로 섬기는 입장에 있다.

The Hail Mary (Ave Maria)
Hail Mary, full of grace,
the Lord is with thee!
Blessed art thou among women,
and blessed is the fruit of thy womb, Jesus,
Holy Mary, Mother of God,
pray for us sinners,
now and at the hour of our death. Amen.
마리아 송 (아베 마리아)
은총이 충만한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당신과 함께 하심이니이다!
당신은 여인 중에 복되시고,
당신 태중의 열매인 예수께서도 복되시도다.
거룩한 마리아, 하나님의 어머니여,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지금과 우리 죽을 때에. 아 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성경에 비추어 보면, 로마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마리아의 무염시태(Immaculate Conception)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무시하고 마리아경배의 대상으로 삼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인류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전도서 7:20)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편 14:3)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righteousness)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 . ." (이사야 64:6)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편 51:5)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않았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
(요한일서 1:8,10)
인간은 그의 어머니가 모태에서 임신할 때부터 이미 "죄 중에 잉태" 되었고, 누구나 예외 없이 원죄(original sin)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는 "죄악 중에 출생한다"고 하나님은 선언하셨다(시51:5).   그래서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고 하셨고(전7:2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언급하셨다(요일1:10).   성경은 어느 곳에도 마리아가 이러한 하나님의 선언에서 제외된다는 구절이 없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에서는 마리아의 무염시태에 대해서 "성모님이 원죄 없이 태어나신 특전을 말한다.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미리 입어 죄 없이 태어나셨기 때문에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다"라고 설명한다(박도식, 천주교교리, p. 156, 1984).

그들의 교리에서 마리아가 "죄 없이 태어나셨기 때문에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로마 카톨릭의 마리아 무염시태 교리(Immaculate Conception)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마리아를 신격화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이유는 어머니 마리아가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마리아가 보통 사람이라면 예수님도 죄에 오염되었기 때문에 참 하나님으로 세상에 오실 수가 없다는 뜻이 된다.   마리아가 죄없는 거룩한 분이었으므로 예수님도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소유하게 된 것은 마리아 때문이다.   예수님의 거룩성은 마리아의 거룩성 여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거룩성을 인정하면 마리아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어머니"가 된다.   따라서 마리아에게는 하늘황후(Queen of Heaven)라는 명칭이 따라 붙었고, 또 마리아는 신격화 되어 경배와 기도의 대상이 되었으며, 마리아가 중보자이기 때문에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께로(To Jesus through Mary)"라는 표어가 나왔다.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신격화 하기 위하여 성경에 없는 논리로 교법(Dogma)을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비하시켰다.

2. 성모승천(The Assumption)

로마 교황 피우스 12세(Pius XII)는 "성모승천(The Assumption of Mary)"에 대한 교리를 변치않는 교회법(Dogma)으로 확정짓고, 마리아에 관하여 "그녀는 이 땅의 여정을 완전히 마치면서 육체와 영혼이 하늘 영광 가운데로 올리워졌다" (having completed the course of her earthly life was assumed body and soul into heavenly glory")라고 명시하였다(Munificentissimus Deus, Par. 44, Pius XII, 1950).

로마 카톨릭의 성모승천 교리성경(정경)에 없는 이야기인데,  그 교리가경(apocryphal treatise)인 De Obitu S. Dominae (요한의 글이라고 하지만 4세기 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과 성 멜리토(St. Melito of Sardis)의 글인 De Transitu Virginis에 근거하였다.   4-5세기경, 이러한 글들이 회람식으로 돌려지면서 "성모승천설"도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 밖에 그레고리(Gregory of Tours, 538-594), (John of Damascus, 676-749), 모데스투스(Modestus of Jerusalem)의 글들을 배경으로 하여 성모승천설을 강화하였고, 특히 7세기경 떠돌기 시작한 예수님의 제자 도마(St. Thomas)에 대한 이야기도 한목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도마가 마리아의 임종시에 현장에 없었고, 나중에 그는 마리아의 무덤에 찾아갔는데 마리아가 무덤에서 살아난 것을 목격하였으며, 마리아는 하늘로 승천하면서 도마에게 띠(girdle)를 떨어뜨렸다는 이야기 이다(en.allexperts.com).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성모승천설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할 당시 보수적이며 이단의 실체를 드러내는 글을 썼던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of Salamis, AD377)가 "마리아의 최후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기록한 것이다 (en.wikipedia.org/wiki/Assumption_of_Mary;   Epiphanius, Panarion, Haer. 78, 10-11, 23).   또한 더욱 이상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 예수님의 부탁으로 마리아의 남은 생애를 맡아 돌보았던 사도 요한의 침묵이다.   로마 카톨릭에서 주장하고 섬기는 마리아가 정말로 원죄가 없이, 거룩한 분이며, 하나님의 어머니로서 죽음 후에 예수님처럼 부활승천 하였다면 어째서 마리아의 생애와 함께 하였던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이 침묵하였겠는가?   또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초대 교부들인 폴리갑(Polycarp)이나 익나티우스(Ignatius) 같은 분들이 성경의 교리들을 다루면서 많은 글들을 썼는데 마리아의 그 엄청난 사실들( ? )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아무 글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인가?   참된 증인들의 침묵은 마리아의 부활 승천설이 수 백년 후에 지어낸 이야기 임을 알려준다.

