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5일 금요일

중국과 파키스탄 ‘절친’ 맺은 이유

중국과 파키스탄 ‘절친’ 맺은 이유


파키스탄과 중국이 최근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10월26일 파키스탄은 남서부에 있는 과다르 항구에 중국 해군기지를 건설할 것을 중국 정부에 요청했다. 과다르항은 파키스탄에서 카라치와 카심 다음가는 큰 항구이자 아라비아만이나 걸프만이 만나는 요충지로 전략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이미 중국은 2002년부터 과다르 항구 건설에 2억4800만 달러(약 2720억원)를 투자했다. 이는 항구 건설 자금의 80%에 해당한다.


파키스탄, 중국군 최초 해외 기지 제안

이번 중국 군사항 건설 요구는 파키스탄이 최근 취해온 친중국 모드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만일 양국이 기지 건설에 합의한다면, 이것은 중국군의 첫 번째 해외 기지가 된다. 파키스탄은 또 중국의 최신형 잠수함 6대에 대해 구매 협상을 벌임과 동시에 10억 달러(약 1조978억원) 규모에 달하는 차세대 전투기 JF-17 선더 50대 및 7억5000만 달러(약 8200억원) 규모의 프리깃함과 헬리콥터까지 구매했다. 그동안 무역에 치중하던 양국 관계가 군사·외교적으로 확대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Reuter=Newsis
5월18일 유수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오른쪽)가 중국을 방문해 원자바오 총리와 사열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중국이 이렇게 급속도로 가까워진 계기는 오사마 빈라덴 사망 사건이다. 지난 5월 미국은 빈라덴 사살을 위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단독으로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미국은 최신 정예부대인 네이비실과 최첨단 스텔스 헬기를 동원해 숙적인 빈라덴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막상 작전 현장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작전에 이용된 스텔스 헬기 한 대가 난기류 때문에 추락한 것이다. 미군은 군사 무기의 핵심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추락했던 이 헬기 에 폭탄을 설치해 폭파시킨 뒤 철수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꼬리뿐 아니라 상당 부분의 원형이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버렸다. 이 스텔스 헬기는 이전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던 미국의 최신예 비밀 무기로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이번 사건으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당시 파키스탄 정부와 국민은 자국 영토에서 벌어진 미국의 단독 군사작전에 크게 반발했다. 파키스탄 주권을 침해당한 치욕이라는 여론도 들끓었다. 미국은 미국대로 빈라덴이 파키스탄에 숨어 있었던 것이 파키스탄 정부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실제로 미국이 파키스탄에 헬기 잔해 반환을 요청하자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 대사를 불러 공식 항의하고 작전 중 추락한 스텔스 헬기 잔해를 돌려주지 않겠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나아가 이 헬기 잔해를 중국에 넘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국 쪽에서 연간 30억 달러에 이르는,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거나 삭감하겠다며 맞불을 놓았다. 미국의 핵심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Reuter=Newsis
아라비아해 연안에 있는 과다르항의 모습. 파키스탄은 이곳에 중국의 해군기지를 건설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과 파키스탄은 9·11 이후 아프간 전쟁에서 최대 협력 관계였다. 파키스탄은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미국 또한 이에 대한 보답으로 군사·경제 원조를 지원하며 지난 10년간 끈끈한 친구 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이번에 자국 영토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마음이 상한 파키스탄이 새로운 친구로 중국을 선택한 것이다. 파키스탄이 스텔스 기술 개발에 열중하던 중국에 스텔스 헬기 잔해를 선물로 주면서 양국 간 가까운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중국은 빈라덴 사건과 관련해서도 파키스탄을 옹호하고 나섰다. 대부분의 나라가 빈라덴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파키스탄에 따가운 눈총을 보낼 때 중국은 외교부 정례 브리핑을 통해 파키스탄을 옹호하는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파키스탄은 반테러 투쟁의 전선에 있고 공헌도 크다. 미국이 빈라덴을 사살한 뒤 자국 영토가 테러에 이용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파키스탄 외교부의 입장에 주목하며 이를 이해하고 지지한다.” 파키스탄과 미국이 불편한 관계로 들어서자마자 중국이 파키스탄을 편들고 나선 모양새다.