에 대한 논문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로마 카톨릭은 성경(정경)에 없는 것을 주장하므로 말미암아 과오를 범하며 수 많은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다.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보살피던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나이 많은 노후에 밧모섬에서 홀로 지낼 때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에 일어날 사건들을 계시로 요한에게 보여주시고 마지막 성경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셨다.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경고하셨는가?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잠언 30:6)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shall not add, neither take away),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신명기 4:2)
<로마 카톨릭은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ent, 1546)에서 성경(정경)에 없는 다른 문서들인 가경(apocrypha)들성경에 추가로 더하고 그 가경들이 본래의 성경(66권)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다고 선포하였다.  마리아의 무염시태, 성모승천, 천상모후, 중보자 등도 그런 맥락에 속한다.>

3. 하늘 황후(The Queen of Heaven: 천상모후)

마리아가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했다고 주장한 로마 카톨릭의 다음 단계는 그 마리아신성화하는 작업인데 그것이 바로 마리아가 하늘에서 황후(the Queen)의 직위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Ad Caeli Reginam, Pius XII, 1954).

로마 카톨릭의 "무염시태" 교리에 의하면 예수님의 거룩성마리아의 거룩성에 영향 받은 거룩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예수님과 동일한 거룩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을 낳았으므로 "하나님의 어머니(Mother of God)"라고 부르게 되었고 따라서 "하늘 황후(The Queen of Heaven: 천상모후)"로 격상되었다.   그러면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에 거룩한 분 성모 한 분이 더 추가하여 이상한 논리가 형성되는 셈이다.   로마 카톨릭은 로사리오(Rosary)에 하늘 황후(The Queen of Heaven)께 드리는 "Hail Holy Queen (Salve Regina)",   또는 "Queen of Heaven (Regina Coeli)"같은 전통적 기도문(Traditional Marian Prayers)들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마리아예수님과 같은 위치에 올려 놓았고, 하나님처럼 거룩하신 분으로 묘사한다.
거룩하신 평안의 황후
긍휼의 어머니시요, 거룩하신 왕후여, 평안하소서,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기쁨이며, 우리의 소망이시여, 평안하소서,
가련하게 내쫓긴 이브의 후손들, 우리들이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당신께 올려드리는 우리의 탄식,
눈물 골짜기에서 슬픔과 흐느는 눈물로 그리합니다.
그러하오니, 가장 은혜로우신 대언자시여 돌아서서,
긍휼의 눈길로 우리에게 향하소서,
그다음, 우리의 유랑생활을 보시고,
당신의 복된 태의 열매, 예수를 우리에게 보이소서.
오, 관대하시며, 사랑이시고, 다정하신 동정녀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오, 거룩하신 하나님의 어머니시여,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약속들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리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생명(Life)" 이시고, "우리의 산 소망(the living Hope)"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가장 은혜로우신 대언자(The Advocate)"이시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예수님과 동등한 위치로 올려놓았다.   마리아가 우리의 생명이요, 소망이며, 우리의 대언자(The Advocate)라고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서 3:4)

. . . .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 . . . ." (디모데전서 1:1)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로새서 1:27)

. . . 예수 그리스도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
                                                                                                                                             (베드로전서 1:3)
. . .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the Advocate)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 2:1)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Mediator)도 한 분(One)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라 예수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 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포하셨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위치에 설 수가 없다는 뜻이다.   만일 누군가가 그 하나님의 위치에 선다면 그는 우상이 되며 자기를 섬기라고 한다.   여러 제국의 황제들이 하나님처럼 높아지고 교만하여 자기를 신격화 시키고 자기의 형상대로 우상을 만든 다음 거기에 절하지 않으면 죽이게 한 사실들을 인류 역사에서 수 없이 발견된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세상 끝날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자신을 신격화 하여 하나님이라고 선포하며, 자신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게 한 다음 거기에 절하지 않으면 죽이게 한다고 하였다(데살로니가 후서 2:4, 요한계시록 13:14-15).   로마 카톨릭에서는 죽은 마리아를 그처럼 신격화 시켜서 그녀를 우상화 하고 있다.   그녀를 거룩한 여신으로 섬기게 하며, 그녀를 예수님과 함께 협력하는 공동-구속자(Co-Redemptrix) 또는 예수님과 같은 중보자(Mediatrix)로 섬기게 하여 결국은 성부, 성모, 성자, 성령를 섬기는 격이 된다.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거룩한 분, 한 분이 더 추가되었다.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하늘 황후로 섬기며 그녀를 찬양하고 경배하며 그녀에게 기도하는데,   성경에 기록된 대로  "The Queen of Heaven"에게 그렇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와 똑같은 일을 저지르므로 하나님의 분노를 산 적이 있음을 예레미야서에서 보게 된다(렘7:18, 렘44:17,18,19,25-).   로마 카톨릭에 소속된 신자들은 지금 하나님의 분노를 사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The Queen of Heaven)
(하늘 황후: The Queen of Heaven; 렘44:17-22)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The Queen of Heaven)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provoke Me to anger)
(예레미야 7:18)