양국 고위급 방문 “우린 전천후 친구”

이에 화답하듯 유수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 5월17~20일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마침 양국 수교 60주년이기도 했다. 길라니 총리는 “매번 어려운 상황마다 파키스탄을 지지해주는 중국에 감사한다. 중국은 진실한 친구이자 오랜 세월을 통해 입증된 전천후 친구이다”라고 말했다. CNN은 길라니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이 미국에 ‘잽’을 날린 것이라고 보도했다.



  

파키스탄의 친중국 모드는 갈수록 화기애애해졌다. 지난 9월에는 멍젠주 중국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이 파키스탄을 방문해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과 만나 “파키스탄이 어려움을 겪을 때 중국 역시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낼 것이다”라고 밝혔다. 자르다리 대통령도 “파키스탄이 어려움을 겪을 때 중국은 늘 파키스탄과 함께했다. 우리는 중국과의 전통적인 우의를 소중히 여기며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추진함으로써 두 형제가 더욱 강대하게 성장해왔다”라고 화답했다.

이들은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 제공과 수해 지역에 대한 도로 건설 및 과학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수교 60주년, 반테러 실무 협력 등을 통해 ‘전천후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멍젠주 공안부장을 만난 레흐만 말리크 파키스탄 내무장관도 “중국은 가장 힘든 시기에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여기서는 미국에 대해 논하지 말자”라며 둘만의 관계를 강조했다. 이제 중국과 파키스탄은 미국을 따돌리고 ‘친구’ 관계를 넘어 공식 석상에서 서로를 ‘형제’라 부를 정도로 관계가 돈독해지고 있다.

중국의 움직임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지난 8월 말 파키스탄에 폭우가 지속되면서 남부 신드 주(州) 등지에서 133명이 숨지고 460만명 이상이 침수 피해를 입자 중국은 어느 나라보다 빨리 인도주의적 원조에 나섰다. 홍수 피해 복구를 위해 통 크게 500만 달러 규모의 긴급 지원을 제공했다. 지원 물자인 텐트 3000장을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중국 공군 대형 수송기인 일루신 76까지 띄웠다. 파키스탄 일간지 <더 돈>의 라자 유세프 기자는 “우리 국민들은 비가 그치기도 전에 도착한 중국 공군기를 보며 감탄했다”라고 말했다.

전기가 늘 부족한 파키스탄을 위해 중국 장강삼협개발공사는 파키스탄에 150억 달러(약 16조원)에 이르는 수력전기 발전 계획을 제안하기도 했다. 중국은 이를 위해 조사 자금 5000만 달러를 먼저 투자하기로 했다. 또 중국은 파키스탄 석탄광구 개발사업에도 적극 진출했다. 중국의 GMC 사는 9월29일 파키스탄 신드 주정부와 석탄광구 개발 추진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GMC는 내년 4월 개발에 착수하는 것을 목표로 2016년까지 45억 달러 상당의 자금을 투입해 30억 달러는 광산에, 15억 달러는 파키스탄의 도로와 통신, 송·변전 시설 등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같은 중국의 호의에 답하기 위해 파키스탄이 과다르항에 중국 군사기지를 건설할 것을 제안하고 중국 무기 구매에도 나선 것이다. 이로써 중국은 파키스탄에서 군사적 입지를 다질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됐다. 중국과 파키스탄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막역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미국·중국·파키스탄의 삼각관계도 요동치고 있다. 파키스탄으로서는 미국을 압박할 카드로 중국을 내세우는 셈이고, 중국은 중국대로 다시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카드로 파키스탄을 활용하는 셈이다. 이 삼각관계가 미래에 어찌 바뀔지 알 수 없지만 당분간은 중국과 파키스탄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뜨거운 형제애를 과시하리라 보인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1653

댓글 없음:

댓글 쓰기