". . . 17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 여신(The Queen of Heaven)에게 분향하고. . . 18 하늘 여신(The Queen of Heaven)
     에게 분향하고 . . . 19 하늘 여신(The Queen of Heaven)에게 분향하고 . . . 22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가증한 소위

     더 참으실 수 없으셨으므로
. . ."
(예레미야 44:17-22)
하나님은 인간 중에서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거룩한 자(The Queen of Heaven)를 지으신 적이 없으시며, 그러한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Before Me no God was formed, nor shall there be after Me).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3:10-11)


4. 중보자(Mediatrix)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피우스 9세의 마리아 중보역할 이론을 공식화한 최초의 교황이다.  1883년 그는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중보자이며, 하늘의 은총의 중보자인 동정녀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 만큼이나 구속에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Suprimi apostolatus Rudolf Graber, Wurzburg, 1954, p.30).   그는 그의 회칙, Octobri Mense에 명시하기를 마리아는 땅위에서 "은혜의 관리자(administrator of graces)"이며, 새로운 구원질서의 한 부분이다고 하였다(Encyclical Octobri Mense, Graber, 48). 또 그는 그의 회칙, Magnae Dei Matris (Of the great Mother of God)에서 그리스도 주(Lord)가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에 마리아는 중보자(Mediator)이다 라고 하였다(Graber, 62).   그리고 그의 Iucunda Semper에서는 로마 카톨릭이 기도를 통하여 마리아의 후원을 추구하는 가장 깊은 이유(the deepest reason)는 마리아가 가지고 있는 가장 확실한 하나님 은총의 중보자 사역(office)때문이다 라고 하였으며(Graber, 83), 그의 회칙, Augustissimae Virginis (Of the Most August Virgin Mary)에서는 마리아를 부르는 것이 하나님께 응답받고, 그의 은총을 발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라고 하였다(Graber, 115).   교황 레오 13세는 11개의 회칙을 통하여 로사리오(Rosary)를 정해주었기 때문에 그를 가리켜서 로사리오 교황(Rosary Pope)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그의 11가지 로사리오 회칙은 아래와 같으며, 이 로사리오(Rosary) 기도중보자 마리아를 통하여 하나님께 다가가는 길(Path)이다(en.wikipedia.org).   그래서 로마 카톨릭에서는 로사리오(Rosary)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모든 카톨릭 신도들은 로사리오로 중보자 마리아에게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추구한다.
교황 레오 13세의 로사리오(Rosary) 회칙
    1. Supremi Apostolatus
    2. Superiore Anno
    3. Vi E Ben Noto
    4. Octobri Mense
    5. Magnae Dei Matris
    6. Laetitiae Sanctae
    7. Iucunda Semper Expectatione
    8. Adiutricem
    9. Fidentem Piumque Animum
    10. Augustissimae Virginis Mariae
    11. Diuturni Temporis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중보자를 허락하신 일이 없다.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에 의해서 전달되며, 그 복음의 말씀만 받아들이고 믿을 때 구원의 효력이 발생한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3:11)
“땅 끝의 모든 백성들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이사야 45:22)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Mediator)도 한 분(One)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5)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 ." (사도행전 4: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except through Me) 아버지(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의 양면성을 가지고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유일한 구속자(The Redeemer)이시며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속(Redemption)을 완성하셨다.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희생시키신 하나님은 마리아 같은 중보자(Mediatrix), 또는 공동-구속자(Co-Redemptirx)를 허락하신 일이 없다.   세상에는 인간을 구원한다는 "다른 구원자들"이 많이 있다. 로마 카톨릭이 숭배하는 마리아는 그 중에 속하는 다른 "중보자"이거나 또는 다른 "공동-구속자"일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 뿐만 아니라 죽은 성인들에게도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seek help to the spirits of the dead for the living)"
(이사야 8:19)
왜 죽은 자에게 기도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은 인간이 한 번 죽으면 심판만 기다리게 되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은 소위 자기의 운명도 바꾸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운명에도 도움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죽기 전에 바른 신앙을 가지고 구원받아야 한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사망의 길이니라" (잠언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